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율그래] Share With Me - 13
*오메가버스 세계관을 기반으로 재구성*
*현실성이 1도 없을 수 있음 주의*
" 사과, 찾았어? "
언젠가 했었던 질문이지만, 뉘앙스가 전혀 다른 말이었다. 그 기억이 되살아나 큭.., 석율이 낮게 웃자, 지율이가 대답을 재촉했다. 응? 사과, 찾았어? 그리고 석율은, 그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반 쪽은 찾았어"
으응? 그게 뭐야. 사과가 쪼개진것도 아니고 왜 반만 찾아? 기어이 두 눈이 동그랗게 뜨인 지율이의 눈꺼풀을 큰 손으로 조심히 가려주던 석율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글쎄? 석율의 아리송한 대답에 고개를 갸웃하던 지율이는 알 수 없는 소리만 한다며 입술을 삐쭉이다 곧 다시 잠이 들었다. 석율은 이불 위로 지율의 작은 몸을 토닥이며 생각했다.
그런데 지율아. 오빠 나머지 반 쪽. 찾을거야. 꼭, 찾아올게 오빠가.
나의 사과, 나의 사랑을.
Share with Me - 13
written by shp
" 좀 더 러블리한 느낌이면 좋겠어요. '눈물에 눈물을' 도 그렇고, 'Painful Story'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좀 슬픈 느낌이 많아서 "
" 그 생각도 안한건 아닌데, 갑자기 너무 러블리하면 확 튀지 않을까 해서요 "
" 미디움 템포 정도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해ㅇ.., 잠시만요 "
아이돌 그룹으로 시작했던 한 솔로 가수의 아시아 시장 데뷔 앨범 준비를 돕고 있는 그래였다. 가수에게도 이번 앨범이 중요했지만, 그래가 프로듀싱의 전반을 책임지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도 이번 곡 작업은 중요한 일이었다. 병원에 입원하기 훨씬 전부터 예정 되어 있던 스케쥴이었는데, 그래의 입원으로 인해 일정이 지연되자 미안함이 앞섰던 그래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곡 작업과 프로듀싱에 열중하고 있었다.
' 잠깐 쉬었다 해요 '
한참 앨범에 실릴 곡 배치를 위해 논의 하던 중에, 그래가 잠시 전해져 온 생각을 느끼다가 피식, 소리 없이 웃고는, 잠시만요 하며 휴식을 외쳤다. 쉽니다, 쉬어요. 반쯤은 툴툴 대는 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며시 피어오르는 미소는 감출 길이 없던 그래가 녹음실을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울리는 휴대폰에 반가운 이름이 떠 있었다. 한석율. 그리고, 뒤에 붙은 자그마한 하트 한 개.
" 글쎄 무리하지 않는다니까요 "
- 그건 거짓말인 걸로 판명. 지금 나 머리가 다 아프려고 하거든요
큭.., 농담 섞인 석율의 한마디에 그래가 결국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렸다. 퇴원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무리한 스케쥴을 강행하는 그래를, 석율은 누구보다 많이 걱정 했었다. 말로는 그래 씨가 피곤하면 나한테도 지장이 있어요. 라는 단호한 어투였지만, 그 속에 저를 향한 마음이 숨겨져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가 퇴원을 한 뒤부터, 병원 구내 식당이나 회사 근처 작은 밥집에서 해결하던 석율의 저녁 식사는 늘 그래와 함께하는 저녁으로 바뀌었다. 둘 다 요리는 해 본 적이 몇 번 없어 집밥을 차려줄 순 없었지만, 석율이 퇴근길에 들러 공수해 오는 맛있는 저녁 식사 한 끼는, 뱃 속 뿐만 아니라 그래의 마음까지도 두둑하게 채워주곤 했었다.
" 그렇지만 오늘 얼추 마무리 해야..,"
- 지율이는 기다릴 수 있어요, 그래 씨.
