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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Share with me

[석율그래] Share With Me - 16 (完)

*오메가버스 세계관을 기반으로 재구성* 
*현실성이 1도 없을 수 있음 주의* 
*스압 주의* 














결정적 기로에서 만났기에 늘 더 소중합니다. 
모든 순간이 때론 중요하지만 그저 괜찮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대를 만나서 절망에 흔들리던 이에게 작은 희망이라는 것이 담겼습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만남이기에 함께 만들어나갈 미래조차 아름답습니다. 
아주 먼 훗날, 서로의 생을 마치는 그 날까지,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곁에 있으면 좋고, 떨어져 있으면 그리워지는.. 
사랑한다는 말에 저의 순수를 겁니다. 
사랑합니다. 
(- 부활 김태원의 편지 中-) 





Share with Me - 16 (完)


written by shp







" 자, 여러분. 오늘 소리의 향기 2부에서는요, 요즘 가장 핫한 작곡가님이죠. 민효영과 진우가 부른 '당신과 만나던 날'의 편곡을 담당하신, 장그래 작곡가님을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 


처음 하게 된 편곡은 아니었지만, 색다른 스타일이었다. 무엇보다 조금 슬프거나 서정적인 느낌이 주를 이루던 그래의 이전 곡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랑스러움이 눈길을 끌었다. 드라마 OST로 삽입 되었던 이 곡은, 주인공으로 나오는 여배우와 아이돌 그룹 남자 멤버가 함께 듀엣을 하는 것으로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오래된 원곡의 느낌을 져버리지 않되, 그래의 편곡에는 상큼함이 더해져 모든 연령층의 사랑을 받는 곡으로 재탄생 되었다는 호평 아래, 이미 원 작곡가에게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전해 받은 그래였었다. 때문인지, 한동안 곡의 제목 다음에나 자리했던 그래의 이름이 다시금 사람들의 화두에 오르게 되었고, 여기저기서 장그래 작곡가를 찾는 사람들은 딱 배로 늘어났다. 석율도 첫 프로젝트 준비로 바빴기에, 서로의 'Share' 신호는 조금 흐릿해지기 일쑤였지만, 


" 이번 노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곡이 너무 밝아요. 예쁘고. 장 작곡가님 곡들 중에 그런 스타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뭐랄까. 사랑에 빠진 것 같은 느낌? " 
" 하하, 그런가요? " 
" 네에- 그럼요. 와, 지금 실시간 문자로 많은 분들이 맞아요, 작곡가님 곡 밝아졌어요- 하시네요. 아, 여기. 1512님이 작곡가님 진짜 연애하세요? 하고 물으셨네요. 어떠세요, 작곡가님? " 
" 어이쿠, 뭐 제 연애까지 궁금해하고 그러세요. 음.., 네, 이미 다들 눈치 채고 계셨을 것 같지만, 말씀 드리자면.., 네. 연애하는 것 맞아요. 확실히 제 머리와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곡들이라서인지, 그런 감정들이 드러나는듯 하네요 " 
" 와아- 정말 궁금한데요. 이렇게 외모도 실력도 빼어나신 작곡가님을 사로잡으신 분이 누구실까요. 아마 지금 듣고 계실지 모르는데, 한마디 해주세요? " 
" 어.., 네에. 말 안해도 알죠? 항상 고맙고, 사랑합니다. 오래 함께 했으면 해요 " 
" 어휴, 이 달달한 향기에 솔로는 그저 웁니다. 그럼 우리, 이렇게 사랑스런 노래를 안들어 볼 수가 없겠죠? 노래 듣고 오겠습니다. 민효영, 그리고 진우의 '당신과 만나던 날' " 


그 설레는 마음을 어디서든 숨기지 않고 제 곡에, 또 제 인터뷰 기사에 여실히 드러내는 그래의 사랑 표현에 석율은 이제, 흐릿해지는 'Share'의 신호를 불안해 하지도, 초조해 하지도 않았다. 그래는 이미 충분히 건강해졌고, 두 사람은 어느때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의 사랑 표현이 대부분 공식석상을 통해 낮에 이루어진다면, 석율의 사랑 표현은 상당 부분이 밤에, 침대에서 이루어진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소나무의 사랑으로 꽉 채워질때마다 사과는 더없이 붉어졌으며 또한 싱그러워졌다. 









