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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JOY

JOY - 05

[석율X그래] JOY - 5 


부제 - 안정이 된다는건, 모두에게나. 


Written by. shp 




*미래물 & 임신물 & 현실성 없음 주의* 
*배경 - 5년 후 (장그래 대리 & 한석율 대리)* 
*약간(?) 수위 있음 주의* 











그러니까 그 일은, 

기적, 이라고 밖에는. 








으음..., 이게 무슨 냄새지...., 


습관적으로 제 침대의 옆자리를 더듬던 석율이 그 허전함에 고개를 들자 이어서 곧 달큰하고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러온다. 졸린 눈을 비비며 그 출처를 따라가자, 제 발자국 소리도 못 듣고 부엌에서 뭔가 분주히 움직이는 그래가 보인다. 아이고, 진짜 미치겠다, 장그래. 그 종종거리는 뒷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이 냄새의 근원 또한 알게 된 석율이 어이없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깨어여?" 


접시에 담을 새도 없이 입으로 넣는 중이었는지, 오물오물 열심히 씹는중이던 그래가, 뒤에 선 석율을 발견하곤 ㅡ가치 머으에여? 한다. 

"아이고, 씹고 말해 씹고. 무슨, 아침부터 고기가 넘어 가?" 


그의 곁에 다가가 쪽, 석율이 아침인사를 하면서 허리 부분을 꾹꾹 눌러준다. 그런데 석율의 그런 행동에, 그래가 움찔, 한다. 석율이 그런 그래를 보다, 


"왜, 허리 아파? 아파서 깬 거였어?" 

"어? 아, 아니..." 

ㅡ배, 배고파서 깼어요. 꿈에서 고기가 막 둥둥 떠다녔어. 
  


"큭..., 그래, 잘했어. 많이 먹어. 조이야, 많~이 먹어??" 


석율이 웃으며 그래의 배를 따뜻하게 쓰다듬는다. 그 손길에도 그래가 살짝 움찔, 하며 붉어지다 이내 따스하게 웃어버린다. 석율의 눈꼬리도, 함께 휘어진다. 


과연 어머니의 죽 한 그릇은 보약이 맞았다. 어머니가 다녀 가신 뒤로, 거짓말처럼 입덧이 끝났고, 더불어 그래의 식욕은 왕성해졌다. 그간 입덧 때문에 못 먹었던 순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눈 떠 있는 시간동안에는 그래의 입 속에 음식이 없는 순간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 고기는 또 어디서 온거야, 지난 번에 있던건 다 먹었잖아" 

"아, 어제 아버지가 보내셨어요. 내가 말 안했구나" 


우와. 우리 아버지, 나 자취 할 때는 고기는 커녕 반찬 한 번을 안 올려 보내시더니. 순간적인 배신감(?)에 놀라는 석율을 두고 아랑곳 않던 그래는 또 신나서 새빨간 고기 한 덩어리를 프라이팬에 올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꼬리가 연신 올라가며 묘하게 납득이 간다. 하긴, 나 같아도 이렇게 잘 먹으면 고기 아니라 정육점이라도 사서 보내고 싶으시겠다. 울산에 계신 부모님께 털어놓는 일은, 뜬금없는 타이밍에 이뤄졌다. 









지이잉- 지이잉- 


"예, 엄마. 저에요" 

-아들, 바빠? 



ㅡ아, 아니에요. 말씀하세요. 그래와 한가로이 주말을 만끽하고 있던 토요일 오후, 느닷없이 울산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안그래도 그래 어머니도 아셨는데 제 어머니께 말씀을 드리지 못한 게 못내 걸리던 차라 지레 찔려서 자세가 꼿꼿해졌었는데, 전화 너머의 어머니가 놀랄만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다른건 아니고, 그래 무슨 일 없나 해서. 



ㅡ엉? 왜, 왜요? 헉. 석주 누나가 지난 번 통화하다 뭔가 눈치챘나? 스피커 폰으로 통화를 하던 중이라 그래와 소리없이 눈치보며 눈만 도록도록 굴리고 있는데, 어머니가 말을 이으셨다. ㅡ내가 꿈을 꿨는데 말야, 


-글쎄 우리 그래가, 커~다란 농장에서, 새빨간 복숭아 하나를 어찌나 맛있게 베어 먹던지. 엄마가 거기서, 그래더러 뭘 그리 맛있게 먹냐고, 엄마도 같이 먹자고 다가가는데. 그래가 새하얗게 웃는게 어찌나 또 이쁘던지. 우리 그래 무슨 좋은 일 있으려나, 싶어서. 바쁘다고 하는데, 혹시 회사에서 좋은 일 있나? 



