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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JOY

JOY - 07

[석율X그래] JOY - 7 


부제 - 변화, 그리고- 



Written by. shp 










*미래물 & 임신물 & 현실성 없음 주의* 
*배경 - 5년 후 (장그래 대리 & 한석율 대리)* 





그러니까 그 일은, 

기적, 이라고 밖에는. 














"에이 아저씨~ 이거 다음 주 넘어가면 안된다니까요. 에헤이, 해주기로 해놓고 왜 이러실까. 라인 하나면 되요. 훗, 네 아저씨. 그럼 부탁 드릴게요~? 아, 이사요? 네, 잘해야죠. 네 감사합니다. 네, 주말 잘 보내세요" 


후우-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목이 다 아프려고 하네. 큼, 헛기침을 한번 한 석율이 문득 아까부터 잠잠한 그래가 궁금해 침실로 올라가보는데,




"큭, 하이구..." 


그 웃지 못할 광경에 실소가 터진다. 이삿짐 박스에 기대어, 한 손에는 성훈이 보냈을 자료를 들고, 한 손에는 펜을 든 채, 귀에는 아마도 동요가 흘러나오고 있을 이어폰을 꽂고 잠들어 있는 모습이라니. ㅡ조이야, 엄마 귀여워서 어떡하니. 게다가 그 뿐인가. 자꾸 배가 나와 불편하다며 석율의 반바지를 7부 바지처럼 입어 미처 옷이 가리지 못한 부분에 하얗게 드러나는 다리는 섹시하기까지하다. 장그래, 내가 누누히 말하는데 하나만 하랬지. 사랑스럽거나, 유혹적이거나 둘 중에 하나만. 


석율이 그런 그래에게 살금 다가가 손에 있는 자료와 펜을 빼든다. 아무래도, 우리 조이는, 응애 하면서 나오는게 아니라 인프라, 하면서 나올 거 같다. 어째 자택 근무를 시작하고는 더 열심이다. 물론 신경 써 주신 김 과장님과 오 부장님, 그리고 모든 동료들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 그런다는 걸 석율은 잘 알았다. 아마, 그런 그의 모습을 알기에, 다른 사람이 아닌 장그래에게, 자택근무를 명한 것이라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었다. 암. 성실, 하면 장 대리지. 그런 생각에 쿡 웃은 석율이, 그래를 조심히 안아 드는데, 와, 이제 정말, 제법 묵직하다. 7개월 차. 오로지 조이의 무게만 1kg 가량이다. 그 와중에도, 그래의 옷 위로도 확연히 느껴지는, 꾸물대는 조이의 태동. ㅡ조이야, 좀 가만히 있어. 엄마 좀 자게. 석율이 조용히 속삭이는데, 조이의 태동이 느껴진 그래가 그 와중에도 살풋, 찡그린다. 그리고는, 



"흐으음..., 내려줘요... 나 무거워" 


웅얼웅얼. 혹여 석율이 저를 무겁다 느낄까봐 잠결에도 내려달라 말하는 그래의 모습이 또 너무나 사랑스러워, 고개를 숙여, 쪽 하고 그래의 입에 짧게 입맞추는 석율이다. 



"무겁긴. 아직 장그래에 대한 내 사랑에 비하면 새털같다, 우리 조이엄마" 


능청스런 석율의 말에, 크하하, 웃음을 터트린 그래가 찡긋, 한쪽 눈을 뜬다. ㅡ정말 어디 학원 다니는거 아니에요? 어쩜 날이 갈수록 능글이 레벨업을 해. 그와 동시에, 매트리스만 남겨진 침대 위로 눕혀진 그래의 곁에, 석율이 몸을 살짝 겹쳐 오며 입을 맞춰온다. 