" 수고하셨습니다 " 
" 네. 작곡가님 축하드려요. 저희 그럼 곧, 국수 먹나요? " 


라디오 생방을 마치고 가볍게 스튜디오에서 티 타임을 갖게 된 프로그램 스탭들과 그래의 화두에는 당연히 그의 결혼 얘기가 주를 이루었다. 사람들과 벽을 쌓고 지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간 그래는 이렇게 함께 어울리는 법을 잘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뚜렷하게 변한 그의 감정이, 유연해진 그의 모습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래에게 더 친근함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만은 사실인듯 했다. 


' 국수 먹는다고 ㅎ.., ' 


큭.., 회의 때문에 바쁜 줄로만 알고 생각을 읽어낼 시도조차 안하고 있던 그래에게 석율이 급하게 생각을 전해왔다. 결혼에 관련한 질문이 사람들에게서 나올때면 조금이라도 망설이지 말라고 이미 여러번 말했던 석율이지만, 아무래도 사람들과의 이런 대화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그래는 늘 반박자 정도 쉼표를 가지곤 했다. 얼마나 급했으면 다 잇지도 못하.., 



" 아, " 
" 그래 씨, 안 데었어요? 야, 여기 티슈 좀 가져와! " 
" 아, 괘, 괜찮아요. " 


냐고 물으려던 그래가 무엇엔가 놀란듯 굳어버렸다. 파르르 떨리던 그래의 손에 의해 뜨거운 커피를 담고 있던 종이컵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혹시나 그래가 데었을까 사람들 모두가 이리저리 살피는 와중에도, 떨어진 커피컵만큼이나 안색이 파리해진 그래가 떨리는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 그래 씨, 정말 괜찮아요? 안색이 갑자기 왜 이래. 어디 안좋아요? " 


스튜디오 안의 한 스탭이 그래에게 다가와 안색을 살피는데, 그래는 안중에도 없는 표정이었다. 그보다는 무언가 다급하게 전해진 석율의 생각을 읽으려 애쓰고 있었다. 


' 그래야! 빨리...! ' 


다시 전해진 석율의 생각에, 그래가 뛰기 시작했다. 









' 내가 회사 앞으로 가요? ' 
' 아니. 나 지금 택시 탔어. 자기도 얼른 병원으로 와 ' 
' 대체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 


석율의 회사 앞으로 가려고 차를 운전하던 그래가, 그가 택시를 탔다는 말을 전해오자 얼른 차선을 변경했다. 톡, 톡. 그래의 손가락이 계속 핸들을 괴롭혔다. 석율 씨, 지율이 왜요. 응? 다시 한 번 물었지만 아마 그도 정신이 없는 것 같아 그래는 'Share' 대신 블루투스를 택했다. 이윽고 들려온 석율의 목소리에 초조함이 서려있어 그래가 마른침을 꿀꺽 넘겼다. 


" 뭐라고 전화왔는데요, 정확히 " 
- 몰라, 그냥 엄마가. 좀 왔으면 좋겠다고. 엄마 목소리는 침착하셨는데..., 
" 회사는, 조퇴 했어요? " 
- 아니. 어차피 현장에 가던 길이라서, 잠깐. 엄만 괜찮으니 퇴근하고 오라고 하셨는데 내가 너무 급해서. 
" 응. 나 다 왔어요. 석율 씨, 걱정하지 말자. 응? 지율이 여지껏 아무일도 없었잖아요. 얼마나 건강해졌는데. " 
- 응, 그럼. 어, 자기 차 보인다. 


