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Share with me

[석율그래] Share With Me - 05

shp_joy 2015. 3. 4. 17:49

*오메가버스 세계관을 기반으로 재구성* 
*현실성이 1도 없을 수 있음 주의* 












"하... 후으..." 


철저하게 어둠이 내려 앉은 밤, 더 이상 잠들기를 포기한 석율이, 제 옆자리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힘겨운 숨에 무겁게 오르내리는 그래의 가녀린 어깨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 자신조차 느끼지 못할 고통어린 숨이 나올때마다 한 번,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이 느껴질때마다 두 번. 석율은 손을 뻗어 그래에게 닿으려다 주저하기를, 그렇게 수 십번째 반복하는 중이었다. 



"ㅊ.. 추워..." 


창문 하나 열리지 않은 방 안이지만, 아마도 뜨겁게 올라갔던 열감이 식으면서 한기가 도는 모양이었다. 본능적으로 따뜻한 곳을 찾아 석율 쪽으로 몸을 돌리는 그래의 몸짓에, 석율의 심장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후, 어쩌란거야 진짜. 괜시리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려 마른 세수를 하던 석율이 살짝 거리를 두어 떨어지고는 이불을 들어 그래에게 꼼꼼히 덮어 주었다. 갑자기 느껴진 따뜻함이 좋았는지 칭얼거림은 멈추었지만, 미간에 자리한 주름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망설이던 석율이 여러번을 고민하다 손을 들어 이불 위로 토닥토닥, 그 옛날 어린 지율이에게 해 주었던 것처럼 그렇게 그래를 토닥였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을까. 불규칙적이던 그래의 호흡이 색색, 예쁜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자신을, 석율은 그 밤 내내 부정해야만 했다. 





Share with Me - 05


written by shp










"그래야!" 


헐레벌떡. 그야말로 몸을 내던지며 그래의 집 안으로 들어온 백기가, 코 끝을 자극하는 향기에 자동적으로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그 사람 것이었어. 꽤나 시간이 흘렀을텐데도, 엘리베이터를 내리면서부터 느껴지는 짙은 소나무 향에 설마 하던 백기였다. 거 참, 누구신지 몰라도 영역표시 한 번 제대로 하고 가셨네. 무슨 결계 치십니까. 익숙하게 탈취제를 찾아 꺼낸 백기가 급한대로 칙칙, 여기저기 그 알파의 흔적을 지워나가자, 자는 것처럼 이불과 한 몸이 되어 벽을 보고 누워있던 그래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지마. 그냥 둬. 



"어? 자는 거 아니었어?" 
"네가 그리 요란했는데, 잠이 올리가" 
"그럴거면 기척을 해야지. 사람이 왔으면 인사를 ㅈ, 그래야! 너 울어?" 


침대를 빙 둘러 돌아가, 그래의 얼굴을 마주 본 백기가 그의 얼굴에서 소리없이 흐르고 있던 눈물을 보곤 화들짝 놀라 그래를 일으켰다. 마, 많이 아파서 그래? 왜그래, 응? 당혹감 서린 백기를 바라보는 중에도, 마치 제 의지가 아닌 양 똑똑 떨어지는 그래의 눈물은 쉬이 멈추질 않았다. 백기가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고 침대에 걸터 앉아 그래와 시선을 맞추자, 그래 역시 그저 가만히 백기의 어깨에 기대어 왔다. 




"... 그렇게, 주려던 건 아니었어" 


뭐를. 백기가 물었지만, 더 이상의 대답은 없었다. 몰아서 일을 하고, 억제제를 챙겨먹지 않게 된 3일 전부터 스케쥴이 조금 느슨해진터라 집에 틀어박혀 작업을 하다 백화점으로 향했었다. 평소에도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했고, 푸드코트에 앉아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먹더라도 그냥 시간을 때우는 걸 좋아해서였는데. 그날은 왜인지 저는 입을 일도 별로 없어 보지도 않던, 남성복 매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예쁘게 디스플레이 된 네이비 색 수트를 보는 순간, 각 잡힌 정장에도 옷 테가 살던, 그 날 제 집에서의 석율의 모습이 불현듯, 그렇게 갑자기 떠올랐었다. 한석율 씨 입으면 잘 어울리겠다. 생각만 하던 저는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계산을 하고 있었고, 너무 오버 하는거 아닌가 싶은 망설임에도, 왼손에 쥔 쇼핑백의 묵직한 무게에 기분이 좋아졌었다. 언젠가는, 선물 한 번 할 기회가 오겠지. 어찌됐건 내게는, 고마운 일이니까. 


