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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 10 (完)

[석율X그래] JOY - 10 (完) 


부제 - Joy to the World 



Written by. shp 




*미래물 & 임신물 & 현실성 없음 주의* 
*배경 - 5년 후 (장그래 대리 & 한석율 대리)* 
*상, 하편으로 나눠야 하나 고민하다가, 예쁘게 한 편에 완결을 담고 싶어서 굳이 자르지 않았어 (스압주의)* 





그러니까 그 일은, 

기적, 이라고 밖에는. 













"조심, 조심" 



석율이 조심스레 그래를 차 안에 태웠다. 짐을 챙기고 준비를 하고, 주차장까지 내려오는 그 동안도, 10분정도에 한번씩 찾아오는 통증에 그래는 몇 번이나 숨을 고르고, 찌푸렸다. 석율이 안전벨트를 채우고, 뒷자석에 있던 담요를 펼쳐 그에게 덮어주는 순간에도, 그래의 흔들리는 눈빛이 계속 그를 쫓았다. 불안하다는, 뜻이었다. 


"석율씨..." 


감출 길 없이 떨리는 그래의 목소리에, 석율이 그래와 따스하게 눈을 맞추고는, 입술에 쪽, 뽀뽀했다. 그리곤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어보였다. 


"괜찮아. 우리 조이 만나러 가는건데. 응?" 


그제야, 흔들리던 그래의 눈빛이, 석율과 오롯이 마주쳤다. 응. 그가 대답했다. 

괜찮아, 괜찮을거야. 조이야, 그래야, 괜찮을거야. 석율 또한 수 없이, 그 말을 되뇌었다. 








"그래 씨!" 

"아, 선생님" 


병원 도착 후, 그래의 배에는 태동 검사기와 진통 지수를 측정하는 장비가 채워졌다. 팔에는 수액 주사가 꽂혔고, 진통 지수는 아직 4프로라는, 현저히 낮은 숫자를 나타내고 있었다. 주한은 급하게 연락을 받고, 그야말로 달려온 탓인지, 하얀 의사 가운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병실로 들어섰다. ㅡ양수는 아직 안 터졌고, 진통은 10분 간격이고요, 2센치 열렸습니다, 라는 이 간호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주한은, 생각보다는 평안해보이는 그래의 얼굴을 마주하고 나서야, 큼, 한 번 헛기침을 하곤 웃어보였다. ㅡ우리, 드디어 조이 만나네요. 


"잘 해 봅시다, 잘 할 수 있죠?" 


주한이 두사람을 보며 물었고, 꼬옥 석율의 손을 쥔 그래가, 주한과 석율을 번갈아보았다. 그리고 뭉근하게 느껴오는 통증들을 고스란히 느껴본다. 조이가 세상에 나오는 발걸음을, 저와 조이의 시간들을, 언제나 함께 해 준, 그리고 끝까지 함께 해 줄 이들. 잘 해야지, 나는 엄마니까. 그래의 눈빛이 깊어진다. 그리고, 


"네. 저 잘 할거에요, 잘 할 수 있어요 선생님" 




그가, 대답했고,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시계가 새벽 1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으....., 후우우우..." 



그래가 통증이 올 때마다 숨을 깊게 들이 마쉬고, 내뱉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석율 또한 옆에서, 호흡을 도와주었다. 차마, 많이 아프냐고, 얼마나 아프냐고, 어디가 어떤 느낌인거냐고 묻지도 못했다. 말해 무엇하랴. 모든 것이 처음이고 두려운 상태일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는 꽤 의연한 상태였다. 세게 다가오는 통증이 점차 약해지면, 석율과 대화도 가능했고, 웃어보이기도 했다. 진통의 간격은 아직도 10분가량. 갈 길이 멀었다. 



"소리도 지르고, 머리도 쥐어 뜯는다더니" 


석율이 희미하게 웃으며, 그래의 몸을 주물렀다. 자꾸 붓고, 혈액 순환이 안 되는 듯 마디 마디가 저린다고 했다. 석율의 말에, 그래가 픽, 웃는다. 



"아직 그럴 정도는 아닌데, 나 진짜 그럴지도 몰라요. 피해 있어" 

"싫어. 나 정말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일거야. 그러니까, 걱정말고 다 해" 

"... 엄마랑, 울산에 연락했어요? 아직 하지 말지. 오래 걸릴텐데" 

"참, 별 걱정을 다 하세요. 아직 안 했어. 석주 누나한테 병원 간다고 문자만 보냈어" 



그 와중에도 이것저것 신경쓰는 그래가 참 어지간하다 싶어, 이불을 잘 덮어주는데, ㅡ잘 했네, 라고 대답하던 그래가 이번에는 허리에 고통이 오는 듯 베개를 덧대어 달라며 잠시 기대 앉았다. 그래의 수발을 들어주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기계 체크, 시간 체크, 그리고 필요한 것들이 없는지 꼼꼼히 둘러보는 석율의 모습을 잠깐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래가, 무언가 고민하다 어렵사리 입을 뗀다. ㅡ자기야.. 




"응? 왜, 물 줄까?" 

"아니.. 나 잠깐만 안아줘요..." 


