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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단편

[기준백기] 달라지는 건 없어

*캐붕주의, 나이차 연관없음 주의* 
*킬미힐미 8화 대사 있음 주의* 







[킬미힐미X미생/기준백기]

달라지는 건 없어



Written by shp













화려한 네온사인과 번쩍이는 불빛이 마치 라스베가스의 그것과 닮은 서울의 한 도로 위, 기준의 차가 그야말로 질주를 하고 있었다. 실내에서도 후 하고 입김을 내 뿜으면 하얗게 김이 서릴 정도로 추운 날씨에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갑갑하게 조여오는 넥타이를 풀러내며 짜증나는 듯 거칠게 창문도 조금 열어버린다. 



- 긴 말 필요 없어. 약혼 해. 약혼으로 이 루머 없애. 

- 오빠는 프로포즈를 이딴 식으로 하니? 

- 내일 홍보실에서 기사 나갈거야. 그런 줄 알아. 

- 주총 전에는 약혼 안 해. 오빠가 하자 그럼 난 그냥 하는 사람이야? 무슨 자신감이야 대체. 내 약혼 날짜는 내가 정해. 




젠장할! 조금 전 채연과의 대화를 곱씹어보던 기준에게서 낮은 욕설이 튀어 나왔다. 예쁘다, 예쁘다 봐줬더니 니가 지금 기어오르지. 누구보다 성대해야 하고 행복만이 가득해야 할 내 약혼식에 흙탕물 튀겨 놓은건 너라고, 한채연.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 바람으로도, 풀어놓은 넥타이로도 해소되지 않은 갈증이, 갑갑함이 기준을 옥죄여온다. 블루투스를 귀에 꽂은 채, 익숙한 손놀림으로 전화번호를 찾아내리던 기준의 손끝이 어느 한사람의 이름 앞에서 살짝 망설이다 이내 빠르게 통화버튼을 눌러버린다. 몇 번의 수신음 끝에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기준도, 상대도 말이 없이 몇 초간이 흘렀을까. 







"여보세요, 장백기. 전화를 받았으면 말을 해야 할 것 아냐" 



절대 곱게 나가지 않은 그 어투에 또 슬금 짜증이 밀려와 저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이 더 깊게 새겨지는 것이 느껴지는데 전화기 너머의 상대는 여전히 덤덤한 채 아무런 말이 없다. 또 한번의 여보세요 끝에 겨우 확인한 상대의 음성 한 자락. 무슨, 일이십니까. 



"어디야" 

-.......... 

"어디냐고, 장백기. 집이야? 기다려, 나 곧 ㄱ, 

-아뇨. 오지마세요. 회사입니다. 야근이에요. 

"대충 하고 와. 집에서 기다릴게" 

-차기준 사장님! 
  



다급하게 저를 불러오는 백기의 외침이 들렸지만 그보다 빠르게 종료 버튼을 눌러버리고 블루투스도 귀에서 빼 버렸다. 시끄러. 오늘은 내가 니가 좀 필요하다잖아, 장백기. 한참을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속력만 올리던 기준의 차는, 어느새 빠르게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 나 채연이랑 만나기로 했어 



마치 나 오늘 밥 먹었어, 하는 투였다. 그렇게 무덤덤히 꺼내 놓은 기준의 말에 백기도 그저 덤덤히, 아니 덤덤한 척 네, 할 뿐이었다. 




처음 시작부터 끝을 알았던 만남이었다. 잘 알고 지내던 선배와의 술자리에서 우연한 기회로 기준을 만나게 되었고 많은 것을 말하는 듯 했던 기준의 깊은 눈빛을 애써 거절하지 않았던 그 순간, 그리고 제가 먼저 그 손가락 마디마디에 깍지를 껴 그를 잡은 순간부터. 백기는 알고 있었다. 저는 평생, 차기준의 옆에 당당하게 설 수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기준이라는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기준은 승진家의 사람이었고, 야망이 있는 남자였다. 그런 그에게, 그가 3년이나 사귄 연인이 있으며, 그것이 남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었다. 어차피 자신의 결혼은 사랑과는 무관한 일임을 알았다. 그래서 누굴 만나도 상관 없었다. 백기와의 관계가 지속 돼 여자에게 관심이 없어질 무렵, 부모님에게서 결혼 얘기가 나왔고 그 때까지도 그 도도함 속에 저를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던 채연에게 키스를 했다. 채연의 집안과 그녀가 지닌 그 야릇한 오만함이 자신의 미래에 썩 나쁘지 않은 투자라는 철저한 계산 아래 행해진 일이었다. 채연은 그냥, 차기준의 여자라는 타이틀 아래 꽤 괜찮은 연극을 함께 진행해 주면 되었다. 기준은 그래서 채연을 택했다. 그리고 그 날 밤도, 기준은 백기와 함께였다. 