말과는 다르게, 마주한 두 사람의 얼굴은 조금 굳어 있었다. 지율이의 상태가 좋아지고 나서, 석율은 대부분 그래의 집에서 출퇴근을 했다. 병원보다 회사와 가까운 이유도 있었고, 일이 많아졌기 때문에 자주 들르고 싶어도 야근에 지쳐 이따금씩 새벽 작업을 하던 그래가 픽업을 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어머니가 계속 병원에만 계시는 것이 걸려 그래가 지율이의 병실을 일인실로 바꾸어 주었을 때도, 석율은 그래를 통해 이야기를 듣고, 연신 감동어린 인사를 했지만, 정작 병원엔 들를 짬이 없었다. 혹시라도 안 좋은 일이면 어쩌지. 또 다시 제 탓을 하기 시작하는 석율의 손을 그래가 꼬옥 잡았다. 아냐, 별 일 없을거에요. 




" 지율아! " 
" 오, 오빠 " 


다행히 병실 침대에 누운 지율이의 안색이 밝은 것을 보고 안심한 석율이, 성큼 병실 안으로 들어서려다 멈칫. 


" 지, 지율아? " 


그리고 바로 따라 들어 가려던 그래의 눈도 마치 동화 속 공주를 실제로 만난 아이처럼 환하게 커졌다. 석율과 그래, 서로를 향해 확인하듯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망울에 살짝 물기가 비쳤다. 그들을 바라보는 어머니도 이미 따스하게 눈물 짓고 계셨다. 


" 응, 오빠 " 


지율이는, 어느 때보다 상큼하게 웃고 있었다. 오렌지 향. 분명, 오렌지 향이었다. 
수 개월간 잊고 있었던, 지율의 오렌지 향이 병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석율이 조심스레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반 발자국 뒤에 선 그래도 함께였다.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래는 알 수 있었다. 석율의 발걸음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생각들이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스쳐가고 있었다. 얼마나 빠른지 그래가 미처 다 읽어내지도 못할만큼이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 고운 이불에 싸인 아가 지율이가 어머니 아버지 품에 안겨 석율에게 처음 꼬물대며 인사를 하던 그것이었다. 그 때 맡았던 가장 행복하고 달콤했던 오렌지 향을, 석율은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 어떻게 된거야.. 우리 지율이, 언제 이렇게. 오빠도 모르게.. 응? " 
" 음, 퇴근하고 와도 되는데. 엄마 전화에 놀랐구나, 오빠? 큰 일도 아닌데" 
" 이보다 더 큰 일이 어딨어. 하아.., 지율아. 고마워 " 
" 오빠. 나 한 번 안아줘. 자아- " 


그렁한 눈물을 매단 채 차마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낮게 몸을 굽혀 지율이와 시선을 맞춘 석율의 목소리가 자꾸만 떨려왔다. 지율이 역시 그런 제 오빠의 모습이 낯설고 생소해 부러 더 밝은 척을 하고 있지만, 이미 볼을 타고 흘러 내리는 이슬같은 눈물은 마를 새가 없었다. 곁에 서 있던 그래도, 그 뒤에 서 계시던 어머니도. 햇살이 예쁜 병실 안, 지금 울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석율이 언제나처럼 소중하게 지율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고마워, 지율아. 정말 고마워. 지율이가 영영 향을 잃어 버릴까봐, 지율이의 오렌지 향은 그저 석율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게 될까봐 얼마나 불안했었는지 모른다. 건강이 차츰 나아지는 중에도, 유독 향만은 돌아오지 않기에 그것까진 욕심인 줄로만 알았는데. 갈수록 짙어지는 오렌지향이 그저 너무 반가운 석율이 더욱 더 꼬옥 지율이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 고마워, 그래야. 자기 덕분인거, 나 잘 알아 ' 


입으로는 지율이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하는 석율이었지만, 싱긋 웃는 미소에 생각을 담아 그래에게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살짝 눈이 마주친 그래는 작게 도리질을 했다. 내가 받은 것이 훨씬 커요. 내가 느낀 행복이 훨씬 대단해. 그래의 생각이 석율에게 닿았다. 그리고 세상에 하나뿐인 소나무에,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사과와 오렌지가 예쁜 열매를 맺는 순간이었다. 