날 좋은 날 예쁘게- 하던 드라마 속 장면처럼은 아니어도, 그렇게 저와 석율 모두를 상처주는 말을 하면서, 마치 갑의 입장인 듯 그렇게 주려던 마음은 정말,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제가 열에 달떠 엉엉 울던 순간에도 피임이 먼저라 여기던 모습이나, 기대할 순 없었지만 배려라곤 없던 관계.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보인, 제 곁에서 잠을 청하는 것 조차 싫었다는 듯, 반듯하게 정리 된 제 옆자리를 마주했을 때. 무엇보다 눈이 내려 앉은 소나무보다 훨씬 더 차가웠던 그의 향을, 그 향을 느끼는 순간 말은 멋대로 흘러 나갔다. 제 왼쪽 가슴엔, 그가 새긴 각인이 붉게 피어오른 뒤였으니까. 이게 얼마나 싫을까, 당신은. 아니, 감정도 없겠지. 그러니 내 향은 다 지우고 가. 그렇게는, 싫어. 









"그래야... 너 혹시 약은 먹었어?" 
"응" 


그 앞에서, 보란 듯이. 우리 관계에, 말끔한 정리를 하듯이 그렇게. 속으로 삼킨 그래의 목소리가 더 이상 젖어 있지 않자 살짝 몸을 틀어 그래와 시선을 마주한 백기가, 이리저리 살피며 그제야 조심스레 괜찮냐 물어오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속 괜찮나. 병원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자꾸만 안색을 살피는데, 멍하니 침대 헤드에 기대 있던 그래가 툭, 백기를 불렀다. 



"백기야" 
"응" 
"나 휴대폰 좀" 


응? 혹시 전화를 하려나 싶어 얼른 옆에 둔 그래의 휴대폰을 쥐어주자, 터치 몇번에 메모장을 띄우고, 터치 펜을 꺼내 든 그래가, 저만 알아볼 수 있을 법한 암호같은 기호들을 마구 쓰기 시작했다. 허, 백기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입을 쩌억. 넌 그 와중에도 악상이 떠오르냐, 응? 



"장그래야" 
"응" 
"너 지금 되게 재수 없어" 
"알아" 


그새 입력이 끝났는지 휴대폰 버튼을 눌러 액정을 꺼버린 그래가,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와, 어이없는 웃음을 보인 백기가 더 이상의 위로는 필요없다며 자리를 탁, 털고 일어났다. 일어나, 인마. 죽 사 왔어. 









"자아- 이건 지율이 머리띠, 이건 머리핀. 이건 화장품. 오빠가 잘 몰라서 직원 추천 받아서 샀어" 
"...." 
"그리고 이건 지율이 책. 이건 교과서, 이건 문제집. 무리하는건 안되지만, 하루에 30분씩이라도 오빠랑 꼭 하자. 나도 좀 오래되긴 했는데, 같이 공부하지 뭐" 
".... 오빠.." 
"그리고 이건, 지율이 티셔츠 몇 벌이랑, 카디건. 병실 가끔 춥잖아. 만져봐, 되게 부드럽다? 혼자 입기는 싫어할 것 같아서, 엄마랑 커플룩. 이쁘지?" 


크리스마스도, 생일도 아닌데. 지율은 아까부터 끊임없이 쏟아지는 석율의 선물 공세에 그야말로 어리둥절한 얼굴로 석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서, 석율이 함께 사들고 온 검은 봉지에 든 과일 몇 개를 꺼내어 깎는 어머니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접시에 나란히 과일을 담아 내시는 중이었다. 그런 오빠를 한 번, 기분을 읽을 수 없는 엄마를 한 번, 그렇게 눈치를 보던 지율이가 제 품에 소복히 쌓인 선물들을, 하나도 기쁘지 않은 표정으로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지율이에게서 원하던 리액션이 나오지 않자 갸웃하며 계속 표정을 살피던 석율이, 부러 에잇- 하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 이건 엄마 가시면 주려고 했는데. 



