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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단편

[석율그래] Aroma

[석율X그래] Aroma 



부제 - Yes, It's Special Day 



Written by. shp 








= 어쩌지? 나 아직 현장인데. 오늘 점심도 혼자 먹어야겠다. 미안, 우리 그래그래~ - 석율씨 



또..?, 벌써 며칠째인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석율에게서 온 문자를 보던 그래는, 저도 모르게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쉰다. 섬유팀이 큰 프로젝트에 들어가,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는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왠지 항상 더 바쁜쪽도, 종일 종종거려야 하는 쪽도 본인의 몫인것만 같았는데. 요 며칠 석율의 얼굴을 보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버렸다. 지난 밤, 그래가 잠든 곳은 분명 석율의 침대였지만, 석율이 밤 늦게 들어와 새벽같이 나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던 유일한 단서(?)는 비몽사몽간에 그래를 살풋 껴안아 잠을 청하던 석율의 따뜻한 느낌과, 그것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살짝 흐트러진 반대편의 시트가 전부였다. 이러다 얼굴 까먹겠다, 라고 잠시 생각하던 그래가, 이내 세찬 도리질을 한다. 애인이 바쁜데 넌 투정이나 부리냐. 장그래 진짜 못난놈이다. 얼른 마음을 고쳐먹은 그래가, 잠시 생각하다 토독토독, 채팅창에 한글자 한글자 정성들여 글자를 입력한다. 




바빠도 점심 거르지 마요. 여기까지 쓴 그래가, 또 잠시 생각하더니 보고싶다, 라고 쓴다. 아, 아니다. 행여 일하는 사람 마음 무거울까 싶었던 그래는, 보고싶다, 라고 쓴 부분은 지워버리고 다시 토독토독. 





= 바빠도 점심 거르지 마요. 석율씨 화이팅 ♥ - Yes♥ 














"장그래씨도 점심 가는겁니까?" 




석율과 함께 먹을 땐, 종종 회사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잠깐의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지만, 석율이 없으니 이마저도 모든게 귀찮아 그냥 구내식당에서 먹자, 싶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그래 옆에, 백기가 다가와 아는체를 한다. 아, 네, 장백기씨. 반가운 듯 그래가 살짝, 목례를 하는데, 인사를 받던 백기의 시선이 저를 향해 있지 않다. 뭐 있나, 싶어 휙휙 돌아보던 그래가 그 이유를 찾지 못하고 다시 백기를 보자, 아, 한석율씨는 없네요, 한다. 헉, 순간적으로 뜨끔한 그래가, 아, 아 네, 그러네요, 하며 눈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를 찾는데, 백기가 아무렇지 않게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안타요 장그래씨? 아, 타, 타죠. 하, 하하. 





자연스레 동행이 되었으니 갑자기 멀찍이 앉아 먹는것도 이상하다 생각한 그래가, 쭐래쭐래 백기를 따라 합석을 한다. 백기가 완전히 원인터에 마음을 잡은 후 부터, 미묘하게 얽힌 두사람의 감정싸움(?)이야 지나간지 오래지만, 뭐 그렇다고 엄청 친하지도, 사이가 안좋은것도 아닌 이 둘의 관계는, 언제나 중간에 석율이 있었는데. 그 없이 이렇게 긴 시간 둘이 마주 앉아 본 것은 실로 오랜만이라 두 사람은 그저 연신 숟가락질만 해댄다. 여전히 할 말을 딱히 찾지 못한 그래가 슬쩍 핸드폰을 들여다보는데, 훨씬 아까전에 석율에게 보냈던 톡의 1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정도로 바쁜건가, 싶은 그래가 또 저도 모르게 후우-. 


"무슨 일 있어요?" 




아, 내가 또 나도 모르게 한숨 쉬었나, 싶어 아, 아니, 아닙니다. 그래가 손사래까지 쳐가며 부정하자, 백기는 또, 아 네, 하고, 또 흐르는 정적. 그러고보니 언제부턴가 백기가 제게 말을 걸고, 그 어투도 좀 누그러진것 같다. 맞아, 요전에 아플때도 석율씨한테 나 의무실에 있다고 알려준게 장백기씨랬는데. 봉사활동 때, 슬쩍 귀띔을 넣어준 것도 백기였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정확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든 그래가, 




"저..... 커피 한 잔 할래요 장백기씨?" 












