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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단편

[해준백기기준] 달라질거야 이젠 (달라지는건 없어 외전)

*약간의 캐붕주의 / 클리셰 범벅 주의* 
*해준→백기←기준* 
*본격 본편보다 더 긴 외전. 본편 읽고와주세요*

*본편 - CLICK 









[킬미힐미X미생/해준백기기준]

달라질거야 이젠

(
달라지는건 없어 외전)



Written by shp













"여~ 강해준, 너네 회사에서 나온 드라마 좋던데?" 
"뭐라는거야" 
"이거, 이거. ID엔터. 여기 사장이라는 사람이랑 너랑 또옥~같이 생겼잖아. 엉?" 
"실없는 소리 그만 해라. 영업3팀 안바쁘냐 요즘?" 
"야 나 향수" 
"재미없다" 



그 때까지도, 그 사람과 내가 닮았다는 사실은 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방송에서도 연예인 닮은꼴 찾기를 하면 줄줄이 열댓명은 세울 수 있는 시대에, 연예인도 아닌 사람과 닮았다는 사실이 뭐 어때서. 그저 가끔씩 그가 가진 재력과 배경 때문에 인터넷이 시끄러운 날이면 관련 기사는 늘 꿰뚫고 있는 김동식이의 놀림이 한 줄 더 늘어난다는 것 정도였으니까. 그보다 내가 신경 쓰이는 건, 





"장백기씨" 
"........" 
"장백기씨" 
"ㄴ, 네? 아, 네 대리님. 죄송합니다." 
"어제 잠 못 잤어요? 술이 덜 깼습니까?" 
"... 죄송합니다" 




가끔 한 번씩 이렇게 뭔가에 정신이 팔려 꼭 이 곳에 있는 사람이 아닌 듯 멍해지는 부사수, 장백기다. 싫은 소리 한 번에 또 고개가 푹 숙여지는 그를 보자니 마음 한켠이 답답해지는 것이 느껴져 애써 외면하며, 내가 말한 보고서, 아직입니까, 라고 말하자 그제야 나와 눈을 마주치곤 아, 여기요, 하며 여린 손에 보고서를 쥐어 내민다. 서류를 건네 받는 손을 부러 살짝 스쳐본다. 정신 차리고 네가 있는 곳이 어딘지 잘 보라고. 소리 내지 못한 말을 담아서. 










타닥- 타닥- 
  


조용한 사무실에 키보드가 두드려지는 소리만이 유일해진지도 두 시간 째. 둘러보니 어느새 15층에는 저와 제 옆의 백기 뿐이다. 낮에 잠깐 한 소리를 들었다고 만회하고 싶은 모양인지 열심히 집중하는 모습이 괜히 기특해져 소리없이 입꼬리가 올라간다. 남들이 말하듯 배추가 잘 절여진 부사수는 어느새 철강의 일원으로 잘 성장해가고 있었다. 혹시 내가 안 가고 있어서 안 가는걸까 싶은 맘에, 부러 말을 건네 본다. 



"장백기씨" 
"네, 대리님" 
"퇴근 안 합니까?" 
"아, 전 좀 남아서요. 대리님 먼저 가셔도 됩니다. 제가 마무리하고 가겠습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먼저 가라며 꾸벅 인사까지 받아놓고 계속 기다리는 것도 웃긴 모양새라 주섬주섬 가방과 옷을 챙겨 일어나려는데, 지이잉- 책상 위에서 그의 핸드폰이 요란스레 울린다. 그런데 액정을 확인하던 그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원래 남의 일에 관심 갖는 건 잘 안하는 성격이라 그런가보다 하고 마저 챙겨 일어나려는데, 이내 굳은 얼굴로 무언가 결심한듯 전화를 받고는, 으레 해야할 여보세요도 없이 한참을 묵묵부답이다. 조용해진 사무실, 듣지 않으려해도 조금은 새어나온 상대의 화난 어투. 



-여보세요, 장백기. 전화를 받았으면 말을 해야 할 것 아냐. 
-여보세요!? 



누군데 저렇게 날이 서 있나 싶어 엘리베이터로 향하려던 발걸음이 우뚝 멈춰졌다. 그리고 괴로운 듯 눈을 꼬옥 감았다 뜬 백기에게서 흘러나온 한마디. 무슨, 일이십니까. 그리고는 다급하게 회사라고, 야근이라고, 오지 말라는 말을 덧붙인다. 