"자기 때문이지. 임산부가 이렇게까지 섹시하고 사랑스러운건, 엄연히 반칙이라고" 


그리고는 다시 그래의 입술을 두드리며 들어오는 석율을, 그래가 웃으며 받아들인다. 그래의 부른 배로 인해 몸을 완전히 겹쳐 안아 올 수는 없는 석율이, 비스듬히 누워 곧 그래의 옷 안으로 맨살을 더듬기 시작하고, 마치 조용히 허락을 구하는 듯 그래의 부른 배를 쓰다듬자, 하아, 하는 달뜬 신음이 그래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순식간에 위로 닿은 석율의 손이, 살짝 부풀어 오른 그래의 작은 돌기를 감싸자, 읏, 그의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석율이 그런 그래의 귀에, 또, 꽤나 살이 오른 그래의 볼에, 가볍게 입맞추며 그의 옷을 말아 쥐는데, 





띵- 동- 



쾅쾅. 





"조이야~!! 이사 가자!!" 










"아, 어서들 오세요. 일, 일찍 오셨네요?" 



그제야 들린 초인종 소리에, 석율이 얼른 현관문을 열자, 문 밖에, 영이와 백기는 물론, 성준과 해준까지, 일하기 좋은 편한 복장 차림인 채로 서 있다. 



"일찍은 무슨. 한대리 니가 시간 맞춰 오라며" 



석율을 가볍게 지나친 성준이 집안으로 들어서자, 그를 따라 줄줄이 영이와 백기, 그리고 해준까지 웃으며 들어온다. ㅡ뭐 하길래 초인종 소리도 못들어? 툴툴 대는 성준의 말에, ㅡ하, 하하, 뭐, 뭘하긴..요, 짐. 짐 쌌습니다. 웃어보이는 석율을, 모두가 못말린다는 듯 쳐다보며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그 때, 백기가, 2층을 보며, ㅡ어어어, 하자 다들, 



"헐, 그래 씨! 혼자 내려오지 마요" / "장대리! 어우, 야. 안돼" 하면서 인사하러 내려오는 그래를 말린다. 그들의 호들갑에 그래가 미소를 지어보이자, 석율이 얼른 2층으로 올라가 조심히 그를 부축해 1층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말 감사합니다. 주말인데, 저희 때문에 쉬지도 못하시고" 


그래가 꾸벅, 인사하자, 다들 따스하게 웃으며, 뭐 우리 사이에 그런 당연한 걸 굳이 감사 인사를 하냐는 투다. 








그렇다. 오늘은, 석율과 그래가, 5년이나 정들었던 석율의 원룸을 떠나, 이사를 하는 날. 사실 그래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면서, 계속 별러왔던 일이었다. 다만 언제 실행에 옮겨야 할 지 몰라 머뭇대고 있었는데, 그래의 그 때 그 아찔했던 사고가, 모든 것을 현실화 시켰다. 



괜히 서울에 안 계신 석율의 부모님까지 걱정시켜드릴 것 같아, 퇴원하고 나서 좀 지나면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그 날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석주가 뉴스를 보다 새하얗게 질려 전화가 왔고, 곧바로 부모님 귀에 소식이 들어갔다. 이미 안정된 상태고, 곧 퇴원할거라는 석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석율의 부모님은 또 다시 세 시간 만에 서울에 도착하셨었다. 그리고 함께 퇴원 수속을 도와주시곤, 그래가 집에 가는 것까지 안심할 수 없다며 쫓아 오신 부모님이, 평소에도 늘 맘에 걸리던 저 계단을 보시곤, 이사 가자, 라고 말씀하셨다. 


더 이상, 그래를, 조이를, 작은 위험에라도 노출 시킬 수 없다는 단호하지만 애정어린 그 말씀에, 두 사람도 그 자리에서 동의를 했다. 그리고 형편에 맞게, 조금 작은 평수로 집을 알아보던 두 사람에게, 어느 날 두 분이, 통장을 내미셨다. 


- 안 그래도 너희 주려고 했어. 허례허식이라 생각해서 필요 없다고는 했지만, 여하튼 결혼식도 안 치뤘는데. 석율이 어릴 때부터 결혼 자금으로 모아둔 이건, 우리 그래 주는 게 맞는 거 같아서. 너희 해외 파견이라도 갈 때 보태줘야 하나 했는데, 이렇게 기쁘게 쓰이니 감사하지. 