막상 커피 한 잔씩 들고 옥상에 올라오긴 했는데, 뭐라 운을 띄워야 될지 모르겠다. 다짜고짜, 혹시 아시는거냐 물을수도 없고 - 그랬다가 아니면 어떡해, 정말 그냥 우연한 얘기였음 어떡해 - 싶은 그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허둥지둥 하는데, 


"걱정 하고 있는거면, 안해도 됩니다" 하는 백기. 뭘 말입니까 물을 새도 없이, 알잖습니까, 내 일 아닌 일에 이래라 저래라, 나 그런성격 아닌거. 하는 백기. 여전히 대답도 아무말도 없던 그래를 보던 백기가 그럼, 하고 돌아나가려는데, "장백기씨," 하고 그를 부르는 그래. 




"저어..., 저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어차피 계약이 끝나면 없어질 사람일지 모르니까요. 그래도 부탁, 합니다. 한..석율씨는, 여기에 남을지 모르잖습니까." 


그래의 말은 끝났는데, 백기가 왠일인지 더이상 말이 없는 그래를 가만히 본다. 제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싶어 여전히 꼿꼿이 서있는 그래를 보던 백기가, 이내, 



"누구랑, 같은 말을 하네요, 장그래씨" 




뜬금없는 백기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여전히 미동 없는 그래를 뒤에 두고, 옥상을 빠져나가던 백기는, 며칠 전, 석율과의 대화를 생각한다. 




- 굳이 여기저기 말하고 다닐 사람은 아닌건 알지만, 혹시나 해서. 눈치 챈 그 즈음에서, 그저 모른척, 해줘요 백기씨. 장그래씨, 나 아니어도 여러면에서 사람들 입방아에 오를 일이 많은 사람이잖아요. 


- 어째.. 본인은 별 상관없다는 투로 들리는데요 


- 개벽이, 변태, 이상한놈 소리 듣는 나야 뭐 그 이상 더한 소문도 그저, 그런놈이 또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장그래씨는 이런 것들에 익숙하지 않아요. 그렇잖아도 절대 안된단거 내가 밀어부친거라, 더 이상 상처는 보태고 싶지 않네요. 




답지 않게 제게 존댓말까지 하며 진지하던 그때의 석율의 얼굴이 떠올라, 픽, 웃음이 나는 백기. 나의 정의가 아니던 장그래씨는, 일도, 사랑도, 나의 정의가 아니네요. 어쩐지, 백기의 얼굴에 따스한 기운이 도는 듯하다. 














"어이 장그래, 한석율이 어디 아프대냐?" 


열심히 데이터를 입력하던 그래를 모니터 너머로 흘낏 보던 오과장님이, 툭, 말을 던진다. 아..., 하던 그래가 뒤를 돌아보는데, 그보다 먼저 김대리님이, 



"섬유팀 이번 프로젝트 엄청 크잖아요, 한석율씨도 정신 없지 않을까요? 왜요 과장님, 한석율씨 안보이니 보고싶으세요?" 


"보고 싶기는! 방앗간 지나치는 법이 없던 놈이 안오니 신기해서 그런다, 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그래는, 또다시 의자를 돌려 모니터를 쳐다보고 타닥타닥 키보드를 친다. 그러게요 과장님, 저도 알고 싶습니다. 속으로만 삼킨 그말이, 어쩐지 씁쓸한 그래다. 어제는 퇴근하고 집에 가니, 석율이 업어가도 모를만큼 곤히 잠들어 있었다. 깨울수가 없어 살며시 옆으로 다가간 그래를, 석율은 잠결에 '왔어...?' 안아주었었다. 그렇게 깨어난 아침엔 '너무 잘 자길래 조용히 나가. 출근 잘해, 그래그래 ♥' 라던 석율의 문자만이 남아있었다. 



점심 어떻게 할건지 문자도 안오네. 그 이후 몇 번 그래의 핸드폰이 울렸지만, 모두 업무에 관한 일이나 스팸일뿐, 석율에게서는 단 한 통의 문자도 없었다. 꼭, 멀리 어디 출장 보낸거 같다, 싶던 그래가, "김대리, 장그래, 점심이나 먹으러가자!" 하는 오과장님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려 자리에서 일어난다. 