남의 통화를 엿듣는 것도 아니고 이 쯤 퇴장해야 할 것 같아 다시 한 걸음을 떼는데, 그 입에서 나온 한 사람의 이름 때문에 또 다시 제자리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차기준 사장님!" 


꼭 어디선가 들었던 이름인 것 같아서,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 보던 그 때. 이미 나는 안중에도 없었는지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후다닥 사무실을 뛰쳐 나가며 대, 대리님, 그럼, 하고 허둥지둥 인사를 건네고는 엘리베이터도 아닌 계단으로 향하는 장백기의 모습이 낯설어 한참을 그렇게 서 있어야만 했다. 












"여보세요" 
-강해준, 퇴근했어? 나 여기 하 대리랑 있는데 올래?. 
"됐어. 그냥 집에 갈래" 
-흠, 그러지 말고 오지. 
"늬들이나 많이 먹어. 아, 동식아, 차기준이 누구지? 
-뭐? 
"차기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 너 혹시 아는 이름이야? 
-하하하, 너잖아. 
"뭔 소리야" 
-너. 내가 맨날 너라고 놀리는 그 사장. ID엔터. 차기준 사장. 승진그룹. 



동식의 한 마디에 무언가 큰 망치로 뒷통수를 맞은 듯 머리가 얼얼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여보세요, 강해준, 끊었어? 하는 동식의 외침이 귀에서 웅웅 대며 멀어졌다. 차기준, 그 이름이 익숙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면, 장백기는 왜 그 사람과? 집으로 가는 차 안,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물어 깊어져만 갔다. 




누가봐도 아픈 사랑을 하는 자의 표정이었다, 아까의 장백기는. 그렇다면 혹시, 상대가 차기준이었나.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르자 문득 입사 후에 저를 처음 보고서 무언가 귀신에 홀린 것마냥 놀라던 장백기의 모습, 이따금씩 저를 보면서도 내가 아닌 다른 이를 보는 것 같은 눈빛을 했던 모습, 어딘가 처연했던 눈빛, 무언가 항상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들이 연달아 떠오르기 시작했고 의식적으로라도 꼭 대리님, 이라는 칭호를 붙여 대답하던 장백기의 목소리가 제 옆에 있는 것처럼 들려왔다. 악에 바친 소리를 했지만 그 마저 나를 향한 것이 아닌 것 같았던 그 때의 느낌까지. 그제야 수많은 물음표가 붙었던 그의 이해 못할 행동들이 하나씩 제 자리를 찾아가듯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쿡쿡 쑤셔오는 심장께가 힘겨워 술 없이는 견디지 못할 밤인듯 해 차를 돌려 조금 전 동식이 말해 주었던 장소로 향했다. 처음으로 누군가 닮았다는 사실이 진저리나도록 싫었다. 










"대리님, 오셨습니까" 
"네" 



어제처럼, 옆 자리에는 여전히 장백기가 있었고, 무뚝뚝하게 인사할 수 밖에 없었다. 밤새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장본인의 얼굴을 보자 울컥 치밀어 오르는 탓도 있었지만 어젯밤 통화로 확실해진 것 하나. 나와 장백기의 자리는 사무실의 파티션 만큼이나 가로막혀 있다는 뜻일테니까. 





"야, 너 언제 약혼을 했냐?" 
"하아, 아침부터 또 무슨 소리야" 
"짠! 이거. 이 사람 약혼 한단다" 
"뭐?" 



김동식이 내민 화면에는 그, 차기준과 한채연이라는 여자의 다정한 사진이 실렸고 약혼을 발표한다는 내용이 실려있었다. 이쁘지, 우리 강해준이도 이런 여자랑 얼른 결혼 해야지, 열심히 떠들어대는 동식의 말을 뒤로한 채 자동 반사적으로 옆자리의 그에게 시선이 옮겨졌다. 약혼이라니, 어젯밤에 통화한 건 너였잖아, 장백기. 그 사람 너한테 찾아간다고 한 거 아니었어? 이 많은 물음을 입 밖에 낼 수는 없어 뚫어져라 쳐다만 보는데, 자꾸 옆에서 그 사람의 관련기사를 열심히 읊어대는 동식의 말이 들리는지 한 눈에 보기에도 굳어가는 표정을 애써 참으려는 그가 느껴진다. 너 가, 빨리. 동식을 매섭게 노려보자 입을 삐쭉대며 제 자리로 간다. 괜찮은거냐고, 왜 하필 그런 사랑을 하느냐고, 그런거라면 당장이라도 내게 오라고 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며 업무를 시작했다. 