덜컥- 


야근이라 했으니 당연히 어두운 방안이 저를 맞이해 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환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그 광경에 기준이 살풋 눈을 찡그렸다. 정장 차림이 아닌 편한 옷 차림의 백기가 감정 없는 시선을 맞춰오며 느리게 걸어 나왔다. 허, 거짓말을 했다 이거지, 장백기. 



"야근이라며" 

"........" 



백기에게선 대답이 없었지만 그런건 안중에도 없는 기준이 터벅터벅 냉장고가 있는 부엌으로 가 익숙하게 맥주를 꺼내 캔을 땄다. 저녁 먹었어? 냉장고가 왜 이렇게 비었냐 등의 실없는 소리를 내뱉는 기준을 가만히 시선으로 따라가던 백기가 그제야 힘겹게 운을 뗀다. 가세요, 




"뭐 좀 시킬래?" 

"... 사장님," 

"넌 우리 회사 직원도 아닌데 뭘 또 꼬박꼬박 사장님이야" 

"가시라구요" 

"왜 이렇게 앙탈이야, 오늘. 숨도 안돌리고 바로 해? 왜, 기다렸어?" 

"차기준!" 




조소가 섞인 그 비아냥에 더는 참을 수 없는지 소리를 지른 백기의 꽉 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까지 한다. 순식간에 차오른 눈물까지는 기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고개를 푹 숙여버리는데, 탁, 맥주캔이 유리 위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저벅저벅 그에게 다가오는 기준의 발걸음이 들려온다. 큭, 백기의 턱을 거칠게 잡아 그와 억지로 눈을 맞춰오는 기준의 표정엔, 여전히 비웃음이 서려 있다. 까불지마, 장백기. 나한테 까부는 건 오늘 한채연 하나면 족해, 넌 아냐. 




"기준..., 읍..!" 


배려 따위는 없는 입맞춤이었다. 지독한 소유욕만이 남은 기준의 입술이 거침없이 백기의 안으로 혀를 밀어 들어왔다. 순식간에 입 안 가득 탐해진 그 끈적함에 숨이 턱 하고 막힌 백기가 기준의 어깨를 밀어냈지만 그런다고 밀려날 기준이 아니었다. 그럴수록 더 깊게, 숨 한 번 쉬는 여유 따위도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듯 농밀하게 혀를 놀려댔다. 으읍, 흡, 입술이 맞닿는 야릇한 숨의 사이사이로 백기가 참아내지 못한 버거움이 새어 나왔다. 점점 아득해지는 정신에 백기의 몸이 자꾸 뒤로 기우는 것이 못마땅한 기준은 그 와중에도 한 손으로 단단히 백기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의 혀가 맞물리는 소리, 젖은 소리만이 오고갈 때 쯤, 갈 곳을 잃고 정착하지 못하던 백기의 두 팔이, 조심스레 기준의 어깨에, 목덜미에 닿았다. 그리고 그제야, 한쪽이 지긋이 올라간 기준의 입술이 천천히 백기를 놓아주었다. 



"하아, 하아," 

"나 진짜 가?" 

"........" 



정말 내가 가도 괜찮겠냐 물어오는 기준은 단 한 순간도 백기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는 느릿느릿 제 목에 겨우 매어진 넥타이도 풀어내고, 단추도 하나씩 툭, 툭, 스스로 끌러 내린다. 상처받은 백기의 눈망울에는 아직 숨을 고르느라 힘겨워서, 그리고 아파서 맺혀버린 물방울이 방울방울 매달리다 끝내 주륵 흘러내리지만 개의치 않았다. 네가 자초한 일이잖아, 장백기. 타오를 듯 뜨거워진 기준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어지지 못하는 대답에 기준이 다시 한 번 그를 부른다. 




"장백기, 나 가?" 

".... 네. 가세요." 

"흐음..., 그래?" 