그리고 어머니의 말씀을 듣던 그래와 석율의 얼굴은 그야말로 복숭아 같이 새빨갛다가 새하얗게 변하기를 반복했었다. ㅡ얘, 석율아? 제가 대답이 없자 전화가 끊겼나 싶어 재차 불러오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래와 또다시 눈을 마주치곤 무언의 대화를 나누던 석율이, 그래의 작은 끄덕임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말씀, 드려요. 


"엄..엄마, 그거... 태, 태몽 같은데..." 

-으응? 태몽? 어머, 그럼 늬 누나들 또 애 들어섰나?? 


설마 그게 그래일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던 어머니는 계속, 석율의 누나들 이름을 하나씩 읊으며 석희인가? 석주인가? 석영인가? 하셨다. 석율은 조심스레, 심호흡을 하며 운을 뗐다. 
ㅡ엄마, 집에 청심환 있으면 일단 하나 드셔요.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으신 어머니가, 잠시 침묵하다 물으셨다. ㅡ그냥 말해. 뭔데, 엄마 안 놀랄게. 석율이 다시 고민하다, 입을 열려고 하는데, 계속 옆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그래가 먼저 선수를 쳤다. 



"어머니..., 죄송해요" 

-그래야? 왜, 뭔데. 엄마 괜찮아. 응? 

"저에요. 그 태몽. 제게, 석율씨랑 저한테, 아이가 왔어요" 



전화 너머의 어머니는 한동안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무슨 말이냐고 다그치지도, 놀라 쓰러지지도, 않으셨다. 그리고 정확히 세 시간 후, 아버지와 서울역에 당도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달음에 달려오신 두 분 손에는, 두 분이 급하게 이고 지고 오신 음식이, 가득했다. 두 분은, 초음파 사진을 보는 것으로 모든 의문을 푸셨고, 무엇보다 조금 불러온 그래의 배를 보자마자, 그저 말없이 안아주시고는, 
고맙다고. 어려운 결정 하느라, 너희가 너무 힘들었겠다고. 그 말만 되풀이 하셨다. 









이후 석율과 그래의 냉장고에는, 양쪽 부모님이 보내주시고, 만들어주시는 음식들로 가득가득했다. 그래가, ㅡ어머니, 저번에 그 딸기요, 진짜 맛있었어요. 하면, 그 다음날엔 딸기가 세 박스씩 올라왔다. ㅡ엄마, 제가 사다 먹일게요. 힘든데 그만 보내셔. 하는 석율의 말은, 그래의 ㅡ맛있었어요. 한마디에 가볍게 무시당했다. 


  
"천천히 먹어. 체할라" 

"휴, 나 원래 고기 별로 안좋아했는데. 조이가 자꾸 과일이랑 고기만 먹어요" 


웅얼웅얼 씹으면서도 입맛의 변화가 생소한지 작게 한숨을 폭폭 쉬는 그 모습에, 석율이 웃으며 다가가 그를 꼬옥 안아본다. ㅡ뭐든, 먹어주니 고맙지. 그런 석율의 행동에, 그래가 또 화륵, 붉어졌지만 곧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건 진짜 맞는 말이다. 내가 먹는게 아니라 아이가 먹는다는게, 받아들여준다는게 이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 일인지. 








"ㅡ아, 그럼 이 조항을 계약서에 넣는게 더 좋은거겠네요?" 

"응, 그치. 나중에 탈 없으려면. 처음부터 미리 체크 해두는게 좋아" 


한 손에는 샌드위치를 든 채, 쉼 없이 먹으면서도, 성훈과 머리를 맞대고 이것저것 논의하며 꼼꼼하게 체크하던 그래를, 김 과장님이 볼펜을 톡톡, 치면서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신다. 이상해, 이상해도 한참 이상하다. ㅡ장 대리. 그의 부름에, 뭔가 한참 설명하던 그래가, 의자를 돌려 일어난다. ㅡ네, 과장님. 



"일 안할거야? 아님 장 대리 어디, 다른 회사 오퍼 받았어?" 

"...네? 무슨..." 

