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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JOY

JOY - 06 (下)

[석율X그래] JOY - 6 (下) 


부제 - 지켜, 우리, 같이, 계속. 



Written by. shp 










*미래물 & 임신물 & 현실성 없음 주의* 
*배경 - 5년 후 (장그래 대리 & 한석율 대리)* 





그러니까 그 일은, 

기적, 이라고 밖에는. 







드륵- 


"어... 왔어?" 

"네, 어머니. 죄송해요.. 놀라셨죠..." 

".... 어디 너희만 했으려고. 방금 막 잠들었다. 석율이 너도 피곤할텐데 얼른 자.. 참... 내가 있어도 되는데 그런다...." 

"아니에요. 제가 있어야죠 어머니. 병원 침대, 불편하셔서 안돼요" 



잠시 석율과 눈을 맞추시던 어머니는, 이내, 그래 그럼 엄마 갈게, 하시고는 옷가지를 집어 드신다. 언제나처럼, 나오지 말라시지만, 요 앞까지만요, 하면서 따라나서던 석율을, 어머니가 잠시 멈춰 서시곤 뒤돌아 보신다. ㅡ석율아, 


"네..." 

"그래, 말리지 마. 저 녀석 선택이었으니, 그저 그렇게 하도록, 두자" 







어머니께 택시를 잡아 배웅해 드리고, 다시 병실로 돌아온 석율이, 집에서 챙겨 온 여벌의 옷가지들과 이런저런 용품들을 정리해 둔다. 그래에게 연결된 혈압, 맥박 측정 기계와, 조이에게 연결이 된 태동 측정기가 규칙적인 기계음을 내고, 고요한 달빛만이 병실을 비춘다. 옆으로 누워 웅크린 그래의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석율이, 그의 이불을 재차 정리해주다 그래의 머리칼을 한 번, 배도 한 번, 두 손을 모으고 자는 그래의 손도 한 번, 토닥여본다. 


그러다, 간이 책상에 둔, 조이의 태교 일기를 집어 든다. 그 와중에 뭘 또 썼어... 싶어, 들춰보는데, 툭, 그 안에서 무언가 떨어져 나온다. 하얀 봉투. 뒤집어 보니, 반듯 반듯한 글씨로 써내려간, 아픈 글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 직 서, 장그래' 


[2016. 07.16. Joy's 태교일기] 

아가, 엄마야. 
우리 조이, 오늘 많이 놀랐지....?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조이야. 
우리 조이가, 우리 조이는.... 
이렇게 벌써부터 엄마를 위해 너무 많은걸 해주는데. 
엄마는 여태껏, 우리 조이를 위해 해준 것이, 너무 없는것 같아. 

.... 
그래서 엄마, 이제부터라도, 조이를 위해서, 아빠를 위해서 살아보려고 해. 
우리 조이가 좋아하는 것만 먹고, 우리 조이가 가고 싶다는 곳 가고- 
우리 조이가, 더 편하게 지내다 엄마랑 만날 수 있을 때까지, 
엄마 이제부턴, 그것만 신경쓸게. 

미안했어, 아가. 
진작에, 우리 아가를 위해, 그렇게 해주었어야 했는데. 
우리 아가가, 엄마에게 와 준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데. 
네가 아프면, 혹여라도 너를, 잃으면.... 
그 무엇도 더이상, 엄마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인데. 
...... 



글을 읽어내려가던 석율의 눈시울이, 어느샌가 붉어진다. 그래의 사직서를 쥔 손에도, 땀이 차오른다. 


- 우리 조이가, 나 이제, 조이 엄마로만 살라고 하나봐요... 우리 조이가, 오늘, 거기까지만 허락했어요 


그래가 그 말을 던졌을 때, 석율은 아무 말도, 긍정도 부정도 해 줄 수 없었다. 장그래한테 원인터가 어떤 회사인데, 제가 감히, 무엇을 말 해 줄 수 있었으랴. 그 말을 내뱉는 그래의 눈빛에, 한치의 흔들림도 없어서 더욱,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집에 가서 짐을 챙겨오겠다는 핑계로, 어머님을 불렀다. 더 이상 그와 마주하고 있다간, 엉엉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 미안하다고 무릎을 꿇어야 할 것만 같아서. 제 손으로 그래를, 무너트린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아서. 
ㅡ조이야.. 아빠 어떡하지...? 아빠 이럴땐, 어떡해야 돼, 조이야. 응...? 
달빛이 차오르는 밤, 그래의 곁에 엎드린 석율의 어깨가 조금씩, 떨려온다. 








