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생/단편

[석율그래] 장미와 고등어

레이나님(@raina1015) 썰 기반입니다.

썰은 즐거웠는데 글은 왜이리 무겁죠ㅠ_ㅠ

로즈데이 다 끝나서 스승의 날 되었는데 이제 와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제가 있는 곳은 아직 5월 14일이니까 봐주세요^^

















- 장그래! 오늘 저녁에 뭐 할 거야?

" 뭐 하긴요. 집에 가서 잘겁니다. 나 야근이 며칠째인지 기억도 안나요 "

- 헐, 장그래. 오늘 같은 날 나를 안 만나겠다는거야?

" 오늘이 무슨 날인데 그럽니까. 백 단위의 기념일이 벌써 돌아왔어요? "

- 오늘 5월 14일이잖아! 로즈데이!

" 하아음, 그건 또 뭐에요. 무슨 놈의 데이가 그렇게도 많답니까 "

- 헐, 장그래. 그래서 오늘 나 안 만나려고? 데이트 안하려고?

" 으.., 석율 씨. 나 오늘 진짜 피곤한데요. 내일 만나면 안될까? "

- 그래? 알았어어. 퇴근할 때 전화해? 

" 네 "



에휴, 안봐도 비디오다. 분명 반쯤은 쳐진 눈을 하고 입술을 살짝 삐죽이며 마지못해 전화를 끊었을 석율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그래였다. 사탕을 빼앗긴 아이같은 그 목소리에, 그래는 저도 모르게 슬몃 올라가는 입꼬리를 느꼈다. 덕분에 여기저기 좀 쉬어달라며 아우성을 치던 몸 구석구석에도 잠시나마 따뜻한 기운이 맴돌았다. 





장미고등어

written by shp







사실 그래는 수 일째 집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회사에 여분으로 구비해 둔 옷을 갈아 입으며 거의 회사에서 지내다시피 했다. 이제는 어엿한 상사맨이 되고도 남았지만, 딱 그만큼 이상 네트워크는 정신 없이 바빴다. 워낙 작게 시작했던 회사다 보니,  오늘이 5월하고도 14일이 되었다는 사실은, 방금 전 석율이 일깨워주지 않았다며 하루 내내 모르고 지냈을 일이었다. 로즈데이라니. 이놈의 데이는 많기도 하다. 아, 아까 그래서 사우나 갔다 오는 길에 그렇게 꽃을 든 사람들이 많이 보였던 건가. 새삼 연인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던 것이 생각나 석율에게 미안해진 그래가 잠시 휴대폰을 바라봤다.



" 어차피 밥은 먹어야 하는건데, 그냥 데이트 하자고 할 걸 그랬나... "



사귄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여전히 무언가 표현하는 것에는 익숙치가 않았다.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입 밖으로 꺼내어 표현 하는 것이 그래에게는 이렇게 밤낮 없이 이어지는 산더미같은 일 보다도 훨씬 어려운 과제 중에 하나였다. 그래야 좋아해, 라던 가감 없이 솔직한 석율의 고백에 나두요, 라고 답해 주는 일 역시 너무 오래 걸려 본의 아니게 그의 속을 새카맣게 태웠더랬다. 하지만 절대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주면서도, 늘 투명한 유리처럼 제 속을 다 보여주는 석율의 진심에 그래는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 이 분홍색 장미도 같이 해서 만들어주세요. 예쁘게 만들어주세요~ "

" 오늘 장미 엄청 팔렸는데. 한 번에 두 다발 사가는 손님은 손님이 처음이네요 "

" 하하. 그래요? 저 양다리 같은 건 아닙니다, 사장님 "



석율의 너스레에 예쁜 꽃다발을 만들어 내미는 꽃집 사장님이 환하게 웃으셨다. 그의 마음을 대변하듯 붉게 물든 장미와, 입술이 전해주는 말보다 훨씬 더 솔직한 그래의 귀끝을 닮은 수줍은 분홍빛의 장미가 함께 어우러진 풍성한 장미 꽃다발 두개를, 얼굴이 다 가려질 정도로 크게 안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석율의 발걸음이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길거리를 지나는 그 어떤 이보다 훨씬 큰 꽃다발에 갯수까지 두 배가 되니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석율에게로 향했다. 주위에서 어머, 저사람 여자친구 두 명인건가 라던가 와, 여자친구 좋겠다. 꽃다발 엄청 예뻐 하는 수근거림이 들려왔지만 이런 시선에 아랑곳 않은 석율은 그저 제 품 만큼 큰 장미 꽃다발을 한아름 들고 조금이라도 빨리 목적지에 닿으려 걸음을 재촉했다. 마음 같아서는 여자 친구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남자 친구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것을 꾹 참은채로.