"짜잔-" 


석율이 내민 것은 얼마 전 지율에게 사줄까 물어보았던 그 태블릿 PC였다. 이번엔 지율이 조금 많이 놀란 듯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처럼 기뻐할 수는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냥마냥 좋아해주길 바랬는데.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밝은 척을 해대던 석율도 더는 아니다 싶었는지 이젠 지율이를 붙잡고 일부러 눈을 맞췄다. 



"한지율~ 오빠가 이쯤 노력하면 좀 웃어주라, 응? 안 기뻐? 안 좋아? 지율이, 이거 갖고 싶었던 것 아니었어?" 
".... 맞아. 나 이거 갖고 싶었어 오빠" 
"근데 왜. 오빠 어제 안 와서? 그건 오빠가 일이 있" 
"오빠" 
"응" 
"왜 그래? 오빠 무슨 나쁜 짓 해? 갑자기 왜그래. 난, 오빠 이러는게 훨씬 더 무서워" 


무서워. 오빠 어디 가? 나 어디 갈꺼야? 순식간에 두려움으로 가득 차오른 동그란 눈에 울망울망 눈물이 맺히자 석율이 당황한 듯 지율의 품에 잔뜩 쌓인 물건들을 대충 옆으로 치워두고 얼른 다가가 지율을 안았다. 



"지율아, 그런거 아냐. 오빠 어디 안가. 지율이도 어디 안가고" 
"나, 흐엉, 이런거, 끅, 필요 없어. 나는, 흑, 학교 안가도 되고, 흐윽, 아픈것도," 
"그만. 지율이 그만. 미안. 오빠가 미안해. 쉬이... 착하지.." 


한참 갖고 싶은게 많고, 꾸미는 걸 좋아할 열 다섯 살 여동생은, 왜이리도 철이 들어 버렸을까. 이러자고 그 날, 네 오빠가 되기로 결심한 건 아닌데. 지율아 오빠는, 그냥 네가 좋다는 거 하고 싶다는 거 하면서 오래오래, 오빠랑 엄마 곁에 있어주면 좋겠어. 그럴 수만 있음 오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지율아. 석율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수 많은 말 대신 한참을 지율이를 안아 토닥였다. 그럴수록 점점 복잡해져 오는 머리를, 마음을, 석율은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 치, 그렇게 좋으면. 아까, 처음부터 좀 좋아해주지." 
"피이. 안 좋아. 오빠가 나중에 다 설명해줄때까지 안 좋아 할거야" 


말은 그렇게 해도, 어디서 태블릿 PC 작동법은 다 알아냈는지 익숙하게 이것저것 눌러보며 벌써 음악을 재생시키고 손가락을 움직여 글을 써보고, 그림을 그리고, 석율에게 사진을 찍자고 웃는 지율이를 보던 석율이, 피식 옅게 웃으며 간병인 침대에 이불을 폈다. 지율이를 달래 주려 하다보니 어느새 늦어진데다, 어제는 저 때문에 어머니가 병실을 지키셨으니 오늘은 제가 응당 제가 있어야 할 것 같아 석율은 아예 편한 옷으로 갈아 입었다. 집으로 향하시는 어머니를 배웅하며, 급한 불은 대충 껐으니 엄마도 이제 다른 사람 간병 말고 지율이 곁에만 있으시라는 석율의 말에, 어머니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그저, 



- 네가 믿어 달랬으니까. 그래서 엄마 지금은 아무 말 않는거야 


하시던 어머니의 시선은, 어제와는 다른 셔츠와 양복을, 한 눈에 보기에도 아주 고급 브랜드의 것인 그것들을 들고 선 석율의 손끝에 닿았지만 석율은 부러 못 본 척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 병원을 나서서 택시를 태워 드렸다. 장그래 생각 같은 건, 지금의 석율에게는 사치, 그 자체였을 뿐이다. 
  