"석율씨... 조이아빠..." 

"응? 어, 어어.. 깼어? 왜이리 일찍 깼어... 좀 더 자지" 



다음 날 아침, 보호자 침대에 불편한 자세로 누워 잠이 든 석율을, 그래가 조심히 깨운다. 혹여 어디가 불편해서 깬 것일까봐, 그 와중에도 화들짝 놀라며 그래의 안색부터 살피던 석율을, 그가 바라보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담아낸다. ㅡ나, 좀 씻겨 줄 수 있어요? 


혹시라도 몸에 무리가 올까 싶은 맘에, ㅡ응? 왜, 갑갑해..? 일단 물수건으로라도 좀 닦아줄까? 묻는데, 그럼 머리만이라도 감겨 달란다. 어제부터 그래의 눈빛엔, 너무 많은 말이 담겨 있어 바라볼때마다 아픈 석율이, 그를 조심히 휠체어에 앉혀 병실에 딸린 샤워실로 데려간다. 


"무슨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꽃단장이야, 우리 조이엄마..." 


별 생각 없이, 툭 던진 석율의 말에, 그래가 덤덤한 듯 말한다. ㅡ올 사람이, 있어서요. 그래의 그 말에, 그의 머리를 샴푸로 감겨주던 부드러운 석율의 손길이 멈칫. 어제 밤에 보았던 사직서와 모든게 연관 돼 있는 말투였다. 짐짓, 모르는 척, ㅡ누..누구? 하고 묻는데, 그래의 다음 대답이 또 푹, 석율의 마음을 찌른다. 


"아침에, 김 과장님께 연락 드렸어요. 아무래도, 먼저 말씀 드리는게 맞지 싶어서..." 








[과장님. 저 장그래입니다. 제가, 몸이 안좋아서 입원을 했는데, 죄송하지만 좀 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어서요. H병원 5층, 508호입니다 - 장그래] 



그저 한가로이 가족과 함께 하려던 일요일, 그래의 문자를 받은 동식은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하나는, 장그래가 입원을 할 정도로 아프다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장그래가 그런 사실을 제게 말하고 뵙기를 청했다는 것이었다. 


"여보, 소영아빠, 어디 가?" 

"어? 어, 여보야 미안. 그래 녀석이 좀 아파서 입원을 했나본데, 나 좀 가봐야 할 것 같아" 


이제 막 아침 식사를 끝낸 딸아이를 안고 얼르던 동식의 부인, 은지가 ㅡ그래 씨가? 어디가? 얼마나? 하고 재차 묻는데도 다 답하지 못하고 재빠르게 옷을 입은 동식이, 갔다 와서 말해주겠다며, 그 와중에도 제 엄마에게 안긴 딸 소영이에게 쪽, 뽀뽀를 해 주곤, 허겁지겁 현관문을 나섰다. 





"5층...5...." 


그래가 알려준 병실의 호수를 찾아대던 동식이, 문득, 머리 위에 쓰여진 팻말을 올려다 보다 주춤. 눈을 비비고, 또 비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내가 일요일이라 너무 자다 잠이 덜 깼나..., 하지만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그 글자는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산부인과' 가 맞았다. 그제야 복도에서 저를 지나쳐가는,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도 다시 보인다. 모두 하나같이 어느정도 배가 부른 사람들이거나, 출산을 한 듯, 남편의 부축을 받아 이동하는 사람들. 정확히 1년 반 전, 소영이를 낳았던 은지와 제 모습이기도 했다. 여기에 장그래가 왜..., 의심이 가득해지는 순간, 드디어 그래가 알려준 호수, 508호가 눈에 들어왔다. 



