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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단편

[석율그래] 사내연애 5년차

[석율X그래] 사내연애 5년차 


Written by. shp 


*미래물*




삐빅- 삐빅- 삐비비비비빅- 

"석율씨...... 알람..." 


아침이 밝아 문을 두드리는 시간. 언제나처럼 알람이 울리고, 침대에는 두 사람의 인영이 꾸물꾸물. 역시나 알람소리를 먼저 들은 건 그래였지만, 차마 끄기는 귀찮다는 듯, 툭툭, 석율을 재촉한다. 흐음... 자기야... 5분만.. 석율은 그런 그래에게 팔을 뻗어, 어떻게든 잠에서 깨어나보려 애쓰는 제 연인을 다시 품에 가둔다. 그 따스함에 못 이기는 척, 눈을 감고 있던 그래가, 


삐빅- 삐빅- 

두번째 알람이 울리자, 다시 살풋, 눈을 뜬다. 아 일어나기 싫다. 몸이 정말 피로곰에 눌려버린것만 같다. 석율을 보니, 알람이 언제 울렸냐는 듯 다시 자고 있다. 곤히 자는 모습에 좀 애잔한 마음마저 들지만, 미안-, 일어나야 할 시간이에요. 


"석율씨.. 일어나요" 
"흐으으음...... 뽀뽀해주면," 



풉, 웅얼대는 석율의 그 한마디에, 이젠 익숙해질법도 한데 또 웃음이 새어 나온다. 대체 이사람 머릿속엔 뭐가 들어있을까. 연애 5년차. 하지만 5년을 한결같이, 시도때도 없이, 석율은 애정을 갈구하고, 자신에게도 확인시켜주려하고, 사랑을 나누려 한다. 그런 생각에 그래가 반응이 없자, 석율이 손을 뻗어 그래를 잡는다. 



"빨리," 


석율의 재촉에 그래가 다가가 쪽, 가볍게 키스하자, 기다렸다는 듯 그를 더 가까이 끌어안은 석율이, 빠르게 그래의 입술을 삼킨다. 흣, 예상은 했었으나 언제나 갑작스런 그의 키스에 신음을 흘린 그래의 안으로 재빠르게 휘몰아친 석율이, 부드럽게 그를 탐한다. Good morning, baby- 얼마만이야 이게-. 









"하...이거 언제 다 치워......" 

일어나 먼저 욕실로 향하는 그래의 발끝에, 석율과 그래의 옷가지와 물건들이 이리저리 채인다. 요 며칠간 두 사람은 계속 야근, 지방출장, 다시 야근, 해외출장, 또 야근, 팀별 회의 등으로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둘이 한 침대에서 같은 시간에 깨어본것도 꽤나 오랜만이다. 석율과 그래의 연차가 올라가고, 회사 내의 책임이 막중해질 수록, 집은 점점 난장판이 되가는게 느껴진다.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아주머님을 가끔 부르긴 하지만, 두사람이 아예 집을 비워버릴때가 많으니 그마저도 쉽지는 않다. 오늘은 제발, 정시 퇴근해서 집에서 밥 먹고 청소좀 할 수 있음 좋겠다. 라고 생각한 그래가, 대충 보이는 것들을 몇가지 치워두고 씻으러 들어간다.









"진짜 졸려..... 월차 내고 싶다" 

어느새 옷을 입고, 냉장고에 있는 과일을 몽땅 꺼내 주스를 만들고 있는 그래에게, 씻고 나온 석율이 그의 목덜미에 대고 부비부비. 되도 않는 투정을 부린다. 월차에는 대꾸도 않던 그래가, 뒤에서 깊게 풍겨오는 그의 향을 맡으며 묻는다. 내 바디샴푸 썼어요? 응. 아무렇지도 않게 왜, 하는 투로 반문하는 석율을 보며 그래가 밉지 않게 눈을 흘긴다. 5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운 연애인지라 혹시나 해서 바디샴푸는 향이 다른걸로 일부러 두개를 따로 쓰고 있는데. 가끔 석율은 보란듯이 그래의 것을 사용한다. 