"밑에서 잘꺼야?" 
"그럼?" 


그러자 지율이 팡팡, 제 옆자리를 두드렸다. 아이고, 안돼요 아가씨. 오빠 올라가면 너 불편해. 석율의 안된다는 말에도, 으응? 하는 지율의 웃음에, 석율이 못말린다는 듯 아프지 않은 꿀밤을 콩, 지율에게 선사하고는 좁은 환자 침대 위에 올라 지율을 안아 주었다. 엄청 컸다, 우리 지율이. 




"오빠" 
"응" 
"... 연애 해도 돼, 오빠" 
"뭐?" 
"나 때문에. 엄마 때문에. 상황 때문에.. 오빠의 마음까지 부정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지율아" 

"오빠는 가끔 까먹는 것 같은데. 그래도 난 여전히 베타이기도, 오메가이기도 해, 오빠" 


덤덤한 동생의 말에 화들짝 놀란 석율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지율을 마주했다. 나는 오메가이기도 해. 그러니까 나는, 오메가의 향을 알아. 그리고..., 오빠의 마음도 알아. 굳이 따라오지 않은 설명이었지만, 석율은 충분히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제야, 아이처럼 엉엉 울어내던 좀 전의 지율의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두려웠겠구나. 며칠 전부터 갑자기, 다른 이의 향을 묻혀오는, 변한 오빠. 그리고 아픈 자신. 그에 동반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변화들. 또렷한 지율의 시선에, 그 말간 눈동자에 점점 할 말을 잃은 석율이 그저 고개만 숙이자, 지율이 예의 그 예쁜 웃음을 보이면서 말했다. 사과 향이, 아름답긴 하지. 


"대신 뭘 하는지, 왜 이러는지는 알려줘. 나중에라도. 엄마랑 난, 기다릴 수 있어" 



그리고 거짓말처럼, 석율의 눈에 지율이 손에 쥔 화면에 선곡 된 플레이리스트가 보였다. 


[Now Playing - Candy Apple (Inst.) (작사/곡: 장그래)] 









[10시 반. 기관 정문 앞에서 볼까요? - 장그래] 


한낮 인턴일 뿐인 제가 한참 바쁜 시간에 반차를 쓸 수 있을리는 만무했지만, 어차피 큰 프로젝트는 시행되고 있지 않으니 현장을 잠시 다녀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석율은 회사를 나섰다. 1층 로비를 나서기 전, 화장실에 들러 넥타이도 한 번 고쳐 매고, 머리도 다시 점검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비싼 드라이클리닝까지 맡긴 그 때의 그 옷은, 석율에게 예쁘게 길들여져 그를 한창 빛나게 하고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이 꽤나 까칠한 것 같아 못내 신경이 쓰이다가, 


큭, 한석율. 너 지금 뭐하니. 


문득 이 상황이 말도 안되게 어이가 없어 빠르게 문을 나섰다. 이건 꼭.., 그래, 이건 꼭, 애인 만나러 가는 사람의 행동 같았다. 오늘이 지나면, 더는 볼 일이 없을 사람이었다. 계약서 때문에도 그랬고, 그래를 만난 후 도통 머리와는 다르게 놀고 있는 마음 때문에도 더욱 그랬다. 어제, 남은 1억 중의 반인 5천이 입금 되었다. 그리고 오늘 이후엔, 나머지 반을 받게 되겠지. 빚은 깔끔하게 청산 되겠지만, 지율이는 아직 아팠고 저는 아직도 가장이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떠난 후, 한번도 이 무게를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거기에 오메가, 아니 장그래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율아 미안. 오빠 아직은 자신이 없어. 