"허허, 참, 장그래, 입원실이 없었어? 여기는 그, 니가 있어야 할 곳이ㅡ" 
ㅡ아니지 않아? 말하며 그래의 병실로 들어서던 동식의 눈빛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흔들렸다. 


"제가, 있어야 할 곳, 맞아요 과장님" 



동식의 눈에, 환자복을 입고 팔에 주사바늘을 꽂은 채 하얀 병원 침대에 자리한 그래가 보였고, ㅡ오셨어요, 과장님. 그의 등장에 일어나 꾸벅, 인사하는, 석율의 모습이 들어왔다. 잠시 주춤, 하던 동식이, 복도에 쓰여진 팻말을 다시 확인했다. 산부인과. 분명 그리 써 있었다. 병실 침대에 걸린 이름표도 눈에 들어왔다. 장그래 산모라고 쓰여 있었다. 







".... 그래서...." 


석율이 잠시 마실거라도 사오겠다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래는, 주춤하며 곁에 앉은 동식을 향해, 마치 책을 읽듯이, 그렇게, 그간의 이야기를 전했다. 동식의 시선이, 말하는 내내, 익숙한 습관이 되어버린 듯, 제 배를 조심히 쓸어내리는 그의 손짓에 아프게 닿았다. 마침내 그래가, 제 안에 조이가 있음을 모두 다 털어놓았을때, 조용한 침묵이 꽤 오랜 시간 흘렀고, 겨우 입을 뗀 동식에게서 흘러나온 첫마디는, ㅡ그래서. 


5개월이 넘어가는 시간동안, 그래는 이상했지만 불안하지 않았고, 의심스러웠지만 침착했었다. 그 말은 곧, 제 뱃속에 든 이 생명 만큼이나 회사를, 팀을, 제 자리를, 지키고 싶다는 뜻이었을터. 지난 5년간, 장그래는 아파도 숨어서 아팠고, 울어도 숨어서 울었다. 넘어질 듯 할 때에도,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 제 할일을 묵묵히 해냈다.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던 날, 그가 밤새 열에 들끓어 병원까지 가야 했다는 것도, 걱정이 된 석율이, 15층에 정확히 1시간에 한번씩 나타나는 걸 동식이 캐묻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일을 해내고, 어떤 상황에서도 제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지난 5년간, 장그래가 원인터를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그런 장그래가, 제가 아프다는 것을 동식에게 밝히고 여기까지 저를 오게 해, 그의 모든 비밀을 밝혀버렸을 땐, 분명 여기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란걸, 동식은 직감했다. ㅡ그래서, 네가 날, 여기까지, 꼭 불러야 했던 이유가 뭐야. 동식은 저도 모르는 새, 파르르 떨리는 손을 감추려 두 손을 맞잡아버렸다. 그래는 그런 동식과, 조용히 시선을 맞추어왔다. 5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무언의 대화였다. 먼저 시선을 피해버린 것은 그래였다. 그리고, 옆에 놓여진 서랍을 조심히 열어, 그 안에 든 것을 꺼내 동식에게 내밀었다.  '사 직 서, 장그래' 



"...!!!.... 장그래, 너..!" 


부들부들. 그래의 사직서를 손에 쥔 동식이, 그렇게 떨었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그래를 바라보던 동식의 눈빛은 미친듯이 흔들렸지만, 그래는 끝내, 그 시선을 마주하지 않았다. 


"과장님 선에서 수리 해 주실 수 있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그만 두겠습니다. 만약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때문에 망설여지신다면, 되도록 빨리 마무리 짓겠습니다. 처리되지 못한 사항은, 김성훈씨에게 일임할게요. 제가 사무실을 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필요하시면 그때ㄲ..ㅡ" 

"ㅡ너, 그 입 안 다물어?!" 

"... 과장님" 

"왜! 그래, 내가 니 과장인데. 너 어떻게 나한테 이런 말을 하냐, 장그래! 숨길 거 아니었어? 숨겨야 하는 일이었으면 나한테도 숨겨 그냥! 너, 너 이 자리 무슨, 땅따먹기 해서 올라왔어?! 내가 너한테 이런거 받자고 그 자리 너한테 물려준 줄 알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화를 내야 하는지조차 모르던 동식은, 자꾸 중간중간 목에서 쉰 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 큰 몸이, 끝내 덜덜 떨려 바닥의 한부분을 울리는 듯 보이기까지 했고, 그는 급기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난 오늘, 아무것도 못 들었다. 내일, 아니 당분간은 병가 처리 할 테니까 그리 알아" 

"..!, 과장님!" 