석율의 퇴근 길 만큼이나 변한 것이, 그래와 지율이의 관계였다. 따지고 보면, 그래와 석율의 나이 차가 한 살 밖에 나지 않으니, 지율이와 그래의 차이도 상당한 것인데도 지율이는 석율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훨씬 더 그래에게 살갑게 굴었다. 무엇보다 지율이가 그래를 만나고 밝아지는 탓인지, 지율이의 건강이 많이 호전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하긴 했지만, 그 점을 차치하고라도 지율이는 그래를 참 좋아했다. 둘이서 하는 연예인 얘기나 음악 이야기에 석율이 차마 낄 틈이 없어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도 이제는 꽤나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딱히 약속을 해두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주말은 으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자연스레 굳어진 탓에, 그래는 혹시라도 지율이가 기다릴까 계속 마음을 졸였다. 이미 몇 번이고 미안하다는 문자와 연락을 해 두었고, 지율이도 재차 괜찮아요 오빠, 지율이 정말 괜찮아요 하며 웃었지만 그래의 마음은 그럴수록 바빠지기만 했다. 그저 빨리 일을 마무리 하고 지율이와, 또 석율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서두르는 그래를, 석율이 부드럽게 제지 시켰다. 지율이도 나도, 기다릴 수 있어요. 당신이 무리하지 않는 게, 아프지 않는 게 훨씬 중요해.
봄 볕 만큼이나 따뜻하게 전해져 오는 생각에, 휴게실 창가에 기대 앉은 그래가 햇살보다 더 탐스럽게 웃었다. 석율 씨. 네? 사랑해요. 여과 없이 전해진 생각은 두 사람의 마음을 쿵쿵 울렸다. 통화를 마치고 돌아서는 그래에게, 석율의 듣기 좋은 목소리 만큼이나 행복한 생각이 전해졌다.
' 사랑해, 그래야 '
어떤 한마디든 절대 지나치는 법 없이 꼭꼭 눌러담은 예쁜 고백이 바람처럼 두 사람의 마음을 간질였다. 다시 녹음실로 향하는 그래도, 지율이의 병실 안으로 들어서던 석율도, 바알갛게 물이 든 얼굴을 숨길 수는 없었다.
*
" 간호사냐? "
" 뭐? "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안으로 들어오는 그래를 바라보던 동식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대뜸 물어 온 말에, 그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대꾸하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 우다다다 궁금증을 쏟아 내었다.
" 너 병원 갔다 오고 나서 완전, 사람이 완~전 달라진 거 알아? "
" 아, 나 그랬어? "
" 어. 너 그랬어. 그러니까, 병원에서 누군가를 만났다는 얘기거든 이거는? 근데 병원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잖아. 간호사였냐? "
지난번엔 다중인격이니 뭐니 하더니, 연이은 동식의 어이없는 추리에 그래가 하하하, 하고 웃자 동식이 인상을 팍 쓰고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간호사 아니야? 그럼 의사야? 누구냐고 묻는 말에도 그래가 대답 없이 배를 잡고 웃기만 하자 동식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이쁜거야? 얼마나 이쁘길래 천하의 장그래가 정신을 못차려? 응? 그러자 듣다 못한 그래가 웃음을 거두고도 아직 남은 여운에 눈꼬리에 눈물을 매단 채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동식이 형.
" 예쁜게 아니라 멋있고, 간호사나 의사가 아니라 보호자였어. 그 병원에 있는 환자 보호자. 그리고, 내 보호자 "
뭐어? 멋있.., 보호ㅈ.., 그래가 던져 준 대답에 눈만 꿈뻑꿈뻑. 놀라서 단어 하나 하나씩 열심히 이해해 나가던 동식이 마침내 자리에서 펄쩍 뛰어 일어났다. 야, 장그래. 너 그럼.., 하며 어버버 제대로 말을 이어가지 못하던 동식을 보고 그래가 끄덕였다. 맞아, 남자.
" 또 하나 덧붙이자면, 그는 알파. 나는 오메가 "
" 헙, "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었던 일이었다. 워낙 장그래 곁에 작곡가란 직업과 관련 없이도 들러 붙는 사람이 많았어서. 틈만 나면 그의 가장 가까운 지인인 동식에게 그래를 소개 시켜 달라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었어서. 어쩌면 그가 말한 것과는 다르게, 그래가 오메가..,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긴 했었다. 뭐, 그래의 형질과 자신은 무관한 일이었으니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건 한가지는 알 수 있었다. 굳이 오메가라는 걸 밝히고 싶어하지는 않는다는 것.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어도, 형질에 따른 편견을 완전히 져버릴 수는 없었을테고, 또 워낙 이리저리 사람이 꼬이는 놈이니 그에 따른 불편도 상당했으리라고 생각 했었다. 그래서 동식은 놀랐다.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저는 오메가라고 말하는 그래에게선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오메가야. 라고 말하는 그래가, 행복해 보였기 때문에.