힘겹게 팔을 들어보이며 안아달라는 제스쳐를 취하는 그래를 보던 석율이, 곧 예쁘게 웃으며 그의 허리를 감싸 안는다. 토닥토닥. 조이야, 얼른 나오자. 중얼거리는 석율에게, 품에 안긴 그래가 울려온다. ㅡ있잖아요..., 


"그냥, 내가 더 아파지면, 혹시나 말 못할까봐 해 두는 말인데...," 


그래의 말에, 뭔가 굳어진 석율이, 품 안에서 그를 떼어내고 눈을 마주한다. 석율의 눈빛은 떨려오는데, 그래는, 그러지 말라는, 평온한 눈빛이다. ㅡ그냥, 해 두는 말인데, 



"만약에라도, 정말 만약에, 혹시 조이랑 나, 둘 중에....ㅡ" 

"ㅡ장그래," 


석율이 다급하게 그래의 말을 끊었다. 화난 어조였다. 그런걸 지금 왜 생각해. 아니, 그런걸 왜 생각해. 하지마, 꺼내지 마 그래야. 


누구도. 석율도, 주한도, 그리고 얼결에 알게 된 백기까지도. 아무도 그래에게 그런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헌데, 무언가 느껴진 걸까. 제 몸의 변화를 느끼며, 무언가 짐작한걸까. 그래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투였다. 꽉 다물어진 입술로 강하게 부딪혀오는 석율의 눈빛에, 이번엔 그래가 어렵게 팔을 뒤로 둘러 석율을 재차 껴안고는 부드럽게 말해온다. ㅡ그런 말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당신이 이러니까, 진짜 무슨 일 날 것 같잖아요. 그냥, 사람일은 모르니까 하는 말이야. 절대, 우리 조이 혼자 두지 말아요 조이 아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 뿐이에요" 


파르르 떨려오던 석율이, 일렁이는 그의 눈동자를 급히 숨겨보려 꾹 눈을 감는다. 그리고는 급하게, 그래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갑작스런 입맞춤에 그래가 잠시 놀랐지만, 이내, 부드럽게 석율의 입맞춤을 받아들인다. 


"절대로" 

나는 우리 조이도, 너도, 모두 혼자 두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그런일은 생각하지 마. 조이야, 아빠가 엄마랑 너랑 다 지킬 수 있게, 우리 조이 조금만 힘내줘. 그래줄거지, 우리 아가? 








"후, 하으.. 아...." 



"...얼마?" 

"....3센치요, 선생님" 

"무통은," 

"안 들어요. 허리 진통이라" 



이 간호사의 말을 전해 듣던 주한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진다. 그래 곁에서 손의 핏기가 하나 없이 그래의 손을 맞잡아 주던 석율에게서도 아픈 낯빛이 떠나질 않는다. 새벽 다섯시가 넘었다. 꼬박 4시간동안 통로가 딱 1센치 열렸다. 양수도 아직 터지지 않았다. 그래는 계속 허리와 배가 동시에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줘보려 무통 주사를 놔주었는데, 으례 허리 진통이 그렇듯이 별 소용이 없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너무 느리다. 


주한이 얼른 초음파도, 측정기도 확인해본다. 하아, 아직 내려올 생각도 안하네. 그나마 다행인 건, 뱃속의 조이가, 심박수를 유지한 채 건강한 상태라는 점이었다. 


"조이야, 거기서 뭐 해. 응? 엄마 아빠 여기서 조이 기다리고 계시잖아..." 


안타까운 마음에, 조이에게 말도 걸어본다. 너무 아픈 듯, 눈을 꼬옥 감은 그래의 모습이 아리다. 이 긴 여정을, 제 말 하나 믿고 열심히 따라와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인데, 의사로써 딱, 이만큼 밖에 해주지 못한다는 것도, 너무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주한의 마음을 안다는 듯, 석율이 괜찮다고 희미하게 웃어보인다. 주한이, 석율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치며 격려한다. 석율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저희, 괜찮습니다 선생님. 





"석, 율씨..." 


주한이 나가고 또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그래가 석율을 부른다. ㅡ어, 나 여깄어 자기야. 그래의 허리를 문질러 주느라 뒤에 자리해서 안보였나 싶어 얼른 앞으로 가 그의 얼굴과 마주하자, 물수건으로 닦아준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다시 땀이 송글송글 차오른 그래의 얼굴이 보인다. ㅡ아프면, 소리라도 좀 지르고 그래. 응? 안타까운 마음에 따뜻하게 얼굴을 감싸주며 말하자, 그래가 희미하게 웃으며 아니란다. 


"우리 조이는, 지금, 나보다, 더 힘들텐데...." 



그래의 그 한마디에, 석율이 졌다,는 듯 웃으면서도 눈에 방울방울 물기가 차오른다. 엄마가, 이렇게 강한거구나. 석율은, 그래가 아파하는 그 과정들을 지켜보며 차마 그 생각까지는 하지도 못했다. 그저, 왜 이렇게 아픈건지, 왜 자신은, 그런 그래에게 손 잡아주는 일 밖에, 호흡을 같이 해주는 일 밖에 할 수 없는지 마음만 쓰려왔었는데. 그래는, 조이 엄마는, 그렇게 고통스런 중에도 행여 조이가 힘들까 걱정이 되었나보다. ㅡ조이야, 우리 얼른 만나자. 아빠가 우리 아가 너무 보고싶어요, 석율이 그래의 배를 쓰다듬으며, 주문처럼 되뇌었다. 










"그래야..!" 

"엄,..마..." 



날이 밝았고, 석율이 어머님들을 불렀다. 올라오시는 시간이 있으신 울산 부모님께 먼저 전화를 드렸고, 석주가 역에서 두 분을 픽업 해, 그래 어머니까지 모셔왔다. 걱정이 가득하신 두 어머니가, 손을 꼭 붙잡고 병실로 들어오셨다. 그래의 ㅡ엄마, 한마디에, 두 어머니가 쏜쌀같이 그의 침대 곁으로 다가와 한 분은 손을, 또 한 분은 그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오야, 오야 내 새끼. 많이 힘들지...?" 