ㅡ우리 그래, 그리고 우리 조이, 조금이라도 더 편한 환경에서 지내게 해야지. 하시던 그 따스한 말씀에, 그래는 또 울컥, 했고 어머니는 더 좋은 거, 예쁜 거, 못해줘서 미안하다며 안아주셨다. 몸이 무거워진 그래를 위해, 꼼꼼하게 함께 집을 알아봐주시던 부모님은, 함께 살지는 않더라도, 그래가 엄마가 필요할 때, 언제든 곁에 계실 수 있어야 한다, 말씀하시며 꼭 게스트룸 하나를 계산 해 넣으셨다. 5년을 넘게 겪고도, 두 분의 그 큰 마음은 다 따라갈 수가 없어, 그래는 다시금 가슴께에 차오르는 따뜻함을 환한 미소로 대신 할 수 밖에 없었다. 



맘 같아선 서울 외곽지에, 넓은 정원 있는 곳으로 보내고 싶으시다 하셨지만, 원인터를 벗어날 수는 없는 두 사람인지라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정했다. 석율과 그래 두 사람의 방 하나, 조이 방 하나, 꼭꼭 있어야 한다던 게스트룸까지 하나. 그리고 자택 근무를 시작한 그래에게 근무 공간을 분리해줄 수 있는, 섹션이 분리 된 거실과 따뜻한 부엌까지. 계약 직전에 그래를 데리고 나와 하나하나 꼼꼼하게 설명해주시던 석율과 부모님을 뵈면서, 그래는, 석율이 일깨워준 엄청난 사랑에, 조이가 가져다 준 엄청난 행복에, 다시금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장 대리, 넌 우리 안영이랑 어디 가서 좀 놀다 와. 후딱 끝낼게" 

"그래요. 그래씨까지 있을 필요는 없지. 먼지도 많이 날리고" 



아무래도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쳐 좋을게 없어, 예전에 이사 경험이 있는 백기에게 ㅡ혹시 포장이사 하는 괜찮은 업체 소개 좀 시켜 줄래요, 했던 석율의 말이 불씨가 되었다. ㅡ원인터 빡센 근무 환경과 각종 야근에 단련 된, 체력 좋은 우리는 뒀다 뭐하게요, 국 끓여 먹게요? 답하던 백기는 재빠르게 움직였고, 급기야 이들은, 우리 두고 포장이사 부르면 철강팀, 자원팀, 나아가 원인터를 모욕하는 일이라는, 이상한 결론까지 나왔다. 석율이 괜히 죄송해 ㅡ어, 저희 매형들 부르면 되요, 라던 그의 말도, 해준이, ㅡ매형 분 나이가? 하며, 한살이라도 젊은 우리가 낫지 않아요? 하는 것으로 상황 종료. 말은 부러 가볍게 해도, 낯선 이들이 달가울 리 없는 그래와 석율의 상황을 백 번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마음이 깃들어 있음을, 두 사람은 모르지 않았다. 



ㅡ아, 어, 저 그래도..., 영이와 나가 있으라는 말에도 그래가 계속 머뭇대자, 영이가 얼른 그래의 겉옷을 챙기며, ㅡ자, 그럼 남자분들께 맡기고 연약한 여자와, 산모는 빠집니다. 하며 그래의 등을 떠밀며 나갔다. 그런 그들의 뒤에, ㅡ양심적으로 '연약한'은 빼죠? 백기가 소리치다, 성준에게 야! 하고 한소리를 들었고 왜 남의 귀한 애인에게 소리치냐며 해준이 백기를 조용히 막아선 것도, 웃지 못할 해프닝이 되었다. 