"그렇잖아. 지금 그런 사항들을 굳이, 김성훈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나 해서. 꼼꼼하게 가르쳐 주는건 좋은데, 

그건 장 대리가 있으면 커버 될 일 아닌가? 꼭, 떠날 사람처럼, 뭐 그래?" 

ㅡ아..,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던 그래가, 곧 별 것 아니라는 듯 능청스레 웃어보이고 말을 돌린다. 



"하, 하하. 그, 성훈씨 일 잘해서.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어서 그랬어요. 과, 과장님 약속 있으시다지 않으셨어요?" 

"엉? 어.. 그러네.. 여튼, 장 대리 요즘 좀 이상하다, 너" 


김 과장님은 옷걸이에서 양복 자켓을 털어 입으시곤, ㅡ다녀올게. 하고 나가시면서도 뒤를 돌아보곤, ㅡ아, 그리고, 


"장 대리 너 요즘 너무 먹는다. 그만 먹어. 살 쪘어, 배도 나왔다. 이제는 관리 안한다, 뭐 그런거야?" 

"아, 과장님도. 아닙니다 그런거.. 다, 다녀오세요-" 



그래는 15층을 빠져 나가는 김 과장님의 모습을 보면서, 작게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곤 의자에 털썩 앉는다. 후, 뜨끔했다. 역시 영업팀 과장은 아무나 되는게 아니다. 하마터면 정곡을 찔려 엄청 당황할 뻔 했다. 김 과장님의 말은 정확했다. 영업 3팀의 일은 항상, 네 것 내 것 없이 진행되기도 했지만, 요즘 그래가 성훈에게 지시 내리는 사항이나 가르쳐 주는 사항들은 지금 성훈의 직급과 연차에 굳이 알아야 할 필요까진 없는 사항들이었다. 


그렇지만, 혹시나-.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앞선다. 당장 다음 달이라도, 당장 다음주라도, 아니 당장 내일이라도. 조이가, 허락하지 않으면..., 엄마 이제 장대리로 그만 살고, 조이 엄마로만 살아 달라고 한다면. 적어도, 팀에 피해가 가는 일은 없어야 했다. 인력 충원이 온다 쳐도, 진행하던 일들의 담당자는 늘 필요한 법. 그 자리를 조금이나마, 성훈을 통해 채워줄 수 있다면 좋겠다, 요즘 그래의 작은 바램은, 늘 그 뿐이었다. 
ㅡ우리 조이가, 허락해 줄 때까지는, 엄마, 장대리로도, 조이 엄마로도 최선을 다할게. 그래가 옅게 입꼬리를 올리며, 이제 정말, 옷 위로도 살짝 티나는 그의 배를 잠시 쓰다듬는데, 





똑똑, ㅡ장 대리님, 


"어? 영이씨-" 


누군가 제 파티션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영이가 해사하게 웃으며 서 있다. 
ㅡ잠깐 휴게실 가는거, 괜찮아요? 드릴거 있는데. 


그래요, 그래가 영이를 따라 나서며 살짝 기지개를 펴고, 허리도 두어번 두드려준다. 









"이게.. 뭔데요?" 

"열어봐요" 


두리번 대며 휴게실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던 영이가, 슬며시 그래에게 쇼핑백 하나를 건네 주었다. 의아해 하며 받아 든 그래가 영이를 보자, 열어보라는 듯 웃어보인다. 조심스레 상자를 열어보자..., 


"와..., 영이씨..." 


하얀색 텀블러가 예쁘게 자리해있다. 그리고 가운데에 새겨진, JOY. 누군가는 그저, 예쁜 영어 단어 한 자에 불과하겠지만, 어느샌가 석율과 그래에게는 너무 커진 그 이름. 그래가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다 고마워서 어쩔줄 모르는 그 얼굴 그대로 영이와 눈을 맞춘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이 되었는지, 영이가 미소지으며 말한다. 


"안에 들은건, 곡물로 만든 차(茶)라는데, 커피 맛이 난대요. 장대리님 커피 엄청 좋아했는데, 조이 때문에 못 먹고 있을거 같아서. 뭐 하나 선물 해드리고 싶어서 생각하다가..." 

"저 커피 고픈거 아셨구나..." 