"흑..., 엄...엄마..." 



역시, 어머니였다. 그 따뜻한 음성에, 여지껏 참아왔을, 그래의 눈물이 툭, 터져나왔다. 내가 겪는 모든 이 고통을, 나로 인해 이미 겪은 사람.그 한 사람이 주는 위로는, 어마어마했다. 두 어머니는, 다 안다는 듯, 그래의 곁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나..., 너무..., 아파요 엄마..." 


오직, 어머니에게만 할 수 있었을 한마디. 아파요, 엄마. 엄마도 이렇게, 아팠어요? 그 모습에, 기어이 참던 눈물이 터진 석율도, 더는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잠시 병실 밖으로 나갔다. 두 어머니의 눈에도 물기가 어렸지만, 두 분은 서로를, 그리고 그래를 함께 바라보시며 온화하게 웃어주셨다. 



"그럼. 아프지. 아이가 생 살을 찢고 나오는데, 아프지 그럼" 

"우리 그래 잘하고 있어, 엄청 잘하는거야. 장하다, 우리 그래" 



그래의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그러면서도 진통이 계속 오는지 신음하는 그래의 손을, 두 어머니는 절대, 놓치지 않았다. 



"...엄마, 미안,해....." 


겨우 쥐어짜내 꼭, 흘려낸 한마디. 엄마, 미안해. 엄마가, 이렇게까지 아프면서 날 세상에 내어 놓으신 줄 알았으면, 좀 더 열심히 살 걸. 엄마 눈에 눈물 나는 일 없이, 좀 더 열심히,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걸. 엄마 미안해요. 죄송해요. 차마 이어내지 못한 말들이 눈물로, 신음으로 뱉어지는데도, 어머니는, 두 어머니는, 아니라며 고개를 내저으셨다.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은, 널 태어나게 한 일이고, 세상에서 가장 감사했던 고통은 널 태어나게 하려고 겪은 모든 아픔이었어.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엄마 절대로 하나도 안 빼놓고, 또 고스란히 그렇게 아파서 널 낳을거야. 두고 봐라, 너도 조이 낳고 나면, 그렇게 말할 걸? 그렇죠, 사돈?" 


"그럼요. 그래야 엄마도, 네 번이나 죽을만큼 아팠어도, 또 똑같이 네 번이나 아플거야. 지금 이 순간은, 조이랑, 우리 그래랑 딱 둘만 겪는 일들이야. 석율이도 다 모르는. 얼마나 값진 건데. 그러니까, 힘내자 우리 그래. 엄마들이랑 아버지랑, 그리고 누나들까지, 병원 밖에 한발자국도 안 나가고 꼭 있을테니까, 우리 그래 꼬옥, 힘내야 한다? 응?" 


두 분의 말씀에, 그래가 작게나마 꼭꼭 끄덕여본다. 조이야, 우리 아가, 엄마가 진짜로 잘 힘낼 수 있게, 엄마 그래서 꼭 우리 조이랑 제일 먼저 인사할 수 있게, 조이가 엄마랑 잘 견뎌줘. 









"그래 씨, 그래 씨?" 

"선, 생님..." 



오전 여덟 시. 이제 겨우 40프로가 진행 되었다는 소리에, 주한이 결국은 양수를 터트리고 촉진제 투여를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너무 아픈 고통. 촉진제 투여가 시작되면 정말 겉잡을 수 없을 것이란 걸 알기에, 이왕이면, 되도록이면 안하거나, 늦춰주고 싶었다. 그래의 팔에, 수액 말고 또 하나의 바늘이 꽂히는 순간, 석율도 아찔해지는 느낌이었다. 주한이, 마치 죄를 지은 사람인 냥 미안한 낯빛을 하고 정신없이 고통에 시달리는 그래를 부른다. 



"촉진제 들어갔어요. 이제부터, 훨씬 더, 많이 아플거에요. 미안해요, 근데 더 가면, 우리 조이가 버티기가 힘들어질거라서" 

"저 괜,찮아요, 으..윽..." 

"그래요. 우리, 얼른 진행시켜서 빨리 조이 만납시다. 응?" 



주한이 혹시 모를 상황들에 대해 간호사와 스탭들을 전면 대기 시켰고, 석율은 아예 침대 위로 올라가 그래의 뒷쪽에 자리를 잡고 허리를 받쳤다. 완전히 기대어버린 그래의 몸은 물먹은 솜마냥 추욱 쳐졌고, 석율 또한 그런 그래를 재차 고쳐 안으며, 고통을 덜어주려 애썼다. 









"아윽, 아, 엄,마, 석..석율씨, 하윽," 

"응, 응, 나 여기 있어 자기야, 자기야 호흡, 응? 후우... 옳지.." 


촉진제의 위력은 엄청 났다. 꼬박 네 시간이 걸려 겨우 1센치가 벌어질까 말까 하던 통로는, 불과 몇시간만에, 순식간에 7센치를 넘어섰다. 이제 그래는 온 몸이 뒤틀리는것 같다고 했다. 잘 해오던 호흡도 소용이 없었다. 자꾸 몰아 쉬는 그 숨에, 석율이 아예 박자를 맞춰 호흡을 맞춰갈 수 있도록 그래를 살짝 당겼다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우, 하는 석율의 호흡도 자꾸 놓쳐가던 그래의 숨이 가빠지던 그 때, 





삐빅, 삐비빅, 삐빅- 

ㅡ!! 



