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내용이 없는 단편※
※대사에 살짝 수위 있음 주의※
= 트위터에 살짝 풀었던 썰 정리해보았습니다 =
"으.."
옅게 흘러나온 그래의 신음에, 살금살금 넥타이를 매던 석율이 얼른 침대 곁에 앉아 조심조심 그의 허리를 쓸어 내려주었다. 따끈하게 올려진 물수건 위로 섬세하게 움직이는 석율의 손길에 조금은 편안해졌는지, 미간에 깊게 잡힌 주름이 점차 펴지고 이내 색색 고운 숨소리를 내쉬는걸 보고서야 석율에게서도 안도감 섞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썽율~ 조찬 회의 준비 잘해라. 너 저번처럼 헛짓하면 죽는다~]
하아, 성대리 이 쏘시오패스.., 헛짓은 누가 하고 다니는데 지금. 석율이 낮게 읊조리며 잠시 고민하느라 멈췄던 손길을 바삐해 넥타이를 마저 맨다. 그래야, 작게 불러보지만 이제야 좀 제대로 잠이 들은건지 미동이 없다. 나 진짜 빨리 갔다 올게. 그 와중에도 아이같이 잠든 그래의 모습이 예뻐 쪼옥, 볼에 살짝 닿았다 떨어진 석율이 씨익 웃었다. 내 꺼. 잘자고 있어.
뜨거움 뒤엔 따뜻함이
written by shp
"으응..,"
아. 계속 뒤척이기만 한 것 같은데, 언제 저렇게 해가 떴나. 석율이 일부러 블라인드도 꼼꼼하게 쳐 놓고 나갔는데도 중천에 뜬 햇살 한 줄기가 그래에게 닿아 간질이고 있었다. 새벽 녘, 잠결에 석율이 월차 처리를 대신 해 준다고 했었는데. 아마 별다른 전화가 없는 걸 보니 그건 잘 처리 된 모양이다. 여기까지 상황이 정리되자, 그래가 평소처럼 몸을 일으키려는데..,
"윽.."
아직까지도 따뜻함이 남은 수건이 툭 떨어지고, 아직도 남은 허릿께의 묵직한 고통과 함께 지난밤의 기억이 다시금 머릿속에서 재현되기 시작했다. 하아, 진짜. 아무도 없는것이 분명한데도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그래의 귀끝이 빠알갛게 물들며 그가 다시 슬금슬금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갔다.
- 그래야
- 사랑해요
- 그래, 나도 사랑해. 사랑하는데,
- 그럼 안아줘요
- 자, 장그래. 잠깐만.
- 사랑한다면서. 안아줘요, 응?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도, 남자를 사랑하는 일도, 그래는 모든게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처음이라는 사실이 결코 겁이 난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석율은 마음을 나눈 후의 첫 스킨쉽도, 키스도, 모두 천천히 가려고 부던히 애를 쓰는것이 보였다. 난 괜찮아. 난 지금 이대로도, 네가 너무 사랑스럽고, 네가 마음을 받아준 것이 고마워.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석율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움찔대는 자신의 모습에 그래는 답답했고, 석율은 재차 괜찮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게 아닌데. 싫은 게 아니에요. 용기 내어 먼저 키스를 해봐도 머뭇거리는 석율에게 결국 먼저 안아달라 애원한건 그래였었다.
- 흐읏, 윽, 읍..
- 후으, 그래야, 그래야. 숨 쉬어. 괜찮아? 힘들어? 그만할까?
- 아윽, 말,이 되는, 하악, 석율씨.
석율의 부드러운 손길이 여러번 닿아 충분히 풀어줬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그를 받아내야 하는 느낌은 예상보다 훨씬 아프고 힘들었다. 헌데 분명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그래였는데,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은 석율이었다. 아, 이 사람 지금 나를 위해서 엄청 참고 있구나. 하는 것이 온 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고통이 줄고, 마음이 따뜻해져왔다.
