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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단편

[해준백기] As you wish

"아, 아무리 그래도" 
".. 뭐든 해주신다면서요" 



역시, 좀 무리십니까? 금세 풀이 죽어 의기소침해지는 백기의 표정을 보자 안그래도 곤란한 듯 난감해하던 해준의 표정이 한층 더 난감해졌다. 아니, 그게 아니고.., 급한 마음에 내뱉은 아니라는 말에 다시 그럼, 하며 환해지는 백기의 얼굴을 보자니, 이젠 안 들어줄 수도 없겠다 싶다. 



"다른 색은, 없..죠?" 

마지못해 백기에게서 옷을 받아들면서 한번 더 확인해보지만, 네. 이것뿐인데요? 해맑은 그의 대답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또 피식 웃음이 나는 해준이었다. 










As you wish

(부제 - 그의 생일)
Written by shp










- 생일날 뭐 갖고 싶어? 


이미 준비 해 둔 선물은 있었지만, 혹시나 싶은 맘에 물어본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반짝반짝한 눈망울이 되돌아왔었다. 정말 해 주실겁니까? '사'주는 게 아니라 '해'주는 것이라는 말이 좀 의아했지만, 생일을 당한 사람의 마음이니 들어나 보자 싶어 끄덕. 했던 것이 이렇게 화근이 될 줄이야. 




- 데이트 하고 싶습니다. 
- 데이트? 
- 네. 맛있는 밥먹고, 영화보고, 까페에 가는, 그런 데이트요. 




자주는 아니었지만 둘이 좋은 레스토랑에서 와인 한 잔 곁들인 식사를 한 적은 여러번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영화관은 시간도 그렇고, 사람도 너무 많은지라 집에서 영화채널이나 DVD로 대신 했었고, 까페는, 서로의 집에 좋은 커피머신 -정확히는 해준은 이미 가지고 있었고, 백기가 해준을 위해 자신의 집에도 구비해둔-이 있는데 썩히면 아깝다는 마음에 그리 했었다. 거의 매 번 함께 있을때면 이런저런 이유로 밖 보다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해준은 문제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혹시 백기는 아니었나 싶어 괜시리 마음 한 켠에 미안함이 자리했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데이트를, 혹시 동성 커플이라서 기피하고 있다고 여겼을까. 사실 해준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든, 혹은 누구를 만나도 집을 더 선호했을 것이었는데. 그런 생각에 대답을 망설이자 제게서 부정의 대답이 흘러나올 것이라 예상했는지 이내 합, 입이 다물어지는 백기를 보고 해준이 얼른, 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 그럽시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백기 씨 원하는대로 해요 
- 정말요? 제가 원하는대로요? 


재차 확인하는 모양새가 뭐가 더 있나 싶어 살짝 망설여지긴 했지만 그저 너무 신이 나서 그러려니 했었다. 저렇게 계속 신나할 일이라면 뭐가 됐든 다 맞춰주고도 싶었다. 끄덕, 긍정의 표현이 해준에게서 나오자 얼른 야근을 끝내기 위해 다시 모니터에 집중하면서도 두근거리는 백기의 심장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뭐야?" 



씨익, 그 가지런한 치아를 다 드러내놓고 웃는 백기가 들고 있던 옷을 본 해준이, 마치 못볼 것을 본냥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백기가 어깨를 으쓱했다. 



"대리님 옷이요. 제 마음대로 준비해도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 마음대로가, 그 마음대로였어? 금요일 밤 퇴근 후, 백기의 생일 전야제랍시고 미리 예약해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자연스레 거리가 좀 더 가까웠던 백기의 집으로 향했다. 물론, 뜨거운 밤도 보냈다. 제가 밤새 괴롭힌 탓인지 해가 중천에 떠서도 꼬물꼬물 해준의 품 속으로 파고드는 백기를 보며 이렇게 하루종일 안고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데이트 안가? 넌지시 물어본 말에 아, 맞다.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준비를 마치는 백기를 보며 왠지 슬몃 불안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뭔가 엄청난 걸 준비하지 않고서야 저렇게 좋아할 수가 없는 표정이었으니까. 





