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버스 세계관을 기반으로 재구성*
*현실성이 1도 없을 수 있음 주의*
"아... 왔어요?"
빼꼼- 수십분째 사람을 밖에 세워 놓은 이의 말투 치고는 너무도 평안해서, 석율은 어이없는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미안해요, 원래 이 때 깨어 있질 않아서.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는지 삐죽삐죽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서 반쯤 잠긴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그 날 어두운 바(Bar) 안에서 마주했던 그 또렷한 두 눈동자와 달큰한 사과향은 그대로여서, 또 석율은 다른 의미로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들어와요"
쇼파는 저 쪽. 심드렁한 말투로 석율에게 안내를 해 주고는, 휘적휘적 슬리퍼를 끌면서 걸어가는 그래의 밤톨같은 머릿통이 그 작은 움직임에도 살랑살랑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그를 따라 시선을 옮기던 석율이, 살짝 눈을 감으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여기저기에서 새어 나오는 그래의 캔디애플 향이, 석율의 온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Share with Me - 03
written by shp
"... 뭐하자는 거야..."
석율은 왼팔을 위에서 아래로 털어, 살짝 짜증스런 투로 손목시계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여섯 시 오십 분. 도착한 시각이 여섯 시 이십 분 쯤이었으니까, 자그마치 삼십 분 째 문도 두드려보고 초인종도 눌러봤지만, 굳게 닫힌 문처럼 안에는 정적이 흐르는 듯 했고 집 주인은 나와 볼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마침 마주친 주민이 없었더라면 까딱하단 게이트도 못 들어올 뻔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 저 역시 각인만 원합니다
나름 고민하고 꺼낸 한 마디가, 말꼬리까지 툭 잘린 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묵살 당해버렸을 때의 당혹감은 차치하고라도, 능력에, 재력에, 외모까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그야말로 최상급 오메가가 다른 것 다 필요없고 각인이 필요하다는 한마디는 꽤나 충격이기까지 했었다. 도대체 왜, 라는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다, 알파라서가 아니라 삶이라는 것에 치여 대충 흘려들을 수 밖에 없었던 오메가 보호법이 생각났고, 음원차트에 빼곡히 이름을 세울 수 있을만큼 바쁜 사람이니 보호소에 가는 것이 싫어서인가. 라는 결론까지는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황당함이 먼저였던 건, 보호법이 가장 적용되야 하는 것은 응당 목소리에서부터 가득한 캔디애플향이 넘쳐 흐르는 오메가, 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나치게 유혹적인 페로몬의 소지자. 외려 왜 아직까지 각인이 없는건지 되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 한 번 만나야겠죠? 어쨌든 이런것도 계약이니까. 시간이랑 장소는 문자로 찍어 보낼게요.
뒤이어 도착한 주소에, 동호수가 적혀 있어 설마 하는 마음에, 여기가 어디에요 묻자 우리집이요, 하는 그래의 대답에는 정말이지 뜨악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사람, 자기가 오메가라는 자각이 없는건 아니겠지? 아니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오메가와 알파의 관계라는게 있는데. 대체 어느 오메가가 알파를, 그것도 각인 되기 전의 상대를 집으로 불러들여. 오히려 제 쪽이 당황해 근처 까페가 낫지 않을까요 묻자, 나갈 수 있으려나. 집이 나을걸요. 하는 모호한 대답이 돌아와 무슨 소린가 했다. 헌데, 이렇게 밖에 세워 두려고 부른건가. 철저한 갑의 입장을 보여주려고? 하, 내가 미쳤지. 이 시간이면 나가서 깡통을 주워도 한 봉지는 채울텐데 하는 생각에 석율이 몸을 돌려 가려는 순간,
"아... 왔어요?"