*
' 오늘은 어때요? 바빠요? '
' 아뇨. 오늘은 다들 다른 일이 있대서. 쉴 거에요 '
몸은, 어때요. 외근을 나가는 길, 석율이 다시 질문하듯 생각을 전해 보다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씨? 부러 길을 가던 걸음까지 멈춰 서서 집중 해 보지만, 저 너머의 그래에게는 전해지지 못한 것 같았다. 퇴원 이후, 간혹 있었던 일들. 마치 노란불이 깜빡이듯이 그렇게 깜빡 깜빡 위태롭고 흐릿하게 겨우 연결 되던 생각들. 그럴 때마다 얼마나 덜컥 가슴이 내려 앉았는지 모른다. 주로 그래의 컨디션에 따라 'Share'의 또렷함이 결정 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그래의 컨디션이 좋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다급해지는 손길에 겨우 액정의 비밀번호를 풀어낸 석율이 얼른 그래에게 전화를 걸었다. 확실히 Share가 이루어질 때보다는 느린 속도로 전화를 받은 그래에게서, 그새 잠이 들었던 듯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 흐음.., 석율 씨이..?
" 그래야. 괜찮아? 많이 피곤 했어요? "
- 으응..? 아.., 큭.. 나 또 와이파이 한 칸만 떴어요오?
큭.., 언젠가 대화 끝에 두 사람의 'Share'가 꼭 와이파이 같다는 얘기가 흘러 나온 후, 그래는 종종 흐릿해지는 생각의 연결을 와이파이로 표현하곤 했다. 그래의 귀여운 한마디에, 조금전까지 심각했던 석율의 마음도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게 무리 하지 말라니까.., 걱정스런 석율에게 부러 더 밝게 좀 자면 괜찮아요, 하며 잠이 오는 듯 말끝이 흐려지는 그래를 보며 석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응, 좀 자고 있어요. 끝나고 금방 갈게.
- 으응. 빨리 와요오. 보고 싶다.
" 뭐 먹고 싶은 것 있어요? "
- 음..., 소나무?
" 하하.., 알았어요. 얼른 갈게. 나도 사과.., 먹고 싶어요"
남들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들릴, 나도 사과 먹고 싶어요, 하는 석율의 말에 그래의 심장이 세차게 요동치고 있음이 느껴졌다. 까맣게 변한 액정을 바라보던 석율도 나지막히 혼잣말을 해본다. 다행이에요, 지금 내 생각이 들리지 않아서. 들렸으면 아마.., 듣는 이도 없는데 부러 헛기침 한 번을 하는 석율이 지나간 자리엔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소나무향이 피어 올랐다. 마치, 각인의 그 날 처럼. 석율은 다시 제 가방을 꼭 고쳐 쥐었다. 그래야 기다려, 내가 오늘 내 사과 다 찾으러 갈게. 알 듯 모를 듯한 석율의 표정에선 왠지 모를 결연함이 보이고 있었다.
*
" ... 그래야? "
행여 잠이 든 그래를 깨울까봐 비밀번호도 조용히 누르고 현관을 연 석율이 저도 모르게 후, 하고 숨을 뱉었다. 자주 드나들면서 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따금씩 훅 끼쳐오는 그래의 사과향은 석율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때가 있었다. 어째 오늘은 평소보다 좀 진하다, 싶어 고개를 갸웃하며 들어선 석율의 눈에 침대에 누워 아이처럼 색색 숨을 내뱉으며 곤히 자고 있는 그래가 보였다. 곁에 다가간 석율이 조심히 머리를 쓸어 내리자, 그래의 달큰한 사과향에 열이 섞여 있다.
"열이 있나..."
순식간에 걱정이 차오른 석율이 한 손을 제 이마에, 그리고 다른 한 손을 그래의 이마에 올려 보며 고개를 갸웃 했다. 미열이 좀 있긴 한데,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물수건 하나를 올려 주려고 몸을 돌려 일어 나려는 그 때..,
" 음.., 왔어요? "
눈을 아직 채 뜨지 못한 채,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그래가, 두 손으로 꼬옥 제 이마에 올려진 석율의 손을 잡았다. 그 모습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덩이를 겨우 붙여 엉거주춤 앉은 석율이 그래의 입술에 쪼옥, 소리를 내며 살짝 닿았다. 왜 이렇게 날이 갈수록 귀여워져. 석율이 그래의 볼을 양손으로 부비자, 그제야 겨우 눈을 뜬 그래가 흐흥 하는 콧소리를 내고는 팔을 뻗는다. 일으켜 줘요, 목소리가 아닌 생각으로 전해진 그래의 말에 석율이 조심히 그를 일으켜 품에 꼬옥 안았다.