조이가 왔다는 그 기쁨을, 표현하기 좋아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석율이 가만히 홀로 끌어안고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가족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쉬이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던지라 몇 날 며칠을 입이 근질거려 못살겠다던 석율이 타겟으로 삼은건, 영이었다. [우리 조이 이~쁘지], [안대리, 부럽지?] [하과장님이랑 상의해서 얼른 하나..] 따위의 문자를, 조이의 초음파 사진과 함께 보내던 석율을, 그래는 재차 말렸지만. 고맙게도 영이는, [이뻐요. 부러워요. 그러니까 잘해요, 그래씨한테] 라는 답변을 해주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석율과 그래는 한마음으로 동의했다. 하과장님 진짜, 전생에 나라 구하셨어요. 라고. 



"진짜 고마워요. 매번 이렇게 받기만 해서 어떡해요.." 


정말로 미안한 기색이 역력해진 그래의 표정을 바라보던 영이가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손사래를 친다. 



"제가 정말 좋아서 한 거에요. 한대리님이 나 세뇌 시켰나봐요. 조이가 진짜 예뻐요" 
ㅡ조이, 잘..크고 있죠? 영이의 예쁜 물음에, 그래가 작게 끄덕인다. ㅡ네, 너무 잘 커서 허리도 막 아파요. 


텀블러에 적힌 조이의 이름을 손으로 쓸던 그래가, 전에 없이 온화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그 모습에 함께 흐뭇해진 영이가, ㅡ조이는 고모는 많으니까, 그럼, 저 이모 시켜주는거죠? 하며 웃는다. 


그래의 눈빛에, 고마움이 깊게 스며든다. 원인터에서, 이렇게 좋은 동기들을 만난 건, 엄마에게 정말 감사한 일이었어, 조이야. 







영이의 텀블러를 한 켠에 두고 흐뭇하게 바라보며 점심시간에 맞춰 15층에 올 석율을 기다리던 그래가, 이내 무언가 생각난 듯, 핸드폰을 켜 검색사이트를 열어본다. 이걸, 뭐, 뭐라고 검색해봐야하지... 고민하던 그래가, 조심스레 임..신..중.. 하면서, 한 자 한 자 입력해보는데, 아무래도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는지 뒤로 버튼을 눌러버린다. 잠시 생각하던 그래가, 또 한 자 한 자 입력하자, 이번엔 원하는 결과가 나온 듯, 화면을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세상에. 이런걸 나만 검색하는 건 아니었나봐. 생각보다 많은 검색결과에 놀라던 그래는 곧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본다. 그래가 검색한 건, 임신 중, 관계. 


사람 마음이, 참 간사했다. 더불어 사람의 몸은, 참 정직했다. 조이의 존재를 확인하고, 한동안은, 그저 제 몸을 추스리기가 바쁘고 입덧 때문에 정신이 없어, 그 이외의 것은 모조리 잊었었는데. 이제 입덧도 사그라들고, 조이와의 일상도 어느정도 적응이 되니, 제 마음보다, 몸이 자꾸 먼저 반응을 한다. 헌데, 석율이 영, 별 반응이 없는 것이, 혹여 제가 예전같은 상태가 아니라 그러는걸까봐, 내심 불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어, 와, 왔어요?" 


헉. 조이야 니 아빠는 호랑인가봐. 웃으며 등장한 석율의 모습에 꽤 놀란 그래가 어색하게 웃으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는다. 제 뒷쪽에서 나타났는데. 봐, 봤나? 싶어, 표정을 살피는데, 석율이 그저 사람좋게 웃고만 있다. 아, 못봤나. 석율이 그런 그래의 손을 잡아 끌며 속삭인다 
ㅡ밥먹으러 갑시다. 오늘은 조이가 뭘 먹고 싶대? 







"조이엄마, 말 해봐요" 

"네?" 

"아, 조이 불러봐요. 엄마 진동 좀 느끼게" 


정기 검진 날. 꽤 익숙해진 모습으로 초음파 기계 옆 침대에 누운 그래와 그 옆에 앉은 석율이 있다. 주한의 말에, 그래가 조이야... 하고 부르자, 


"와..." 

아직 청각은 발달하지 않았지만 엄마의 진동을 느끼는 아이가, 꿈틀, 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그 모습에, 석율과 그래가 동시에 감출 수 없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서로의 손을 꼬옥 맞잡는다. 이제 조이는 더이상 이등신의 모습이 아니라, 사람의 형태를 점점 갖춰가고 있다. 얼굴의 윤곽이 차츰 보이는데, 눈매와 입 부분은 확실치 않지만, 유난히 깎아지른듯한 높은 콧대는, 석율과 꼭 닮아있었다. 우리 팔불출 조이 아빠는, 또 그 초음파 사진을 가족들에게는 물론이고, 영이에게까지 전송하며,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래 씨, 허리 아프진 않아요?" 