"9월은 9월인가봐요. 좀 더워도, 볕은 가을 볕이네요" 

"그러게요" 



하늘을 올려다보던 영이의 말에, 그래가 크게 동조했다. 가을 볕, 발음만큼이나 따스한 햇살이 영이와 그래, 두 사람을 감싸 안았다. 그 느낌이 좋은 지, 뱃속의 조이도 열심히 통통대느라 바쁘다. 아, 물론 이제는 통통,에 지나지 않고 가끔 뻥, 뻥 차대는 통에, 까페로 향하는 그 짧은 거리에도 두어 번 걸음을 멈추고 배를 쓰다듬으며 조이를 진정시켜야 했다. 그 모습에, 영이가 쿡, 웃으며, ㅡ누구 닮아 그럴까요? 물었고, 그래가 따라 웃으며 답했다. ㅡ확실한 건, 저는 아니에요. 그리고 그 말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 영이가 더욱 크게 웃었다. 



그리 사람이 많지 않은, 한가로운 까페 창가에 두 사람이 자리를 잡았다. 곧, 주문한대로 모과차와 유자차 한 잔 씩이 놓였고, 뒤이어 몇 가지의 조각 케익이 예쁘게 놓였다. 문득, 몇 달 전만 해도 상상 해 보지 않았던 지금 이 상황에, 두 사람 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예전 같았으면, 까페가 왠 말, 무조건 술 자리에, 커피 대신 맥주병, 소주병이 그득그득하게 놓였으리라. 사실 이렇게 주말에 만나는 것도 없을 말이었다. 원인터를 견뎌내려면, 주말엔 무조건 자야 한다고 생각했고, 남들도 다 그럴거라 생각해서 굳이 연락도 해보지 않았다. 헌데, 조이가, 석율과 그래 두 사람에게 여유를 선물했고, 덩달아 영이와 백기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도, 주말이면 가끔, 조이의 안부를 물어왔다. 조이가, 엄마 아빠 뿐만이 아닌, 모든 이들에게 변화를 가져오고 있었다 



"저희 팀에는, 별 일 없죠?" 

그래가 자꾸 움직이는 조이 때문에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매일 화상 회의를 하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회사 안에서 있는 건 아니다보니 사무실이 어떤지는 알길이 없다. 그래의 질문에, 영이가 손사래를 치며, ㅡ말도 마세요. 장 대리님 빨리 오셔야 해요. 웃는다. 



"왜요?" 

"장 대리님 자리 비었다고, 제가 영업3팀 지나가기만 하면 김 과장님이고 오 부장님이고 달려 드셔서, 여기 앉았다 가라고. 앉았다가 좋으면 쭉 있어도 된다고 자꾸 농담을 하시지 뭐에요. 근데 또 저희 정 차장님이랑 성준씨는, 그러면 득달같이 달려와서 저 끌고 가느라... 하여간, 다들 너무 짓궂으셔서 15층 요즘 시끌시끌 해요. 아, 좋은 의미로다가" 


프하하, 안봐도 비디오다. 하여간 우리 오 부장님의 한결같은 안영이 사랑은 때와 장소를 가리시는 법이 없지. 오죽하면 하 과장님이 가끔 오 부장님의 일 외적인 잔소리가 이어질라 치면, 예에, 장인어른. 하고 지나가실까. 오랜만에 듣는 15층 이야기에 기분이 좋아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가 이어지는데, 문득 영이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래가 의아한 듯 묻는다. ㅡ근데 영이 씨, 




"네?" 

"어디 아파요? 어제 잠 못 잤어요?" 



ㅡ아.., 그래의 물음에 영이가 머쓱하게 제 볼을 쓸어내리며 웃는다. 으응? 하고 바라보는 그래의 의문 가득한 눈빛을 보자, 영이가 조용히 차를 한 잔 마신 뒤, 운을 뗀다. 




"저.. 3주 됐대요" 



ㅡ!! 




쑥스러운 듯 말하는 영이의 대답에 그래가 눈이 커지다가 곧, 햇살보다 환하게 웃는다. ㅡ진짜? 정말요? 와 영이씨! 축하해요!! 그래의 진심어린 축하에 영이의 볼이 발그레 해져 온다. 


"하 과장님, 좋아하시죠?" 