"장그래씨, 설렁탕 맛있었지?" 



좋은 음식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그 행복은 그를 배부르게 한다-는 모토(?)를 갖고 계신 김대리님이, 물어보나 마나한 질문을 그래에게 한다. 네, 하며 그래가 김대리님을 향해 대답하며 웃는다. 아마 자신이 아니요, 했어도 네, 로 알아들었을 김대리님이 오과장님을 보며, 과장님, 그래씨, 커피는 제가- 하는데, 




"어이구? 한석율이 연애 하느라 바빴던건가보네!" 하시는 오과장님의 말에, 한석율 이라는 이름에 자동반사처럼 고개가 돌아간 그래가, 오과장님의 시선을 따라 가는데, 있다. 진짜로. 며칠째 말 한 번 제대로 못 섞어본, 제 연인이. 저 카페 안에. 한석율이 말이다. 


"이햐~ 그런가보네요, 옆에 여자 이쁜데요? 역시 젊은 사람들은 다른가봐요, 아무리 바빠도 연애는 하네요" 하는 김대리님. 



여...자? 며칠만에 눈 뜬채로 마주하는 연인이 반가워, 티 내지 못하고 쳐다보던 그래에게, 김대리님의 말이 닿아 그제야 슬로우 비디오가 돌아가듯 천천히, 옆자리에 시선이 돌아간다. 석율 옆에, 진짜, 여자가 있다. 그것도 아주 예쁘고, 자신보다, 석율보다 어려보이는 듯한. 심지어, 석율이 웃는다. 예의 늘 자신에게만 향했던, 접대식 웃음이 아닌 진짜 석율의 미소다. 석율을 따라 웃은 여자가, 그에게 무언가가 들어있을 쇼핑백을 건네고, 내용물을 확인하는 듯했던 석율은 또다시, 웃는다. 


"부러우면 너도 좀 해 김대리야!" 진심인듯 말씀하신 오과장님에게, "과장니임!!!" 하고 김대리님이 툴툴과 징징의 어디쯤인듯 말하자, "왜! 뭐! 넌 좀 해야돼!" 하시는 오과장님이 이번엔 그래를 향해, "어이 장그래!! 행여 따라할 생각이나 마라! 연애도 한석율이 정도의 능력은 되야 하는거야! 넌 아직! 일이나 더 배우고. 알았어?" 또 걱정섞인 툴툴로 말씀을 하신다. 


사고회로가 아예 멈춰버린듯한 그래의 눈에, 카페 안의 두사람이 모습이 마치 티비의 장면인냥 지나간다. 네?.. 네... 무슨 대답인지도 모른채 멍하니 말하는 그래에게, "뭐해 장그래씨, 안가?" 하는 김대리님. 또 멍하니 아, 아 네.. 하는 그래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마치 잔상인 듯, 지워지지 않는, 석율과 여자의 모습이, 그래의 뇌리에 박힌다. 












"아...," 



무슨 정신으로 오후 업무를 했는지, 어떻게 퇴근한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일을 했고, 시간을 보다 뭔가에 홀린듯 퇴근을 했고. 버스 번호도 확인하지 않고 탔던 것 같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석율의 집 앞이다. 오늘은, 집에 가려고 했는데. 이미 따로 지내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진지 좀 되었지만, 혹시나 주소지가 같으면 행여라도 문제가 될까 싶어 우선은 두었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그래의 발걸음은, 또 저를 석율의 집에 데려다 놓았다. 


퇴근한다던 문자가 없었으니 아직은 빈 집일 테지만, 어쩐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려는 그래는, 오늘따라 그 모든게 망설여진다. 한참을 숫자패드에서 나오는 파란 불빛만 보고 있던 그래가, 힘없이 번호를 누르고 들어간다. 


일단, 씻자. 그래는 뜨겁게 흐르는 물줄기에, 잠시 아무 생각없이 몸을 맡겨보지만, 낮에 보았던, 그 어느 한 장면이 지워지지 않는다. 




씻고 나와 냉장고를 뒤적이던 그래는, 습관적으로 재료들을 꺼내어 손질을 한다. 쌀도 좀 불린다. 야채들을 잘게 다져 살짝 볶다 불려진 쌀을 넣는다. 물을 붓고, 주걱으로 젓기 시작하는 그래. 예전, 길고 긴 대국을 마치고 돌아 온 그래에게, 승패에 상관없이 늘 상에 올려지던, 야채죽. 그때부터였을까, 무언가 생각이 많아지는 날, 그래는 야채죽을 끓이곤 했다. 