여지껏 규칙적인 기계음을 내뱉던 태동 측정기에서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조이의 심박수가 불규칙적이라는 경고였다. 그 소리를 듣고 이 간호사가 주한을 불렀고, ㅡO2 가져와!, 라는 주한의 다급한 한마디에 그래의 얼굴에 산소마스크가 씌워졌다. 그러는 중에도 하아, 하아, 그래는 숨을 제대로 쉬어내질 못했다. 



"그래야, 그래야 이러면 안돼. 응?" 

"그래 씨! 후우, 내뱉어봐요, 후우....하고" 

"흐, 후, 후우....." 

"옳지, 한번 더" 

"후으......" 



그러기를 여러 번, 요란하게 울리던 기계가, 다행히도, 다시 규칙적인 소음만을 울리고 있었다. 



"그래야, 나 봐봐. 응? 아니야, 다른데 말고 여기 봐. 나만 봐" 


요란한 기계음에, 순식간에 낀 호흡기에, 적잖이 놀란 그래의 눈빛에는 또다시 엄청난 불안이 밀려왔다. 자꾸 갈 곳을 잃는 그래의 눈동자를 석율이 제게로 고정시켰다. 


"괜찮아. 우리 조이 괜찮아. 나만 봐. 나랑 숨 쉬어. 할 수 있지?" 


석율의 단호하지만 부드러운 어조에, 그래가 겨우 눈빛을 맞춰 와 긍정의 대답을 보낸다. 
ㅡ응, 우리 그래 착하다, 조이엄마, 잘하고 있어. 계속 다독이는 석율의 목소리에, 겨우 안정을 찾아가는 그래가, 석율의 손에 낀 깍지를 재차 힘 주어 다시 잡았다. 이미 퉁퉁 부어버린 두 사람의 손. 그래는 고통이 올때마다 제 자신도 모르는 엄청난 악력으로 석율의 손만 쥐고 있었다. 











"자기야, 아,윽, 나, 나 아파, 흐윽, 으," 

"응, 아파, 아프지 우리 그래, 그래야 울면 안돼, 힘 빠져, 응?" 



그래는 이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너무 아파서, 소리조차 제대로 질러보지 못했다. 마구 울었다. 아마, 그래 자신도 제가 울고 있음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저 계속 석율만 불렀고, 석율도 자꾸 붉어지는 눈가를 느끼며 그래를 토닥였다. 마치 아이를 얼르듯, 계속해서 안아주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석율이 너무 괴로운건, 차라리 수술을 하자고 덤비면 좋을 것 같은데, 수술할까? 이 말을 차마 묻지도 내뱉지도 못하는 자신이었다. 네가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운데, 내가 너도, 조이도, 아무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서 너무 미안해. 석율은 눈물에, 하지 못하는, 내뱉지 못하는 많은 말을 담았다. 



그래 또한,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온 몸이 떨리게 아프면서도, 수술 따위는 생각도 안하는 것 같은 그래였다. 최대한 안전하게, 최대한 좋은 방법으로, 조이를 태어나게 하는 방법을, 엄마인 그래는 알고,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조이야, 버텨 줘. 두 사람은 그저, 그렇게만 빌었다. 조이야, 버텨 줘. 그래야, 힘내 줘. 라고. 






"자, 그래 씨, 힘 한 번 줘 봅시다. 할 수 있겠어요?" 

ㅡ!! 



거의 지쳐 쓰러갈 때 쯤, 주한이 또 한번 내진을 하더니, 여태껏 한번도 하지 않았던 말을 내뱉었다. ㅡ조이 내려 오고 있어요, 라던 주한은, 다짜고짜 그래에게 힘을 줘 보라 시켰다. 그 말에, 석율이 그래를 반쯤 일으켰고, 그래가 이를 악물면서 아래에 힘을 주었다. 그러기를 몇 번, 열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번도 펴지지 않았던 주한의 표정이 풀어졌다. ㅡ오케이, 



"침대 올려. 조이엄마, 조이아빠, 우리 이제 진짜, 조이 좀 만나봅시다" 










순식간에 눕혀져 있던 그래의 침대가 올려졌다. 그리고, 그래의 어머님이 들어오셨다. 석율도, 어머니도 모두 가운을 입은 채 였다. 밖에서 소독을 마친 주한도, 들어왔다. 주한이 그래의 아래 쪽에 자리 했고, 어머니와 석율이 양쪽에서 그래의 손을 붙들었다. 이미 제 정신이 아닌 듯 지쳐 보였던 그래의 눈빛도, 다시 깊어져 일렁이고 있었다. 석율이 그런 그래의 이마에 쪽, 하고 입술을 맞댔다. ㅡ잘할거야, 우리 그래는. 우리 조이 만나자. 



"자, 그래 씨, 내 말 들려요?" 

"...네" 

"조이 이제 준비 다 됐대요. 그래 씨도 준비 다 된거죠?" 



주한이 사람 좋게 웃어보였다. 그래 또한 다시금 찾아오는 진통에 찌푸리면서도 끄덕였다. ㅡ만나야죠, 저희, 조이. 



"자, 아까 하던 거 있죠? 그거 따악 다섯번만 하면 조이 나와요. 대신 중간에 호흡 끊기면 큰일 나니까, 석율씨랑 어머니랑 같이 길~게, 하는거에요.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힘 주는거에요?" 



그래가 양쪽에 잡은 두 손에 힘을 준다. 석율의 눈빛도 어느샌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기대감 반, 걱정 반. 제발, 마지막까지 아무 일 없게 해주세요. 