" 어디야? "

- 하음, 버스 탔어요. 석율씨는 어디에요, 왜 이렇게 숨이 차? 

" 응? 허억, 응, 아니야. 나 지금, 허우, 뭐 좀 들고 있어서 "

- 아. 저기, 석율 씨.

" 으응? 응, 왜 그래야. 후우, "

- 미안해요. 오늘 데이트 못 해서. 알잖아. 우리 요즘 좀 바빠서요.

" 응? 에이 아냐. 곧 볼ㄱ, "

- 응? 뭐라구요?

" 아니! 아냐. 얼른, 얼른 퇴근 해 그래야. 끊을게! "



어휴. 들킬 뻔 했네. 잽싸게 블루투스 이어폰을 빼 버린 석율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다시 한 칸 한 칸 계단을 올랐다. 여름의 기운이 한껏 올라와 금세 이마에 송글 송글 땀이 맺혔지만 석율은 그마저도 기뻤다. 오늘 뿐만이 아니라 늘 이 계단을 오를때면, 그래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생각에 벅차 오르기까지 했었다. 계단 한 칸에 장그래는 무슨 생각을 담을까. 끝없이 오르고, 또 끝없이 내려 오면서 그는 어떤 마음으로 제게 닿아 왔을까 싶어 늘 힘든 줄을 몰랐었다. 무거운 꽃다발만큼이나 깊은 장미의 향이 석율이 지나가는 계단 곳곳에 향긋함을 선사했다.




자, 그러니까 이제 이 모퉁이를 돌아 어머니, 저 왔어요! 하고 외치면...,



" 어어? "



꽃보다 환한 어머니가 반겨 주시면서 왠 꽃이냐고 소녀처럼 웃어주실 것이라 자신에 가득 차 있던 석율의 눈동자가 당혹감에 서려 이루 말할 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담장을 가득 메운 장미. 그 곳은 분명 장그래의 집이었으니까.









" 어이구. 돈도 많다. 하나도 아니고 뭘 둘 씩이나. 우리집 지천에 널린게 장미야. 몰랐어? "

" 예에..., "

" 그거 저 아래 꽃집이지? 가서 무르고, 고등어로 바꿔와라 석율아 "

" 아이, 어머니이- 아무리 그래도. 고등어는 지금 제가 가서 사올게요 "

" 바꿔 오래도? "



그 동안 제 고향집보다 훨씬 더 많이 드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래와는 여름이 다 지나서 사귀기 시작했으니, 이 빼곡한 가시 덩굴의 정체가 장미 꽃나무 일줄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두 손 무겁게, 숨 가쁘도록 큰 꽃다발 두 개를 품에 가득 안고 계단을 오르면서 상상한 건 절대, 이런 그림이 아니었다. 석율이 가져 온 꽃다발을 흘끗 바라보시고는 예의 예쁜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두 번의 눈길도 주지 않으신 채 고등어로 바꿔 오라는 어머니를 보면서 석율은 마치 큰 잘못을 한 사람인냥 풀이 죽은 채 서 있었다. 그런 석율에게 호통 하시면서도 그래를 키울 때는 단 한번도 없었던 그의 철없는 모습에 정말 아들 자식 하나 더 생긴 것처럼 피식 웃음을 흘리시는 어머니 모습을, 고개를 푹 숙인 석율은 알 턱이 없었다.



" 어머니 그럼 하나만이라도.., "

" 그 돈이면 고등어가 몇 마리냐 "

" 네에... "

" 얼른 다녀와라 "

" 네 어머니. 소주도 한 병 사올게요 "

" 오냐 "



아깝기는 했지만, 어차피 둔다 한들 그래 역시 좋아하진 않을거라는 어머니 말에 석율은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장미꽃이란 원래, 필 때에만 예쁘지 지고 나면 꽃잎들이 마르고 떨어져 온통 마당을 검붉게 물들일 것이란 건 안봐도 훤한 일이었다. 수년간 그 청소를 오롯이 도맡았어야 했을 그래가, 아무리 석율이 전해준 것이라 해도 이 예쁜 꽃다발을 쓰레기로 여기지 않을리 없었다. 장그래는 어머니를 꼬옥 닮았으니까. 어머니가 싫어하는 건, 두번 생각할 것도 없이 장그래도 싫어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예쁜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부러워 했는데.



못내 아쉬운 마음 감추지 못하면서도 이러다 저녁 시간 다 지나겠다며 석율을 다시 한 번 재촉하는 어머니 목소리에 그가 다시 낑낑 대며 들고 왔던 꽃다발을 챙겨 현관을 나서는 순간,





" 응? 석율 씨? "

" 어! 장그래! "



아니나 다를까. 그 예쁜 쓰레기는 무엇이냐는 눈빛의 그래가,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석율을 바라보고 있었다.



