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버스 세계관을 기반으로 재구성*
*현실성이 1도 없을 수 있음 주의*
"저 왔어요"
"어, 석율아"
병실 안, 간이 침대에서 몸을 웅크리며 주무시고 계시던 어머니가 살풋 찡그리며 잠에서 깨셨다. 급하게 가글을 하고 들어온 것인지, 석율에게서 묘한 박하향과 함께 섞여오는 알콜올 냄새를 모를리 없던 어머니가 금세 걱정스런 표정이 되어 그를 돌아 보셨다. 또 술 마셨니? 현장 갔다 잠깐요. 머쓱하게 턱을 쓸어내린 석율이 어머니의 곁으로 다가섰다.
"내가 있을게요. 집에 다녀오셔야죠, 엄마"
"됐다.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데. 얼른 가서 자"
좀 일찍 오지. 지율이가 잠들기 전까지 기다렸어. 시선은 석율이 아닌 병원 침대의 끄트머리에 닿은채 걱정과 안쓰러움의 어디쯤인듯 말씀하시던 어머니가 곧 에휴, 깊은 한숨을 내쉬고야 만다. 그랬어요? 지율아, 오빠가 미안. 내일은 일찍 올게. 잠든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석율이 따스하게 웃었다. 이미 깊이 잠든 후라 들리지 않겠지만, 양복 자켓을 한 쪽에 걸쳐놓은 석율은 오늘 오빠가-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절주절 풀어놓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그런 석율의 모습에 옅은 쓴 웃음을 지으시곤 물병을 채워 오겠다며 병실을 나가셨다. 지율아. 누가 오빠한테, 빚을 다 갚아 주겠대. 각인만 해주면. 웃기지. 씁쓸한 석율의 입가에, 그가 따뜻하게 감싸 쥔 지율의 손에 남은 온기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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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hp
초등학교 5학년. 지율을 만났던 것은, 석율이 열 두살때 일이었다. 고운 이불에 쌓여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집 마당에 선 석율에게 아가가 꼬물대며 인사하던 그 때를, 석율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제 한 팔에도 다 차지 않았던 작은 아기에게서는 미미하나마 달달한 오렌지향이 감돌고 있었다. 한석율 동생 한지율. 이제부터 석율이가 오빠가 되는거야. 아버지의 말씀에, 그 작은 아기는 그렇게 석율의 동생이 되었다. 베타일 수도, 오메가 일수도 있는 희귀성. 지율은 베타-오메가였다. 석율과 아버지가 알파였기 때문에 지율에게서 미미하게 풍겨오는 오렌지향을 맡을수는 있었지만 이렇다 할 히트사이클이나 알파와의 반응은 생기지 않는, 억제제를 잘 챙겨주면 충분히 베타로 살아갈 수 있을 아이였다. 게다가 그런 것은 이미 석율과 석율의 가족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알파인 아버지와 베타인 어머니는 늘, 석율이 어릴적부터 약한 사람을 돌보아야 한다고 가르쳐오셨고, 지율의 입양 역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작은 실천이었다.
중학교 3학년. 석율은 중국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했고, 네 살이 된 여동생이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면 언제든 한국을 나올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엄청 풍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석율의 어릴적부터 착실하게 현장에서 일 해오신 아버지덕에 항상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었다. 방학이 되어 한국에 나오면, 늘 차를 끌고 두어시간쯤을 달려 어느 한 곳에 도착했었다. 아버지는 한쪽에는 어머니의 손을, 다른 한쪽에는 지율의 손을 잡을 석율의 손을 잡고 휑하니 모래가 가득한 넓은 땅을 보여주시며 웃으셨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석율이가 대학에 가고, 지율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이만큼 큰 집을 지을거라고. 석율이가 원하는 큰 책장이 있는 방도, 지율이가 원하는 캐노피가 달린 큰 침대도. 큰 강아지를 두 마리나 키울 수 있을만큼의 넓은 마당도 있는 집이 될 거라면서. 까맣게 그을린 얼굴의 아버지는 그렇게 웃으셨다. 그러면 지율이는 신이 나서 오빠를 부르며 그 넓은 모래밭을 뛰어 다녔고, 석율은 얼른 지율의 뒤를 쫓아가서 동생을 안아 올렸다. 행복했던 기억은, 그 즈음이 마지막이었다.