"아, 아무리 그래도" 
".. 뭐든 해주신다면서요" 


역시, 좀 무리십니까? 금세 풀이 죽어 의기소침해지는 백기의 표정을 보자 안그래도 곤란한 듯 난감해하던 해준의 표정이 한층 더 난감해졌다. 아니, 그게 아니고.., 급한 마음에 내뱉은 아니라는 말에 다시 그럼, 하며 환해지는 백기의 얼굴을 보자니, 이젠 안 들어줄 수도 없겠다 싶다. 


"다른 색은, 없..죠?" 



하아, 핑크라니. 핑크. 핑크라니. 마지못해 백기에게서 옷을 받아들면서 한번 더 확인해보지만, 네. 이것뿐인데요? 해맑은 그의 대답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또 피식 웃음이 나는 해준이었다. 















"우와. 대리님. 정말 잘 어울리세요" 



Two thumbs up. 망설임 없이 올라가는 백기의 엄지 손가락을 보던 해준이 곧 거울 보기를 포기했다. 평소엔 잘 입지도 않는 청바지에 군모까지 썼으니, 뭐 지금 상태야 사실 안봐도 짐작이 갈 법하다. 청바지 마지막으로 입었던 때가 언제였지. 대학교 졸업식에 뒷풀이 갔을 때가 마지막이었나. 어쨌든 족히 5년은 넘게 겪지 않은 생소한 감촉에 자꾸 옷을 매만지게 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제 눈앞의 백기는 아주 신이 났다. 





"장백기씨는 왜이렇게 노멀(normal) 합니까" 



사실 백기도 똑같이 청바지를 입었고, 다른점이 있다면 모자를 쓰지 않았다는 점과 후드티가 아닌 맨투맨 티셔츠를 입었다는 점 뿐이었지만. 해준보다는 상대적으로 회색이라는 무난한 색상 선택에 괜시리 불퉁한 투로 불만을 표시하자 백기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 사실, 같은 것을 입고 싶었는데요. 그러면 너무 티가 나니까. 그래도, 같은 브랜드입니다." 


싫으..시면 바꿔 입으실래요? 하면서 또 제 눈치를 보는 그의 모습이 귀엽긴 했지만 어딘가 마음이 쓰인다. 작게 큼, 헛기침을 한 해준이 덥석 백기의 손을 잡았다. 뭐, 갑시다. 뭐부터 하고 싶다구요? 영화? 그러자 또 신이 나서 총총, 영화는 대리님 보고 싶은거 봐요. 전 영화라면 다 좋습니다. 하는 백기는 정말이지 너무 사랑스러워서. 엘리베이터에 오르기 전, 쪼옥, 기어이 해준은 백기의 입술에 짧게 키스하고야 말았다. 











"영화 정말 잘 만든 것 같아요. 노래도 그렇고, 그 서브 남주...," 



토요일 오후 두시에는 모든 커플은 서울에 있는 까페로 모입니다. 라는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닐진데, 정말이지 이곳 저곳에는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나마 한적한 곳에 백기와 자리를 잡고 앉아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키고 나서야 해준은 한숨을 돌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 쪽으로는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고 초집중하던 백기는, 끝나고 나서도 그 여운이 가시질 않는지 내용에 대해, 그리고 연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쉴새없이 움직이는 입술에 당장이라도 뽀뽀를 퍼붓고 싶은 마음이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아 꾸욱 참은 해준이, 몇 마디 리액션을 보여주자 또 입술이 한시도 쉬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해가 바뀌고 생일이 되었으니 이제 백기도 완연한 20대 후반인데. 저와 있을때야 당연히 어려보이는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셔츠와 넥타이를 벗어버린, 눈 앞의 백기는 그야말로 스무살이라고 해도, 아니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동안외모다. 왜그리 기를 쓰고 나이들어 보이는 스타일링을 하고, 어른인 척, 성숙한 척 하려 드는지 처음엔 이해가 안갔었는데. 그렇지 않으면 이 힘든 사회에서 무시당할 수도 있겠다는 철저한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앞에선 아이였던 사람. 제 앞에선, 이 강해준 앞에선 그 힘든 가면을 잠시 뒤에 두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완벽히 순수한 청년이 되는 백기의 그런 모습이, 해준은 새삼 고맙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해서 계속 바라보자, 백기가 슬며시 휴대폰을 꺼내든다. 그리고 해준에게로 향해진 카메라를 보자, 곧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된 해준이 손을 들어 찍지 말라는 시늉을 했다. 