"대리님, 저 번호가 바뀌어서요.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반듯하게 접혀진 쪽지를 펴자 생소한 열 한자리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알겠습니다, 저장하죠. 쪽지를 받으며 그를 쳐다보자 또 말라버린 얼굴이 눈에 띈다. 차기준 사장의 약혼 발표 이후, 장백기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술독에 빠져 사는건지 가끔 아침엔 채 지워내지 못한 술냄새가 미미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럴때마다 왜 술은 입에도 대지 않은 내 속이 더 타들어갔는지. 처음 그를 부사수가 아닌 남자로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도 차마 털어놓을 수 없어 속 끓이던 그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아팠었다. 혼자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변해가는 장백기의 모습에서 내가 바라는건 그것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한 끝에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 



"장백기 씨, 잠깐 얘기 좀 할까요" 










"제가 무슨 실수라도" 
"일단 마셔요" 



쭈뼛대며 따라온 백기에게 비타민 음료 한 병을 건넸다. 지금부터 내가 꺼낼 이야기를 듣자면 청심환이 필요할 것 같긴 했지만 일단 손에 쥔 것이 그 뿐이니 직접 뚜껑을 따 그가 다 마실때까지 지켜보았다. 후우, 청심환은 내가 먹고 왔어야 했는데. 



"실수는 아니고,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대리님" 



오롯이 마주한 그의 눈동자가 여전히 처연하다. 뭣 때문에, 대체 네가 무엇 때문에. 옆에 당당히 서지도 못할 사랑을 하기 시작한거야. 저 눈동자를 마주할 때마다 나를 닮았다는, 얼굴 한 번 마주하지 못한 그 차기준이라는 사람을 흠씬 두들겨 패 주고 싶다. 그러니 물어야 했다. 



"차기준 사장과는, 끝난겁니까" 
"네?? 그, 그걸, 대, 대리님이 그걸, 어, 어떻게"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그의 눈에선 금방이라도 눈물이 툭, 떨어질 것 같았다. 누가 듣기라도 했을까봐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마저 애처롭다. 아무도 없으니까, 대답만 해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자 다시 나와 눈을 맞춰온다. 



"그 날 저녁에 통화하던 것, 아, 엿들으려던건 아니고. 왠지 그런것 같아서요" 
"아...." 
"추궁을 하려는건 아니니 고개 들어요. 왜, 약혼을 합니까 그 사람. 사귀는 것, 아니었습니까?" 
"... 아닙니다. 저는 그저" 


기어이 눈물 한 방울이 그의 눈에서 떨어져 나온다. 자세한 대답이 아니었지만 알 수 있었다. 한번도 당당할 수 없었던 사이라는걸. 방울져 떨어지는 눈물을 당장이라도 손을 들어 닦아주고 싶었는데, 내겐 아직 그럴 자격이 없었다. 그러니까, 장백기씨. 





"그럼, 내가 고백, 해도 되는 겁니까?" 
"...네?" 
"좀, 오래된 마음입니다. 내가 장백기씨를 좋아합니다" 
"대, 대리님, 저는," 
"그렇지만 고백은 싫으면 거절해도 됩니다. 나는 단지, 장백기씨가 혼자 아파하는 것이 싫습니다. 나, 그 사람과 닮았다더군요. 그 사람이 보고 싶으면 나를 부르고 그 사람에게 해야 할 말이 있으면 나한테 하면 안되겠습니까. 그냥 누군가 필요할 때 나를 불러도 좋습니다" 
"......"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면 그렇게 해요. 기다리겠습니다" 



쿨한 척 뒤돌아 창고를 빠져 나왔지만 사실 울망한 그의 눈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 힘겨워서였다. 자꾸만 올라가려는 손을, 그를 안아주고 싶어서 뻗으려는 팔을 참아내는 것이 너무도 힘겨워서. 그냥 나를 이용해서라도, 당신이 그 사람을 하루 빨리 잊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당신은 늘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때는, 그 사람을 닮았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많이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백 이후 (정확히는 나 혼자만의 통보 이후) 2주의 시간이 흘렀다. 다행인건, 장백기에게서 나던 미미한 알콜향이 많이 줄어들었다. 나는 회사 내에서도 더욱 더 그를 평소처럼 대했다. 그런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철강팀은 왜 벽이 허물어지지가 않냐면서 나를 다그치기도 했다. 그 때마다 모르는 소리 말라고, 강해준이 장백기를 마음에 품은 뒤로 벽 같은 게 너무 없어서 문제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그에게 오늘 술 한잔 할까요, 라는 말을 전하려 이렇게까지 눈치를 볼리가 없으니까 




