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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단편

[석율준식] 어색해도 우리는

* 처음 써보는 석율준식이네요 *

* 전혀 No수위글. 가볍게 읽어주세요 *



















[석율준식] 어색해도 우리는

written by shp














' KL물산에 서 부장. 스캔들 났다며? ' 

' 그러게. 우리 회사 사람이라던데 '

' 야, 혹시 그... 성 대리... 섬유팀에... '

' 에이. 설마. 그렇게 당하고 또 그랬겠냐 '

' 제 버릇 개 못 준댔어 '


차라리 이어폰을 끼고 올 걸. 쓸데없이 밝은 두 귀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얼른 올라가라. 주문처럼 엘리베이터가 나타내는 숫자만 바라보고 있자니. 한석율 씨. 걱정이 섞인 백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의 시선 끝에 내가 끊어질 듯 쥐고 있는 나의 브리프 케이스와 핏기 어린 손바닥이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무슨 일이 있음은 충분히 알만한 백기가 다시 한 번 걱정스레 물어왔지만 나는 15층에 도착하는 엘리베이터 밖으로 걸음을 쉬이 떼지 못하는 그에게 웃어보였다. 수고해 백기씨.



" 어. 왔어? "

" 아. 네에 "


아니겠지. 아닐거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여기까지 계속 도리질을 하면서 한 사람만 떠올렸는데. 막상 그 얼굴이 현실이 되어 나타나자 나도 모르게 주춤 반 걸음쯤 뒤로 멀어졌다. 뭐야, 왜그러냐 너. 어이 없다는 듯 웃으면서도 그 속에 섞인 준식의 미묘한 걱정을 모를리 없는 사이였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내 자리로 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쳐 두었다. 뒷통수에 따갑게 꽂히는 그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 너 씨발. 너 나 엿먹이려고 그러냐? 어? 

- 그런거 아닙니다.

- 새꺄. 그냥 이전에 하던대로 해. 무시하고 욕하고 이상한 사수라고 떠벌리고 다녀. 너 설마 그 사건 이후로 내가 불쌍해지기라도 한거야? 그런거야?

- 그러는 대리님은 왜 제 눈치를 보십니까.

- 허. 아, 아니, 내가 언, 언제 니 눈치를 봐, 봤냐! 야! 한썽유리! 

- 그만하시죠, 이제.

- 뭐, 뭐, 뭐를.

- 좋아한다는 한마디면, 됩니다 대리님.

- 뭐라는거야, 이 새, 새끼가.

- 저도, 그렇습니다.

- ..... 뭐?

- 좋아해요, 대리님.

- ..... 진,짜?

- 네


철없고 싸가지 없는 사수의 가면을 거두어낸 준식은 여리고 또 여린 사람이었다. 스치는 가벼운 인연이 많았던 사람. 그래서 더욱 진심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었던 사람. 그 서툰 마음이 어느새부턴가 저를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석율은 준식을 미워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준식을 품에 안았다. 진짜 너도 나 좋냐? 네. 품에 안겨서 기어이 훌쩍 훌쩍 울어대던 모습이 귀여웠다. 그러면서도 계속, 왜 내가 좋냐 넌? 하고 묻던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이러는데 어떻게 안 좋아해요. 그 대답에 또 팽 하고 울어 버리는 모습은 아이 같았고.




[ 얘기 좀 하자 ]


물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눈치를 본 건 피차 마찬가지. 결국 내내 엇갈리던 시선을 참지 못한 건 준식이 먼저였다. 네. 짧은 답장에 등 뒤로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이어진다. 슬쩍 눈치를 보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오겠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동안 요 며칠 밤마다 연락이 두절되던 준식의 모습을 떠올렸다. 뭘 물어야 할까. 만약 그랬다가 네가 무슨 상관이냐 반문하면 어떡하지. 하아. 성준식 진짜 - 



" 왜 그러냐, 하루 종일 "


바로 따라 온건데도 점점 매서워지는 바람에 그새 작은 코 끝이 빨갛다. 감기 걸릴라, 왜 이렇게 얇게 입었어요. 얼른 겉옷을 걸쳐 주는데 손끝을 따라가는 시선이 매섭다. 뭐냐고, 너. 나오는 말투는 뾰족뾰족 날이 서 있고.