- 흐읏, 아윽, 석, 율씨
- 허억, 그래야, 그래야 사랑해
- 하응, 나도, 나도 사랑해요
마침내 쾌락과 황홀함만이 가득했던 순간, 석율은 그리 뜨겁게 그래와 함께 하나가 되었더랬다. 이후에도 밤새 석율의 극진한 보살핌은 이어졌다. 계속되는 고통에 끙끙대는 그래를 번쩍 안아올려 따끈한 물에 몸을 풀어주었을 때는, 그 정신없는 순간에도 너무 감동이 밀려와 그의 품에 안겨 울었다. 고마워요. 하는 말에 내가 더 많이 고마워, 고마워 그래야. 하던 석율의 목소리에도 얼핏, 물기가 서렸던 것도 같다. 그래서 욕실에서도...,
- 하앙, 석율씨, 빨리, 하아, 으응,
- 하아, 그래야. 후, 미치겠다 진짜. 왜이렇게 이뻐
*
"아.. 몰라. 어떡해"
부끄러움도 무엇도 없었다. 그저 안기고 싶은 마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전부였다. 키스해달라고 말하는 것도, 머뭇대는 그를 더 보챈것도 모두, 저였다. 그 모든 순간이 기억이 되어 되돌아오자 생경한 그 감각마저 다시 돌아오는 것이 꼭 지난밤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몸이 달아올랐다.
"...출근은 잘 했나"
밤새 저를 돌봐주느라 잠을 못잔 것은 매한가지일텐데, 피곤하진 않았으려나 걱정이 되어 전화라도 해보려던 그래가, 그때서야 이불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 드려는데... 응? 뭐가 이렇게 많아. 협탁 위 손끝에 채이는 물건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 뭐지.., 반쯤 몸을 일으켜 협탁을 확인한 그래의 눈이 예쁘게 휘어졌다. 알록달록한 메모지들과 옹기종기 모여있는 물건들이 그래의 마음을 따뜻하게 물들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지런히 놓인 물 두병과 진통제 두 알. 그리고 [2번♥] 이라는 쪽지. 응? 2번? 2번은 뭐지. 아리송했던 것도 잠시, 옆에 줄줄이 놓인 것들을 보자 2번의 의미가 이해가 되었다. [1번♥]은 따끈한 죽이 담긴 보온병에 붙어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침대에서 벗어나기 힘든 몸 상태일 것이라는 걸 미리 다 예상한 듯, 협탁은 그래가 필요할만한 물건들과 심심함을 달래줄 책 몇 권으로 채워져 있었다. 출근 준비하기도 바빴을텐데, 대체 이런건 언제. 고마운 마음이 가득해 얼른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휴대폰을 보자, 그 위에 쓰여진 메모를 본 그래가 결국 하하, 하고 소리내어 웃음을 터트렸다.
[0번, 일어나면 한석율한테 전화하기♥ 혼자 둬서 미안해 ㅜㅜ - 장그래꺼]
시간을 잠시 확인한 그래가, 한껏 미소를 머금은 채 톡톡, 문자를 찍었다.
*
[출근은 잘 했어요? - Yes♡]
문자를 받기가 무섭게 함박웃음을 띈 석율이 빠르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역시 기다렸다는 듯 짧은 통화음 몇 번에 아침 내내 애타게 그리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그래야, 괜찮아?"
괜찮냐는 물음에 정적이 생긴 건, 아마도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뜻일테다. 보나마나 또 귀가 새빨개지셨겠네, 우리 그래. 재촉하지 않고 잠시 기다려주자 수줍은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네에. 괜찮아요.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해. 정말 괜찮은거야? 약은 먹었어?"
-한석율씨
"응? 응, 그래야"
다급하게 불려진 제 이름에, 혹시 어디가 많이 아파 그런건가 싶어 그래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귀울이던 석율이, 아무말이 없는 그래 때문에 점점 초조해지려는 찰나, 집중해야 겨우 들릴만한 목소리로 띄엄띄엄 말해오는 그래의 말을 듣다 사랑스러워서 소리를 지를뻔한 걸 겨우 참았다.
-... 아프기만 했던건 아니니까. 걱정말고 일 잘하고 와요. 기.. 기다릴게요.
으헉, 장그래. 아, 귀여워. 미칠거 같아.
전화가 끊어진 뒤에도,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달래느라 석율은 한동안 휴게실을 떠나지 못했다.
.
.