"아..., 못 견딜 정도는 아닌것 같아요" 


잠시 면담을 하는 중에도, 그래의 허리통증이 혹여 계속 될까, 쉬지 않고 그의 허리를 문질러주는 석율이다. 주한도,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미소가 떠오른다. 


"배 당기거나 하지는 않고?" 

"네, 잘 때만 조금" 


그래의 대답에 주한이 환하게 웃어보인다. 참, 잘 참는 엄마다. 모두 처음 겪는 일들, 게다가 여자의 몸이 아니라, 예상조차 하지 못했을 일들일터. 한번쯤 버겁다 사정해 볼만도 한데, 그래는 물론이거니와 석율 또한, 제 지시에 잘 따라 주면서도 불평 한 번, 의심 한 번이 없었다. 최고의 산모, 그리고 최고의 보호자라고 단언하게 되면서, 주한은 이해 되기 시작했다. 조이가, 이 아이가, 왜 장그래라는 엄마에게, 한석율이라는 아빠에게 왔어야 했는지. 왜 이런 기적같은 일이, 그들에게, 일어났는지. 




"좋은 소식이 두 가지가 있는데, 뭐 부터 들을래요?" 

"와, 두 가지나 있어요 선생님?" 


좋은 소식이라는 말에, 석율이 먼저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물어온다. 큭, 그의 모습에 주한이 기어이 웃음이 터진다. 
ㅡ네, 두 가지나 있어요. 


"첫번째, 그래 씨 이제, 호르몬 주사는 하루에 하나만 맞아도 되요. 그동안 팔에 멍 많이 들었죠? 투약하느라..." 


정말 기쁜 소식이다. 연신 그래의 허리를 문지르던 석율의 손이, 그래의 팔목으로 향한다. 여기저기 군데군데 멍이 든 그래의 왼쪽 팔목. 그간 이렇게 멍든 팔목을 마주할때마다 울컥, 하는걸 참아내느라 부던히 애를 써야 했다. 다른건, 으례 엄마가 되기 위해 겪는 과정이라 쳐도, 하루 세 번, 투약 후에 매번 미열과 시달려야 하는 그래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려왔었다. 


"두번째는, 이제 우리, 한 달에 한번만 만나요. 그래 씨랑 석율 씨가 잘 해줘서, 이제 너무 자주 병원에 오지는 않으셔도 될 것 같네요" 


ㅡ그 동안, 나 너무 자주 보느라 지겨웠죠? 주한이 농담인 듯 던지는데, 그래와 석율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ㅡ절대요, 


"선생님 덕분에, 저희.., 그래랑 조이, 여기까지 잘 왔는걸요. 정말 감사합니다" 


석율이 꾸벅, 인사한다. 진심이었다. 충분히 꺼려질 수 있는 케이스. 주한이 아니라면, 편견 없이 그저, 아이를 품은 산모와 아이의 아버지로 봐주는 주한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그래의 몸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이 고마운 소식을 가능하게 한 건, 주한의 도움이 정말 절실했다. 


"자, 그리고 이건, 탈 많고 힘들었던 초기를 잘 벗어나 준, 두사람에게 드리는 제 선물이에요" 

주한이 건넨 것은, 산모를 위해 배우자와 함께 할 수 있는 간단한 운동법이 들어있는 책자와, DVD였다. ㅡ이제 운동도 좀, 시작해도 되요, 그래 씨 허리 아픈데도 좀 도움이 될거고. 당연한 듯 말하지만, 어디 문화교실 같은 곳에서 따로 배우기 꺼려지는 둘을 위한, 배려였으리라. ㅡ네, 열심히 할게요. 그 마음을 아는 그래가 예쁘게 대답한다. 



"그리고.. 석율 씨," 

"네?" 

"이제, 안정기라..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이라면, 다른 운동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주한이 부러, 석율에게 잘 알아들으라는 듯 시선을 맞추며 에둘러 말했지만, 금새 그 뜻을 알아챈 두 사람이다. 잠깐이지만, 화륵, 얼굴이 달아오른다. ㅡ아..네, 감..감사합니다. 