헌데, 으례 물어 온 그래의 질문에, 영이의 낯빛이 묘하게 바뀐다. 그 모습에 오히려 당황한 건 그래였다. ㅡ왜, 왜요? 묻자, 영이가 이번엔 씁쓸한 듯 웃는다. 



"글쎄요. 좋아 하는건지, 걱정을 하는건지.. 잘 모르겠어요" 

"...네?" 

"성준 씨 나이도 있고, 시댁에서도 말씀은 안하시지만 은근히 기대하시는 것 같아서, 가져야지 하긴 했는데.. 사실 제가 좀 겁냈었거든요. 우리 일이라는게, 우리 자리가, 그렇잖아요. 옛날엔 위에서만 누르는 줄 알았더니, 이젠 밑에서도 쳐대고. 큭.., 성준 씨도 다 아니까, 둘이 별 말을 안했었어요. 근데, 그래 씨 보고, 제 생각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요. 당연하지 않은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는데, 당연해야 할 나는 뭘 그리 겁내나 싶었어요. 저는, 저만 달라지면 성준 씨는 당연히, 좋아하는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덤덤해서, 좀 놀랐어요" 



평소 영이가 자기 말을 이렇게까지 줄줄이 읊는 성격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꽤나 당혹스러웠다는 걸, 그래는 눈치챘다. 짐짓, ㅡ그..음.. 실감이 안나셔서, 그러는 걸수도 있어요. 말하자, 



"맞아요. 게다가 표현이 워낙 서툰 사람이니까, 어느정도 이해는 해요. 그래도, 너무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내가 뭐 잘못 한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 


하는, 꽤 서운한 대답이 영이에게서 돌아온다. 그래는 조용히 끄덕인다. 왜 모르겠는가. 자신도 이미 겪었던 감정. 상황이 많이 다르긴 했으나, 조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어서 너무 화난듯 보이기만 했던 석율을 보며, 이해는 하면서도, 그 짧은 시간, 수 백번쯤 서운했었다. 내가 잘못한 건 아닌데, 내가 사과해야 하는 일도 아닌데. 나 혼자 한 일이 아닌데. 왜 나만 좋아하지, 싶은거. 지나온 길이라서, 더더욱 무어라 위로해야 할지 몰라, 그저 따스하게 영이와 시선만 맞추고 있는데, 









지이잉- 지이잉- 


그래에게 전화가 온다. 액정을 쳐다보던 그래와 영이가, 시간을 확인하곤 헉, 하며 놀란다. 
'조이아빠'. 


"벌써 끝났어요?" 

-이햐~ 끝난게 다 무슨 말이야. 정리까지 다 했어. 어디야? 



석율의 목소리가 한껏 들뜬게, 완전 의기양양 그 자체다. 그래가 입꼬리를 올리며, 위치를 알려주자, 



-오케이. 10분. 안에 있어, 나오지 말고. 







"헐. 샤워도 했어요?" 



까페에서 나와 영이의 부축을 받은 그래가, 조심히 영이와 함께 석율의 차에 올라타자, 방금 샤워를 한건지, 석율이 정리되지 않은 머리칼에 은은한 비누향이 풍기는 채로 그들을 맞는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ㅡ응, 단체로 사우나 가서 씻고 왔어. 란다. 그 덤덤한 반응에, 그저 그래와 영이만 놀라 꿈뻑꿈뻑. 석율은 차를 출발시키며 완전 신난 채로 쉴새 없이 떠든다. 



"우리 나중에, 원인터 그만 두고 이삿짐 센터 하려고. 와, 백기 씨랑 나보다, 두 과장님들이 더 대박이라니까? 나 사람이 짐을 그렇게 효율적으로, 빠르게 옮길 수 있는지 처음 알았어. 나도 나름, 현장에서 물건이라면 지겨울 정도로 날라봤는데" 

"아, 맞아요. 성준 씨가 짐 되게 잘 나르긴 해. 나도 너무 신기해서 물어본 적 있었는데, 툭, 그러더라구요. '원인터 다니면서 어디, 시간 맞추려고 짐 한번 안날라 본 사람 있음 나와보라 그래' 하고" 