"시끄러! 병가. 병가라고. 원하는 만큼 쉬어. 하루? 이틀? 일주일? 그 이상은 어렵겠지만 여튼 니 월차, 연차, 다 끌어다 해놓을테니까 병가, 병가라고ㅡ" 

"ㅡ못, 갑니다. 과장님. 아이가, 더 이상 허락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이가, 저희 조이가,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습니다. 벌벌 떨리는 그래의 목소리에도, 그리고 쿵- 떨어지는 느낌으로 그 말을 듣던, 애써 돌아선 동식의 목소리에도, 알 지 못할, 물기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동식은, 다시 한 발자국 더, 문 앞에 다가섰다. 


"너 쫌! 나 니 과장이라며! 내가 니 위라며! 그럼 말 들어. 기다려! 너 자꾸 이걸로 허튼 짓 할 것 같아서, 이건, 내가 가져간다." 


그 말과 동시에 그가 쾅- 하고 병실 문을 열었고, 곧 뚜벅뚜벅, 구겨진 그래의 사직서를 손에 쥔 채 병실을 빠져나갔다. 어느샌가 병실 앞 의자에서, 주저 앉듯 웅크려져 앉아있던 석율이 벌떡 일어났고, 박차고 나온 동식의 시선이 맞물렸지만, 동식은 그대로,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병원 밖을 나섰다. 


미친 놈!!!!! 정신 나간 놈!!!!!!!! 기어이!!!!!! 
  
무거운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 동식의 외침이, 아직 채 문을 닫지 못한 그래에게도, 그리고 그 밖에 선 석율에게도, 아프게 들려 왔다. 





"그래야...." 

석율이 깊은 한숨을 내 뱉은 후, 다시 병실로 들어섰을 땐, 그래의 눈빛에서는 이미, 아픔이, 서러움이, 괴로움이, 재빠르게 지워진 뒤였다. 그리고 석율을 바라보며, 해사하게, 웃어보였다. 



".... 조이 배고프대요... 밥, 먹어요 우리..." 








"조이야.. 아빠왔다~" 

"흐음.., 조이만 보이나...?" 


결국, 오지 않을 것 같던 월요일이 왔고, 그래는 정말, 출근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출근 할 수 없는 몸이라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기도 했다. 그래의 침대에는 절대안정 이라는 팻말이 붙었고, 그래는 화장실도, 침대에서 내려오는 일도, 모두 조심하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였으니까. 그래 없이 홀로 출근했던 석율이, 병실로 퇴근해 돌아왔고, 태교 동화책을 읽고 있던 그래가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조이를 부르며 들어오는 그에게 부러 삐진척 말하자, 쪽, 얼른 그래의 입술에 키스한 석율이 웃었다. ㅡ그럴리가. 그래야, 부르고 들어오면 너무 떨려서 주저 앉을까봐. 


"하여간, 말이나 못하면. 별 일 없었어요...?" 

"어, 별일 없었어. 우리 그래는? 조이랑 잘 놀았어?" 


석율이 그래의 배를 쓰다듬으며 묻자, 그래가, 끄덕였다. ㅡ좋더라구요... 눈치 안보고 배 내 놓고 있고, 덕분인지 조이도 잘 놀아주고. 그 말이 왠지 아파, 석율이 부러 밝은 척, 


"나, 얼른 오려고 급하게 와서 아무것도 못 사왔는데, 뭐 사올까? 과일도 다 떨어졌지?" 

"엄마가 좀 채워주셨어요. 근데 나, 순대 먹고 싶어" 

"순대?" 

"응! 요 앞에, 아주머니가 순대 파시는 거 같던데. 창문으로 보였어" 

"큭... 이구, 어머니랑 사 먹지 왜..." 