그를 믿지 못하는것은, 그건 절대 아니다, 라고 그래는 생각했다. 영업팀 사원인 제게도, 그런 자리 쯤이야 얼마든지 생긴다는걸 아니까. 거래처 사람일수도 있고, 일 때문에 필요한 사람일수도 있다. 그럼, 질투인가. 그것도 아닌것 같다. 아니, 질투일수도 있으려나. 다만, 그 모습을 보던 오과장님과 김대리님의 말들이 자꾸 생각이 난다. 


[한석율이 연애 하느라 바빴던건가 보네] 


[이햐, 그런가보네요] 



그 자리에... 그 여자의 자리에 내가 있었어도, 석율과의 모습이 그렇게 보였을까. 아마, 잠깐 짬내어 만난 원인터 입사동기 둘. 그쯤이 아닐까. 그것보다 더 나아가려 한대도, 친한 동기 둘. 혹은 친한 친구. 정도로 보였겠지. 다 아는 사실인데, 각오한 마음인데. 석율에게 정신없이 뛰어가 좋아한다 고백하던 그 날,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너 훨씬, 형편없다 장그래. 그래가 되뇌인다. 












지이잉- 지이잉- 



휘적 휘적, 그저 자동적으로 돌아가던 그래의 손이, 전화의 진동에 잠시 멈춘다. 



"아, 엄마.." 


-목소리에 왜이리 힘이없어.. 내일 집에 오는거지? 


"아... 내가 내일 들른다고 했었어요?" 


-얘 좀 봐, 얘, 그래야, 너 내일 생일이잖니. 얼마나 바쁘면..., 까먹었었던거냐? 



아. 생일. 내일이 생일이었나. 주민등록상의 생일과 진짜 생일이 다른 그래였기에, 진짜 생일엔 그 흔한, '생일을 축하합니다, 고객님' 문자도 없었다. 간혹 까먹긴 했지만, 그렇다고 잊고 살진 않았는데. 원인터에 입사 후, 늘 전쟁같았던지라, 정말 까맣게 잊은 그래였다. 


-얘, 그래야, 듣고있어? 


"아, 네 엄마. 갈게요, 내일." 




주머니에 핸드폰을 다시 넣는데, 다시 지이잉- 지이잉- 울린다. 


"왜 엄마, 뭐 까먹으셨..." 


-그래그래~^^ 어머니랑 통화중이었어? 어디야? 



석율이다. 며칠만에 들어보는 목소리. 그리움인지, 설레임인지, 아니면 낮에 일때문인지. 왠지 모를 떨림까지 느껴지는 그래였다.  



"집,.. 집이에요" 


-응? 우리집 아님 자기집? 


"석율씨 집-. ..... 퇴근했어요?" 


-응, 나 퇴근했어요. 보고싶다, 우리 며칠만에 제대로 보는거야? 그래그래, 나 안보고 싶었어? 




보고싶었다, 보고싶었다 엄청. 하지만 목끝까지 차오른 그말이 왠일인지 쉽사리 나오질 않던 그래는, 얼른 와요. 하고 전화를 끊는다. 야채죽이, 다 되었다. 









삑,삑,삑,삑- 띠리링~ 


현관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래는 갑자기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다. 장그래, 왜이래. 스스로에게 반문하지만, 이유 모를 이상한 기분이 그래를 덮쳐와 차마 뒤를 돌아 볼 수조차 없다. 이미 오래전에 불이 꺼진 냄비만 바라보며, 그래는 다 되고도 남은 야채죽을 젓는다. 



"왔어...ㅇ..." 


겨우 겨우 스스로 가라앉힌 그래가, 짐짓 평소처럼 인사하려는데, 


"하......, 죽는줄 알았네, 장그래 보고싶어서...." 