- 다음주 쯤, 퇴원해도 된다고 하더라. 통원 치료면 충분할거라는구나. 
- 잘 됐다, 정말. 엄마 그 동안 너무 수고하셨어요 
- 엄마가 당연히 해야 할 일에 수고는 무슨. 그나저나, 집은 어쩌지? 지금 있는 곳은 지율이한테 좋지 않을텐데. 
- 엄마가 무슨 그런 걱정까지 하셔요. 걱정 마세요, 제가 해요. 오늘은 우리 기쁜날이잖아요. 네? 
- 응, 그래. 그러자. 


큰 소리 떵떵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머니께 걱정 마시라 당부를 하던 석율은, 늦은 밤 먼저 잠이 든 그래에게서 솔솔 풍겨져 나오는 사과향을 맡으면서도 쉬이 잠이 들지 못하는 중이었다. 돈 문제 보다도, 한참 일이 바쁠 시기에 거처를 마련할 시간이 있을까 고민이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통원 치료가 가능하다면, 지율이 학교도 어느 정도 고려해봐야 할 일일지 모르는데..,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이던 석율의 움직임에 그래가 으음, 하면서 팔을 뻗어 더듬더듬, 석율의 품을 파고 들고는 살풋 찡그리며 눈을 떴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잠을 못자요. 



" 깼어? 미안. 오늘 이리저리 다니느라 힘들었을건데. 더 자자, 응, 우리 그래 " 
" 석율 씨 " 
" 큭, 우리 'Share' 하는 거 정말 이럴땐 잠깐 스위치 끄고 싶다. 우리 그래 또 걱정 시키겠네 " 
" 집. 나 할 말 있어요 " 


이미 석율의 생각을 다 읽고, 잠이 다 달아나버린듯한 그래가 몸을 반쯤 일으켜 세웠다. 자꾸 그의 어깨에 무언가 얹어 주는 것 같아 아직도 망설임이 많던 석율이, 어둠 속에서 점차 그 밝기를 더해가는 영롱한 두 개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그리고 그렇게 읽혀진 생각. 석율은 침대 헤드에 기댔던 몸을 번쩍 일으켰다. 그리고 불을 켰다. 그래야, 그게 무슨.., 자기야, 진짜야? 하고 묻는 석율의 얼굴에 놀라움이 마구 솟아 오르고 있었다. 얼결에 함께 일으켜진 그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랑, 같이 하자고 했잖아요. 사과는 또, 그렇게 웃었다. 이윽고 맞닿은 두 사람의 입술이 예쁘게 붉어졌다. 그 밤, 이어지는 젖은 소리에는 두 사람의 하나 된 생각이 가득했다. 같이 해요, 우리. 미처 고맙다고도 하지 못할 너무 큰, 사랑이었다. 









" 그래 오빠, 어디로 가는거에요? " 
" 음, 이제부터 지율이랑 어머니랑 살 집? " 


지율이가 오랜 병원 생활을 끝내던 날, 하늘에서는 촉촉하게 봄비가 내렸다. 쓰러져 입원했던 지율이가 양쪽에 든든한 오빠들의 부축을 받아 제 발로 병원문을 나서는 것을, 모두는 한마음으로 축하해주었다. 석율이 운전대를 잡았고, 조수석엔 그래가, 그리고 뒷자리에 지율이와 어머니를 태운 차는 길을 가로지르고, 다리를 건너면서 지율이의, 그리고 네 사람의 새로운 시작을 그렇게 드러냈다. 마침내, 차가 한적한 도심을 벗어나 어느 곳에 다다르자 지율이보다, 석율과 그래보다 놀라움을 표한 것은 바로, 어머니셨다. 