빼꼼- 수십분째 사람을 밖에 세워 놓은 이의 말투 치고는 너무도 평안해서, 석율은 어이없는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미안해요, 원래 이 때 깨어 있질 않아서.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는지 삐죽삐죽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서 반쯤 잠긴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그 날 어두운 바(Bar) 안에서 마주했던 그 또렷한 두 눈동자와 달큰한 사과향은 그대로여서, 석율은 좀 전까지의 마음도 잊고 또 다른 의미로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
"들어와요"
"아, 네"
쇼파는 저 쪽. 심드렁한 말투로 석율에게 안내를 해 주고는, 휘적휘적 슬리퍼를 끌면서 걸어가는 그래의 밤톨같은 머릿통이 그 작은 움직임에도 살랑살랑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그를 따라 시선을 옮기던 석율이, 살짝 눈을 감으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여기저기에서 새어 나오는 그래의 캔디애플 향이, 석율의 온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손으로 스윽, 습관처럼 매만지게 된 쇼파의 패브릭은 부드러운 석율의 손길에도 결이 그대로 살아있을만큼의 고급원단이었고, 가구는 많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화이트와 아이보리빛 옐로우톤이 적절히 배합된 따뜻한 느낌의 거실이었다. 그간 석율에게 집이라는 것은 그저, 몸을 누일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한 정도였는데. 처음 들어서는 낯선 공간에, 그 공간을 닮은 페로몬이라. 석율은 실로 오랜만에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커피? 쥬스? 뭐 줄까요"
"괜찮아요"
냉장고가 있는 부엌에서, 또 고개만 빼꼼 내밀고 묻던 그래가, 석율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제 멋대로 쥬스병을 꺼내 머그잔에 쭈욱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그릇에 시리얼을 가득 담고 우유를 부어 대충 뒤적이더니 한 손에는 따라 놓은 쥬스 잔을 들고, 한 손에는 시리얼 그릇을 쥔 채 석율의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마셔요, 나 먹는거 쳐다만 보는건 좀 그렇잖아. 툭툭 내뱉지만 묘하게 수긍이 되는 어투에 홀린 듯 석율이 쥬스를 한모금 깔끔하게 넘기자 아- 하던 그래가 쇼파 옆 서랍에서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뭐 좀 이상하긴 하지만, 쨌든 돈이 오가는 거니까"
아마도 영업용 미소일듯한 그 예쁜 웃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봉투를 열자, 정갈하게 작성된 종이 한 장이 석율을 반겼다. 아마 흔하게 볼 수는 없을, 아니 어쩌면 영영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을, 각인 계약서였다. 계약자 장그래, 피계약자 한석율. 눈으로 글자들을 훑어가던 석율이, 첫번째 조항부터 꼼꼼히 읽어보다 놀란 눈으로 그래를 마주했다.
*
"금액이 잘못 된 것 같은데요. 저는 분명-"
"아-"
1억도 어마어마한 숫자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다시보고 또 봐도 1억에서 5천을 더한 숫자가 맞았다. 제 아무리 얼떨떨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는 하나, 숫자까지 잘못 볼리는 없었다. 한 푼이 아쉬워 살아온 세월, 돈에 관한 일이라면 치가 떨릴 정도로 정확해야 했는데. 석율의 이런 반응에도 열심히 입 속으로 씨리얼을 집어 넣어 오물오물 삼키고 있던 그래가, 별 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알아보니 빚은 총 1억 2천정도. 그 중 급하게 상환 되어야 하는 것이 5천 쯤. 다른 오메가와 각인을 한 적도 없고, 연애라 불릴만한 것도 없었고. 그런데 집안에 유일한 아들이시더라구요. 명색이 한 집안 대(代)를 이을 사람을 제 각인 상대로 정하게 된 데에는 일말의 책임감도 좀 느껴져서요"
줄줄 읊어나가는 그래의 말에, 석율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래, 한 푼 두 푼이 걸린 일도 아닐진데, 그 어떤 뒷조사 없이 순순히 이런 거래를 만들어낼리는 없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그렇대도 뒷조사라는 것 자체가 어감부터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차라리 물어보지. 어차피 이 관계에서 을이 된 이상, 숨길 것도 없고 거짓을 말할 생각도 없었다. 게다가 적선하듯 정해진 금액보다 더 많이 준다는 사실도 불편했다. 챙길 자존심 따위는 내버린지 오래지만, 당신에겐 이 많은 돈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툭 내어줄 일인가.