영이의 동조에, 그제야 이해가 간 그래가, 배를 문지르며 끄덕인다. 맞다. 시간은 생명이고 속도는 필수인 무역에서 간혹 시스템 오류나 업체 파업 때문에 물량이 못 나갈 변수가 생기면, 별 수 없다. 그 옛날의 영이가 그랬듯이. 넥타이 제끼고 와이셔츠 걷고, 옮기는거다, 무조건. 지금이야 시스템이 나아져 미리 대비가 가능하지만, 아마 지금의 과장님들이 신입인 시절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터. ㅡ조이야, 아무래도 네 삼촌들이 좀, 대박인거 같아. 그래가 미소짓는다. 




"근데 강 과장님은 한 수 위야" 

석율의 말에, 영이와 그래가 이건 또 뭔소리야, 하며 쳐다보는데, 석율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그 와중에도 정리를 하셔. 것도 각잡고 줄 맞춰서. 사우나도 강 과장님 때문에 갔어. 우리 다, 더럽대" 

하하하, 무뚝뚝한 그 표정으로 '지금 우리 다, 더럽습니다' 라고 했을 해준의 표정이 그려져, 그래가 소리를 내어 웃자, 뱃속의 조이가 엄마 소리에 놀라 뻥뻥 난리가 난다. ㅡ아야, 그래의 짧은 신음에, 석율이 흘끗 돌아보며, ㅡ어이 조이엄마, 진정합시다. 하지만 이미 석율도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출길이 없다. 









"그래 씨, 나, 배 한 번 만져봐도 되요?" 


원래 이사하는 날은 짜장면 먹는거라고 그래서 집에서 시켜먹을줄 알았는데, 그 마저도 해준이, 아직 새 집 냄새도 덜 빠지고 환기도 덜 됐다며, 무엇보다 집에 냄새 배, 라는 단호한 말에 식당에서 다들 식사를 했다. 그렇대도 이렇게는 보낼 수 없어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시라고 다들 이사 온 집에 모였는데, ㅡ세상에, 그 때 집에 처음 들어와 본 그래는 정말 휘둥그레. 무슨 모델 하우스처럼 깨끗하게 정리 된 -남은 옷가지들 마저 석율이 착착 정리해놓은- 집이라, 정말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그래가 차를 준비하려 일어나자, 온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래를 앉혀 놓고는, ㅡ내가 할게요! 합창을 하는 바람에, 오히려 머쓱해졌다. ㅡ저, 그렇게 불안해요? 그래가 묻자, 다들 ㅡ네!/엉! 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석율과 영이가 부엌을 차지하고,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아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백기의 눈에, 그래의 얇은 옷 위로 배가 꿈틀꿈틀 움직이는 게 퍽이나 신기한 모양이었다. 조심스레 물어오는 백기에게, 그래가, ㅡ당연하죠. 웃으며, ㅡ조이야, 백기 삼촌 인사하고 싶대. 


"조, 조이야, 안녕.. 백기 삼촌이야" 


ㅡ우와! 백기의 인사에, 조이가 힘차게 발로 통통거리자, 백기가 신이 나서 눈이 반짝였다. 그 둘의 모습에, 영이가 옆에 앉았고, 차를 들고 나오던 석율은 흐뭇하게 웃었다. 조용히 사라진 해준은, 어딜 갔나 했더니 손 씻고 인사 할 거라며 욕실을 들어갔다 나왔다. 



"조이~ 영이 이모한테도 인사 해 주세요"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영이가 살살 그래의 배를 어루만지자, 이번엔 꾸물꾸물 헤엄치듯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조이가 느껴졌다. ㅡ아빠 닮아서, 영이 이모 소리에 좋아서는, 춤추는거 봐라. 석율이 그래에게 과일 하나를 집어주며 말했다. 모두 그래를 중심으로, 심지어 해준까지도 그의 배만 쳐다보며 조이를 부르느라 여념이 없는 그 때, 단 한사람, 성준만 멀찍이 떨어져 앉은 모습이 그래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가 따뜻하게 웃으며 그를 불렀다. ㅡ하 과장님, 거기 계시면 조이가 오늘 오신 줄 모르잖아요. 