*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 사람들은 그런 단어로 석율의 가정을 표현하곤 했다. 아버지의 큰 꿈이 담겨 있던 땅은, 실 소유주가 스무명도 넘는다는 부동산 사기의 핵심이 된 곳이었고, 아버지 어머니의 노후 자금은 그렇게 한 순간에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괜찮다고. 돈이야 다시 모으면 되고, 제가 얼른 대학가서 취직하겠다고 말해 볼 순간도 없이 그 땅에 집을 지어보려 여기저기서 끌어다 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현장이 삶의 전부였던 아버지는 망연자실하셨고, 그대로 알콜 중독자가 되어버리셨다. 석율은 한국으로 돌아와 기를 쓰고 공부를 하고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모든 걸 대신했다. 하지만 현장을 잃은 아버지에게서 희망이란 찾아 볼 수 없는 단어였다. 빚에 쫓기고, 사람에 쫓기는 동안, 아버지는 비가 많이 오던 도로 위, 찻길에 그대로 제 몸을 내던지셨다. 자살은, 보험금도 안나오는데. 석율의 나이 스물 셋. 열 한살의 동생을, 지쳐 쓰러진 어머니를 품에 안은 상주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아버지, 자살은 보험금이 안나오잖아요.
대출이 잘 되는 곳. 그래서 지율이의 학비를 마련할 수 있는 곳. 석율이 원인터네셔널에 꼭 입사해야겠다고 맘 먹은 이유는 그 뿐이었다. 암암리에 알파가 조금 더 고용이 잘 된다는 말도 한 몫 했었다. 제가 아버지께 감사할 일이 그래도, 하나는 있네요. 알파 유전자. 석율은 그렇게 되뇌이는 제 자신이 참 싫었다. 그렇게 취업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지만 처음으로 어쩌면. 이라는 희망이 생기기도 했었다. 그리고 두달 전, 하나뿐이었던 동생 지율이가, 학교에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석율이 지율이에게서, 옅은 오렌지향을 맡지 못했던 날이기도 했다.
아마 지율의 친 부모가 물려 준 베타-오메가라는 희귀성에서 발현 된 희귀병일거라고, 의사는 짐작했다. 베타로도, 오메가로도. 어느 한 쪽으로도 살아갈 수 없는 베타-오메가는 이렇게 천천히 일상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기도 하고, 각종 신체 장기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고 했다. 치료 방법은, 연구 중에 있으며 장기 손상이 올 때마다 이식을 받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라던 덤덤한 의사의 말에, 석율은 차마 울음을 토할 수 조차 없었다. 설상가상. 희귀병은 의료보험의 혜택 조차 없었다.
아버지, 어쩜 이렇게 다 빼앗아 가세요. 집도, 꿈도, 희망도. 그리고 이젠 지율이까지. 당신이 내게 해 준 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가는 빚과, 아무리 발버둥쳐도 빠져나올 수 없는 가난의 늪 뿐이네요. 석율을 불쌍하게 여긴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 마련해주는 술자리의 끝에는 늘, 석율의 울음섞인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있었다.
*
- 나랑 각인. 그거 하자구요. 내 알파가 되어줘요
그래서였다. 알파로 태어난 석율의 인생에 있어, 각인이란 절대 없어야 할 단어라고 생각한것은. 알파였던 아버지는 각인이 된, 사랑하는 어머니를 지키지도, 가정을 지키지도 못한 채 스스로의 위안만을 위해 죽음을 택한 무책임한 가장이었다. 각인, 그 뒤에 따라 오는 책임. 내 유전자에 그런 것이 있을리가 없잖아. 석율은 아무렇지도 않게 각인이라는 단어를 내뱉는 그래가 한심했고 믿을 수 없었다.