"... 제 뒷조사를 하신 건가요"
바삐 돌아가는 석율의 머릿속을 읽어냈는지, 아니면 들어설때보다 한 층은 더 굳어진 그의 눈매를 인식했는지는 모를 일이었으나, 이런 석율을 가만히 지켜보던 그래가 다시 생글생글 웃으며 진정하라는 듯 말을 이어갔다.
"아, 너무 기분 나쁘게는 생각하지 말아요. 한석율씨도 어차피 초록창에 내 이름 검색은 해봤을거 아니에요. 내 입장에선, 검색하는 것과 같은 절차였어요"
"대놓고 물었어도 숨길 생각 같은 건 없었어요"
"흠, 그거 알아요? 난 한석율씨 전화번호도 몰랐던거?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한 제안이라, 전화 오지 않는 동안 나도 뭔가 필요했어요. 일종의, 대책마련이죠"
예를 들면, 내가 먼저 연락할 구실 같은 것. 그래는 굳이 뒷말을 붙이지 않았다. 각인이 필요한 것이 첫번째였지만, 그보다 전에, 제가, 혹은 알파가 각인을 원할 만한 마음이나 몸이 동하는 상대가 있을지의 여부가 그래에게는 훨씬 더 중요한 일이었다. 그날 밤, 석율을 마주치고서야 그런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했고, 말은 안했지만 연락이 올 것이란 확신 뒤에 밀려오는 불안함을 애써 감춰야 했다. 하루도 안 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체 되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리고 알고 싶었다, 짙은 소나무향에 가려진 비밀을. 정말, 그 뿐이었다.
그래의 마지막 한마디가 설득이 되었는지 수긍이 되었는지, 석율은 이내 차갑게 굳었던 시선을 거두어 계약서라 적힌 그것을 마저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

"술 마시면 각인 확률이 떨어질 수도 있대요"
"네. 들었어요"
"제 싸이클은 돌아오는 금요일 즈음이에요"
"네"
"뭐, 더 궁금하신 사항은"
"아니요. 없습니다"
고심하고 고민하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서명 한번에 계약이 이루어졌다. 철저히 각인만을 위한 관계가 그렇게 성립되었다. 뭐, 악수라도 할까요. 농담 섞인 그래의 한마디에, 석율이 희미하게나마 웃었다. 항상 때에 맞지 않는 싱그러운 향이 이 오메가, 아니 장그래의 매력인건가. 그러죠. 석율이 먼저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바라보던 그래는, 고생했다는 사람 답지 않게 석율의 손이 참 곱다는 생각을 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저도 모르는 새 손이 그에게 감싸 쥐어져 있었다. 슬며시 피어오르는 석율의 짙은 소나무향에 그래 역시 꽤나 예민해져 갔고, 그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는 재빨리 손을 빼냈다.