부러 이리 오라는 표현을 던지자, 그제야 쭈뼛, 성준이 그래 곁에, 영이의 옆에, 앉는다. 어쩔 줄 몰라하는 그 모습이 표정에 확연히 드러나는게 보여, 영이와 눈빛을 한 번 주고 받고는, 그래가 성준의 손을 덥썩 잡아 제 배 위에 올렸다. 


"조이야, 이모부 오셨네~?" 


이모부? 생전 처음 들어봤을 그 호칭에 놀라, 성준이 그래를 쳐다보는데, ㅡ영이 씨가 이모면, 과장님 이모부 맞죠. 석율이 뒤에서 웃으며 거들었다. ㅡ어, 어 그래.. 이, 이모부. 더듬거리지만, 워낙 굵은 목소리인 성준을 알아들은 조이가, 꿈틀, 그리고 또다시 통, 하며 인사같은 움직임을 전해온다. 그리고, 영이도, 그래도, 뒤에 앉은 석율에게도, 정확하게 보였다. 뭔가에 홀린듯, 멍한 상태에서도 올라가는 그의, 입꼬리를. 실감이 안나면, 실감이 나게 해드리면 되는거지 뭘. 



"축하드려요 과장님. 과장님이랑 영이 씨 닮으면, 진짜 이쁠거같아요" 



그래의 한마디에, 모두들 무슨 뜻인지 이해했고, 해준이, 툭, 성준을 치며, ㅡ야, 말을 하지. 축하한다. 하자, 그제야 어안이 벙벙한 성준의 눈빛이, 영이와 오롯이 마주치며 크게 미소지었다. 
ㅡ어, 고마워. 응, 나 아빠 된다. 










"다리 안아파?" 



모두 돌아간 저녁, 스산한 가을바람과 가로등 불빛을 벗삼은 석율과 그래가 집 앞 공원에 산책을 나왔다. 이사를 결정할 때 수 많은 리스트가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이 곳을 결정하게 된 건, 바로 이, 작지만 아담한, 공원이 꽤 큰 이유였다. 안 그래도 빌딩 숲에 가려져서 사는 삶. 그래와 석율은 자신들이 선택한 삶이었지만, 조이에게까지 모든 걸 그대로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당장 그래에게도 더 없이 좋은 산책로가 되겠지만, 훗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을때에도, 조금이나마 자연과 가까이 사는 아이가 되기를, 석율은 원했다. 



커지는 아이, 무거워지는 몸에, 행여 이 짧은 산책도 무리가 올까 싶어 염려스런 목소리로 묻자, 그래가 예쁘게 웃어보이며 석율에게 눈을 맞췄다. 



"내가 뭘 한게 있다구. 그리고 자기가 이렇게 잡아주니까 하나도 안 힘들어요" 



그래의 예쁜 대답은, 가로등 불빛만큼이나 환했고, 그에 비친 조이 엄마 장그래는, 한석율의 장그래는 따뜻하게 빛났다. 과연 이 사람이, -싫습니다. 한석율씨나 하세요. 등의 말을 던지던 그 때의 장그래와 동일인물이 맞는지, 석율은 가끔 그 모든게 아득한 옛 이야기 같을 때가 있었다. 조이를 품은 그래는, 표현에 솔직해졌고, 그만큼 더 예쁜 말들을 쏟아냈다. 엄마가 느끼는대로 아이도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속으로 숨기는 것만이 좋은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듯 했다. - 조이가 주는 행복이 너무 커서, 말하지 않으면 흘러 넘쳐버릴 것 같아요, 하던 그래가 예뻐, 그 말을 뱉어낸 그 입술에 얼마나 수 많은 입맞춤을 했던가. 