"월차는 무슨. 오늘부터 우리 콜라보 회의 들어가거든요 한대리님?" 
"아, 맞네. 흐흥, 그럼 우리 오늘부터 계속 회의실에서 만나나?" 


아, 맞네. 는 무슨. 다 알고 있었으면서. 부딪힐 일 많으니까 더 일부러 똑같은 바디샴푸 쓴거 누가 모를줄 알고. 그래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어느새 다 된 과일주스 한 잔을 석율의 손에 쥐어준다. 어우 우리 장대리님은, 주스도 잘만들어. 못하는게 뭐야 도대체. 능청스런 웃음을 날린 석율이, 출근준비를 위해 옷장으로 향한다.  








"성훈씨, 중국 최근 통계 자료랑 기사 아직 멀었나?" 
"아, 여깄습니다 대리님," 


잽싸게 자료들을 스테이플러로 찍은 성훈이 그것을 그래에게 건넨다. 아 땡큐- 아 그리고, 원가비는? 그래의 말을 듣고 성훈이 또 제 자리에서 뭔가를 찾아 건넨다. 아, 고마워. 



우리 이제 더 잘지내봐요, 라던 그래의 말은 괜한 인사치레가 아니었다는것을 성훈은 실감하고 있다. 뭐 어쨌든 진짜 비밀을 공유한 사이라서인지, 말투부터가 달라졌다. 늘 웃는 낯빛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단단하고 낯가리는듯 보였던 그래의 태도에서, 약간의 틈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한가지 흠이라면, 김과장님이 자리에 안계시고 저와 그래만 있을 때면, 아무 거리낌 없이 찾아와 소소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석율 때문에 좀 고민이라는 것. 그럴때마다 성훈은 정말 진지하게 궁금해지곤 했다. 두 분 대체, 어떻게 5년 동안 비밀연애가 가능하셨던 겁니까-. 




"과장님, 아무래도 혼용율 변경으로 가야 하는것 같죠?" 
"그치. 그래야 하는건데.. 이게 섬유팀에서 컨펌이 날까 문제지. 어쨌든, 회의 들어가보자" 

어느새 김과장님 곁에서 성훈이 준 자료들로 대화를 하던 그래는, 김과장님이 시계를 보며 말하자, 따라나선다. 회의록 작성을 위한 노트북을 챙긴 성훈 역시, 얼른 그들을 뒤따라 간다.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응 한대리. 성과장은, 내일 온다고?" 

"네. 오늘 저녁 비행기이십니다" 



회의실엔 섬유1팀 대리인 석율과 신입인 지혜가 자리해 있었고, 출장으로 부재중인 성과장님을 대신해 석율이 권한을 일임받은 것으로 보였다. 김과장님과의 간단한 인사 후 회의 시작. 영업직이라 다른 팀과의 콜라보 작업이 많은데 반해 섬유1팀과는 그럴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특히 이렇게 영업3팀과 섬유 1팀. 두 팀 단독으로 진행 되는 콜라보는 이번이 거의 처음이라 했다. 그래서인가. 아니면 각 팀 대리들이 지금 서로 비밀 사내연애 중이라서인가. 성훈은 이 회의실에, 왠지 모를 긴장감 마저 웃도는 듯 하다. 




"시작하자" 


김과장님 말씀에, 회의가 시작되었다. 먼저 영업3팀에서 그간 분석한 중국 쪽 통계자료와 원가비, 수출현황등을 보고했고, 섬유1팀에서 역시 구축되어있는 루트와 샘플 현황등을 보고하며 서로의 절충안을 찾는게 오늘 회의의 목적이었다. 석율이 그간 발로 뛰며 모았을 샘플들도 몇가지 제시했는데, 큰 이견이 없을 시에는 이 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1,2차 샘플이 만들어질 터였다. 허나, 석율이 제시한 샘플들의 혼용율을 따지던 영업3팀 김과장님과 그래가 반기를 들었다. 




"울 70, 나일론 20, 캐시미어 10으로 가는건 어떨까요, 한대리님" 

"... 네?" 