"아니 그 때는.. 별로 안먹고 싶었어요..." 

"오구 그랬쪄요~? 알았어, 얼른 다녀올게. 앞으론 전화 하고 퇴근해야겠다" 


총알같이 나가는 석율의 모습에 흐뭇해진 그래가, 아기 목소리를 흉내내며, 아빠, 빨리 다녀오세요~ 한다. 석율이 그런 그래를 보며 눈 찡긋. 병실을 나선다. 




석율이 나간지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드륵- 하는 문 소리가 열리고, 다시 책을 보고 있던 그래가 시선을 책에 둔 채, 

"지갑 두고 나갔죠? 으이구, 어째 너무 빨리 나간다 했ㅡ" 하는데, 상대가 대답이 없다. 무언가 인기척을 느낀 그래가, 고개를 들자, 



ㅡ!! 

"부, 부장님." 

오 부장님이, 서 있었다. 








놀란 그래가,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보려는데, 그보다 먼저 그래의 절대 안정 팻말을 발견한 오 부장님이 다가와 앉아 그래를 제지한다. 


"... 뭐, 마실거라도..." 

"됐어" 



이후에, 또 흐르는 침묵. 그래가 어렵사리, 입을 연다. ㅡ죄송합니다... 부장님. 그리고 그런 그래의 말에, 계속 아래만 쳐다보고 있던 오 부장님도, 그제야, 그래를 바라본다. 이미, 다 듣고 오신 표정. 이미 다 듣고도, 믿을 수 없어, 한번은, 찾아와 봐야겠다 생각하신 표정. 그 표정에, 죄송하다는 말 조차 죄송해 그저 고개를 떨구는 그래였다. 


드륵- 


"그래야 나왔.., ㅡ!!... 부장님" 

때마침 돌아온 석율도, 오 부장님을 발견하곤 얼른 그래의 곁에 다가섰다. 오 부장님은 추욱 어깨가 늘어지도록 고개를 숙인 석율을 한 번, 그리고 그 시선 반쯤 아래에 자리한 그래를 또 한 번. 바라보신다. 



이 둘이, 사랑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도, 그래서 사내에 한 번 세차게 소문이 돌았을 때도, 오 부장님은 둘 중 누구도, 한 번을 부르지 않으셨다. 소문이 파다하게 한 번 휩쓴 그 날, 그래가 결제 서류를 들고 동식과 함께 찾아갔을때도, 오 부장님은 그저, 일상적으로 일에 대한 얘기를 하실 뿐이었다. 믿는다는건, 그런거니까. 


때로는 몇 마디의 말보다, 그저 한 두번의 행동이 훨씬 더, 강하게 다가오는 법이었다. 그래의 지금까지의 시간에, 엄마같이 살뜰한 동식이 있었다면, 그 뒤엔, 묵묵히 제 힘을 키워 더 큰 보호막을 쳐 주려 말없이 애 쓴, 오상식 부장님이 계셨다. 그런 그래가, 그렇게 지킨 그래가, 사직서를 썼다고, 그래서 길길이 날 뛰는 동식의 모습을 보셨으리라. 그리고 당신 눈 앞에, 그 모든 것이 현실이 되어 마주한 순간. 긴 침묵이, 드디어 깨어졌다. 



"꼭, 그래야 되겠냐" 


미쳤구나, 절대 안된다, 같은 말보다, 훨씬 더 아픈 말. 너, 꼭, 이 시간들을, 다 버려야만 되겠냐. 그런 부장님 말씀에, 그래가 아프게 눈을 질끈 감는다. 대답해야 하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마음 속 한 켠, 사실은 저도 잘 모르겠다고, 응석을 부려보고도 싶다. 어제까지는, 동식을 마주할 때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헌데, 오 부장님은 아니었다. 이건 정말, 아니었다. 그래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석율은 차마 못보겠단 듯 고개를 돌린다. 자꾸만 새어 나오려는 눈물에, 염치가 없어 입술을 꽉 깨무는 것으로 참아보는데, 그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던 오 부장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알았다" 


너무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너무 많은 말이, 담긴 한마디였다. 오 부장님은 무언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ㅡ다시 올게. 그 때까진, 잘 쉬고 있어. 