"따악, 한장만요. 한장도 안돼요?" 
"....안돼에... 싫어." 


이 차림으로 무슨. 물론 그 사진은 백기만 갖고 있을테지만, 그래도 어쩐지 이렇게는 좀 부끄러워서 재차 안된다고 거부해보는데, 그럴수록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눈빛으로 네? 대리니임, 해오는 백기에게는 정말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야말로 백기에게 백기를 든 해준이, 마지막 저항인듯 내뱉었다. 




"해준씨" 
"네?" 
"해준씨라고 부르면" 
"아.." 


연인이 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고쳐지지가 않는지, 둘만 있을때에도 대리님, 심지어 사랑을 나누다가도 불쑥 튀어 나오는 대리님,인지라 해준씨라는 호칭을 어려워하는 줄만 알고 건넨 말인데, 의외로 백기의 표정이 평안하다. 마치 난 또 뭐라고, 그걸 원해요? 하는 표정이라 오히려 당혹감이 서린건 해준 쪽이었다. 환하게 웃어보인 백기는, 곧, 



"해준씨이~" 



헉. 저렇게까지 예뻤었나, 내 이름이? 순식간에 튀어나온 호칭에 해준이 멍하게 있자, 백기가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 


"해준씨이, 여기 좀 봐봐요" 


정확히는, 카메라를 보라는 말이었지만, 해준은 그렇게 말하는 백기와 눈을 마주치곤, 엇갈리게 겹쳐 잡은 손가락을 들어 수줍게 브이,도 해주었다. 그 모습에, 정말 무슨 생일 선물이라도 받은 냥 반짝거리는 백기가 예뻤다. 그래서, 



쪽, 


ㅡ!! 



살짝 몸을 들어, 백기의 입술을 제 입술로 가볍게 눌렀다. 대, 대리님, 사람들이.., 당황했는지 어느새 돌아와버린 호칭은 제대로 나오지도 못한채였지만 상관없었다. 예쁜걸 예쁘다 해주는데, 뭐. 한껏 여유를 부렸지만 혹시나 싶어 주변을 스윽 스캔해보니 사람들이 한차례 빠져 나가고 난 뒤라서인지 아무도 둘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해도 대낮에, 회사도 집도 아닌 공간에서 벌인 애정행각에, 백기는 이미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큭, 부드럽게 한 손으로 백기의 뺨을 감싼 해준이 속삭였다. 이제 그만, 집으로 갈까? 












"하아, 하, 대리,님" 
"말고," 
"흐, 해준씨-"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거칠게 몰아붙이는 해준 덕에 숨 쉴 틈도 잊은 백기가 어깨를 꼬옥 쥐었다. 해준이 입은 핑크색의 후드티가 백기의 손에서 나온 땀으로 색이 살짝 짙어질때쯤, 빈 틈 없이 맞물렸던 두 입술의 약간의 틈이 벌어졌다. 좀 천천히요, 라고 하고 싶어 부른 호칭에, 해준이 또 다시 부러 더 깊게 입술을 부딪혀왔다. 하아, 해준씨. 백기의 팔이 거의 해준에게 매달리듯 엉겨붙어오자, 해준이 위치를 더듬어 백기를 침대에 뉘인다. 



큭, 


곧바로 그의 위로 올라 백기의 이곳저곳에 붉은 꽃을 수 놓던 해준이, 답답한 듯 훌렁 벗어버린 핑크색의 후드티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본 백기가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를 놓칠리 없던 해준이, 가볍게 턱을 쥐어 다시 시선을 맞춰오면서 백기의 입술을, 목 언저리를, 그리고 솟아오른 돌기를 머금었다. 