"그 편이, 현재 나온 샘플보다 두께감이랑 색상이 더 나을거 같아서요. 그쪽 시장에도 그렇고." 



그래의 예상 외의 발언에, 석율과 그래의 시선이 허공에서 잠깐 부딪혔다. 석율의 시선이 살짝 찌푸려지는듯 했으나, 이내 평정심을 찾은듯,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설명했다. 



"세가지 원단 혼방하는거 어려운거 아시잖아요, 장대리님" 

"알죠. 그치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것도 압니다" 



헉. 성훈은 하마터면 육성으로 놀랄뻔 했다. 일순간 일동 정적 상태가 되었고, 특히 회의록을 열심히 작성하던 성훈과 지혜는 본분도 잊은채 둘에게 시선을 돌렸다. 파바박. 누군가 지금 상황을 만화로 그려낸다면 둘 사이에 번개가 열개쯤은 그려져있을것이라고 성훈은 확신했다. 그러나 그래는 차분하게 석율을 응시했고, 석율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단가 차이 있을겁니다" 

"조율 하겠습니다, 그정도는. 괜찮죠 과장님?" 



석율의 반문에도, 그래는 지지 않았고, 오히려 동의를 구하는 듯, 김과장님께 괜찮나며 묻기까지. 사실 그래의 의견이 곧 김과장님의 의견인지라, 김과장님 또한 끄덕, 무언의 동의를 한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장대리님. 무엇보다 현장에서 ㅡ" 

"ㅡ현장, 생각만 할 수 없잖습니까, 한대리님" 




그래의 말에, 차분히 말을 이어가려던 석율이 또다시 한번 그래를 본다. 아까보다 표정도 굳었다. 성훈과 지혜도 놀라 서로를 쳐다보다 조용히 고개를 돌린다. 그래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으나 그말은 곧, 도발이었다. 한석율에 대한. 석율의 눈빛이 무엇인가 말하는 듯 하지만, 그래는 동요하지 않는다. 사실, 최근 중국의 트렌드와 선호도를 보자면, 그래의 의견은 무리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그게 더 맞았다. 석율이 그걸 모를리는 없었지만, 여러모로 대량 생산에 있어 어려운 부분이 많은 일이었다. 결국,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30초 가량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30시간은 흐른듯했다. 그리고 회의실의 침묵은, 김과장님에 의해 깨어졌다. 




"트라이(Try) 해보고 다시 결정하자" 



김과장님은 시계를 보시곤, 외근 나가셔야 할 시간이라며 일어나셨다. 네. 석율과 그래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지혜와 성훈이, 챙겨온 노트북과 정리된 자료를 챙겨 따라나선다. 곧 점심시간인데. 보통의 경우는 콜라보하는 팀끼리 점심을 함께 하곤 했다.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석율과 그래는, 점심시간은 대부분 함께였다. 헌데,




"지혜씨, 회의록 정리는 오후에 하고. 점심 같이 하죠" 

"네? 네 대리님," 




석율은 지혜에게 점심 제안을 한 뒤, 천천히 회의실을 나서던 그래를 제치고, 빠르게 회의실을 나간다. 그래의 걸음이, 그의 행동에 잠시 멈추어졌다. 뒤따라 나서려던 성훈도 어찌할바를 몰라 허둥지둥. 그리고 성훈은 그 순간, 작게, 그래의 한숨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그래는 곧, 성훈을 돌아보며 웃는다. 우리도 먹죠, 점심. 하는 그의 미소가 어쩐지 조금 씁쓸하다. 









"저어.....대리님," 

밥을 먹으려던 성훈이, 조심스레 그래를 부른다. 응? 찌개를 시켜놓고 휘휘 국물만 젓고 있던 그래가, 성훈의 부름에 고개를 든다. 


"찌개에 빨려 들어가실 것 같습니다" 

"아..." 


나름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띄운 농담인데, 그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는 듯, 미안해요. 밥 시켜놓고 매너없게. 하며 웃는다. 아뇨. 그런뜻이 아니라....., 



"괜찮으십니까....?" 

두서없는 성훈의 말이지만, 그래는 이해한다. 그리곤 성훈을 보며, 씁쓸한듯, 예쁘게 웃는다. 김성훈씨. 네...? 