"여기 오시면 안되는거잖아요, 차기준씨" 



멋대로 왔다가, 멋대로 가잖아, 당신은. 언제나 그랬잖아. 차마 내뱉지 못한 백기의 원망이 오롯이 담긴 한마디가 냉정하게 튀어나와 그대로 기준에게 향했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그 화살을 그대로 맞은 듯 아파한 건 기준이 아니라 백기였다. 진짜 가냐고 재차 확인하는 기준에게선 그 어떤 마음도 읽어낼 수 없었다. 제 셔츠 단추를 다 풀러낸 그가, 다시 한 번 백기 가까이로 몸을 기울여 온다. 그리고는 피식 웃어보이며 백기의 트레이닝 팬츠를 쉽게 벗겨내고는 두둑해진 그의 앞섬에 손을 대었다. 귓가에 바람을 불어넣듯이 가까이 다가온 기준의 입술이 그렇게 또 한번 아픈 말들을 쏟아낸다. 넌 어떨지 몰라도, 네 건 오늘 내가 필요한 모양이야. 



"하지, 마요, 흑," 
  


망부석처럼 몸이 굳은 백기가 겨우 입술만 움직이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기준의 손길은 점점 대담해지고 뜨거워졌다. 윽, 기준씨, 제발, 쳐올려지는 기준의 손짓에 자꾸 다리에 힘이 풀려가는 백기가 다리 끝을 더듬어 쇼파에 주저 앉자 망설임 없이 그 옆에 자리한 기준이 다시 입술을 부딪혀온다. 흡, 읍, 기준씨, 형, 그의 가슴팍을 퍽퍽 쳐대며 울부짖는 백기의 옅은 신음이 애처롭기까지한데도 기준의 손짓은, 입술은 멈출줄을 몰랐다. 시끄러, 하아, 가만있어, 장백기. 




"아윽, 하악, 기, 기준씨," 


울음이 쾌락으로, 원망이 흥분으로 번져 결국 불꽃이 터지듯이 펑, 그렇게 백기가 기준의 손에 의해 모든 것을 토해내고나서야 한참을 밀어붙이던 기준의 몸이 잠시 백기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급히 제 버클을 끌러 후두둑 옷가지를 다 벗겨내는 기준의 손이 무서우리만큼 빠르고 정확했다. 이미 반 쯤은 제 정신이 아닌 듯 보이는 백기의 눈길도 아랑곳 않던 기준은 그대로 백기의 위로 올라간다. 뜨거워질대로 뜨거워진 두 사람의 몸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물리고, 쇼파 가죽과 맨살이 부딪히는 소음과 백기의 물기어린 신음만이 끊임없이 지속 되었다. 백기의 눈에선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 그러다가 약혼도, 결혼도 하게 될거야, 채연이랑. 


어느 날 밤, 뜨겁게 펼쳐진 정사 이후, 아직도 기준의 밑에서 숨을 고르던 백기에게 그는 무미건조하게 툭 내뱉었었다. 쳐올려진 몸짓 만큼의 배가 되어 쿵 떨어지는 심장 소리가 제 귀에도 생생했지만 기준은 스르륵 제 몸에서 빠져 나와 그 옆자리에 자연스레 팔베개를 하고 몸을 감싸 오면서도 기어이 말을 끝맺었다. 



- 달라지는 건 없어. 



그러면서도 절정으로 치닫은 쾌락에 신음하느라 붉게 부어오른 제 눈가를 매만져주던 손끝은 다정했다. 그래서, 그 섬세한 손이 너무도 다정해서. 뭐가 달라지는게 없어요,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를 향해서만 뛰는 심장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냥, 믿어야 했다. 달라지는 건 없을거라는 그의 말을. 그가 찾아오지 않는 밤은 이미 익숙했기에, 차기준이 제가 아닌 그의 약혼녀에게 입을 맞추고, 몸을 탐하고, 그러다 아침이 오면 한 침대에서 눈을 뜨고 함께 모닝 커피를 내려마시는 둘의 모습을 그 상상에 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처음부터, 눈물은 차기준이 아니라 장백기, 자신의 몫이었으니까. 