- 그럼 내가, 당신 빚은 다 갚아줄게요
하지만 뒷 말은, 한심하지 않았다. 믿어보고 싶을만큼 유혹적이었다. 대체 당신에게 각인이 뭔데, 당신이 내 돈을 다 갚아 줘? 되묻고 싶었던 순간 그럴 수 없었던 것은, 코 끝에 스며든 싱그러운 캔디애플향이 이 상황과 너무도 맞지 않아서였다. 각인만을 바라는 사람 치고는 너무 치명적인 것 아닌가. 27년의 인생 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던 오메가라는 존재. 처음 치고는 너무도 강렬했었다.
"장그래.., 장그래..."
벌써 이틀 째, 몇번이고 들여다 본 명함 속 이름. 석율은 지율이 잠든 병원 침대 머리 맡,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이름 석 자가 타이핑 되고 엔터키가 눌려지며 차례차례 그의 이름이 띄워지는 모니터를 보고나서야,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저작권료, 음원재벌 따위의 연관 검색어로 미루어 보아도, 1억은 그에게 치명타를 입힐 만큼의 액수는 아닐터였다.
"지율아..."
새근새근 아이같이 잠든 지율이는, 이 곳에 이렇게 누워 있기에는 너무도 여린 동생이었다. 병원 침대가 아니라, 캐노피가 달린 예쁜 공주 침대에 뉘이고 싶었다. 철마다 바뀌는 교복을 손수 사 입히고 싶었다. 어머니 또한, 한 평생을 빚에, 아비 없는 자식들 뒷바라지에 쏟았기에 심신이 너무 지쳐 계셨다. 그들을 지켜내기엔, 석율에게 남은 것이 너무 없었다. 인턴으로 겨우 들어가 있긴 하지만, 합격되리란 보장이 없는 회사는 너무 위험 수위가 크다.
- 내 알파가 되어줘요
알파.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절대 뺏기지 않을 단 하나의 것. 그가 오롯이 석율에게 물려 준 유전자였다. 어차피 석율의 의지로는 절대 사용되지 않을 그의 고유한 것이었다. 상대는 이런 석율에게 책임도 무엇도 없는 오로지, 각인만을 원했고, 돈을 쥐어주기까지 하겠단다. 석율의 눈빛에, 무언가 결심이 선 듯, 깊은 일렁임이 드리웠다. 아버지, 다 빼앗아 가셨으니, 제게 남은 하나로 전 어머니랑 지율이 지킬거에요. 그가 휴대폰의 액정을 켜고, 한 손에 든 명함에 적힌 번호를 꾸욱꾸욱 누르기 시작했다.
*
"혹시 그 때 술 마셨었어?"
"음. 칵테일 한 잔?"
"너 어디 아프냐?"
"열은 없는데. 아파 보여?"
허. 태연해도 너무 태연한 그래의 대답에 입이 쩌억 벌어진 백기는 자신이 좀 전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것도 잊은 채 손을 더듬어 커피잔을 그대로 입으로 털어넣다가 아뜨뜨, 혀를 데였다며 호들갑이었다. 그 광경에 또 맞은편에 앉은 그래는 자연스레 냅킨을 건네며, 조심 하지, 괜찮아? 묻기까지. 아니, 지금 내가 괜찮은 게 문제가 아니라, 너 말야 너. 장그래 너. 백기는 다시 입을 쩌억 벌리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회사원인 저라면 몰라도, 이 시간이 가장 대낮일 장그래 작곡가가 미치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긴 했다. 하지만, 이게 어디 제정신인 사람이 지껄일 소린가 싶어 백기는 재차 그래를 몰아 세웠다.
"장그래, 너 이게 지금 진짜 말이 안되는"
"그럼, 내가 보호소에 가는 건 말이 되는 얘기야?"
"야, 내 말은"
"그 얘긴 이제 그만하고. 내가 부탁한 건?"
쪼록, 소리가 나도록 아이스 카페라떼를 한 모금 마신 그래가, 오른손을 쫘악 펴서 내밀었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마지막 반항인듯 미간을 좁히던 백기는, 그래의 스읍, 한마디에 머뭇머뭇 가방을 뒤적이고는 작게 한숨을 포옥 내쉬고 손바닥에 작은 상자를 조심스레 올려놔 주었다. 그런 백기의 모습은 아랑곳 않고 그것을 낚아채듯 챙긴 그래가 부러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확실한거지? 아니면 모든 책임은 너ㅎ,"
"야! 넌 날 진짜 뭘로 보냐. ... 확실해. 나 병원 가는 일 단 한번도 없었어"
"흐음.., 72시간 이내?"