"자, 하나 둘 셋!" 

"흡," 



그래의 반동을, 석율이 고스란히 잡았다. 어깨와 등을 꼬옥 쥐고 한 손으로는 그래의 손을 세게 쥔 채였다. ㅡ그래야, 뱉어, 후우우우, 하는 석율의 호흡에 맞춰, 그가 호흡도 잘 내뱉었다. ㅡ어이구, 잘하네 우리 그래. 어머니도 옆에서 계속 그래에게 잘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러기를 두 어번 더 했을까, 



하나 둘 셋, 하는 주한의 외침에 다시 힘을 쏟아내던 그래를 보며, 주한이 기쁜 듯 소리쳤다. 



"조이 머리 보여요! 자, 더더더더더, 여기서 끊기면 우리 조이 숨 못 쉬어요 엄마" 

"아윽.." 



끊기면 조이 숨 못 쉬어요, 라는 말에 그래가 얼굴에 실핏줄이 다 터지도록 힘을 주었다. 하윽, 하는 짧은 숨을 토해낼때까지. 그리고, 석율이, 보았다. 


ㅡ!!... 



"..자기야, 자기야. 조이 얼굴 보여. 쫌만 더, 좀만 더 힘내자" 

"다 됐다, 다 됐어 그래야" 



"그래 씨, 다 나왔어요. 한번만, 마지막! 자, 셋!" 



하는 주한의 마지막 외침에 그래가, 주욱, 힘을 주었고, 갑자기 무언가 쑤욱 빠져나가는 느낌과 동시에 그래의 아래 쪽이, 그러니까 주한 쪽이 분주해졌다. 





*브금(BGM) 재생 눌러주세요* 


 




"응애!!! 응애!!" 


우렁찬 울음과 함께, 




조이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그래야, 수고했어. 잘했어. 고마워" 

"흐윽.., 석율씨... 조이..." 

"응, 조이 나왔어. 잘했어, 잘했어. 사랑해" 



석율이 얼른 그래를 껴 안았고, 입술에 짧게 뽀뽀했다. 어느샌가 두 사람 다 앞이 안보일만큼 울고 있었고, 어머니 또한 조용히 그런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닦아내셨다. 



"엄마...." 

"오야, 잘했다. 이제 우리 그래 엄마 됐네." 


어머니가, 더 없이 환한 미소로 그래를 안아주시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조이 아빠, 뭐해요, 와서 탯줄 잘라요" 

"...!.." 



주한이 웃으며 석율을 불렀고, 석율이 엉키는 걸음으로 조심히 다가갔다. ㅡ자요, 주한이 직접 가위를 쥐어주었고, 석율이 떨리는 손으로, ㅡ툭, 탯줄을 잘랐다. 열 달 동안의 하나가, 기쁜 둘이 되는, 순간이었다 



"자 엄마, 확인시켜드릴게요. 손가락, 발가락 열 개 다 있구요. 씩씩한 왕자님이구, 3.52kg, 58cm, 12월 16일, 오후 13시 56분에 태어났어요. 아가 잘 울어요. 인사하세요" 


울고 있는 그래 곁에, 석율의 곁에, 새빨간 아가가, 조이가 다가왔다. 마구 울던 조이가, 그래의 품 위에 놓이자, 거짓말처럼 색색 숨을 쉬며 울음이 잦아들었다. 뜨끈한 무언가가 두 사람의 가슴께에서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우리 아가, 우리 조이 왔구나 



".... 조, 조이야.. 엄마야.. 고생했어.... 고마워 조이야... 우리 아가, 힘들었지..." 


물기 어린 그래의 말에, 조이가 마치 알아들었다는 듯, 또 한번 우렁차게 울었다. 그 대답같은 울음에, 그간의 고생이, 아픔이, 걱정이, 그야말로 씻은 듯, 날아가버리는 것 같았다. 기적같이 와 준 아이가, 기적같이 세상에 태어났구나. 퉁퉁 부은 얼굴을 한 두 사람이, 조이를 보며 웃었다. 조이야, 엄마야. 조이야, 아빠야. 사랑한다, 우리 아가. 




"감사합니다" 

주한에게도, 병원 사람들에게도, 그래에게도, 석율에게도. 수많은 가족들과 원인터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이 기적같은 아이를 저희에게 보내주신... 하늘에게도. 그저, 감사합니다. 











"석율아!" 

"처남!" 

"아들!" 



그래와 함께 조이와의 인사를 마치고, 후 처치를 위해 남겨진 그래를 두고 그제야 밖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이 생각난 석율이, 얼른 분만실 앞을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여러개의 눈동자가 걱정을 가득 안고 제각각 저를 지칭하는 호칭으로 다가왔다. 그 많은 얼굴들을 보니, 맥이 탁 풀려버린 석율이 살짝 휘청, 하자 매형이 얼른 다가와 잡아주었다. 


어머니도 있었고, 누나도, 매형도 다 있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석율의 눈에, 이제는 주름이 가득해져버린 투박한, 아버지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ㅡ..아버지, 석율이 차마 고개도 못들고 울먹였다. 내려진 시선에, 그래의 손을 꼬옥 잡아주느라 붓고, 여기저기 핏줄이 터져버린 제 손이 보였다. 석율의 작은 부름에, 아버지가, 그 투박한 손으로 석율의 손을 그러쥐어주신다. 그리고는 성큼, 다가와 그를 한 품에 안아 어깨를 툭툭 쳐 주신다. 