"되도록이면, 사내 연애는 하지 말아요" 









그래는 아까부터, 제 폰 한번, 그리고 하얀 봉지 한번을 번갈아 가며 보고 있다. 혹시나 해서 사내 채팅창도 확인해보지만, 석율에게서 수신된 메세지는 없다. 폰도 아까부터 잠잠하다. 문자를 보내려는 그래의 손이 망설여진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포기한 듯 액정을 꺼버리고는, 성훈을 부른다. 

"성훈씨, 이거 섬유팀 한대리님한테 좀 갖다 줘요" 

네-. 그래가 건넨 서류와, 하얀 봉지를 함께 받아든 성훈이, 안에 내용물을 흘끗 확인하고는 별말 없이 석율의 팀으로 향한다. 






"한대리님, 여기 아까 회의때 말씀하신 자료입니다" 

"아, 고마워요" 

"그리고 이거.. ㅡ" 



자동반사적으로 손을 뻗은 석율이, 잠시 멈칫. 장대리님이 보내셨습니다. 아..., 그래, 고마워요. 석율이 성훈이 건넨 것을 받아든다. 잠시 바라보던 성훈이 나가려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곤, 


"똑같은거. 장대리님도 아까 드시더라구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석율이 그제야 봉지 안에 든 것을 확인하곤, 픽- 소리없이 웃는다. 소화제다. 피차, 서로에겐 불편한 점심시간이었으리라. 잠시 물끄러미 봉지를 바라보던 석율은, 곧 물한잔과 함께 그것을 입에 털어넣는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식사자리에선, 그래는 어김없이 체하곤 했다. 오늘은, 제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석율이 살짝 망설이다 문자를 보낸다. 





띠링- 


성훈이 자리에 돌아왔고, 잠시후에 그래의 핸드폰이 문자가 왔음을 알린다. 평상시와는 다르게 이모티콘 하나 없는 문자지만, 그래의 표정은 아까보다 한결 풀어져있다. 




[뭘 잘했다고 체해. 선빵 맞은 나라면 모를까] 









"퇴근합니다. 내일봐 성훈씨-" 



석율은 보나마나 야근일테다. 기다려줘야 하나 망설이던 그래는, 이내 마음을 바꿔 집으로 향했다. 청소해야지. 냉장고도 좀 채워놓고. 늦은 밤, 지쳐 돌아올 석율에게, 어지럽혀진 집안으로 다시 머리가 갑갑하도록 만들고 싶지 않은, 그래의 작은 배려였다. 
집으로 돌아온 그래 역시도 피곤한 몸이지만, 조금씩 정리되어가는 공간을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 침대의 이불까지 반듯하게 다시 정리한 그래가, 쇼파에 앉아 그제야 커피 한잔을 마셔본다. 



사내 비밀연애. 5년. 어찌 매번 좋은 일만 있었으랴. 어쩔 수 없이 외면해야 하는 일도, 오늘처럼 업무에 관해 이야기 하다 의견의 대립을 보이는 일도, 더러 있었다. 집에서의 일을 회사로 가져가지 않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회사에서의 일을 집에 가져 오지 않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람이니까. 감정의 동물이니까.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불쑥, 울컥할때가 있었고 그 감정이 격해져 싸움이 되는 일도, 없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연인이기 이전에 상사맨이니까. 일단은 이익을 창출해내야 하고, 계약서로 말해야 하고, 결과로 보여야 하니까. 


누군가 새로이, 사내연애를 시작했다고, 저나 석율에게 고민 상담을 한다면, 하지 말라고 조언할거라는 것에, 두사람 다 동의를 하곤 했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어려운 일. 하지만 동성이기에, 조금 더 어려웠던 일들. 그래도 다행인건,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헤어질 수는 없었다는 걸. 섬유팀 한석율 대리를 사랑한게 아니라 한석율을 사랑하니까. 영업3팀 장그래 대리가 아닌, 장그래를 사랑하니까. 









지이잉- 지이잉 - 



"응, 나야" 

-더 해야 해요? 