분노가 치밀어오를 때, 누군가에게도 꺼내 놓지 못할 내면에 잠재된 열등감이 기어이 한 끝 정도는 비집고 올라올 때. 그가 제 발 밑의 강아지라 여기던 것들이 주제를 모르고 기어오른다고 생각이 될 때. 차기준은 장백기를 찾았고 지쳐 잠이 들 때까지 그를 안았다. 상처받아 갈기갈기 찢어지는 장백기를, 제가 주는 고통에, 그 아득한 희열에 덜덜 떨리는 팔로 저를 잡아오는 장백기를 보면서 기준은 웃었다. 그래, 넌 그래야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끝까지 내 밑에서만 울어야지, 안 그래 장백기? 











"아윽, 흑, 그만, 아파, 아파, 형," 

"하아, 씹, 아, 장백기, 너 오늘 말이 너무 많다" 

"으흑, 제발, 제발 그만," 



기준의 넘치는 야망 앞에, 그의 부드러운 손길은 점점 그 빛을 잃어갔다. 남자끼리의 결합에 있어 으레 해주어야 하는 일도 기준은 하지 않았다. 준비 없이 쳐올려진 백기의 몸이 감당해 낼 수 없다 소리치고 애원해봐도 기준은 제멋대로였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고통에 바스라지는 백기를, 기준은 훨씬 더 많이 원하는 것 같았다. 빨라지는 그의 허릿짓 만큼이나 아픈데도, 백기는 순간 순간 그가 제 안에 있음에 더 없는 흥분을 느꼈다. 그래서 항상, 그만해달라 우는 백기의 말은, 기준의 입술이 삼켜버렸고, 더는 꺼낼 수 없게 만들었다. 







허릿께가 저릿하게 아파오는 고통에 쉬이 잠들 수 없던 백기의 눈이 결국 스르르 떠지고야 말았다. 한 팔에 저를 가두고 규칙적인 숨을 내뱉으며 잠든 기준의 얼굴은 평안하다 못해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예쁘게 감긴 눈, 깎아지른듯한 콧날, 다부진 입술까지 찬찬히 훑어보던 백기의 몸이 살짝 떨려온다. 왜 이 사람에게서 벗어나기가 이리도 힘이 든건지. 새삼 차기준의 품에 안긴 제 자신의 모습이 가증스러워 풋 하고 어이없는 조소가 흘러나왔다. 이제 그만 와요, 그가 없이 잠드는 밤 수 백번 아니 수 천번은 연습했던 한마디가 결국은 오늘도 소리가 되어 나오지는 못했다. 현관 비밀번호를 바꿀까 말까 매번 고민하던 지난날의 자신이 떠오른다. 그 몇자리 숫자가 뭐라고. 그래, 결국 내 탓이다, 이 모든 건.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건, 내 스스로 나를 옭아 맸기 때문이다. 





"안 자?" 


미동 하나 없이 입술만 움직인 기준이 나직하게 물어온다. 차마 깼어요? 다정하게 물을 용기는 나지 않아 이번에도 백기의 입술은 꾹 닫힌 채다. 



"내일 기사 나가" 



조금 잠겨버린 기준의 목소리가 또 백기의 심장을 이리저리 후벼 판다. 무슨 기사요, 되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말. 잠시나마 그와 몸을 섞고 그에게 사랑을 받았다 여기며 스스로 말도 안되는 행복에 저를 가둘라치면 기준은 항상 백기에게 이렇게 아픈 말을 전해왔었다. 어차피 내일이면 온 인터넷과 신문 그리고 경제 매거진이 도배가 될 텐데 이렇게라도 미리 알려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건가 싶어 그에게서 가두어진 몸을 살짝 틀었다. 끝내 참아내지 못한 눈물 한줄기가 흘러나와 기준의 팔 끝에도 물기가 닿는다. 그러자 전에 없던 반동에 몸이 흔들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기준이 나머지 한 팔을 들어 더욱 꽈악 백기를 안고는, 토닥토닥. 아이를 얼르듯 그렇게 백기의 등을 토닥인다. 





"달라지는 건 없어" 



여전히 한번의 눈 깜빡임이 없는 기준은, 그 때에도 오늘도 같은 말 뿐이다. 달라지는 건 없어, 장백기. 라고. 그 한마디에, 품에 안긴 백기의 흐느낌이 점점 커진다. 기준의 맨 살에도 고스란히 닿아오는 그 물기는 잦아들 줄을 모르고 축축히 젖어들 뿐이었다. 




















ㅋㅁㅎㅁ 방영 당시 썼던 글을 올립니다.

부족한 필력에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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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애용(?) 해주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