석율이 따라 나서려는 배웅도 마다한 채, 꼿꼿이 돌아 병실을 나서는 오 부장님의 모습을 바라보다, 그래가 끝내, 

"흐윽......." 

석율의 품에서 눈물을 보인다. ㅡ조이야, 엄마......, 엄마 사실은..., 








톡- 톡- 


석율은 아까부터, 계속, 연신, 볼펜을 책상에 두드리고 있다. 무언가 생각할 때, 어김없이 나오는 그의 버릇. 장 그래 대리의, 그렇게나 성실했던 장대리의 병가 3일째. 사람들은 의아해 했지만, 15층은 잠잠한 듯 보였다. 백기나 영이 중 누구도, 소식을 알려오지도 않았다. 오늘쯤에는, 뭐가 터지더라도 터져야 했다. 그래의 사직서가 정말 수리가 되던지, 아니면 오 부장님이라도 따로 저를 불러 뭔가 얘기 하셔야 했다. 물으시기라도 하셔야 했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알 수가 없다.  하아- 석율의 열 세 번째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띠링- 


[한석율. C 회의실로. - 영업부장 오상식] 




올 게, 왔다. 









"부르셨습니까" 

"앉아" 


C 회의실엔, 오 부장님과 김 과장님이 나란히 계셨다. 방금 막, 회의가 있었던 자리인듯, 군데 군데 정리 되지 않은 의자들이 보였다. 석율이 그 맞은편에 다가가 앉자, 오부장님의 고갯짓에, 김 과장님이 석율의 앞에 서류를 내밀었다. ㅡ잘, 읽어봐. 한 대리가, 장그래 보호자잖아. 


영문을 모르고 서류를 받아든 석율이, 하나 둘, 차례대로 읽어내려가다, 



ㅡ!! 

"부, 부장님, 이게, 이게 어떻게.." 


하며 놀라자, 그제야 김 과장님도, 오 부장님도 웃어보인다. 
ㅡ저녁에, 병원으로 갈 테니 그리 알아. 









"그래야" 

"짠! 나 이제 운동 조금 해도 된대요. 조이도 잘 놀고, 좋아졌ㄷ...ㅡ" 


ㅡ!! 

석율이 병실문을 열며 들어섰고, 그 뒤를 이어, 동식과 오 부장님이 함께 들어왔다. 병실 한 켠에 마련된 쇼파에 털썩 앉으신 두 분이, 그래를 향해 부른다. ㅡ뭐하고 섰어. 빨리 와 앉아. 


주춤대며 다가간 그래 앞으로, 테이블에, 아까 낮에 석율이 보았던 서류 뭉치가 하나 놓인다. 그래가 이게 무엇이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자, ㅡ잠깐. 하신 김 과장님이 큼, 헛기침을 하신다. 



"자아, 장 대리, 아니 장 그래. 잘 들어. 지금부터 부장님이랑 나랑 뭘 보여주고 설명을 할 건데, 장그래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딱 세 가지 뿐이다. 하나, 그러겠습니다 두울, 감사합니다 세엣,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이외에, 못하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안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따위의 대답은 들은 척도, 대꾸도 안할거야. 그럼, 대답" 


그 말뜻을 이해 못할 그래가 아니었다. 벌써부터 어쩌지 못하고 눈만 도록 도록 굴리는데, 옆에 앉은 석율을 바라보니, 어깨를 으쓱해보이고 웃으며, ㅡ대답, 하라시잖아. 한다. 



"장그래? 대답!" 

"......... 그러겠습니다" 

"오케이, 좋아. 시작할게." 




동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래의 앞으로, 서류가 한 장 한 장 놓이고, 그를 바라보던 그래의 눈빛이, 아까의 석율보다 더 훨씬 많이 떨려온다. ㅡ과장님, 부르는데, 그 부름을 가볍게 무시한 동식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ㅡ나 아냐, 부장님이야. 