" 향, 진동 한다. 우리 사과님 "
" 석율 씨 와서 그래요. 소나무가 품어주니까 "
" 하하.., 음.. 나 할 말이 있는데, 밥 먼저 먹고 들을래요? "
안겨 있었기에 귓가를 둥둥 울리는 석율의 기분 좋은 목소리에 취해 있던 그래가, 그의 질문에 살짝 놀란 듯 몸을 떼어 내며 석율의 생각을 읽어 보려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런 그래를 눈에 담던 석율이 부드럽게 웃었다. 아니야. 심각한 말 같은건, 아니에요. 그 온기 가득한 눈빛에 안심이 되었는지, 그래가 또렷하게 석율과 시선을 맞췄다. 그럼에도 긴장을 했었는지 마른침이 한 번 목울대를 타고 넘어가는 소리가 그래의 침실을 울렸다. 석율은 그래를 안은 팔을 풀지 않은 채,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
" 석, 석율 씨.. ! "
제 앞에 주르륵 꺼내어진 것들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래가 이내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얼른 석율의 팔을 잡는데, 석율은 그런 그래를 보면서도 그저 옅게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그래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며 운을 뗐다. 그래야,
"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내 생각, 들려도 읽지 말고. 느끼지 말고, 그냥 내 말만. 내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만 믿어 줄래요? "
" 석율 씨.., 이건..! "
" 쉬잇. 나도 사람이라 후회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미리 성급하게 머리로 다 생각할지 몰라요. 그치만 오늘은, 우리 잠시 'Share'는 내려 놓기로 해요. 알았지? "
부탁할게. 우리 처음 만났을 때는, Share 하지 않았으니까. 응? 석율의 어조에는 간절함마저 깃들어 있었다. 그래서, 벌써부터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던 그래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알았어요. 당신 말만, 믿을게. 석율 씨 말만, 들을게요. 그래는 제 앞에 놓여진 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얼마나 만져 보았는지 귀퉁이가 다 헤져버린 오래된 통장들. 그 겉면에는 전부 다른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석율의 이름도, 어머니의 성함인 듯한 글자도. 그리고, 지율이의 이름도. 맨 마지막에 놓여진 통장은 새 것인듯 보였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건, 석율의 월급 통장일터였다. 그래는 또다시 그 옆에 놓여져 있는 익숙한 봉투를 바라 보았다. 언젠가 제가 석율에게 주었던 것. 두 사람의 각인 계약서가 들어있을 봉투였다. 그런 그래의 시선을 따라가던 석율이, 달싹이던 입술에서 겨우 소리를 내어 말을 이어갔다.
" ...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빚 갚느라 결국 끝내 버린 적금도 있고. 이리 저리 독촉하는 사람들 피해서 그나마 좀 야무지게 모았던 것도 있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우리 지율이 몫의 통장도 있어요 "
" ..... "
" 빚에 쪼들리는 사람이 왠 적금이고 통장이냐,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게, 삶의 한줄기 희망이었고, 살아가야 할 이유였고, 어떨때는 자존심이기도 했어 "
" ..... 석율 씨, "
" 그래 씨 미워하고 아니꼽게 봤던 적도 있어요. 나한테는 너무 큰 돈인데, 당신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그걸 다, 한번에 해결 해 버리는거. 나 열등감에 사로 잡혀 아니꼽게 본 적도 있어요"
" ..... 미안ㅎ..,"
미안 했어요. 내가 잘못했어요. 라고 말하려던 그래를 석율이 제지했다. 사과 받으려는게 아니라, 그랬었다고 말해주는거야. 내가 그만큼이나 못난 사람이었다고. 그냥 돈만 받으면, 각인이고 뭐고 다 상관 없는 이야기가 될 줄 알았어. 어느새 흘러 나오는 석율의 죄스러운 한마디 한마디에, 그래가 결국 고개를 푸욱 숙였다. 다 제가 만들어낸 일인데, 제게 더 미안했다며 사과를 하는 석율의 얼굴을 보기가 부끄러웠다. 그런 그래의 생각을 모를리 없던 석율이, 그래의 얼굴을 부드럽게 잡아 다시 시선을 맞춰 온다. 그래야, 나 봐줘요. 내 얘기 끝까지 들어줘.