"휴.. 장그래... 진정해"
이미 전화는 한참 전에 끊어져 액정은 까맣게 변한 뒤였지만, 그래 역시 두근대는 심장을 감출길이 없었다. 석율을 만나고 나서는, 지금처럼 자꾸 말이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마음 그대로 나갈때가 많아졌다. 석율은 그게 장그래의 진심인것이라며 좋아했지만, 무엇이든 한번은 더 생각하고, 대부분 속마음을 숨기는 것에 익숙했던 그래에게는 한없이 어색한 일들뿐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에게는 그래야 할 것만 같다. 저를 향한 석율의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알았기에, 행여 지쳐 놓아버릴까 두려웠었다. 그러기 전에, 붙잡고 싶었고, 그러기 전에, 안기고 싶었다. 석율을 생각하다보니 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매만지던 그래의 시선 끝에, 그가 놓아두고 간 책 제목이 보인다.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예쁜 표지와 더불어 따뜻한 글들을 몇 줄 읽어내려가던 그래가, 옆에 석율이 쓰다 남겨 두었을 메모지를 꺼내 무엇인가 끄적이더니 다시 행복한 표정 그대로 침대에 몸을 뉘였다.
옆자리에 깊게 베인 석율의 체향이 따스하게 감싸오는 것을 느끼던 그래가, 행복감에 젖어 다시 솔솔 잠에 빠져든다.
*
"그래야... 나 왔어어..."
한 손에는 따끈한 커피 한 잔을, 그리고 또 한 손에는 달큰한 밀크티 한 잔을 든 석율이 조심조심 계단을 올라 침실로 향한다. 집에 가면 그래가 있을 것이라는 설레임 반, 재차 괜찮다는 목소리에도 안심할 수 없었던 걱정이 반이 되어 결국 반차를 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둘러 돌아왔는데 문득, 아침에도 그리고 지금도 제 침대에 그가 사랑하는 장그래가 누워있다는 사실이 새삼 행복해져 석율의 가슴께를 간질거린다. 아침과는 달리 편안한 자세가 되어 잠이 들어있는 그래의 표정에 내내 마음을 짓누르던 걱정도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혹시나 깰까 싶어 조심조심 발끝을 들어 걸음을 옮기는 일마저 행복한 석율이 협탁 위에 테이크아웃 잔 두개를 놓으려다 무심결에 본 쪽지들에 살풋 웃음이 났다. 제가 해놓은 메모들 밑으로, 생긴 것과는 달리 꽤나 악필인 그래가 꾹꾹 눌러 적어놓은 것들.
[1번♥ - 10:45am, Yes]
[2번♥ - 11:05am, Yes]
큭. 누가 상사맨 아니랄까봐 시간관념 하나는 투철하다, 장그래. 자세히 보니 책 위에도 뭔가 붙어있다. [한석율] 응? 이게 뭐야. 메모지에 떡하니 쓰여진 제 이름 세글자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붙여도 보던 석율이 뭔가 알아챈 듯 환하게 웃었다.
[참 좋은 '한석율'을 만났습니다]
하아. 장그래. 언제까지 이렇게 예쁠건가, 장그래는. 제가 해 놓고 간 것들을 예쁘게 따라 준 것도 고맙지만, 뭐라도 해주려고 고심했을 그 마음이 느껴져 석율이 쪽, 참지 못하고 잠든 그래의 이마에 뽀뽀를 날렸다. 나야말로, 참 좋은 장그래를 만났다. 어느 별에서 와서 이렇게 이쁘니.
이마에 한 번만 하려던 뽀뽀가, 눈도 예뻐서 눈에도 쪽, 콧등도 예뻐서 콧등에도 쪽. 마지막으로 살짝 벌어진 입술에도 쪼옥, 아랫입술을 물어 살짝 적시니 흐응, 하는 콧소리와 함께 파르륵, 눈꺼풀이 올라간다. 깼어? 속삭이던 석율이 몸을 떼지 않고 그대로 그래의 말캉한 혀를 간지럽히자 살짝 놀라던 그래도 곧 조심스레 그를 받아들였다.
어제의 뜨거움과는 다른 따뜻함이었지만 석율의 입술은 여전히 '사랑해' 라는 말을 담고 있었다. 포개어진 두 입술은 그렇게 한참을 떨어지지 않았고, 서로의 숨결을 나누었다.
뜨거운 순간만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듯이,
그렇게, 따뜻하게.
사랑해, 장그래
사랑해, 한석율
+그리고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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