뒤돌아선 제 목덜미에 깊게 얼굴을 묻어 뜨거운 숨을 뱉어낸 그가, 한 팔로는 꽈악, 그래의 허리를 안아버린다. 흣,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지만, 그 따뜻함에, 그 엄청난 뜨거움에, 왈칵, 눈물이 나려는 걸 겨우 참은 그래가, 씻구와요.., 말해보지만, 으음...잠깐만, 하며 이미 허리를 지나 점점 더 아랫쪽으로 내려가는 석율의 손과, 동시에 목덜미를 지나 점점 위로 올라오는 그의 입술이, 그가 전혀 그럴기미가 없음을 말해주고있다. 



"석율씨..." 


살짝 힘을 주어 석율을 겨우 떼어낸 그래가, 석율과 얼굴을 마주하려 뒤를 도는데, 





"-!!" 



식탁 위에, 석율이 들고 들어왔을, 쇼핑백이 보인다. 아까 낮에 보았던 것이다, 라는 생각이 스치며, 해사하게 웃던 예쁜 여자와, 그리고 그 앞에 마치 맞춰놓은 퍼즐처럼, 어색하지 않았던, 낮에 본 석율의 모습이 다시금 오버랩 되어 떠오른다. 흡, 그래는 얼른 고개를 떨구지만, 어느새 그보다 먼저 툭 떨어진 눈물을 본 석율이, 놀라 눈이 커진다. 



"그, 그래야, 자기야... 울어?? 왜, 응? 내가 너무 보고싶었어? 회사에서 무슨일 있었어? 어머님 어디 아프시대? 왜, 왜그래 그래야, 나 좀 봐봐, 응? 고개 좀 들어봐," 


갑자기 난데없이 눈물을 보이는 제 연인의 모습에 당황한 석율이 제발 저 좀 보라며 쉴새없이 질문하지만, 한 번 터져버린 그래의 눈물이, 좀처럼 마를새가 없다. 


울면, 안되는데, 그런게 아닌데, 난 그를 믿는데. 장그래, 왜울어. 그래 스스로도 제 자신을 타이르지만, 머리와 마음이, 그리고 눈물이, 이미 따로 놀아버린 지금, 제 자신도 이 눈물을 멈출 방법이 없다. 











"그래야... 나 좀 봐...응??" 


어쩔줄을 몰라 그저 떨리는 그래의 등을 토닥이는 일 밖에 할 수 없던 석율이, 어느정도 잦아드는 그래의 숨소리에, 허리를 숙여 눈을 맞추려한다. 어느새 그많은 눈물이 나온건지, 새빨갛게 충혈된 그래가 아직도 진정되지 못한 호흡에, 힉, 끅, 소리를 내며 겨우 눈을 맞춘다. 


"왜...., 응? 말을 해야 알지 내가. 자기야..." 



그 다정한 말투에 또다시 왈칵, 하려 하지만, 묻고싶어졌다. 유치해도, 정말 찌질해도, 제가 오해한거래도. 그래서 차라리 그가 화를 낸대도. 그의 입을 통해 듣고싶어졌다. 흐...후우... 하며 호흡을 겨우 가다듬은 그래가, 



"낮에...., 현장에 있었어요?" 



아니, 거래처 직원이랑.. 식사 대접해야 해서. 그래는 석율의 목소리로, 그런 류의 말이 들려올거라고 생각하며 그를 본다. 헌데, 순간 여유로움이 넘치던 석율의 눈빛이 갈곳을 잃고, 응? 어어... 한다. 쿵.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라는 표현은, 이럴때 쓰는걸까. 그게 아니잖아, 그게 아니잖아요 내가 원한건....! 입 밖에 내지 못한 소리가 다시금 울컥 올라와 눈물로 차오르려 한다. 



"봤........어요, 낮에. 오과장님이랑 김대리님이랑 점심 먹고 나오다가....." 



아직까지도 이 작고 여린 연인의 눈물의 의미를 몰라, 그 입술에서 도대체 무슨 말이 나오려나 그래의 얼굴만 보던 석율이, 그래의 말을 듣자 그에게 없을것만 같던 표정을 나타내며, 아....이런... 봤어? 하는 그의 낯빛에, 아, 낭패다 싶은 표정이 스친다. 