"큭... 응. 같이 콜라보 하는 팀 대리가, 완전 큰~ 숙제 내줘서. 피곤해 죽~겠는데." 

-푸흣.. 와... 그 대리 나쁘네! 내가 혼내줄까요? 

"아니~ 오늘은 내가 직접 좀 혼내주려고" 

-엉?? 어떻게..? 

"문열어, 자기야" 



으응?? 전화는 끊어지고, 어리둥절하던 그래가, 곧 이해하고 얼른 현관문을 열자, 석율이 앞에 장난스런 웃음을 띈 채 서있다. 




"이렇게." 

"ㅁ...읏, 읍!" 





집 안으로 빠르게 들어온 석율은, 숨 쉴 틈도 없이, 그래에게 입을 맞춘다. 바깥 바람에 차가워진 석율의 입술은 곧, 따뜻하고 붉어진 그래의 입술에 함께 뜨거워진다. 벌어진 틈새로 곧장 안으로 들어간 석율이, 거침없이 그 말캉한 그래의 혀와 만나, 엉킨다. 한 손으로는 그래의 옷을 말아 올리고, 그리고 또 한손으로는 그래의 허리를 잡으면서도 그를 침대로 데려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석율은, 그래가 침대에 끄트머리에 다다르자 망설임없이 그의 옷을 걷어낸다. 제 몸이 점점 침대쪽으로 뉘여지자, 그래 또한 석율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러나간다. 시트 갈았네..? 그 상황에서도 변화를 귀신같이 찾아낸 석율이 묻자, 그래가 웃으며 끄덕. 한다. 



"나한테, 할 말 없어?" 

"흐읏, 뭐, 뭐요.. 흐.." 

"미안하다던가, 너무 쎄게 나갔다던가?" 

"하앗, 한대리님한텐 없고, 흣, 한석율씨한테는, 있고." 




오호라. 일에 관한한 미안할 게 없고, 그치만 어쨌든 상처 받았을 내게는 미안한것이 있다? 그래의 현답에 씨익- 입꼬리를 올린 석율이, 더 깊게, 그에게 겹쳐온다. 




"해봐, 할말" 

"아읏, 미안, 해요" 

"말고." 





"............ 사랑해, 한석율" 








장그래, 한석율 

사내연애, 5년차. 




이상 무.


(+) 



삐빅- 삐빅- 삐비비비비빅-



"석율씨...... 알람......., 으응?"



곁에 누워 있어야 할 석율이 없자, 그래가 눈을 뜬다. 어디갔지. 시간을 확인해보려 폰을 드는데, 석율에게서 문자가 하나 와 있다.



[영업3팀 깐깐하신 장대리님 숙제 해결하러 현장 갑니다]



푸하하, 문자에 한석율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아, 잠이 덜 깬 상황에서도 웃음이 난다. 아, 나도 일어나야지. 폰을 제자리에 두려고 협탁을 보는데. 응? 무언가 프린트 된 서류가 있다. 몸을 일으켜 그 서류들을 훑어보던 그래의 얼굴에, 가만히 미소가 번지고 이내 환한 웃음으로 변한다. 


울 92, 캐시미어 8. 나일론 혼용을 없앴지만, 울의 혼용율을 높이면서 질감과 두께를 잡았다. 샘플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이정도면 그래가 원하던 결과에 99% 만족하는 샘플이 나올것이다. 첨부된 원가비를 보니 가격도 훨씬 더 이전보다 훌륭해졌다. 




그래는 얼른 핸드폰으로 캡춰를 떠 김과장님께 전송한다. 잠시 후, 전화가 울리고 발신자는 김과장님. 네 과장님, 네. 이렇게 가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아 아마 오전에 트라이 샘플도 나올 거 같은데요. 네.....,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통화를 계속 하던 그래가, 마지막 장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을 보고, 네 과장님,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하며 전화를 끊는다. 


메모를 보던 그래의 얼굴이 발그레 해지고, 예쁜 미소가 귀에 입이 걸리도록 웃는다.






[앞으로 도발은, 회의실 말고 침대에서만♥ 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