" 아니에요, 아무것도 "

" 아닌게 아니잖아 "

" ........ "

" KL 서 부장이 스캔들이 났다. 근데 그게 우리 회사라더라. 그리고 그게 곧 성준식이라더라 "

" 대리님, "

" 다른 사람은 다 믿더라도 "

" ....... "

" 너는 그러면 안 되는거, 아니냐 한석율? "


단단히 상처 받은 두 눈에 이를 악문 자존심이 기어이 흐르지 못하는 눈물 한방울을 맺는다. 믿어서가 아닌데. 그 말을 믿어서가 아닌데. 선배. 다급한 마음에 어깨를 붙잡아 보지만 땅에 떨어지고만 외투처럼 냉담한 반응이 아리게 다가왔다. 따라오지 마, 한석율.





-





" 짱글애에에~ "

" 아휴, 한석율 씨. 정신 좀 차려봐요. 집에는 가야 될 거 아닙니까. 네? "

" ...닌데. 그런거, 아닌데 "

" 예? "


당신한테, 내가 어떤 의미인지 두려웠을 뿐인데. 마음 확인. 그 이후 채 한달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뭐든 가볍고 쉬울것 같은 이미지였던 준식은 예상 외로 뭐든 부끄러워했고 솔직하지 못했다. 손잡는 것도, 안는 것도. 또 입을 맞추는 것도. 반 뼘쯤 다가섰다 생각하면 또 다른 빈 틈이 생겨나곤 했다. 대리님, 하고 깍듯하게 부르던 호칭이 선배, 정도로 바뀐 것 또한 며칠 되지 않은 이야기였다. 처음부터 호감으로 시작한 사이가 아니니까 어색함의 공존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제 연인인데. 이전과도 크게 달라지지 못한 우리 둘 사이의 거리가 씁쓸했다. 옆에서 부축을 해 주는 장그래는 계속 무어라 말해주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못한 비틀대는 세상에는 언제부턴가, 준식의 모습이 아른대고 있었다.





-






" 어, 석율 씨 왔어? "

" 네. 아, 저어.., 성 대리님은..., "

" 어. 성대리 오늘 병가 냈어 "

" 병가..., 요? "

" 응. 목소리 많이 안 좋던데. 몸살인가보더라 "


성 대리 없으니까 석율 씨가 수고 좀 해. 문 과장님의 목소리는 이미 귓전에 웅웅. 아파? 어디가? 출근 길에 한참을 고민했었다. 선배, 미안해요. 라고 썼던 문자는 지워지고 또 지워져 결국엔 한 글자도 전송되지 못한 채였다. 어제 퇴근 시간 이후부터 아무 문자도 남겨지지 않은 액정을 보며 오늘은 꼭 그에게 오해였다 말해주리라 다짐했었는데. 





" 성 대리 결국 뻗었어? "



준식이 없는 하루. 두 사람 몫의 일을 하느라 이리저리 채이던 정신을 퍼뜩 깨운 건 지나가던 김 대리님의 한마디. 결국이라니요. 되묻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한 내게 김 대리님이 또 툭. 몰랐어? 성 대리 요즘 몸살 감기에 알러지까지 겹쳐서 죽어나던데. 밤마다 약 먹고 잔다는데도 나을 기미가 없더니 결국 뻗었나보네. 해머로 맞아도 이것보단 덜 아프겠지. 뒷통수를 쨍 하고 얻어맞은 느낌이라 미동도 못하고 섰는데 김 대리님은 그것이 무관심에서 비롯된 표정이라 생각하셨는지 부드럽게 타이르신다. 


" 미우나 고우나 네 사수인데 좀 잘 챙겨. 안 그래 보여도 소문이랑 다, 엄청 예민한 놈이야. 아, 그 소문도 성 대리 아니라더라. 위에서 조용히 처리했는데, 다른 팀 대리 하나 그만 둔 모양이더라 "





-







" 대리님!!! 선배!!! 안에 있죠?!! 문 좀 열어봐요. 네??! "


회사에 있는 동안 제대로 된 사고가 작동하질 않았다. 결국 산더미처럼 쌓인 일은 뒤로하고 무작정 준식의 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전화도 문자도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집에 있을테니까. 함께 술을 기울였던 밤 데려다 줬던 기억을 더듬어 어렵사리 그의 집을 찾아냈다.