" 우리.., 지금 서로가 생각하고 있듯이, 첫 단추를 잘못 꿰었잖아. 그러면 안되는거였는데. 그 날 바(Bar)에서부터, 우리가 끌린 건 서로의 향이었는데. 그치? "
저도 모르게 자꾸 울고 있는 그래를, 달래듯 조용조용 물어오는 석율의 말이 지금 제 몸에서 나고 있을 달큰한 사과향보다 훨씬 더 달아서. 그래는 차마 목소리로 말을 내뱉지 못하고 생각만을 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내가 그 날, 당신 소나무 향에 취해 얼마나 좋았는데. 처음부터.., 그랬었는데.
" 그래서.., 우리 한참을 돌아 왔지만, 나는 오늘 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그래야. 턱없이 모자르겠지만, 이게 내 전부야. 내가 지키고자 했던 어머니, 지율이 몫까지 전부. 다 너한테 줄게. 이번에 들어 온 월급, 그리고 앞으로 생길 모든 것까지. 생기는대로 다 너한테 갚을게 "
" 그러지 않아도.., 석율 씨 나는 정말.., "
" 알아요. 그래 씨 마음.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거. 나도 알아. 그치만, 나 정식으로, 내 사과 온전하게 잘 찾고 싶어, 그래야 "
*
- 지율아, 오빠 나머지 반 쪽, 꼭 찾을거야.
석율에게 있어 나머지 반 쪽은 이런 의미였나보다. 처음부터 돈으로 이루어졌던, 각인을 너무 가볍게만 생각 했었던 관계였다. 마음이, 생각이, 그리고 모든 것이 공유 된 지금은 불필요하다 여길 수도 있을 문제지만, 석율은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돈 때문에. 라는 이유로 그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좋지 않게 생각했던 제 지난날의 모든 마음들을, 이렇게라도 씻어내고 싶었다. 갑질하는 오메가라는 오인으로 인해 알파의 힘을 내세워 상처를 줬던 시간들을, 할수만 있다면 지워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래야만, 온전하게 그래를 제 품에서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가 갖고 있는 향만큼이나 싱그러운 마음이 가득한 사람. 석율은 이제, 전부가 비어진 그 마음에 다시 사과나무를 심어 무럭무럭 자라게 하고 싶었다.
" 내가 미안한 일인데. 당신이 이러면 어떡해요, 정말.. "
미안함이 잔뜩 섞인 그래의 울먹임이, 어느 순간 그렇게 감동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석율을 마음에 품게 되면서, 계약에 대한 생각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던 그래였다. 진심이고 싶었다. 진심으로 받아주길 바랬다. 하지만 석율이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상처는 고스란히 그래의 몫인것만 같았다. 벌을 받는거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그가 미안하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손을 내밀어주었다. 제 몫의 사과까지도, 온전하게 다 감내해내고 있는 석율 때문에, 그래는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그래는.., 조용히 손을 뻗어 계약서가 들어 있는 봉투를 쥐었다. 그리고 석율과 눈을 맞췄다.
" 이제 우리, 계약 말고 "
나지막히 읊조린 석율이 조심스레 그래와의 거리를 좁혀왔다. 그리고 그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윽고 그래 또한 대답처럼 말했다.
" 각인을 위한 만남도 말고 "
비스듬히 겹쳐진 두 사람의 얼굴이 맞닿은 채로, 서로의 숨결이 서로에게 섞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체향도, 페로몬도.., 그리고 함께 느끼고 있는 열기도. 온전히 두 사람의 것이었다. 큭.., 그 간지러움에 그래가 실소를 터트리자, 석율이 그래의 아랫 입술을 살짝 탐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서,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이 전해지고 있었다. 석율과 그래는, 환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전해지는 생각 그대로를 내뱉었다.
" 사랑을, 해요 "
" 사랑 해요 "
마침내 두 사람의 입술이 뜨겁게 닿았다. 천천히 열린 틈새로 석율이 그래의 달콤한 혀와 조우하는 순간, 그래가 석율의 손을 맞잡아 제가 들고 있는 봉투 위로 손을 올렸다. 달콤한 사과 향과 묵직한 소나무 향이 마구 섞이고, 달뜬 숨들이 오갔다. 그리고..,
지익-
서로의 손에 의해, 계약서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찢어졌다.
드디어, 소나무가 온전하게 사과를 품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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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이 다가옵니다. 그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고, 또- 끝까지 함께 해주실것이라 믿고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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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애용(?) 해주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