" 자아. 내리세요, 어머님. 석율 씨, 지율이 좀 " 
" 응, 읏차, 우리 아가씨. 걸어 볼까? " 
" 응. 내가 걸어 갈래, 오빠 " 


드넓게 펼쳐진 바다가 네 사람을 반겼다. 철렁이는 파도가 규칙적으로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에, 한 동안 모두가 말없이 그저 바다만을 바라보았다. 그 소리가 마치, 어서 와라. 하는 것만 같아서 석율은 애써 차오르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그래의 손이, 조용히 석율의 손가락 사이로 겹쳐졌다. 전해지는 온기에 한 번, 모든걸 함께 해주겠다는 그 눈빛에 한 번.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석율이 희미하게 웃었다. 



" 아버지, 저희 왔어요 " 
" 여보... " 
" 흐흑.., 아빠아.. 아빠, 지율이에요. 지율이, 아빠 딸 왔어요 " 


돌아가신 뒤, 거의 처음이었다. 사는게 바빠서. 라는 변명은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원망이 너무 가득 차 있었고, 닥쳐 오는 풍랑에 중심을 잡고 서 있기조차 버거웠다. 아버지는 그렇게, 가족들의 가슴 속에 담겨만 있었다. 아버지의 바다가, 이렇게나 가족을 부르짖는 줄도 몰랐다. 이제야, 그 모든 것이 머리에, 귓가에, 가슴에 닿아 들리기 시작했다. 석율도, 그래도, 지율이도, 어머니도- 하염없이 멀어지다 가까워지는 바다의 이야기에 한참을 그렇게 귀를 기울이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어머니, 마음에 드세요? " 


그래의 질문에, 어머니가 파르르 떨리는 눈가를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넓은 마당이 있었고, 푸르른 잔디가 깔린 그 공간에 한 켠에는, 통나무로 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하고 아늑한 크기의 집 한채가 오롯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우와! " 


머뭇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서던 지율이가 절로 탄성을 질렀다. 석율 역시 그래에게서 이야기만 들었을 뿐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기에 잠시 지율이를 부축하던 것도 잊고 여기저기 둘러보기에 바빴다. 나무 내음이 가득한, 맡는 것만으로도 피톤치드가 한 가득일 것만 같은 거실을 지나 욕실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위치한 방을 열자, 그야말로 꿈에나 그렸을법한 광경에 누구 하나 쉽사리 방 안으로 발을 내딛지 못했다. 


캐노피가 달린, 핑크빛 침대와 은은한 아이보리색 벽지로 이루어진 방이,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지율이의 방이구나 할 정도로 주인과 꼭 닮아 있었다. 오빠아, 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래만 멀뚱히 바라보며 눈물이 맺히는 지율이를 그래가 조심히 이끌었다. 물론, 뒤에서 지율이를 부축하던 석율도 함께였다. 


" 어때, 마음에 들어 지율아? " 
" 그래 오빠..., 오빠아..," 
" 뭘 울어. 이 침대에서는 행복한 꿈만 꾸고, 행복한 일만 생기자, 우리 공주님 " 


다는 알 수 없어도, 탄생부터 아픔이 있었을 아이. 그저 늘 밝고 행복한 것만 보게 해 주고 싶었는데. 결국 아버지가 원하셨던 건 지금 이런 지율이의 모습이셨을텐데. 너무 오래 돌아서야 다 그리지 못한 그림을 완성해 준 그래에게, 석율은 너무도 고마운 마음 뿐이었다. 침대에 누운 지율이의 곁에, 든든한 보디가드들처럼 마주 앉은 석율과 그래가 서로를 가득 눈에 담았다. 행복하죠? 하는 그래의 물음은, 굳이 전해진 생각을 읽지 않아도 이미 눈빛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장그래 때문에. 석율은 놓칠새라 그래를 꼬옥 품에 가두었다. 