"우리 아들, 수고했다. 아버지 되느라, 힘들었지?" 

"으흑.....아,아버지...." 



아버지의 한마디에 그냥, 그렇게 눈물이 났다. 그래가 처음 겪는 고통에 힘들어 엉엉 울어버리기까지 할 때, 석율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러다 정말 둘 다 놓치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렇대도 표현할 수는 없는 것. 그들에게 울타리가, 나무가 되어주어야 하는 것. 아버지의 자리가, 그런 것이라는 것. 그것이, 어릴 적 석율의 아버지가 석율에게, 가족들에게 보여준 마음이었음을, 석율은 그제야 깨달았다. 석율이 그렇게 한참을, 아버지의 품에서 엉엉, 울었다. 석주와 석영이 옆에서 ㅡ너 울어? 너 진짜 울어? 하며 놀람 반 장난 반으로 물어왔지만, 그런건 지금 석율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ㅡ아버지, 저.. 아빠 됐어요. 











".... 조이아빠..." 


입원실로 다시 옮겨졌던 그래는, 거의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그런 그래를 하염없이 지켜보던 석율도 어느샌가, 깜빡 잠이 들었었나보다. 열 두시간이 훌쩍 넘는 진통이었다.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석율을 부른 그 말에 놀라 석율이 눈을 떴다. ㅡ어, 깼어? 어디 아픈덴 없어? 일어나 이리저리 그래를 살피던 석율을 보며 그래가 고개를 도리도리. 하고는 웃었다. ㅡ우리, 꿈 꾼거 아니죠? 하던 그래는, 부피가 현저하게 줄어든, 제 배를 한번 쓰다듬어 본다. 그 모습에, 석율이 쿡, 웃어보였다. 그리고 따스하게 그의 손을 겹쳐 잡았다. ㅡ왜, 꿈 같아? 이상해? 



"꿈 아냐... 우리 조이가, 우리 아들이, 엄마 뱃속에서 나왔어" 

".... 조이는....?" 

"신생아실에 있지. 무슨, 그렇게나 키웠어. 3.5키로가 넘어. 키도 그 중에서 제일 큰 거 같아" 

"아빠 닮아 큰 거지. 누구 닮았어요? 보고 싶어..." 

"좀 있다 우유 먹을 때 되면 온대요.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어머니는 나 닮았다 하시고, 엄마는 우리 그래 닮았다 하시고" 


ㅡ나 일어나고 싶어. 그래가 일어나려 하자, 석율이 잠깐만, 하며 침대를 올려주었다. 오롯이 시선이 맞닿은 두 사람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가와 서로를 꼬옥 안았다. 



"수고했어요" 

"수고했어" 



ㅡ사랑해요. 서로가 아니었다면, 견뎌내지 못했을 일. 서로가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그 기적같은 일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할 수 있어서, 고마워요. 조이 엄마로 살게 해 줘서, 조이 아빠로 살게 해 줘서. 


석율이 그래의 입술에 조심히 다가섰다. 고통에 신음하느라 여기저기 부르트고 터진 그 작은 입술이 안타까워 잠시 아픈 눈빛을 하자, 그래가 손을 들어 그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먼저 쪼옥, 석율의 입술에 노크했고, 석율이 그의 눈을 가린 그래의 손을 꼬옥 잡으며 그래의 혀와 조우했다. ㅡ고마워. 어려운 일을 견뎌내줘서. 우리 아이를 만나게 해줘서. 사랑해, 조이엄마. 사랑해 장그래. 









"그래야, 축하해" 

"감사해요 누나. 근데 꽃은 누나들이랑 엄마, 어머니가 받으셔야 될 거 같아요" 

"큭.., 왜, 해보니까 장난 아니야?" 

"코에서 수박 나오는게 차라리 덜 아플 뻔 했어요" 



하하하, 그래의 한마디에, 빙 둘러선 온 식구가 소리내어 웃었다. ㅡ우리 그래 농담하는 거 보니까 좀 살았네, 석율이 그래에게 가디건 하나를 덮어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때- 





똑똑, 


"장그래 님, 아기 왔어요~" 

간호사의 품에 안긴, 조이가, 드디어 온 식구들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래의 품에 한 팔에 쏘옥 들어오는 조이가 안긴 순간, 석율과 그래의 눈에는, 또다시 눈물이 방울방울 고였다. 아이는 무엇을 느낀건지, 살풋 찡그리며 애앵- 울었다. 그래가 얼른, 어, 조이야, 엄마, 하면서 토닥여주자, 이번에는 찡긋, 하며 눈을 떴다. 


"어? 눈 떴다, 조이야~ 아빠, 아빠야 조이야~" 


석율이 그래의 옆으로 가 그래가 편하게 아이를 안을 수 있도록 기대게 해 주었다. 그 세 가족의 모습이 퍽이나 따뜻해보여, 가족들 모두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마치 원래 그랬어야 하는 퍼즐조각처럼, 이제야 잃은 나머지 한 조각을 찾은듯한 모습이었다. 




"아무리 봐도 석율인데...," 

"에이 사돈. 그래를 더 닮았다니까요. 보세요, 이 입술 새빨간거" 

"코는 석율이를 빼다 박았는데요? 쌍커풀 있는 눈도 그렇고," 

"그런데 이 속눈썹 긴 거는 또 그래에요, 동그란 머리도 그렇고. 아구, 이뻐라" 



그래가 한참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는 동안, 두 어머니는 또 열심히 토론을 하셨다. 그래의 어머니는 계속 석율을 닮았다 하셨고, 석율의 어머니는, 그래를 닮았다며 웃으셨다. 석주가 옆에서 엄마들 그만 하시라고 귀엽게 툴툴대지 않았다면 아마 밤새 누굴 닮았는지에 대해 얘기하실 모양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조이는 어디 하나 빼먹지 않고 고루고루 엄마와 아빠의 좋은 것만 골라 챙겨 나왔다는 점이었다. 그를 알기에, 모두의 눈에 사랑이 가득했다. 