" 야. 왜 문을 두드리고 지라..., 너 뛰었어? "

" 허억..., 헉..., 괘, 괜찮아요? "

" 뭐가 "


퉁명스러움이 전부인 말투지만 아픈 탓인지 기운도 없고 갈라져버린 목소리에 마음이 쿵 하고 내려 앉았다. 큰 이불을 둘둘 싸매고 홱 뒤로 돌아 침실로 들어가는 걸음걸이도 비틀댄다. 그러고보니 며칠 새 얼굴도 까칠해졌는데. 나 혼자만의 생각과 오해에 빠져 있느라 저렇게까지 다 티가 나도록 아픈걸 나만, 정작 나만 몰랐다. 왜 왔어, 가. 툴툴대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미안함을 가득 담아 어깨를 감싸 조심스레 침대까지 뉘여 주었다. 일단 좀 자요.


" 나 자면, 갈거냐? "


보나마나 뭘 먹었을리도 없고. 온 몸이 따끈하게 열이 오른 것 같아서 물수건이라도 좀 챙겨 오려고 일어 나는데 말과는 전혀 다른 여린 손 하나가 이불 위로 올라와 내 손을 잡는다. 마주치지 못한 두 눈에는 여전히 딱딱한 말을 담아내면서. 그 모습이 괜히 귀여워 피식 새는 웃음을 애써 감추고 팔목에 어정쩡하게 걸쳐진 사랑스러운 손을 고쳐 꼬옥 잡았다.


" 아니. 가라고 해도 있을 거니까, 푹 자고 일어나요 선배 "





-







" 으음..., 뭐야... 몇시야.... "


헉. 한석.., 아 맞다. 얘 왔었지. 머리 맡에 기대 앉은 녀석의 쓸데 없이 잘생긴 외모를 감상하다 보니 이마에서 무언가 툭. 새끼, 세심하긴. 수건 올려 줄줄도 아네.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수건이 괜시리 간질거려 입꼬리가 올라간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처음과는 다른 마음이 생겨났음을 부정할 수 없던 순간 틱틱대는 말 속에 자꾸 녀석을 향한 관심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사수인데. 알량한 자존심에 절대 고백이란걸 할 수는 없어 도리질을 치고 더 많이 골려주는 것으로 그 마음을 대신하던 차에 나도 좋다, 는 말을 들었던 그 날 어이 없게도 녀석의 품이 따뜻하고 안심이 된다는 것을 느꼈었다. 여자만 만난것은 아니었지만 절대 지금처럼 무거운 마음을, 진심을 담은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 나는 이 녀석이 좋은만큼 불안했고, 두려웠고, 또 어색했다. 그래서 자꾸만....,




"어, 깼어요? "

" 응? 아..., 으응... "

" 뭐 좀 먹어야죠. 잠깐만요? "


와. 녀석이 가지고 온 상차림에 하마터면 육성으로 놀랄 뻔 했다. 집에 먹을 것도 없었을텐데 정갈한 야채죽 한 그릇을 만들어냈네. 얜 요리도 잘하나보다. 헉. 맛도 있다. 큼. 그래도 티 내지 않으려고 작게 한 술 더 뜨는데 내 수저를 홱 낚아채 간 녀석이 크게 한 술을 떠 내게 내민다.


" 뭐. 나 먹으라고? "

" 그럼 설마 저 먹으려고 떴으려구요 "

" 치워. 쪽팔려 "

" 아 팔 떨어져요. 자, 아 - "


이러니까 자꾸만, 녀석에게는 마음과는 달리 말이 나가고, 또 제멋대로 터져 나오는 표정을 숨기지도 못한다. 못 이기는 척 벌린 입으로 들어오는 죽 한 술이, 원래 이렇게 달았었나. 많이 먹고 아프지 말아야죠. 녀석의 한마디에 울컥함이 올라온 건 절대로, 죽이 뜨거워서일거다.