-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석율이가 대학에 가고, 지율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이만큼 큰 집을 지을거야. 석율이가 원하는 큰 책장이랑, 우리 지율이가 원하는 캐노피가 달린 침대. 그리고 넓은 잔디가 깔린 마당에는 우리, 강아지도 한 두어마리 기를까? 


아버지의 유언이나 마찬가지였던 그 한마디가, 고스란히 녹아 살아 숨쉬는 듯한 집이었다. 언젠가 스치듯 했던 생각들이었고, 잔잔한 술기운에 추억하듯 건넨 한마디 한마디를 그래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실현하려 애써 준것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리 크진 않았지만 따스한 느낌이 주를 이루는 집에, 어머니방과 지율이 방, 그리고 그래와 석율이 오면 지낼 수 있게 된 게스트룸 한 켠에는, 분명 그래의 손길이 닿았을, 석율의 서재처럼 꾸며진 아기자기한 책장과 책상, 그리고 미니 신디사이저가 있었다. 석율의 손을 잡고 이곳 저곳을 꼼꼼하게 설명하던 그래가, 또다시 거실 한 켠에 작게 마련된 공간으로 석율을 불렀다. 무심결에 거실을 지나쳤던 석율 역시, 회심의 미소를 짓는 그래 곁으로 다가가서야 또 한번 놀란 눈이 되었다. 



" 아버지 사진, 어떻게 구했어? " 
" 어머니가, 간직하시던 거 한 장이 남아 있더라구요. 석율 씨 몰랐지?"  
" 어... " 
" 석율씨에겐 원망의 시간들이었겠지만, 어머님께는 안 그랬을거에요. 지갑에 있던 사진인데, 엄청 깨끗하게 보관하신 것 같더라구 " 


그 흔한 영정 사진도 제대로 준비되지 못했던 장례식. 당연히 추억할 사진이랄 것도 없었다. 사실은, 일부러 보지 않았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몰랐다. 환하게 웃고 계실 그 모습에서 멈춰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쉬이 가시지 않았으니까. 지아비로 삼으셨던 어머니의 마음까지 헤아릴 시간은 없었다. 지갑 속 고이 간직해 온 사진을 들여다보시며, 어머니는 아버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을까. 사진 속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호탕하게 웃고 계셨다. 그 선한 눈빛마저 그대로인듯한 모습에, 석율은 마치 아버지가 이 집안을 온화하게 바라보시는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석율의 소나무도, 지율이의 오렌지도, 그리고 그래의 사과까지. 그리고 아버지의 바다를 늘 그리워하신 어머니까지도, 이 곳에 계셨다. 아버지는.., 살아 생전 그리도 원하시던 그림 안에, 장그래라는 천사의, 이 사람의 사랑을 통해 모든걸 꼭꼭 채워 두시고는, 이렇게 사진으로 존재 하고 계시는 모습. 석율의 후회 섞인 한숨이 조용히 흘러 나왔다. 그러자 그의 사과가 석율의 단단한 등줄기를 꽈악 붙들었다. 이제 언제나 함께 계실 거에요, 아버님은. 그래의 중얼거림에 기어이 한줄기 회한의 눈물이 석율의 볼을 타고 흘렀다. 응, 그래야지. 등 뒤로 살랑 불어오는 그래의 숨결에는, 따뜻한 사과향이 번져 왔다. 