"조이야~" 


그래가 따뜻하게 아이를 부르자, 잠이 들려던 아이가 또다시 살짝 깨어 젖병을 빨았다. 석율도 그 모습에 따뜻하게 웃었다. 엄마와 눈을 맞춰보려는 조이의 눈빛이 까맣고 영롱했다. 그리고 배냇짓인듯, 예쁘게 웃어보였다. ㅡ어? 웃네, 


"다른건 몰라도, 눈동자는 딱, 자기다." 

"눈웃음 치는 건, 딱, 석율씨에요. 그치 조이야...?" 





"근데, 이름은? 그냥 당분간은 조이야? 석율이랑 그래, 뭐 생각한거 없어?" 


석영이 물어왔고, 석율과 그래가 서로를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 했다. 석율이, 한발자국 뒤에 서 있던 아버지를 불렀다. ㅡ아버지, 그 부름에, 그저 따뜻하고 흐뭇하게 바라만 보시던 아버지가, 살짝 놀라 두 사람 곁에 다가섰다. 



"어, 어 왜," 

"아이, 이름 지어 주세요 아버지. 누나들이랑, 석율씨 이름은, 석율씨 할아버님이 지어주신거라면서요. 조이 할아버지는, 아버지시니까, 아버지가 지어주세요" 


그래가 앞 뒤로 아이를 토닥이며 말씀을 올리자, 아버지가 허허, 하고 쑥쓰러우신듯 웃으셨다. 기대 가득 찬 식구들의 모든 눈빛에, 큼, 헛기침을 한 번 하신 아버지는, 조용히 품에서, 곱게 포장 된 편지봉투 하나를 꺼내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ㅡ와, 거봐 우리 아버지, 준비하셨다니까? 얘들아, 너희 말 안꺼냈으면 아버지 우셨겠다 야, 누나들이 부러 장난스레 말했고, 아이를 안은 그래 대신 석율이 조심스레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고운 종이에, 멋진 서체로 정성들여 쓴 두 글자가 있었다. 




"다 온




석율이 쓰여진 글자를 읽어내보았다. ㅡ한글, 이름이에요? 석율이 묻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 하셨다. 


"그래 이름이, 예쁜 한글이니, 아이도 엄마따라 한글 이름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그 말씀에, 두 사람이 아버지와 다시 시선을 맞췄다. 하루 아침에 결정하신 이름이, 아니었겠구나. 두 어머니들이 이것저것 열 달을, 먹거리와 보살핌으로 챙기시는 동안, 아버지 또한 묵묵하게 당신의 방법으로 손주를 기다리셨구나 싶어 다시금 감동이 밀려왔다. ㅡ아버지, 무슨 뜻이에요? 그래가 웃으며 물었다. 



"말 그대로 다~ 왔다는 뜻이다.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다~ 가져 온,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좋은 일도 다~ 이 아이를 통해 오면 좋겠다는 뜻의, 다 온" 



조이라 불리던 태명과, 꼭 들어맞는 이름자였다. 정말, 다 가져온 아이. 기쁨도, 사랑도, 행복도, 성숙도, 책임감도, 주위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다, 가져  아이였다. 




한 다 온. 




"다온아~ 한다온~" 

그래와 석율이, 아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엄마의 따스한 품에서, 몇 번을, 살풋 잠들었다 깨고, 잠들었다 깨고를 반복하던 아이는, 마치 제 이름인 줄 알았다는 듯, 헤, 하고 소리까지 살짝 내며 웃어보인다. 



"어머, 얘 알아듣나봐. 다온아~" 


석주가 호들갑을 떨며 한 번 더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아이가, 마치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모양인듯, 팔까지 꿈틀대며 헤헤, 웃었다. 



모두의 마음에, 아이의 이름이 새겨졌다. 







우리에게 기적처럼 와 준 아이, 


그렇게 다 가져 온 아이, 


앞으로도 수 없이, 다 가져 올 아이, 






한석율 장그래의, 




아이, 





한. 다. 온. 






사랑한다, 다온아 ♥ 









그러니까 그 일은, 

사랑, 이라고 밖에는. 







JOY, 

FIN. 












+) "다온이가 태어났어요"를 듣고 병원에 모인 원인터 식구들,
 




"한 대리네"

"장 대리지. 강해준 너 저 붉은 입술이 안보이냐?"

"그러는 하 과장은 저 콧대가 안보이는 모양이지?"

"두 분! 진짜 병원 와서까지 이러실거에요?"

"안 대리는?" / "안영이 너는?"

"네에??"


신생아실 앞에, 해준과 성준이 다온이를 보며 또 한바탕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였다. 영이가 못말린다는 듯 그 둘을 말리자, 둘은 아랑곳 않고 영이 생각은 누굴 닮은거 같냐며 물어오기까지. 그 모습에 괜히 불똥 튀고 싶지 않은 백기가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쳤고, 그런 그를 놓칠리가 없던 해준이, 그의 팔을 꾸욱 잡아 제 옆에 오게 했다. 허, 허허, 백기가 어설프게 웃으며, 난 잘 모르겠다는 액션을 취하자, 다시 잘 보라며 제 앞에 세워주기까지 하는 해준이었다. 이에 지지 않고 성준 또한 영이를 앞세워 아이를 보게 했다. 망했다, 영이와 백기 두 사람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려는 순간,



"오셨어요?"