누구...에요, 차마 물을 용기도 없이 그 표정에 더욱 바르르 떨어버린 그래에게, 석율이,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그래야, 한다. 석율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그래는 자꾸 몸이 떨려오는걸 어쩔수가 없는데, 계속 제 양 어깨를 그러잡고 있던 석율이, 갑자기 식탁으로 걸음을 옮겨, 머뭇대다 쇼핑백을 든다. 차마 그쪽으로 고개 돌릴 생각도 못하고 굳은 채 서있는 그래에게, 석율이 그래의 손을 끌어 그 쇼핑백 안에 있던 것을 볼 수 있도록 내민다. 



"미안....... 이것 때문에..." 하는 석율을 올려다보다 이내 석율이 내민것을 떨리는 손으로 받은 그래가, 조심스레 상자를 연다. 안에 든 것을 확인한 그래가, 너무 놀라 또 그자리에 굳었다. 장그래 이 미친놈. 이라 생각하며 그래는 방금 전까지의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상자 안, GR, SY. 서로의 이니셜이 새겨진 향수 두병이, 예쁘게 나란히 담겨져 있다. 얼떨떨하게 그저 내려다 보고만 있는 그래를 다시 저와 눈 맞추게 한 석율이 좀 부끄러운듯 말을 시작한다. 





"하고 싶은거.. 해주고 싶은거 많았었어. 네 몸에 지니고 다닐 것 중에 하나 정도는, 내가 해주고 싶어서. 생각나는건 엄청 많았는데... 반지도, 팔찌도, 시계같은것도.. 너무 티가 나는 것들 뿐이라. 난... 괜찮은데... 혹시나..." 


"그래...서..." 


"응, 향수는... 그건 눈에 보이는건 아니지만 몸에 스며 있으니까... 근데... 대충 아무거나 사주고 싶진 않고... 내가 직접 만들어주고싶어서..." 


미안..., 그동안 내가 너무 안보였었지...? 하며 따스히 웃은 석율이, 우리 그래 제대로 좀 안아보자,며 아직 석율의 말을 더듬더듬 이해하고 있는 그래를, 품에 넣는다. 





"늦게 들어오고 새벽에 나간거...... 그럼 이것...때문에..." 


"큭.. 그러게. 하필이면 프로젝트 들어가서 어디 현장 간다고 뻥치고 갈 수도 없고. 현장은 가야 되니까. 새벽이랑..저녁밖에 시간 없어서. 아, 우리 자기 보고싶은거, 저거 만들면서 겨우 참았어" 


"낮에 그분도 그럼..." 


"아, 응.. 하하, 내 사촌. 조향사. 우리 집안이, 뭐 하나씩 좀 특별하게 발달한 구석이 있는데. 난 촉감, 걔는 후각. 근데... 그래서 운거야? 나 바람난줄 알고?? 장그래씨, 대답해봐~" 





너무 미안해서, 너무 고마워서, 그것도 모르고 하루종일 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건지, 싶어 끝없이 속으로 자신을 책망하는 그래를 아는지, 왜 날 못믿었냐는 그 흔한 투정 한 번이 없이 계속 따뜻하게 말해주는 석율의 다정함에, 그의 품안에서 더욱 고개가 푹, 숙여지는 그래가, 그런건... 아니에요. 겨우 말한다. 당신을 믿지 못한적은 없어.. 다만..., 하며 속으로 웅얼대자, 그 또한 알았다는듯, 다시 석율이 그래를 보며, 




"알아... 나 못믿은거 아닌거... 그래도...니가 무슨 생각했을지는 아는데.... 그러지 말아주라 그래야...응? 안그래도 백기씨가 알게 되서.. 나 지금 만천하에 그냥 공개해버리고 싶은거 참는데... 니가 이렇게, 니가 나한테 얼마나 큰 지... 스스로 몰라주면, 나 진짜 그냥 다 말해버리고 싶어지잖아..." 짐짓 장난기어린, 진심인듯한 석율의 따스한 말에, 그래는 어제 백기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 누구랑, 같은 말을 하네요, 장그래씨 


"알고...있었어요?" 그래가 묻자, 당연히. 너도 알았어? 되려 놀라는 석율이다. 우리 그래, 놀랐겠네. 한다. 그러다 퍼뜩 생각이 난듯, 아, 잠깐만, 하더니 핸드폰을 슬쩍 본 석율이, 울어서 더욱 발갛게 되어버린 그래의 입술에, 깊고 따뜻하게 입을 맞춘다. 







"Happy Birthday, My love. 태어나줘서, 고맙다 그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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