"장백기씨 오늘" 
"오~백기 쒸이~ 퇴근하는거지? 가자 가자" 
"네, 가요 한석율씨. 저 대리님, 그럼 전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내일 뵐게요" 
"그래요. 내일 봅시다" 



내가 같이 있어줄 수 없는 것은 안타까웠지만 그의 동기라도 함께 있어줄테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그에게는 술이 필요할테다. 아무렴, 마음이야 어떻든 헤어진 애인의 약혼식날 맨정신으로 보낼 수 있는 남자는 몇 되지 않겠지.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마음에 담은 남자 또한 맨 정신으로 보내기는 글렀겠지. 집으로 향하는 내 손에도 맥주 캔이 들어있는 검은 비닐 봉지가 들려있었다. 






[3ㅐ리님 집 문이 안녈립미다 - 장백기] 



그에게서 문자가 온 건, 자정이 다 되서였다. 











허겁지겁 가지고 있던 철강팀 비상연락망을 뒤져 백기의 집 주소를 알아내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에게 향했다. 헉헉, 숨을 몰아 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땐, 제 집 앞에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주저 앉아 있는 장백기의 모습이 보였다.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장백기씨, 장백기씨, 일어나봐요." 
"어? 흐흥, 대리니임, 진짜 오셨네요?" 
"왜 안 들어가고 이러고 있습니까. 비밀번호 잊어버렸어요?" 
"흐흥, 제가요, 그 사람이 자꾸 찾아와서요, 또 올까봐, 비번을, 바꿨는데요," 
"..." 


"흑, 그게, 너무 오래, 박혀있었나봅니다, 기억이, 안나요" 



너무 오래, 라고 말하는 백기의 눈이 많이 슬퍼 보였다. 눈물이 떨어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얼른 소매로 훔쳐냈더니 이젠 아예 대놓고 펑펑 운다. 그 모습이 아려 천천히 그를 안아 품에 가두었다. 



"울지 마요. 괜찮습니다. 비번은 리셋하면 됩니다. 잊을때까지, 새 번호가 머리에 새겨질 때까지" 
"대리님.." 


아직 채 눈물이 거두어지지 못한 두개의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합니까, 숨어도 된댔잖아요. 내가 있어준댔잖아. 손을 들어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가렸다. 조심스레 그의 입술을 찾아 나의 입술과 함께 겹쳐본다. 뜨거운 숨에서 알싸한 알코올 향이, 그의 짠 눈물 맛이 흐른다. 떨리는 그의 입술을 깊게 머금었다가 살짝 떼고는, 다시 그와 눈을 맞춘다. 




"나, 강해준입니다" 


그러니 혹여라도 지금의 입맞춤을 차기준과, 헷갈리지 말아요. 내 한마디에 떨리던 백기의 눈이 깊게 드리우고는 다시 스륵 눈이 감긴다. 무언의 허락. 그리곤 여린 손끝이 내 목을 감싸왔다. 나는 다시 그의 아랫입술을 탐했다. 뜨거운 두 혀가 엉켰다. 마음도, 함께. 













[점심 뭐 먹고 싶어요? - 강해준] 
[배 안고픈데요 - 장백기] 
[또. 밥 거르지 않기로 약속 했잖아요 백기야 - 강해준]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서로만 아는 비밀들이 몇 개 생겨났고, 우리는 가끔 옥상에서, 비상계단에서, 모두가 퇴근한 15층 탕비실에서 키스를 했고, 손을 잡았고, 서로를 품에 안았다. 술이 한 잔 들어가면 조금 더 진솔한 이야기들을 했다. 머뭇대던 그가 전해주는 그 사람과의 만남은 생각보다 너무 아파서 결국 다 듣지 못하고 내 입술로 그의 입술을 막을 수 밖에 없었다. 철강 메신저에는 꽤 자주 소리내어 할 수 없는 말들이 오갔다. 사귄다는 티를 낼 수는 없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팀 내에서 이루어진 사내(社內) 연애이기 때문이지 남자끼리의 사내 연애라서가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상관없었다. 