석율과, 그런 그의 부축을 받은 그래가, 링거가 꼽힌 폴대를 끌고 함께 나타났다. 두 사람의 모습에, 영이와 백기가 얼른 다가가 그래를 도왔고,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고생했어요. 아휴, 두 분 다 얼굴이 반쪽이네"

"축하해요, 그래 씨. 축하해요, 석율 씨"

"감사합니다. 다 격려해주시고 열 달 동안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진짜로, 아니었으면 절대 못했어요"



"조이 엄.., 아, 이제 다온이 엄마라고 해야 되나?"

영이가 웃었고, 모두가 다온이 엄마, 다온이 아빠를 중얼거려본다.




"그래서, 다온이 엄마 아빠는 다온이가 누굴 닮은거 같아?"

"에...?"


아, 이 끝없이 부질없는 언쟁은 언제쯤 끝나려나 싶은 그 때,






"나 닮았다, 이 하과장아"

"부장님!!"

"오! 안대리!, 아 우리 안영이 대리 몸도 편치 않을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뒤에서 성준의 어깨를 툭 친 오 부장님이, 동식과 함께 나타났다. 그 와중에도 눈에 보인 영이에게 먼저 인사까지. ㅡ부장님. 아이는 제가 낳았습니다, 그래가 부러 툴툴대자,


"알어 임마! 뭐 별 대단치두 않은거 한다구 이 많은 사람들 데리구 유세야, 야 우리 집사람은 그 쪼끄만 몸으로 셋이나 낳았어, 셋이나"


툴툴에는 툴툴로 받아치는 부장님이셨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옆에 선 석율의 어깨를 따스히 감싸고, 그래의 폴대를 쥐어 확인하시곤 ㅡ너 근데, 이러고 돌아다녀도 돼? 라고 묻는것도 잊지 않으셨다.




"부장님, 할아버지가 너무 툴툴대면 안되시죠!"

"뭐? 야, 김똥.., 아니 김 과장! 내가 왜 할아버지냐니까?!"

"장그래 부장님 새끼잖아요. 새끼가 새끼를 낳았으면 할아버지 되는거지, 뭘 새삼스레"

"김과장 봐라? 장그래가 왜 내 새끼야, 니 새끼지. 내가 영업3팀이냐? 난 영업부장이라고"

"거 애기 낳았단 소리에 어제 하루 종일 볼펜 돌리셔놓고 차암~"

"너 조용히 안해?"



큭, 오 부장님과 끝없이 이어지는 동식의 귀여운 말다툼에, 그래와 석율이 쿡, 하고 웃자, 그제야 멋쩍게 벙찐듯 쳐다보던 동식이 그래의 곁에 다가섰다. ㅡ에휴, 우리 장그래그래, 그래 내 새끼면 어떻고 오 부장님 새끼면 어때. 그치? 한번 안아보자. 하고는, 그래를 그 큰 품에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과장님...,"

"오야"

".... 동식이 형"

"...뭐?!"



품 안의 그래의 호칭에 화들짝 놀란 동식이 그래를 떼 내었다. 그동안 그렇게 사석에서라도 한번 불러보래도 부르지 않던, 형. 끝까지 그래는, 동식을 과장님, 이라 칭했더랬다. ㅡ장그래 왜그래, 야 한석율, 얘 아직 출산의 고통과 충격에서 못 벗어난거 아니냐? 다다다다 말해오는 동식에 또다시 웃음보가 터진 그래가,



"영상 편지에, 오랜 형이라고. 저희 다온이한테 그러셨잖아요. 아이 헷갈리지 않게 하려면, 제가 고쳐야지 별 수 없잖습니까, 여긴 회사도 아니구요. 저 아직 장 대리 복귀도 안했구요"

"허, 참, 애가 생기면 철이 든다더니, 얜 능구렁이가 됐어요 부장님"



그 말에도 모두들 하하하. 능구렁이까진 아니어도, 확실히 느슨해지고, 여유로워진듯한 그래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였다. 꽉 조여진 벨트가, 한 땀, 한 땀, 넓혀져가는 느낌이었다. 


"장그래, 이왕 형 한거 우리 여기서 사돈 계약도 체결하면 안되겠냐?"

"에에????"

"야 왜, 우리 소영이 나 안닮고 우리 은지 닮아 얼마나 이쁜데. 다온이 너무 이쁘다. 알잖아. 요즘 2년 연상은 연상도 아니...ㅡ"

"과장님. 아빠도 결정권 있습니다"

"한 대리는 좀 시끄럽고,"



"아 과장님! 안돼요. 저희 다온이, 도담이가 여자로 태어나나 남자로 태어나나 보고 결정할겁니다"

"얼씨구? 야, 한 대리야, 거기서 우리 도담이가 왜 나와?"

"싫으세요? 아 뭐 하 과장님 싫으시면 ㅡ"

"야, 야, 누가 싫대? 어? 아니 우리는 아직, 응? 성별을 모르잖아~"

"그래요 한 대리. 그리고 도담이 아빠가 하성준인것도 잊으면 안됩니다"

"야! 강 과장 너 진짜 이럴래?"



다시 그래의 병실로 향하는 모두의 발걸음에, 따뜻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기도 하다.





모두에게, 기적을 선물한 아이,



한 다 온, 사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