"조이야~ 조이야~" 

"쿡.., 그만 불러요. 아직 알아들어서 움직이는게 아니라니까.." 

"왜에... 그래도 진동으로 느낀다잖아. 조이야, 움직여봐아.. 아빠야~" 


병원에 다녀온 후, 석율은 내내, 침대에 기대 앉은 그래의 배에 대고 조이만 찾는다. 초음파에서 한번 빙글, 돌아선 조이를 보고 난 후, 태동을 느껴보겠다며 이 난리다. 글쎄, 태동이 지금 엄마인 나한테도 안느껴지는데 당신한테 느껴질리가. 하지만 무던히 애 쓰는 조이아빠의 모습이 귀여워, 그래가 석율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데, 


ㅡ!.... 


그래의 배 쪽에 자리했던 석율의 시선이, 얼굴은 그대로 둔 채, 그래와 맞춰지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가 파박, 지나가는 듯 했다. 석율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그런 움직임을 그래가 따라오다, 두 사람의 입술이 정확하게 맞물렸다. 








"흐읏.." 


열린 잇새로 강하게 들어온 석율의 혀가, 그래의 곳곳을 훑자,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감정에 두근댐을 감출길 없던 그래의 마음이, 신음이 되어 흘러나온다. 키스가 이어지고, 그래가 천천히 손을 뻗어 석율의 목 뒤로 팔을 감는데.., 


"하, 잠깐만." 


석율이 급하게 입술을 떼며, 답지 않게 얼버무린다. 아, 이 예상 못한 전개에, 그래도 당황 해, 눈만 도록 도록 굴리는데, 석율이 말까지 더듬는다. 



"어...저..., 그.. 무..물 좀 마시고.....!..." 

ㅡ올게, 하며 몸을 일으키려는 석율의 팔을 그래가 급히 잡았다. 물은 무슨. 왜 피해요 나를....? 



"그, 그래야..." 

".... 조이 때문에...? 위험할까봐...? 저.., 그... 무, 무리만 안하면.. 괜찮대요. 오늘 선생님도ㅡ," 

"ㅡ그런거, 아냐..." 


혹여 석율이, 조이 때문에, 자신 때문에 걱정 돼 그러는 건가 싶어 말해보는데, 석율이 그런건 아니란다. 
ㅡ괜찮은거.. 나도 알아. 네가 보던 화면, 나도 아까 봤어. 선생님 말씀도, 같이 들었고. 




"그럼.. 왜그래요...."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계속 걱정하던 일들이 있어, 파르르 떨려오는 목소리를 가다듬지 못하고 묻는 그래에게, 석율은 답이 없다. 진짜 나 이제 당신한테, 그냥 조이 엄마...이기만 한거야? 



"....나... 이런 모습인거... 싫어요...?" 

"ㅡ!! 
장그래, 그런 말이 어딨어. 너 내가 그런 사람으로 밖에 안보여?" 

"...그럼 왜.. 그러는데. 오늘만 이러는거 아니잖아..." 



석율이 모를리 없을터였다. 5년간, 석율에게 맞춰진듯, 그에게만 반응해오던 그래였었다. 닿이기만 해도 화륵, 붉어지는 그래의 모습을, 석율이 모르지 않는다는걸. 그래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요 며칠, 번번히, 석율은 저를 안지 않았다. 처음엔 조이 때문에 그러는거려니. 제가 너무 힘들어 해 불안한거려니 했지만. 그게 아니라는걸, 그래는 지금, 알고 있었다. 


방울방울 차오르는 그래의 상처받은 눈을 보던 석율이, 하아- 하고 깊게 내쉰 한숨과 함께, 입을 연다. ㅡ내가..., 내가, 너무, 미안해서 그래 


"....?" 

"조이가 오고, 너 고생하는거, 너 너무 힘들어하는거. 조이 때문에, 자꾸 뭔가 포기하려고 하는거. 다 나 때문 같아서. 내가 너를 너무 내 방식대로만 사랑한게 아닌가....ㅡ" 


..! 그런..거였어? 그러니까, 당신이 나를 안을 때, 조심하지 않아서, 그래서 조이가 왔고 내가 고생한것 같아서...? 




"....진짜 바보네, 조이아빠...." 

"그래야...." 