[그럼 설렁탕 먹어요. 대리님 좋아하시잖아요 - 장백기] 
[내가 좋아하는 건, 장백기죠 - 강해준] 


슬쩍 옆을 돌아보니 차마 마주치지 못한 얼굴이 바알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보인다. 이렇게 예쁜데, 뭐가 두려울까 싶었다. 당장이라도 장백기가 내 것이라고 소리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대리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요. 조심히 다녀오고, 전화 줘요" 
"네" 


열심히 먹여서인지 비쩍 말랐던 턱선에 살짝 살이 붙은 게 보여 뿌듯함을 애써 감추고 그의 대리님으로 대해지는 순간 잠깐 맞닿은 시선에 웃음을 담자 그가 또 살짝 웃어보인다. 꾸벅 인사하고 돌아서는 모습이 아직도 소년같았다. 











"네 철강팀입니다. 아, 장백기씨요? 지금 외근 나가셨는데 어디라고.., 네? 아니, 정말 외근 나가셨다니까요?" 


신다인씨가 내 뒤에서 백기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부터 왠지 모를, 정말 왜인지 모를 쎄한 느낌이 나를 감쌌다. 신다인 씨, 무슨 일입니까. 낮게 물은 내게 다인씨가 수화기의 스피커를 한 손으로 가리고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나한테 전화 넘겨 줘요. 



"여보세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여보세요, 장백기 씨 좀 부탁합니다" 


그렇구나. 이 쎄한 느낌은 전화기 너머 이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려는 것이었구나. 직감적으로 그의 목소리가 기억났다. 백기에게, 어디냐 물으며 다그치던, 그 목소리. 



"장백기 씨는 지금 외근중입니다" 
"... 그렇게, 부탁 받으셨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장백기 씨 자리에 없습니다" 
"... 알겠습니다. 다시 걸죠" 
"누구시라고 전할까요" 


확인해야했다. 메모를 적을 심산인 듯 묻자 별 의심 없이 제 이름자를 털어놓는다. 그리고는, 



"차기준 입니다. 회사 앞 xx카페에서 기다린다고 전해주세요. 나올때까지" 


끊긴 전화와, 구깃하게 일그러진 메모 한 장이, 내 손에 남겨졌다. 










"백기 씨, 거래처에서 바로 퇴근해도 좋습니다" 
-아, 네 대리님. 
"그럼" 
-저기, 대리님, 
"네" 
-저녁, 같이 할까요? 
"...." 
-대리님? 옆에, 누구 있어요? 
"아니. 혼자 있어요. 미안, 오늘 선약이 있는 걸 깜빡했네. 전화 줄게요. 미안해요" 
-아아. 아니에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네. 장백기씨" 
-네, 대리님 
"내일, 봅시다" 
-네. 내일 뵈요, 대리님 


백기와의 통화를 마치고 빠른 걸음으로 회사를 나섰다. 꼭 쥔 서류가방 사이로 메모지 한 장이 바스락거리며 땀에 젖었다. 











딸랑- 



"어서오세요" 



휘휘 둘러 본 카페 안에는 구석 진 테이블에 자리한 그가 보였다. 차기준, 그를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김동식이 매번 나를 닮았다며 사진을 보여주었을 땐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가까이 마주하니 농담은 아니었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나를 보고, 그 사람도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살짝 찡그리는 눈썹에 꽤 진한 짜증이 묻어나온다. 본능적으로 아는, 수컷끼리의 느낌. 그도 나도, 그 시선을 애써 거두지 않았다. 


"강해준이라고 합니다. 장백기 씨의 사수이고요" 


좀 앉아도 되겠습니까, 하는 물음에 표정이 풀리지 않은 그가 고갯짓을 까딱, 한다. 




"대신 나가달라던가요" 
"아뇨. 장백기 씨는 모릅니다. 제가 전하지 않았어요" 
"왜죠? 그 회사는 부사수 사생활도 사수가 직접 관리하나?" 
"부사수이기만 한 건 아니라서요" 


조소 섞인 비웃음과 함께 손가락 끝으로 빙글, 잔을 돌리던 그 사람은 나의 말에 여유롭게 입으로 가져가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무서운 기세로 나를 쏘아보았다. 아, 이러고 나니 좀 다르네. 김동식, 틀렸어. 차기준과 나는 완전 다르다. 그것도 아주 판이하게. 




"집을 찾아갔더니 비번을 바꿔두고, 두드려도 나오질 않고. 핸드폰 번호는 바뀌었는지 결번이라던게, 당신 때문이었어?" 
"아뇨. 그건 전부, 백기씨가 스스로 한 일입니다" 
"허, 장백기가? 그걸 나더러 믿으라는 거에요?" 
"믿기 싫으시면, 안 믿으셔도 됩니다. 빠져 나오려는 사람에게 손을 내민건 맞지만, 모두 장백기씨 스스로의 결정이었어요" 
"큼, 강해준씨라고 하셨죠? 아직 장백기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은가봐요. 하긴, 어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사이가 3년을 이기겠어요, 그쵸?" 
"말씀대로, 3년을 지킨 사람이, 다른 사람과 약혼을 하기도 합니까" 
"하하, 장백기가 오랜만에 제대로 하나 물었네. 이봐요, 강해준씨. 결국 앞에 세우지 못하는 건 당신이나 나나 똑같아. 원인터, 거기는 뭐 샌프란시스코쯤 되나?" 