" 바다 참 좋다아 " 
" 난, 장그래가 더 좋은데? " 


석율의 능청스런 한마디에 그래가 푸흣 웃으며 석율을 담았다. 어스름히 노을이 깔리는 모래사장에, 그래와 석율이 나란히 어깨를 기대고 앉아 있었다. 노래를 들으면 좋을까 싶어 이어폰을 챙겨 나왔지만 아직 그래의 주머니 안쪽에 그대로 넣어져 꺼내지지 않은 채였다. 어떤 음악보다, 지금 서로가 나누는 생각이, 그 향긋한 내음이, 바다의 시원한 소리가 가장 멋진 음악이 되어주고 있었으니까. 


" 나, 어제 미국 부모님께 전화드렸어요. 거의 1년만인거 같아 " 
" 아아. 나 잠들 때 하던 통화가 그거였어? " 


어딘가 긴장되는 듯 느껴지던 그래의 기분에 석율도 잠을 살짝 뒤척였던 밤. 그래는 아마 그 때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있었나보다. 석율과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면서 그래 역시 생각이 많아지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 갔었다. 음악이 중요했지만, 가족도 소중한 것이었음을 어린 그 날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석율의 가족들이 그래에게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불편했더라도 부모님과 함께 있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들기 시작했다. 가족이란건, 그런거니까. 언제 어디서든, 늘 함께, 진정한 'Share'를 할 수 있는 끈으로 엮인 이들이니까. 1년만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엄마는 아들- 이라며 살가운 목소리를 건네셨고, 그 부드러움에 눈이 녹아 내리듯 봄을 맞이한 그래 역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그간의 근황을 나누기에 바빴더랬다. 물론, 석율의 이야기도 함께. 



" 그래서... " 


때로는 생각으로, 때로는 목소리로 어머니와의 통화를 곱씹으며 털어놓던 그래가, 조용히 주머니에서 반의 반으로 접힌 빳빳한 종이를 꺼내어 석율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하고 묻는 석율에게, 한층 더 달콤해진 사과향으로 모래사장을 물들이던 그래가 웃었다. 펴 봐요.  









" 어...? " 


조심스레 종이를 펼치던 석율이 무어라 말도 건네지 못한 채 펼쳐진 종이를 한 번, 그래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았다. 상기된 표정의 날 것 그대로에서는, 새순을 틔운 소나무의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 그래야 하는 목소리에 떨림이 가득해도, 그래는 또렷하게 석율만을 응시하며 입술을 떼었다. 



음표 하나, 노랫말 하나도 적히지 않은 깨끗한 오선지였다. 채워진 것이라곤 제목과 작곡가, 그리고 작사가의 이름이었다. 


노래의 제목은 Share With Me. 작곡은 장그래, 한석율. 작사는 한석율, 장그래. 그것이 전부인 오선지였지만, 그래의 뜻하는 바는 정확히 전달 받을 수 있었다. 이미 한 박자 먼저 도착한 그래의 생각에, 석율이 환하게 웃었다. 어느새 열 손가락이 빈틈없이 자리를 찾고, 서로의 향이 숲을 이루어 그 깊이를 더했다. 이 세상에 오직 둘만 존재하는 듯한 그 느낌과 함께, 두 사람은, 한마디 씩을 주고 받았다. 



" 앞으로 " 
" 우리가 " 
" 함께 만들어 갈 " 
" 우리의 노래 " 


비어버린, 새하얀 오선지에 음표를 채워 나가고, 노랫말을 채워 나가는 일처럼 그렇게, 앞으로의 음악을, 앞으로의 모든 일을 함께 하자는 뜻이었다. 그래 줄래요? 느린듯 정확하게 던져진 그래의 질문에, 석율은 잠시 눈을 감았다. 바(Bar)에서 처음 그래를 만났던 일, 각인이 이루어졌던 일, 서로의 오해가 쌓여 차갑게 돌아서던 일, 'Share'를 하고, 또 다시 한 번 마음을 나누던 일까지 모두- 아득한 옛일인 듯 현재인 듯, 또렷하게 하나하나 석율을, 그리고 그 생각을 전해 받는 그래를 스쳐가기 시작했다. 찰나의 순간, 두 사람에게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것은, 바다가 들려주는 넘실대는 파도소리, 그 하나였다. 