"고마워" 



석율의 생각이 그대로 말이 되어 튀어나왔다. 뭐가요? 라고 묻고 싶어하는 그래의 입술을 그대로 빨아들였다. 네가 조이를 품어줘서, 네가 나의 아이를 가져줘서. 네가 내 사람이라서, 네가 장그래라서. 네가, 너라서. 



그런 석율의 따스한 입맞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던 그래가 웃는다. 마치,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이. 나도 고마워요. 조이를 품게 해줘서, 나를 변화시켜줘서. 당신이 내 사람이라서, 나의 변화 마저도 사랑해줘서. 그대가, 한석율이라서. 




"사랑해요" 
"사랑해" 



동시에, 함께 속삭였다. 석율이 그래를 따뜻하게 품었다. 조이가 통통대는 그 울림이, 석율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를, 조금 더 느끼고 싶어 석율이 그래의 허리를 감싸 조금 더 끌어당겼다. 



둥글게 커진 그의 몸 만큼이나, 둘에게도 변화가 가득했다. 사는 곳도, 일상도 변해버렸다. 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으로 인해 변했고, 그리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감히 상상할 수 없을정도로, 더 많이. 하지만 하나는, 단 하나는 변하지 않을테다. 조이 엄마 장그래가 사랑하는 사람이 한석율인것, 그리고 조이 아빠 한석율이 사랑하는 사람이 장그래인것. 둘의 마음에, 서로가 피어나, 조이라는 결실을 맺어 오래오래, 행복할 것이라는 것. 




"들어 가자" 


앞으로 일어날 수 많은 변화에 대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줄, 우리의 새 보금자리로. 






행복하자, 조이야. 





행복하자, 한석율, 장그래. 









(+) 그날 밤,





















"왜...잠이 안와...?"



석율이 침대에 누워, 그 옆에, 이제는 비스듬한 자세로 밖에 누울 수 없는 그래가 잠이 들 때까지 등을 토닥이는데, 한참을 눈 감고 있던 그래가 살며시 눈을 뜬다. 그리고는, 잠이 안오냐 묻는 석율을 향해, 조용히 손가락으로 제 배를 가리킨다.


옆으로 누우니 더 커져보이는 그래의 배는, 삐죽 삐죽 다 티가 날 정도로 활발한 조이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ㅡ얘가 이러는데, 어떻게 자요. 



"우리 조이는, 왜 밤에 안자고 자꾸 아침에 자는걸까. 엄마 일하라고 도와주는 건 고마운데, 잠은 못자게 해"


히잉- 하는 소리마저 들려오는 것만 같은, 그래의 귀여운 투정에, 석율이 속삭였다. ㅡ조이야, 엄마 자게 우리 아가도 자야지. 확실히 석율의 목소리가 굵기가 있어, 조이의 반응이 더 확실하게 올 때가 있다. 알아듣는 건 아닐테지만, 그의 토닥이는 손길에, 조이가 반응을 보이자 두 사람이 웃는다.




"그러지 말고, 자장가 불러줘요"


그래의 뜬금없는 제안에, 석율이 당황한다.



"나 동요같은거 아는거 없는데?"


"에이, 동요 아니어도 되요. 그냥, 가사 아는거?"


ㅡ응? 하며 눈을 빛내오는 그래 때문에, 더 이상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한 석율이, 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맘에 찾아온 
작지만 놀라운 깨달음이 
내일 뭘 할지 내일 뭘 할지 꿈꾸게 했지 

사실은 한 번도 미친 듯 그렇게 
달려든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봤지 일으켜 세웠지 내 자신을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단 걸 눈으로 본 순간 
믿어보기로 했지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할 수 있단 걸 알게 된 순간 
고갤 끄덕였지 





조용 조용 부르는 석율의 노랫 소리에, 어느 새 잠이 든 그래의 모습이 보인다. 배에 손을 대니, 조이의 움직임도 잦아들었다. 그 모습에, 석율의 마음이 너무도 따뜻해져온다.






나를 일으키는 사람들,





사랑해,




My Joy & My Y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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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편+외전+보너스가 있는 연재물입니다.
오메가버스 설정이 아닌 그저 '순수 임신물'입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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