*
"아.. 저, 그럼 조심히 돌아가세요. 저는 이, 으읍"
황급히 몸을 돌려 방으로 향하려던 그래의 움직임이, 석율의 손에 의해 제지 되었다. 휘릭, 바람처럼 가볍게 석율 쪽으로 몸이 틀어진 그래가 커질대로 커진 눈을 하고 뒷걸음질을 쳐야 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격하게 맞부딪혀 온 석율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래의 아랫입술을 물어 틈을 벌려왔다. 읍, 저기 잠, 깐, 마지막 남은 그래의 이성 한자락은, 그의 어깨를 감싸오는 석율 때문에 더 이상 붙잡을 수 없었다. 그 때서야 아주 간단한 사실 하나를 너무 우습게 간과했다는 경고음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뭐가 됐든 이 사람은 알파, 저는 오메가라는 사실. 제 페로몬으로 가득한 이 공간에, 알파가 들어온 것. 어찌보면 석율이 이만큼 참은 것도 대단하다 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하아, 석율 역시 머리 따로 몸 따로 노는 이 상황이 당혹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당돌한 이 오메가, 아니 장그래의 손이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제 손안에 꼬옥 들어차는 것이 귀엽다 여긴 것까지는 석율의 이성이었다. 갑자기 그에게서 나기 시작하는 캔디애플향에, 시선이 맞부딪혀진 순간, 방금까지 먹은 시리얼 때문에 우유자국이 나 있는 입술이 보였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건 아닌데. 애석하게도 알파의 본능은 이성을 이겼다. 그리고 제 혀와 그래의 혀가 엉켜있는 지금, 믿을 수 없을만큼 몸이 달아오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어느새 제 목에 둘러진 새하얀 두 팔 때문에도 더욱 그랬다. 으음, 결국 터져나오는 그래의 신음에 그의 어깨를 감싸 쥔 손끝이 덜덜 떨리오기까지 하던 그 때...,
지잉- 지이잉-
"하아, 하아"
"하, 후으. 어, 여보세요. 지율아"
-오빠, 오늘 늦어?
"응? 아, 아냐. 오빠 지금 가. 지율이 왜.
-오빠. 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데.
"어? 어.. 아이스크림?"
횡설수설 더듬더듬 통화를 이어가던 석율이 그래의 눈치를 살피자, 그가 가보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끄덕, 고갯짓으로 인사를 나눈 석율이 급하게 신발을 신고 도망치듯 그래의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래는 한동안 바닥에 주저 앉아 일어나지 못했다. 두근대다 못해 파르륵 떨리는 왼쪽 가슴에 손을 대었다. 위험했다, 아주, 많이.
*
[이메일 하나 보냈으니 열어봐. 네가 증인 겸, 잘 가지고 있어줘 - 그래]
차디찬 물 한잔을 마시고 정신을 차린 그래가 집안 곳곳의 창문을 열고 탈취제를 사정없이 뿌렸다. 석율이 돌아간 지 이미 30분도 더 지나 그의 페로몬향은 아주 옅게만 존재할 뿐이었지만, 두근대는 심장이 쉬이 진정되지 않는 지금의 그래에겐 그마저도 상당히 치명적인 일이었다. 그가 마시다 남기고 간 쥬스컵도 필요 이상의 세제를 풀어 닦아내고는 치워 버렸다. 그리고나서야, 집 나간 이성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계약서를 스캔 해 백기에게도 부러 한 장 보내 두었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었고, 꼬치꼬치 캐물을 장백기에게 더 없이 좋은 설명의 도구가 되어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잠시 쇼파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자니. 5, 4, 3, 2, 1....
You are the apple of my eye ~ ♪♬
"응, 나"
-장그래 이 미친놈아!!
빙고.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백기의 우렁찬 욕설에, 그래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눈을 감았다.
"나 귀 안먹었어"
-어. 너 아무래도 귀가 아니라 머리가 먹통이 된 것 같아. 너 내가 돈지랄 적당히 하라고했지?!
"...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또 해? 이럴거면 약은 왜 줬어"
-와. 진짜, 내가 설마설마.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더니.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길래 네 장단에 그렇게 놀아나?
"놀아나다니. 내 제안에 기꺼이 동의해 준 사람한테"
-허얼. 그 사람이 너 죽이려고 하진 않았냐? 페로몬 막 뿌려대면서? 엉?
"1절만 해. 머리 아파. 여튼 네가 잘 갖고 있어. 부탁할게.