[그러죠. - 한석율] 


자신이야 워낙 시간이 들쭉날쭉한 사람이니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혹시라도 업무에 지장을 줄까 싶어 부러 의문형으로 보낸 문자에 돌아온 대답은 실로 너무 간단해서, 그래는 한참을 쳐다보다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옷장에서 옷들을 꺼내 이것저것 대보고, 그에 맞는 시계를 골라보던 그래가, 마침내 옅은 그레이 컬러의 스트라이프가 섞인 화이트 계열 셔츠에, 비슷한 그레이 계열의 진(Jean)을 입고 만족스런 표정으로 거울을 보다보니, 


하, 장그래. 뭐하는 짓이야 이게. 


문득 이 상황이 말도 안되게 어이가 없어 시계도 아무거나 대충 차고, 신발도 대충 신은 채 현관을 나섰다. 이건 꼭.., 그래, 이건 꼭, 애인 만나러 가는 사람의 행동 같잖아. 오늘이 지나면, 그는 저를 잊을 사람이었다. 자신이야 평생 제 왼쪽 가슴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 어쩔 수 없이 그를 추억할테지만, 알파.., 아니 한석율에게 저는 그저 하룻밤 아니었을까. 아, 각인이 있으니 그래도 가끔은 생각이 나려나. 처음 그에게 제 알파가 되어달라 청했을 때와는 너무 달라진 듯한 제 감정에, 그래는 사실 며칠 밤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대화할 구실을 만들고 싶어 5천을 입급했는데, 그 흔한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가 없었다. 그래, 어차피 혼자 살기로 한 것. 알파 따위 없었단 듯 살면 돼. 주문을 외우듯 다짐하던 그래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 왔어요?" 
".. 네. 들어가요" 


보호소에 입소하는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기관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이래서 일찍 온 건데. 어림잡아 대기 시간만 한 시간쯤 걸릴 듯 했다. 꼭 혼인 신고서인것처럼, A4용지를 반으로 갈라 한 쪽에는 알파의 인적 사항을, 또 한 쪽에는 오메가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가 먼저 작성했고, 옆에 앉은 석율에게 스윽, 내밀었다. 순간 석율이 소리 없이 큭, 웃고야 말았다. 생긴 건 예쁜데 글씨 왜 이래. 무심결에 그래를 돌아보자, 먼저 자리로 가 대기 하고 있는 그의 얼굴 위로, 햇살이 예쁘게 내리 쬐고 있었다. 그 옆으로 간 석율이, 살짝 몸을 틀어 앉았다. 소나무는 사과의 그늘이 되어 주었다. 




뭐라 물어야 할까. 그 날 잘 갔나요? 잘 지냈어요? 사실 어떠한 물음도 입에서만 맴돌뿐이었다. 그래가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석율은 제 가방에서 서류 뭉치로 된 것을 꺼내 읽어 내려가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뭐 외우나. 괜히 궁금해져 슬쩍 목을 빼는데, 시선은 그 서류 뭉치에 둔 석율이 툭, 운을 떼었다. 


"... 입금, 됐어요" 
"아, 네에-" 


마치 안절부절하던 마음을 들킨것만 같아 귀 끝이 붉어진 그래가 다시 몸을 돌려 앉아 애꿎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곧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그리고, 표정 변화 없던 석율 역시 속으로 한석율 이 미친놈아,를 수십번 되뇌이고 있었다. 돈이 오갔으면 차라리 고맙다고 할 것이지 입급 됐어요, 라니. 제 스스로도 너무 한심한 발언에, 글자가 도저히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휴, 외워야 하는데. 코 앞으로 다가온 PT 마저 망칠순 없는데. 옆에는 장그래가 있고, 벌써 수 백번쯤 읊어본 내용은 도대체가 입에 붙질 않았다. 그 때.., 


"...아, 드, 들어봐요. 내 노래긴 한데, 가수 음색이 조, 좋아서" 


제 오른 쪽 귀에, 이어폰 하나가 꽂히고, 곧 잔잔하고 예쁜 멜로디가 흘러 나왔다. 옆을 돌아보니, 어느새 그래는 음악에 빠진 듯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꼭, 초조해 하는 마음을 들킨것만 같아 잠시 고개를 숙이던 석율이 차분해졌다. 이 음악, 효과 있네. 석율의 마음이 따뜻해졌다. 