그래의 두 손을 고이 쥐고 있던 석율의 한 쪽 손이, 제 자켓 안쪽 주머니에 닿았다. 마치 아주 오래된 보물을 꺼내는 일처럼,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릿느릿 석율의 모든 손짓을 눈에 담던 그래가 쑤욱 하고 모습을 드러낸 그것에 적잖이 놀란 표정이 되었다. 석율씨...? 하는 동그란 눈동자에, 석율은 모든 대답 대신 입술 도장을 꾸욱 찍었다. 


석율이 내민 작은 상자 위에 빛을 받아 더욱 영롱하게 빛나는 꼬옥 닮은 반지 한 쌍이, 여전히 그래의 마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 받아 줄꺼야? 부러 장난끼 가득,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래의 답을 기다리던 석율의 모습에 큭, 하고 긴장이 풀린 미소를 흘리던 그래가 온 세상이 다 환하도록 밝게 웃었다. 



" 얘네도, 'Share' 하네? 우리처럼 " 
" 응. 우리처럼 " 
" 울 줄 알았는데, 눈물이 안나요. 그냥 너무 기쁘다 " 
" 내가 기쁘니까. 내 기쁨이 온통 장그래니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짝 눈물이 맺힌 그래가 후우, 하고 짧은 숨을 뱉자, 엄지 손가락으로 스윽 그 눈물방울 마저 걷어낸 석율이, 그래의 앞에서 한 쪽 무릎을 꿇었다. 



" 지금 생각해보면 생각도, 감정도 공유 된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설레었던 것 같아 " 
" ...... 석율 씨 " 
"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연결 되어 있지만, " 
" ...... " 
" 이제는, 우리의 심장이 맞닿아 있다는 네번째 손가락에, 또 다른 각인을 새기고 싶다, 그래야 " 
" ...... " 

" 그래, 줄래요? " 


조금 전의 그래와 같은 질문이었으나 전혀 다른 의미의 것이었다. 그래 줄것이냐는 물음은 같았지만, 그래, 네 자신을 내게 줄 것이냐는 물음도 함께 내포되어 있음을 그래는 모르지 않았다. 또륵- 하얀 그래의 볼을 타고 흐르는 한 줄기의 감동이, 그 자체만으로도 청아한 음색을 연주하는 듯 그렇게 흘렀다. 네. 마침내 흘러 나온 그래의 짧지만 확고한 대답에, 그들의 증표가 서로의 손가락에 채워졌다. 



" 장그래 씨 " 
" 네? " 
" 나랑 결혼. 그거 할래요? 내 사랑이 되어줘요 " 
" 기꺼이 " 
  

대답과 동시에 그래의 팔이 석율이 몸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석율의 입술은 그래의 입술을 뜨겁게 안았다. 말캉하게 조우한 서로의 혀는 엉키어 예쁜 소리를 냈고, 서로의 입술 안에는 사과향과 소나무 향이 뜨겁게 퍼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치열까지 하나하나 훑어가며 서로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키스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만큼이나 아득하게 서로를 탐하고 있었다. 마치, 서로의 입술 안에 모든 마음을 아로 새겨 넣듯이. 



' 사랑해요 ' 



온 몸을 짜릿하게 감싸는 그 진솔한 고백은, 아마도 그렇게, 영원히 찬란한 숲을 이뤄가겠지. 





Would you 
Share With Me?
 










Share With Me, 



Fin. 













(+ 더보기는 완결에 대한 짧은 사족입니다)










※ 그래가 편곡한 곡으로 나온 '당신과 만난 날'은,

민효린 진영(B1A4)의 '당신과 만난 이날' 입니다







언제나처럼,


부족한 필력에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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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애용(?) 해주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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