부장님이, 하신 일이야. 라는 말에 그래가 차마 그 쪽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떨리는 눈빛이 되었다. 저 때문에, 또 한 번, 그 외로운 길에 놓이셨음을. 그래는 단번에 알아챘다. 그런 그래를 바라보던 오 부장님이, 하, 참, 하며 웃으셨다. ㅡ내가 무슨, 나도 아니다. 


"니가 한 일이야. 니가 한 일들이, 커져서. 회사에서 널 놓치지 않으려는 것 뿐이야. 난, 페이퍼만 볼 수 있게 한마디 던진 것 밖에 없다" 











<자택 근무 허가서>. 


가장 큰 글씨로 쓰여진 서류는 그것이었다. 장그래 대리는 앞으로 내년 1월 인수인계 시즌 전까지 자택에서 근무를 하는 것. 조이를 낳고, 몸조리를 할 정도의 시간으로는 충분했다. 타당성을 부여받기 위해, 주한의 설명이 첨부된 진단서가 있었다. 임신, 이라는 말만 쓰여있지 않았다. 나머지의 증상은, 지금 현재 그래가 가지고 있는 증상들이었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었다. 중한 병은 아니나, 사내 근무가 어렵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근무 시간은 보통의 그것과 같았지만, 사실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할 일이었고, 다만 아침 출근 시간에 맞춰, 영상 통화와 화상 회의를 통해 브리핑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앞으로 진행 될 프로젝트의 담당자 이름에는, 성훈과 그래, 그리고 김동식 과장의 이름이 모두 공동으로 들어가 있었으며, 이는, 과장의 재량으로 비중이 조절 될 부분이었다. 또한, 외부인사를 만나는 것에도, 그래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배려이기도 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동식이 놓여져 있던 것들 중, 또다른 서류 뭉치 하나를 내밀었다. 그간 그래가 해왔던 일들, 회사에 기여한 사항들이 빼곡하게 정리 된 포트폴리오. 그리고 그래가 회사의 이름으로 해 온, 인터뷰 기사들이 또 하나의 포트폴리오를 이루고 있었다. 



"네가 가장 버거워 한, 전무후무한 고졸신화.라는 타이틀이 이럴땐 쓸모가 있더라. 회사 입장에서도, 고졸신화라는 타이틀로 알려진 장그래가,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퇴사를 했다는 이미지는 결코 좋을 일이 아니니까. 장그래가 그동안 회사에 기여한 실적이 제일 컸지. 너를 잃는 것보다, 자택 근무를 시키는 게 회사에서도 훨씬 이득일테니까. 물론, 먼지 묵은 자택근무 제도를,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게 하신건, 오 부장님이 하신 일이고. 그리고-" 


ㅡ또 뭐가, 있습니까,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그래의 손에, 동식이 또 하나를 건네 준다. 추천서. 추천인은, 안영이 대리, 장백기 대리, 하성준 과장, 그리고 강해준 과장까지. 장그래가 자택 근무를 시행 하면서 까지도 원인터에 남아야 하는 이유들을 세세하고 정확하게 짚어내 준 사항들이 적혀 있었다. 원인터에 엄청난 네임밸류를 갖고 있는 사람들 넷이 뭉쳤으니, 그 위력이야 실로 엄청났을터였다. ㅡ추천서는, 조이 엄마 아빠를 위한 저들 선물이라고 해달라대. 동식이 웃어보였다. 


그 때, 오부장님이, 그래에게 서류 하나를 다시 내밀었다. 아까, 그래의 실적이, 그간의 프로젝트들이 빼곡히 담긴 포트폴리오 형식의 보고서였다. 



"네 뱃속에 조이만 중하냐 어디. 얘들은, 니 새끼들이 아니고?" 

".... 부장님..." 


그의 말에, 그래의 눈에 그렁한 눈물이 맺혔다. 내 새끼들. 잠을 못자고, 밥을 못먹어가면서까지도 제일 좋은 것들로 담아 제일 좋은 곳에, 제일 좋은 사람에게 보내기 위해, 또 받아내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노력했던 그래의 프로젝트들. 장그래 대리의, 금쪽같은 새끼들임에 분명했다 그런 그래의 어깨를 툭툭, 친 부장님이 말씀하셨다. 