"석율씨는, 나랑 조이가... 짐이에요?" 

"무슨 그런. 행여라도 조이가 들을라. 왜 짐이야, 고마운 축복이지" 

"그런데 왜 나는, 그럴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너무 힘들어해서? 많이 아파서? 변해가서?" 

"....." 


"내가 요즘 하루하루가 얼마나 감사한데. 하루가 지나가는게 얼마나 아쉬운데. 고맙게, 조이가 와줘서, 우리 조이가..한석율의 아이라서, 나를 안은게, 당신이라서. 내가 얼마나 눈물나게 감사한지 모르죠...?" 

".... 그,래야..." 



그래의 말을 듣던 석율의 마음에, 얹힌 듯, 이때껏 자리한 돌 하나의 무게가 쑥, 내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왜, 안고 싶지 않았겠는가. 아이를 가진, 그것도 제 자신의 아이를 품은 감사하고 경이로운 사람. 아이와 함께, 더욱 더 사랑스러워 지는 제, 사람. 그러나 한편으로 밀려오는 죄책감을, 그 아픔을 석율은 모른척 할 수 없었다. 두려웠다. 깨어질까봐. 무서웠다. 어느 날 점차 힘들어져 원망하는 그래의 목소리를 들을까봐. 아니란걸 알면서도 악몽이 되었고, 세차게 부정하면서도 혹시나, 를 져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그래는, 나의 그래는..., 



"나, 사랑해요?" 

".... 당연하지. 사랑해, 사랑한다 그래야..." 

"우리 조이는...?" 

"말해 뭐해. 너무 사랑하지" 

"그럼 나.... 안아주면 안돼요?" 

"....!...." 



ㅡ응? 하고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팔을 뻗는, 그래의 그 한마디에, 무언가 스위치가 눌린듯, 석율이 다시 깊게 그래를 탐해온다. 우리 조이는, 잘못이 아니라, 축복이잖아요... 조심스레 응해오는 그래의 입술이, 그렇게 속삭인다. 








조이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요. 



엄마, 아빠가, 


이렇게나 사랑해서, 





우리 조이가, 오게 된거란걸.... 






(+)

















"하...하앗..."

"자기야... 배, 당기면 말해...응?"

"괜..괜찮, 아읏..."



장그래, 하아, 그래야. 오랜만에 마주한 그래는, 아이의 영향으로 살이 조금 오르기까지 해, 정말이지 겉잡을 수 없이 매력적이었다. 바보같이, 제가 이런 모습을 싫어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니. 장그래, 누가 더 바보야 대체. 최대한 그에게 무리가 가지 않게 하려 석율의 조심스런 손길에도, 그래는 전보다 몇 배는 더 크게 반응하고 있었다. 예민해진 탓이리라... 석율의 손끝이 스칠때마다, 새어나오는 소리를 참아보려는 그래의 모습에, 석율 역시 전에는 느끼지 못한 쾌락마저 밀려오려 하는, 그 때..,



"석율, 석율씨. 잠, 잠깐만"


다급하게 그를 부르는 그래의 목소리에, 행여 힘들었나 싶어, ㅡ어, 그래야, 배아파? 하면서 살피자, 그래가, 조용히 고개를 도리도리. 그리곤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배에 조심히 갖다 댄다.


...? 왜?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잠깐만, 이라는 입모양을 하는 그래를 보는데,




통,

어...?



통,!



"....!!!!!!!!"







조이가, 움직였다.


그리고 고스란히, 두 사람에게, 그것이 느껴졌다.



"하하, 하하하하, 조이야..."


그 감동에 석율과 그래가 나란히 눈물까지 맺힌 채로 웃어보인다.



"봐... 조이도, 아빠 바보같은 생각했다고 하잖아요"


그래의 나지막한 그 말에, 석율이, 다시 따스하게 웃어보인다.




응, 그런가보다..... 미안해.... 이제 다신, 그런 생각 안할래.



석율이 그런 그래를 뜨겁게 바라보며 다시 다가가 입술을 머금고는, 한 손으로 그의 배를 살살 쓰다듬는다.






우리 조이, 코 자자.....




오늘, 엄마는...


아빠가 좀 빌려갈게....









사랑해 우리 아가, 그리고, 

조이엄마, 내 사랑 장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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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편+외전+보너스가 있는 연재물입니다.
오메가버스 설정이 아닌 그저 '순수 임신물'입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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