" 아프면 말도 좀 하고요 "

" 니가 못 알아챈거거든 "

" 그런 애인한테 원망도 하고. 기대기도 좀 하고 "

" 죽을 상으로 앉아 있던게 누군데 "

" ........ " 

" 나 아니야 "


숱한 스캔들. 그리고 오해. 평소라면 신경 쓰지도 않았을 소문들. 헌데 녀석이 오해를 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것이 신경 쓰인다는 사실이 자꾸만, 짜증나게도 마음에 걸렸다. 네가 정말 뭔데. 한석율 네가 뭔데 나를 이렇게. 원망 한 번 해 볼 수 없는, 누가 뭐래도 내가 을인것만 같은 이 관계가, 그런데도 녀석이 좋은 내가, 정말이지 너무 힘이 들었다.






-






" 나, 아니야 한석율 "


상처 받았구나, 당신. 혹여라도 내가 계속 오해를 할까 한껏 잠긴 목소리로도 또렷하게 눈을 맞추며 재차 아니라 확인 시켜주는 그 눈빛이 너무 아렸다. 한참을 뒤적이던 죽 그릇을 옆으로 조금 치워두고 그를 안았다. 알아요, 아닌거. 오해 한 건 아닌데 그렇게 보였으면 미안해요. 한 품에 쏘옥 안기는 이 미워할 수 없는, 아니 언제부턴가 유독 사랑스러워져만 가는 이 조그만 머리통이 그제야 작게 흔들리고 어깨 한 켠이 젖어 들어간다.. 나쁜 새끼. 이제 이 원망스러운 훌쩍거림마저 이뻐 보이니 어쩔까.





" 선배 "

" .... 왜, "

" 사랑해요 "



당신한테 내가 어떤 의미인지 이제 두려워하지 않을게. 중요한 건 내 마음엔 당신이 이런 의미라는 것. 어쩌면 조금 더 일찍 해주었어야 했던 말. 우린 아직 어색하고 맞춰나가야 할 부분이 많겠지만 나는, 한석율은 성준식을 사랑해요. 온전히 두 눈에 그를 담았는데. 살풋 찌푸려지는 미간 사이로 특유의 표정이 나오더니 결국 또 울망한 눈물이 차오른다. 왜 울어요. 몰라, 이 나쁜 새끼야.



" 선배는, 나 안 사랑해요? "

" ........ "

" 으응? "

" ...랑하니까... "

" 네? "

" 사랑하니까 너 때문에 아프지, 이 새끼야! "



하하하. 팩 토라지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그새를 못참고 와락 안아 품에 꼬옥 가뒀다. 놔, 이 자식아! 분명 수도 없이 들어온 욕인데 이제 욕이 욕처럼 들리지가 않는다. 숨 막혀. 품에서 웅웅대는 소리에 아차 싶어 살짝 풀어주니 그렁한 눈물이 군데군데 맺힌 눈에 새초롬한 표정이, 아. 한석율 진짜 미쳤다. 성준식이 예쁘다. 



발갛게 달아오른 입술 위로 조심스레 내 입술을 겹치고 나니 열이 오른 입술 새가 수줍게 열린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까지 다 느껴지는 가까운 거리. 서로의 숨결이 뜨거운 입술새로 몇 번이고 오르고 내렸다. 눈물이 내려앉은 짠 입술도 점점 짧아지는 그의 숨소리도 모두가 너무 섹시하고 예쁘기만 해서. 본능적으로 그의 셔츠 안 쪽으로 손이 움직이는데. 으음. 몰아쉬는 숨이 힘들었던 탓인지 신음이 흘러나왔다. 





" 후우..., 선배. 잠깐만. 오늘 안되겠어요 "

" 뭐? "

" 선배 아프잖아. 계속 하면 나 못 참아요 "

" 허, 이 새끼가. 빠져 가지곤. 이리 안 와? "






주춤하며 침대에서 엉덩이를 떼던 나는 결국 그가 잡아당긴 내 넥타이에 의해 다시 그의 숨결과 마주했다. 나는 경고 했어요, 선배. 씨익 웃으며 아까보다 조금 깊게 그의 입술을 탐하니 그의 입꼬리도 다시 올라간다. 나도 경고 했다, 빼지 마.







어색하고 부족하더라도,


우리는 누가 뭐래도, 진짜 연인이 되어가는 중.













어색해도 우리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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