"지켜. 조이도 지키고, 이 많은 니 새끼들도 하나같이 다, 지키고" 



"....제가, 어ㄸ..ㅡ" 

"어어? 내가 그런 대답 하지 말랬지" 



동식이 툭, 치며 말했다. 그를 함께 듣고 있던 석율이, 부드럽게 그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래가 고개를 숙였다. 



이미 너무 많이 받았다 생각했었다. 더 원하는 것은, 염치가 없는 일이라고. 그래서 감히 생각해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두 분이, 또 다시 저 때문에, 피해를 보게 할 순 없었다. 그렇지만 두 분은, 끊임없이, 이번에도 저를 지키신다. 감히 입 밖으로 낼 수 없던 마음까지 다 헤아려, 해결하시려한다. 오상식 부장이, 김동식 과장이 지키고 싶은, 내 새끼, 장그래를 위하여. 그 마음에, 그 감동에, 그 모든게 방울방울 눈물이 되어 흐르는 그래의 모습을, 지켜보던 동식이 미소짓는다. 


"애 엄마가, 뭘 이렇게 자꾸 울어. 조이야, 니네 엄마 이렇게 울보인거 넌 아니~?" 


동식이 웃으며 툭 던진 그 한마디에, 석율까지도 쿡, 웃어버린다. 



"장그래, 대답" 

"....... 그러겠습니다" 

"또" 

"감사합니다" 

"응. 또." 



"... 열심히 하겠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열심히, 지키겠습니다. 제 회사, 제 팀, 제 자리. 그리고.. 저희 조이까지도. 




"그래" 

니가 지켜야 하는 것이 생겼다면, 지켜. 우리는, 그런 너를, 지킬테니까. 






우리, 같이, 계속. 






















모두가 돌아간 저녁, 좁은 병원 침대에, 석율이 길게 기대 앉아 그래를 품에 안았다. 둘은 계속, 김 과장님과 오 부장님이 주고 가신 서류들을 보고, 또 들여다 보았다.



"나, 정말 이거 받아도 되는걸까요..."


이미 몇 번이고 설명을 듣고, 다짐을 받은 일이었지만,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그래는, 석율에게 또다시 물음을 던진다. ㅡ너무 죄송해서, 염치가 없어서. 그런 그래를 바라보던 석율이, 조용히 그의 어깨를 돌려 저를 바라보게 한다.



"이 세상에, 제 자식을 지키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어"

네가, 우리가, 조이를 지켜내고 싶듯이, 두 분도, 그러실테니까. 



석율의 말에, 또다시 몽글몽글 차오르는 그래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던 석율이, 그에게 입을 맞춰 지긋이 도닥인다. 그리고는 그래의 뱃속에 자리한 조이를 쓰다듬듯, 배를 문지른 석율이 웃는다. ㅡ무엇보다,




"우리 조이가, 아직, 장그래 대리로 살아가는 엄마가, 필요한가보다"

그런 그를 느끼던 그래가, 환하게 웃어보인다.





엄마..., 그래도 되는거야, 조이야...?


뱃속의 조이가, 마치 대답하듯, 이리저리 통통.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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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시간 고민한 이번편인데
글에서 잘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조이를 지키고 싶은 그래엄마와, 그런 그래를 지켜내고 싶은 오부장님&김과장님.


개인적으로, 드라마 미생에서 계속 얘기하던 것은 그것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지키는 것. 그래서 계속 버티라 말씀하시고, 이기라 하시는 차장님이 보였지요


JOY 2~3화에서는, 조이를 지키려는 그래와, 그런 그래를 지키려는 석율이 있었고
이번 6화에서는, 조이를 지키려는 율&래와, 그런 둘을 지켜주려는 사람들. (오부장님&김과장님&동기들)
혹은 제 자식의 결정을 무조건 이해해주고 싶은 그런 모성애 (그래 어머니)
....를 그리고 싶었는데, 되었나 모르겠네요.


여튼, 이제 우리 그래는,
집에서 열일하면서 조이 잘 키워 세상에 보이는것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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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편+외전+보너스가 있는 연재물입니다.
오메가버스 설정이 아닌 그저 '순수 임신물'입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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