"휴우-" 


모든 절차가 끝난 후, 기관 문을 나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깊은 숨을 내뱉었다. 긴 대기 시간을 지나서도 여기 가세요, 저기 가세요, 하는 사람들에 치이는 것은 둘 다 별로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 각인의 표식을 확인하면서야 알았다. 석율은 오른쪽 날개뼈 부분에, 그래는 왼쪽 가슴 윗 부분에,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그렇게, 등록이 끝났다. 알파 한석율의 오메가 장그래. 오메가 장그래의 알파 한석율이 되었다. 그리고 문 밖을 나선 두 사람은, 서로를 눈에 담는 대신, 즐비하게 늘어선 무의미한 배경을 바라보았다. 이제, 끝이구나. 

  

헤어짐을 말하는 인사를 누가 되었든 건네야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계속 멍하니 앞만 바라보며 서 있던 것은 분명 아쉬움이었다. 정신차려. 잊었어? 그 날 밤의 그 상처를? 수없이 자신에게 반문해보았지만 그럴수록 커져가는 마음 하나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생각나고 그리웠던 이름이었고, 향기였다. 




"... 악수라도, 할까요?" 


이번엔 석율이 먼저였다. 계약서를 작성하던 날, 그래가 했던 것처럼. 바람에 실린 향에는, 소나무가 있었다. 각인은 정확했으니, 그래는 이전보다 훨씬 더 그의 향을 깊게 느꼈다. 또 머리가 맑아져왔다. 그래서, 웃었다. 



"그러죠" 


조심스레 감싸 쥔 손에서는, 달큰한 사과향이 석율을 반겼다. 각인은 정확했으니, 이제 이 향은 내게만 느껴지는 향이겠지. 어디서인지도 모를, 근본없는 소유욕에 이은 묘한 마음이 피어올랐다. 또, 슬며시 행복해졌다. 그래서, 웃었다. 





"... 고마, 워요" 
".. 네, 저도요" 


그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키스가 아니라 인사에 가까운 포옹이었다는 점이었다. 석율은 고맙다는 말을, 어렵사리 꺼냈다. 어쨌든 빚을 갚아 주었으니 고마웠고, 잠시나마 잃었던 웃음을 알게 되어 고마웠다. 그래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어쨌든 일을 놓치 않아도 되어 고마웠고, 평생, 가능하지 못할거라 생각한 관계를, 생각을 변화게 해주어 고마웠다. 




"가볼게요" 
"조심히 가세요"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반대 방향으로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 미약하게나마 남은 숲의 싱그러움이, 두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음을 증명해 주었다. 







(+) 



'한석율 씨'

"네?"

석율이 급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차를 끌고 왔기에 이미 자신보다 훨씬 더 앞서 있을 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래 씨, 장그래 씨'

"네?"

멍하니 신호대기에 걸려 서 있던 그래가 화들짝 놀라 백미러로 한 번, 고개를 돌려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가는 방향부터가 달랐던 석율의 모습이, 제 주위에 있었을 리 만무했다.




"분명"


"느꼈는데"
"들었는데"



같은 시각, 서로 다른 길 위에 선 두 사람이, 자꾸만 뒤를 돌아 보았다.

























자꾸 왜, 그럴까요 :)


늘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3/6~3/9 기간에 글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와중에 한 편 정도는 올라 올 수도 있지만, 그 이상은 절대 불가해요^^

(집에 없을 예정이거든요)




제 나름대로 지금 읽으신 05편이 스토리의 전개상 1/3정도의 반환점을 돌았다고 여겨집니다.

잠시 쉬었다 오겠습니다^^ 아, 트위터, 에슼폼, 댓글은 위의 명시된 기간에도 언제든 환영입니다 (폰은 있으니까요)



부족한 필력에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1) 댓글 ↘ 과 

2) 트위터/shp_joy

3) 에슼폼/shp_joy 


를 애용(?) 해주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미생 Blu-Ray / DVD가 나온건 알고 계신가요?

3/10일까지 수요를 채우지 못하면 Blu-Ray는 제작이 무산된다 들었습니다

전, 참, 보고싶네요^^

네. 그렇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