-야, 장그래
"... 백기야"
그래가 백기의 말을 끊고 한 톤 낮은 목소리로 그를 부르자, 잠깐의 정적을 만들던 백기가 분위기를 파악하곤 부름에 응했다. 늘 으르렁대며 싸워도, 명색이 고등학교때부터 벌써 8년친구인 백기가, 달라진 그래의 목소리를 못 알아들을리 없었다. 왜.
".. 나 키스했어"
-켁, 커억, 크윽, 하악, 뭐, 뭐라고? 뭘 했다고?
물을 마시던 모양이었는지, 목에 걸려 켁켁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마도 곁에서 잠자코 통화내용을 듣고 있었을 해준이, 급하게 괜찮냐며 그의 등을 두드려주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확인 사살하듯, 그래가 힘주어 또박또박 대답했다. 키스했다고.
-너 괜찮아?! 키스만 한거야?! 내가 지금 갈까?!
하여튼. 걱정을 하면 훨씬 더 목소리가 격양되는 백기가 또다시 우다다 물어오자, 그래가 이번엔 참지 못하고 피식 웃어버렸다.
-응. 키스만 했어. 나 괜찮아. 오지마, 나 다시 잘거야.
사실, 꽤 괜찮았어. 무섭긴 했는데, 싫은건 아니었어. 그런데 백기야, 나 떨렸어. 머릿속엔 빨간 불이 막 켜지는데, 나는 떨고 있었어. 두려움일까. 설레임일까. 그래가 끊어진 전화기에 대고 한참을 중얼중얼, 그렇게 앉아 있기만 했다.
*
"녹차가 아니라 딸기. 딸기였는데"
"...."
"오빠?"
"... 어? 어어, 어. 뭐라고 지율아?"
"녹차가 아니라 딸기! 딸기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한거라구!"
"아.. 아, 미안. 오빠가 내일 다시 사다 줄게. 아님 지금 나가서 사올까?"
"치. 됐어. 그냥 이거 먹을거야"
새초롬하게 입을 삐쭉인 지율이가 석율의 손에서 아이스크림을 건네 받았다. 병실 정리를 하시면서 그런 석율과 지율의 대화를 들으시던 어머니가 지율에게 곧 자야 할 시간이니 조금만 먹으라고 당부하셨다. 네에- 하던 지율이 오빠, 먹을래? 하면서 새 숟가락을 건네는 중에도, 석율은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얘, 석율아. 보다못한 어머니가 석율을 부르셨고, 그제야 정신이 든 석율이 내밀어진 숟가락을 보곤 아니라며 웃었다. 지율이 먹어.
"오빠 왜그래?"
"아냐, 아무것도"
"회사 힘들어? 시키는 일이 너무 많아?"
"아니이. 오빠가 그런다고 기 죽겠어 어디?"
"크큭, 하긴"
"... 지율아"
"응?"
"지율이 뭐 갖고 싶은건 없어? 하고 싶은건? 그 때 갖고싶다던 태블릿 PC.. 그거 사줄까?"
그 말에, 지율이도, 어머니도 모두 놀라며 석율을 돌아봤다. 갖고 싶다고 하면, 하고 싶다고 하면, 해주지 못하는 것이 더 마음 아플 것만 같아 평소에는 물은 적도, 요구한적도 없었는데. 석율의 질문에도 지율이는 물론 어머니도 대답은 커녕 눈만 굴리면서 그 의중을 파악하려 애쓰는 모습에 석율이 부러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왜, 말해봐. 오빠가 해줄게. 그리고, 내내 그를 신경쓰시던 어머니가 결국, 석율을 밖으로 불러내셨다. 잠깐 나와, 엄마랑 얘기 좀 해.
*
"무슨 일이야. 너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거야, 대체"
"그런거 아니에요, 엄마"
"바른대로 말 안해? 회사 들어간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애가 벌써부터"
클 수록 제 아버지와 똑같이 닮아가는 아들. 이제는 아들이기도, 남편이기도 한 아들을 채근하는 어머니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웠다. 존재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했던 아들에게, 어느날 고스란히 삶의 무게를 지워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은 그간 오죽했을까. 석율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어머니의 얼굴에 깊게 자리한 주름들이, 그 동안의 고생을 의미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쓰려왔다.