"... 노팅 이후 24시간에서 48시간. 72시간은 너무 길어. 야, 근데 너 진짜,"
자꾸만 그래를 말리려는 백기를 보던 그래가,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케이, 땡큐. 나 간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그의 움직임에 오히려 당황한 백기가 그를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그래야, 그래야. 잠깐만"
"왜"
"너, 그 사람 연락 안오면 어떡할래"
꽤 진지했으니 좀 놀랄법도 한데, 귀찮다는 표정으로 다시 백기의 맞은편에 앉은 그래의 낯빛에는 짜증이 한가득이었다. 응? 안오면 어떡할거야, 플랜 B도 있어야 하잖아. 진짜 걱정이 된 듯 다시 물어오는 백기를 향해 그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올거야, 연락"
"어떻게 확신해?"
그의 향이 그랬어. 내 향이 그랬고. 차마 26년 오메가로써의 인생에 처음 느껴 본 화학작용이었다는 말은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너무 가는 일이라 할 수가 없어, 그래는 대신 입을 꾹 다물어 한 일 (一)자를 만드는 것으로 대신했다. 백기는, 그런 그래의 모습을 '할 말 없음' 이라고 단정 지은듯 하지만.
"차라리, 너 오메가라서 보호소 가야된다고 얘길하고 스케쥴 정"
"너 같으면 아 그래요 다녀오세요 작곡가님, 할 것 같냐"
"이틀이나 지났다며. 연락 안오잖아"
그 때였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무언가가 지잉- 하고 울린 것은 진동벨의 그것이 아니었다. 무신경하게 액정을 확인하던 그래가, 씨익 웃고는 의기양양 액정을 들어 백기에게 척, 보여주었다. [My Alpha]
세에상에. 백기의 벌어진 턱이 이제는 다물어질줄을 모르고 더욱 더 밑으로 벌어졌다. 장그래만 미친놈인줄 알았더니 같이 미친놈이 또 있었네. 그래는, 백기가 그러거나 말거나 호흡을 가다듬고 재빨리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모양으로, 나 갈게. 하고는 휘익, 카페를 빠져 나갔다.
*
"네, 여보세요"
-.... 한석율, 입니다.
"알고 있어요. 생각보다 결정이 오래 걸리셨네요?"
통화를 하며 걸어가는 그래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꽤나 매서운 밤 공기가 그래의 온몸을 휘감았지만, 상관없었다. 짙은 소나무향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
-한가지 확실히 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가벼운 말투로 응대해도, 상대방의 말투가 결코 가벼워지지 않을 땐, 그 흐름에 응해주어야 원하는 답변을 얻을 수 있다는 것. 멋모르고 시작된 어렸던 날의 사회생활 경험을 토대로 알게 된 사실이었기에. 그래는 봄길을 걸어가듯 가볍게 떼던 발걸음을 멈추고 우뚝 그 자리에 섰다.
"네. 말씀하세요"
그래의, 뭐든 들어주리라는 어투를 들었음에도 석율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래 역시 채근하지 않았다. 한편으론, 오메가인 자신과 알파인 그의 입장이 무언가 바뀐 듯 해 다시금 웃음이 나기도 했다. 진득하게 기다려주기를 수 분째, 석율이 전에 없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 각인만 합니다. 그 이후에 어떤것ㄷ,
"네. 그럼요"
당연하다는 듯 말꼬리를 툭 잘라먹은 그래가 들리지 않게 피식, 웃었다. 참, 답지 않게 소심하시네.
"저 역시, 각인만 원합니다"
바라는 바입니다. 그 무엇도 없는, 각인, 하나만을.
쿨내나는 오메가 장그래가 있다면
짠내나는 알파 한석율도 필요치 않겠습니까 ㅋㅋㅋ
부족한 필력에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1) 댓글 ↘ 과
2) 트위터/shp_joy
3) 에슼폼/shp_joy
를 애용(?) 해주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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