비죽이는 입꼬리가 싫다. 저런 모습으로 늘 백기를 대했을 것을 생각하니 당장 이 지루한 입씨름을 끝내고 다시는 백기 앞에, 아니 어디든 나타나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많으니 조금 더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킬 게 많으신 분은, 그러실겁니다" 
"뭐라구요?" 
"저는 재벌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잘 모르지만 승진그룹, ID엔터. 그런 것들을 지켜내시느라 정작 장백기라는 사람을 너무 외롭게 한 건 차기준 당신이잖습니까" 
"후, 이봐요" 
"저는 다릅니다. 오래 지켜온 마음, 백기 씨가 어렵사리 받아들여 준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그 때문에 제가 갖고 있는 어떠한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면, 기꺼이 그를 앞에 세울거고요. 그러니 앞으로는 제 귀한 사람의 시간, 함부로 뺏지 말아주십쇼. 이 말씀 드리려고, 나온겁니다" 


해야했던 모든 말을 빼놓지 않았다. 내 입에 백기의 이름이 조심스레 올려지는 순간 순간, 백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보고싶었다. 그를 보러가기 위해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던 그 때, 그 사람의 한 마디가 다시 발목을 잡았다. 



"착각은 거기까지만 하세요.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장백기는 3년동안 그래왔어요"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를 다시 돌아본다. 다시 한 번 느낀다. 이 사람과 나는,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꼿꼿이 서서, 마주쳐 오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아뇨. 달라질겁니다, 이제부터는"  











1,0,1,7, 


이 문 앞에서 백기와 처음 키스하던, 우리가 서로를 확인하던 날의 날짜. 리셋이 된 도어락을 내가 대신 바꾸어 주었었다. 경쾌한 음과 함께 현관문이 열리고, 




"어? 대리님?" 


그리웠던 얼굴이 놀라 동그란 눈을 하고 걸어 나왔다. 백기가 걸어나오는 그 길이 조명을 킨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빛나기 시작했다. 대리님? 






"무슨 일 있었.., 읍..!" 

급하게 부딪힌 입술과는 다르게 정성스럽게 마른 입가를 축이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달콤하게. 할 수만 있다면 내 입술의 온기를 모조리 그에게 주고 싶을만큼 내가 그를 아낀다는 것을 표현해주고 싶었다. 조심스럽게 혀를 밀어 살짝 닫혀진 치열에 대고 톡톡, 허락을 구하듯 두드리자 흣, 신음과 함께 말캉한 혀가 마중을 나왔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어느 부분 하나 여리지 않은 것이 없어서. 그 옛날에 솜사탕을 먹을때처럼, 녹여내듯 조심히 혀를 굴렸다. 백기의 따뜻한 손이 내게 올려지고, 나 또한 그의 귓볼을 살살 쓰다듬었다. 보고싶었어, 백기야. 저도요, 보고 싶었어요 대리님. 





"차기준, 그 사람 만났어요" 
"네?" 



맥주 한 캔씩을 손에 쥐고 한참을 내 품에 안겨있던 백기는, 내 입에서 나온 그 사람의 이름에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흔들리는 눈빛으로 마주했다. 그러지마. 떨려오는 눈가를 손으로 쓸어주고 다시 자세를 잡아 그를 품에 안았다. 



"오늘은 너랑 만나게 하기는 싫어서. 전하지 않아서 미안해요" 
"대리님..." 
"내 사람의 시간을 그가 빼앗아가는 것이 싫었어요" 
".... 죄송해요. 제가, 정리를 잘 못해서" 
"그래도, 한 번은 만나야겠지...?" 
"대리님 싫으시면" 
"만나고 와요. 내가 데려다줄게요" 



만나서, 보여줘요. 사랑받고 있는, 강해준의 장백기로 살아가는 모습을. 












"후우...." 



아까부터 바지에 손을 문대더니, 이젠 작은 한숨까지 새어 나온다. 신호 대기가 되어서야 마음과는 다르게 떨리는 백기의 손을 조심스레 쥐어주었다. 혹시라도 그것이, 다른 마음이라고 오해라도 할까봐, 여린 연인은 빙긋 웃으며 조용히 운을 뗀다. 