" 아래 꽃집이죠? 이리 줘요. 같이 다녀옵시다 "

" 으응, "



꽃향기가 만발한 어느 봄 날, 한 팔에 가득 차는 꽃다발을 사이좋게 나눠 가진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한 발 한 발, 계단을 내려갔다.









" 아 배불러. 어머니 밥상은 늘 너무 과식하게 되는 것 같아 "

" 큭, 그러게 조금만 먹으라니까. 소화제 사다 줄까요? "

" 아니이. 좀 걷자 "



슬며시 제 손을 잡아 오는 석율을 보며 그래가 살짝 미소를 보였다. 서운하죠? 계획한 이벤트가 완전 수포로 돌아가서. 흘리듯 물어오는 그래의 말투에 미안함이 서려 있음을 느낀 석율이 부러 아니라며 그래의 머리를 헝클었다. 아냐. 아깝긴 했는데 서운하진 않았어. 어머니랑 네가 그 꽃다발 다 봤잖아. 그거면 됐지 뭐.



진심으로, 꽃다발 같은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애초에 목적도, 목표도 한 방향인 일이 아니었던가. 장그래가,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조금이나마 기뻐해주는 것. 석율에게는 그 보다 중한 것은 없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오늘도 한 상 잘 차려진, 고등어가 듬뿍 담긴 어머니 밥상 앞에 세 사람이 둘러 앉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저녁을 먹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렇게 그래의 손을 잡고 시선을 상관하지 않은 채 길을 걷고 있으니까. 석율은 행복했다. 




" 고마워요 "



뜬금없이 흘러나온 그래의 고백에, 석율이 가던 걸음을 멈춰 그래와 눈을 마주했다. 언제봐도 참 예쁘다, 장그래 눈은. 반짝이는 눈동자가 오롯이 자신을 향해 있어 한참을 바라보자 그래가 또 다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무슨 날마다 부러 더 챙겨주는 것, 알아요 "

" 아아.., 큭. 티났어? "



머쓱한 석율의 웃음이 따뜻했다. 어떻게 모를 수 있었을까. 석율은 기를 쓰고 기념일을 참 열심히도 챙기는 사람이었다. 어린 애들이 하는 연애도 아닌데, 백 단위의 기념일은 물론이거니와 온갖 14일들, 그리고 딱 봐도 상술이 가득한 각종 데이까지. 석율은 그 어떤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원래 이 사람 저 사람 챙기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고, 본인이 가진 마음이 워낙 따뜻한 사람이라 그런가보다고 치부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래는 알았다. 석율과는 다르게, 늘 흑과 백이 전부였던 자신의 지난 날들. 그리고 이제는 하얀 종이와 까만 글씨가 전부인, 무채색이 당연했던 장그래의 삶에 석율은 색깔을 입혀주고 싶어 했었다. 무슨 날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행해지는 소소한 이벤트들을 받는 그 순간만큼이라도, 흑과 백이 아닌, 색깔이 가득한 세상을 바라보라는 그 예쁜 마음을, 그래는 그렇게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 석율 씨 "

" 응? "



" 사랑해요 "



그러니 이제는 표현해야 할 때였다. 예쁜 무지개색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그 마음을, 그래 역시 내보여주고 싶었다. 아직 완전한 어둠이 찾아오지 않아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웅성거림이 조금씩 들려왔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파르르 떨리는 눈을 감은 그래가 조심히 석율의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그래야? 이제는 키스 정도야 아무렇지 않게 나눌 수 있는 사이였지만, 그래가 먼저 이렇게 다가온 것은 정말 처음이라 어리둥절함도 잠시. 톡톡 문을 두드리듯 옅게 떨리는 그래의 키스에 화답하듯 석율이 조금 더 깊게 그를 탐하기 시작했다. 붉게 물든 그래의 입술은 그 어떤 장미의 꽃잎보다도 부드러웠고, 말캉한 그의 혀는 세상 그 어떤 꽃 보다도 달콤하고 향기로웠다.





조심스레 석율의 목에 둘러 오는 하얗고 여린 그래의 두 팔에, 조금 전 꽃다발을 안았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행복했다.




그래, 장미꽃이 고등어가 된 것이 대수랴.

엔딩만 확실하면 된 것을.








붉게 물드는 것은, 비단 꽃 뿐만이 아니니까.

장그래, 안그래?   



















부족한 필력에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1) 댓글 ↘ 과 

2) 트위터/shp_joy

3) 에슼폼/shp_joy 


를 애용(?) 해주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