"석율아"
"엄마. 그냥 나 한번만 믿어주시면 안될까?"
"뭐?"
"허튼 짓 안해요, 절대"
"석율아, 아버지는 항상,"
"엄마. 아버지 얘긴 하지 말자. 우리, 지율이만 생각해요. 그러기로 했잖아"
들어가세요. 곧 들어갈게요. 걱정이 서린 어머니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던 석율이, 간절해진 담배 생각에 휴게실로 향했다. 돌아선 석율에게서, 미묘하게 그의 향과 섞여 뿜어져 나오는 바람같은 캔디애플향을, 베타인 어머니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지율이를 위한거야. 가족을 위한거야. 그 주문같은 중얼거림에, 두근대는 심장일랑 모두 없던 일이 될 수 있길 바라는 석율이, 담배 한모금을 깊게, 들이마셨다.
금요일은 그렇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
-백기야, 너 약 안먹고 히트 겪어봤지?
-당연하지.
-어.. 어때?
-뭘 어때.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것 같아. 내가 내가 아니야. 이성은 없어.
장백기 말이 진짜일때도 있었어, 라고 그래는 생각했다. 3일 전부터는 억제제를 끊었었다. 오랜 시간 억제제를 복용해 온 오메가는, 적어도 3~4일 전부터는 억제제를 끊어야 각인이 성사 될 확률이 높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약을 먹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스케쥴을 조절해 미친듯이 몰아서 미리 일을 해두었다. 그리고 지금, 그래는 그 일련의 모든 과정을 후회하고 있는 중이었다. 무리를 해서인지 일찍, 찾아온 히트였다. 진짜 불타오르는 것 같네. 하아, 나 이러다 각인이고 뭐고 그냥 죽는거 아냐? 정말 타오르는 것 같은 열기에 더듬더듬 집안 창문을 모조리 열고 다니던 그래가, 결국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밭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남들은 퇴근을 한다는 여섯 시. 그래는 한창 자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저 아래 어딘가에서부터 뭉근하게 올라오는 열기에 잠은 커녕 누워 있을 수 조차 없었다. 금요일에서 하루 모자란 목요일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알았다. 히트가 시작되었다는걸,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라는 것을.
*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아 1번을 길게 눌렀다. [My Alpha]. 다행히 신호가 몇 번 가지 않아 기다려온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네, 여보세요
"...하아, 한, 석, 율씨
-여보세요? 장그래씨? 왜, 왜그래요. 혹시..,
"흐으, 나, 지금.., 하아, 지금, 어, 디에요"
-지금 막 퇴근 했어요. 지금 갈게요. 집이죠?
"하아..흡.., 네...비, 밀번, 하아, 는.. 1, 0, 하아, 2, 2 에요.."
-네, 알았어요. 금방 가요. 갈게요
그래와 통화를 마친 석율이,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뛰면서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전화기 너머 끙끙대는 그래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는 순간, 각인이니 돈이니 그런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캔디애플, 석율의 사과가 울고 있다는 것. 그것이 석율을 뛰게 하고 있었다.
열기로 가득한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아. 네. 그럼요. 한석율의 사과가 시뻘개져 울고 있답니다.
부족한 필력에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1) 댓글 ↘ 과
2) 트위터/shp_joy
3) 에슼폼/shp_joy
를 애용(?) 해주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생 > Share with 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석율그래] Share With Me - 06 (9) | 2015.03.10 |
---|---|
[석율그래] Share With Me - 05 (11) | 2015.03.04 |
[석율그래] Share With Me - 04 (5) | 2015.03.03 |
[석율그래] Share With Me - 02 (5) | 2015.02.28 |
[석율그래] Share With Me - 01 (8) | 2015.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