"핑크색 후드티보단, 사실 아무것도 안 입은게 낫지 않아?" 
"하으, 몰,라요, 흐읏," 


그야 사실이지만, 절대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랬다간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도 제 허리는 남아나지 않을거란걸 백기는 잘 알고 있었다. 대신 허리를 들어 그의 움직임에 고스란히 응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해준의 입꼬리가 한없이 올라갔다. 




하윽, 


그렇게 한동안, 오로지 두 사람의 달뜬 신음과 젖은 소리가 계속 되었다. 













챙- 



두 개의 샴페인 잔이 경쾌한 음을 내며 부딪히는 소리가 침실을 울렸다. 침대 헤드에 기대 앉은 해준, 그런 해준에게 안기듯 기댄 백기의 손에는, 순전히 백기의 취향을 따라 지난 밤에 사둔 딸기 생크림 케이크 한 조각이 곱게 잘린 채 놓여져 있었다. 한 입 먹을래요? 해준에게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라는 고갯짓이지만, 뭐가 그리 좋은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백기는 포크질을 멈추지 않았다. 해준은 대신 백기의 입가에 묻은 생크림을 가볍게 핥아 안주로 삼았다. 



"유혹하는 스킬이 늘었네, 장백기" 
"무슨.., 묻은겁니다. 그냥" 


발끈하는 백기의 코를 톡, 치자 불퉁하던 입술이 이내 호선을 그렸다. 아무리 봐도 내년에 서른이 된다고는 믿을 수 없는 얼굴이다. 목소리도 어찌나 맑은지 변성기를 지난게 맞나 싶.., 아, 목소리. 










"노래 해 줘" 
"에?" 


뜬금없이 노래라니. 게다가 제 생일인데 오히려 해준이 불러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꽤나 간곡한 해준의 그윽한 눈빛에 백기가 짧게 미소를 짓고는 큼,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른 봄날에 꿈처럼 다가온 
그대 영원할 줄 알았네
 


영화 보고 나서도 계속 흥얼거리던 노래는 이것이었나보다. 익숙한 멜로디지만 가사가 예쁘다며 한참을 곱씹더니 결국 이렇게 예쁘고 고운 목소리를 만나 제게 들려주다니. 그 마음도 고맙고, 백기도 예쁘고. 해준은 제대로 감상하려는 듯 눈을 감았다. 



그 여름 바닷가 행복했던 모래성 
파도에 실려가 버렸네 

떠나가도 좋소 나를 잊어도 좋소 
내 마음 언제나 하나 뿐
 





"잠깐만" 
"네?" 


갑자기 노래를 중단시키는 해준이 의아해 그를 쳐다보자, 백기에게 시선을 맞추고, 또 몸을 기울여 코 끝으로 다가온 해준이, 다시 불러봐. 그 부분. 의중을 알 수는 없지만, 간질거리는 그 숨소리가 좋아 작게 다시 노래를 시작하자, 해준이 가사 중간 중간에 백기에게 입을 맞춰왔다. 마치, 그 부분은 듣지 않겠다는 듯. 




"으읍,...나... 좋소, 나를 흐읍,... 좋소..." 
"내 마음 언제나 하나뿐" 



아. 떠난다는, 잊는다는 가사가 싫었구나. 그제야 해준의 의도를 파악한 백기가 웃어보이자, 해준이 만족한다는 듯 입술을 떼며 계속하라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못말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백기가 마지막 소절을 이었다. 




"아직 그댈 사랑하오, 영원히, 사랑하오" 



백기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해준에게 잡힌 백기의 왼쪽 손 약지에 차가운 느낌이 닿았다. 




"...해준 씨," 

놀라 눈이 동그래진 백기를 뒤로 한 채, 해준이 귓가에 속삭였다. 내 꺼라는, 족쇄. 








"생일 축하한다, 백기야. 나도, 영원히 사랑해" 





다시 한 번 맞물린 두 사람의 입술 새로, 그 어느때보다 달콤한 노랫소리가 이어졌다. 














별건 없지만, 짤이 있어 접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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