"해야 하는 말, 다 못하고 나올까봐서요. 절대, 막, 미련같은거, 아닙니다" 
"큭," 



절대 아니라며 손사래까지 치는 걸 보니 귀엽기까지 했다. 알아요. 하면서 볼을 쭈욱 잡으니 아야, 대이이임, 한다. 결국 참지 못하고 쪽. 헤어진 애인 만나러 가는 길에 이렇게 귀여우면 불안해서 못 들여보내겠잖아요, 백기야. 


차 문을 열고 나가는 그에게선 결연함마저 돋보였다. 두어 발자국 가던 백기는 뒤를 돌아보더니 창문을 톡톡. 응? 하는 얼굴로 조수석의 창문을 조금 내려주니, 그가 웃는다. 




"기다려주세요, 대리님" 
"네. 그럴게요" 



다시 돌아서는 백기의 발걸음이 아까보다 한결 가벼웠다. 











"두 번 나오게 해서, 미안해요" 


백기가 다가서자, 창문만 바라보고 있던 기준의 시선이 백기에게로 향했다. 그러게, 대단한 인사더라 너. 기준의 곱지 않은 말투에 살짝 굳은 백기가 그의 맞은편에 자리했다. 




"안하던 짓을 하더라, 장백기" 
".... 모르던 마음이 생겼으니까요" 
"강해준? 취향 하고는. 왜, 날 닮아서?" 
"자꾸 겪으면 알게 되요. 대리님이랑 형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나 바빠. 간단히 하자" 
"안 만났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볼 일 없으면 더 좋구요" 



흔들림없는 백기의 눈을 마주하던 기준이 피식 웃었다. 콧등으로도 여기지 않은 기준의 시선이 백기에게도 느껴졌다. 



"가능해? 너, 그게 가능해서 나랑 3년을 보냈어?" 
"가능해요. 가능할거고" 
"장백기" 
"형. 나 형 사랑했어요" 



무섭게 목소리를 낮추던 기준이, 백기의 말에 멈칫했다. 기준에게 채연이 있게 된 이후,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전부터. 둘에게서 절대 나오지 않았던 단어, 사랑. 





"형은 단순히 상대가 필요했던건지 몰라도, 나는 처음 그 때 형 손 잡으면서부터 사랑했어요" 
"...." 
"그래서, 형이 나를 그냥 둬도, 외로웠어도, 언제고 한 번 차기준에게 당당히 불리지 못해도, 좋았어요. 늘, 채워지지 않아서 형이 고팠으니까" 
"장백기" 
"네. 장백기에요. 그런데 난 형을 만나면서는 그 이름을 숨겨야 했잖아요. 차기준 사장님께 장백기는, 없어야 하는 이름이었으니까" 
"...." 
"그 분을 만나면서, 내 이름이 불려져요. 장백기가 이렇게 따뜻하게 불려질 수 있는지 그제야 알았어요. 키스가 달게 느껴진 것도, 사랑을 받는 것도, 이제야 알아요" 
"큭, 대단한 멜로 하나 찍나보다 너. 그 사람은 뭐 다를 것 같아?" 
"맞아요. 그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똑같을 수 있어요. 그런데 중요한건," 
"...." 
"저에요. 이제는, 숨어서 우는건 안할거에요. 울고 싶으면 달려가 울면 되고, 웃고 싶으면 같이 웃으려구요. 갈 수 없으면, 부르면 되구요. 부르니까, 와주더라구요. 그가 필요할 때가 아니라, 내가 필요할 때 불러도, 오더라구요" 



덜덜 떨려오던 백기의 두 손은 어느새 그 떨림을 지운 채였다. 자세 하나 흐트러짐 없이 꼿꼿한 백기를 진득하게 훑어내리던 기준이, 커피잔을 내려 놓았다. 




"...다 했어?" 
"네. 다 했어요" 
".... 가라, 그럼" 


그 말을 끝으로 기준의 시선은 커피잔에 머물렀고, 잠시 망설이던 백기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약혼, 축하해요. 백기가 돌아보며 말하자, 기준이 또다시 피식, 웃고는 흘려보내듯 말했다.. 




"달라지는건, 없어


약혼이 뭐 대수라고. 약혼이라는 건 그저, 회사 주식을 사수하기 위한 일이었을 뿐이야. 기준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걸음 나아가던 백기는 입가에 웃음을 띄며 다시 운을 뗐다. 




"이젠, 달라지고 싶어요, 형" 




기준의 눈에, 창문 밖으로 카페를 나가 멀어지는 백기가 그를 기다리고 섰던 해준의 품에 예쁘게 안기는 것이 보였다. 이미 다 비어버린 커피잔을 씁쓸히 바라보던 기준의 앞에, 환하게 빛나던 3년전의 백기가 떠올랐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빛나던 장백기. 그 빛을 저 때문에 잃어가는 것을 마주할 때마다 기준은 백기를 안았었지만 그 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 장백기의 모습은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이 빛나고 있었다. 처연하고 서러운 눈빛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큭, 기준이 자조섞인 웃음을 흘린다. 그렇게 똑같은데,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사랑, 했었다. 장백기" 



기준은 그렇게 다시 바삐 일상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챙-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차를 가져 온 해준 때문에 와인은 해준에 집에서 오픈한 두 사람이 가볍게 잔을 부딪혔다. 목 넘김이 좋은 탓에, 술이 약한 백기도 한 잔, 그렇게 두 잔, 세 잔이 되자 발갛게 물든 얼굴이 해준에게 닿았다. 술 때문에 빨개진 얼굴이 귀여워 쪽, 간지럽다 웃는 모양새가 귀여워 또 쪽. 그렇게 이어진 입맞춤이 점점 진하게 변해가고, 달아오른 마음을 숨길 수 없는 두 사람의 몸이 점점 밀착되었다. 백기의 팔이 해준의 목 뒤로, 해준의 손이 부드러운 백기의 머릿칼로, 귀 끝으로, 목덜미로 닿았고, 마침내 하아, 숨기지 못한 신음이 백기에게서 터져 나와 그대로 해준을 자극했다. 정신없이 이어진 키스에 몸이 먼저 반응할 때 쯤, 해준이 아, 하는 새된 신음과 함께 몸을 떼었다. 



"대리님,"
"...미안. 내가 너무"
"왜. 절"
"..."
"안지 않으세요? 저랑은, 싫으십니까?"



혹시 제 과거가, 당신의 손길을 막나요. 차마 꺼내지 못한 궁금증이 마구 밀려와 순식간에 표정이 일그러지는 백기를 보며 해준이 화들짝 놀랐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왜. 왜 싫어. 그런거 아니에요 백기야. 그런거 아냐.




"그런데 왜"
"..."
"네...?"
"백기 씨 마음에, 상처가 조금 더 아물면 안고 싶어서요. 그.., 그 사람과, 많이 힘들었다지 않았습니까"



조심조심 이어가는 해준의 말을 듣던 백기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놀라 그를 바라본다. 언젠가 그런 말을 하기는 했었다. 그와의 관계를 끊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던 건 그 때부터였다고. 배려없는 행위가 버겁기만 했을 때, 더 이상 감정이 없는 로봇같은 느낌이었다고. 술에 취해 마구 꼬이는 발음으로 그렇게 말했을 때, 해준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울지 말라고, 이제 내가 있다고, 말해주었었다. 


행여라도, 그런 나쁜 기억을, 감정들을 저와의 관계를 통해 끄집어내게 될까봐, 해준은 그렇게 말없이 배려하고 있는 중이었다니. 어딘가 서러워 일그러졌던 백기의 표정이, 한 순간에 감동으로 바뀌었다.





"대리님"
"네"
".... 해, 해준씨"


수줍게 올려진 제 이름에 해준이 백기의 얼굴을 감싸 저를 보게 했다. 다시 불, 불러봐요. 해준, 해준씨. 강해준씨. 네, 네 백기야. 



"안아주세요..."
"....백, 백기야"
"안아주세요. 안기고 싶어요"



그리고는, 백기가 먼저 조심스레 해준에게 입을 맞춰왔다. 당신이라면, 다를테니까. 우리는 이제, 달라졌으니까요.



그의 입맞춤을 조심스레 따라가던 해준이 다시 한 번 백기와 눈이 마주치고, 다시 예쁘게 감겨오는 백기의 이마에, 눈에, 콧잔등에 쉼 없이 키스를 하며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백기를 안아 침실로 향한다. 







오늘이 지나면, 더 달라질테죠, 우리.
















ㅋㅁㅎㅁ 방영 당시 썼던 글을 올립니다.

부족한 필력에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1) 댓글 ↘ 과 

2) 트위터/shp_joy

3) 에슼폼/shp_joy 


를 애용(?) 해주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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