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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JOY

JOY - 08

석율X그래] JOY - 8 


부제 - Waiting for Joy 



Written by. shp 




*미래물 & 임신물 & 현실성 없음 주의* 
*배경 - 5년 후 (장그래 대리 & 한석율 대리)* 





그러니까 그 일은, 

기적, 이라고 밖에는. 








"560... 1100.... 이게... 여기다가..." 

"...뭐 해요?" 

"헉, 깜짝이야. 어? 어..." 

"으응? 넥타이 매다 말고 뭐하냐구요~" 



석율이 한창 출근 준비를 하고, 그래 또한 아침 화상 회의 준비를 하는 시간, 으례 들려야 할 소리들이 안 들려 그래가 침실에 가 보니, 그가 넥타이를 매다 말고 침대 옆에서 뭔가를 막 중얼거리고 있다. 그래의 등장에 갑자기 화들짝 놀라는 걸 보고 석율이 보던쪽을 보는데, 뭐 별게 없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그래가, 석율의 넥타이를 쥐고 능숙하게 매듭을 매어 준다. 별로 가깝게 다가 선 것도 아닌데, 그래의 배가 툭, 석율을 건드리자, 그것이 못내 귀여웠던 석율이, 좀 더 앞으로 꾸욱 다가가, 그래의 입술에 쪽, 그리고 몸을 숙여, 그래의 뱃속에 있는 조이에게도 쪽. 인사를 한다. 그 짧은 순간에도 후우, 하고 숨을 뱉어내는 그래의 모습에, 석율이 안타까운 눈빛을 하며 꼬옥 품어준다. 



"요즘 섬유팀 뭐 바쁜 일 있어요?" 

"엉? 우리? 아니, 왜?" 

"그런데 왜 이렇게 연락이 안돼요, 점심시간마다?" 



그래가 석율의 몫으로 미리 갈아 놓은 과일 야채 주스를 건네며 묻는다. ㅡ어..., 하며 대답하려던 석율이, 갑자기 쿡, 하고 웃으며 그래의 허리를 감아 안아 코를 톡, 친다. ㅡ너 요즘 점점 마누라같아. 지금 바가지 긁는거 맞지, 연락 안된다고? 



"말 돌린다~ 쓰읍, 요즘 수상해요" 


그래가 뒤뚱, 자리를 잡으며 장난스레 가늘게 눈을 뜨자, 그래의 허리를 받치던 석율이 무척이나 아쉬운 표정으로 식탁 의자에 놓여진 제 가방을 든다. 



"조이엄마 자꾸 이렇게 귀여우면 나 출근을 못하겠잖아~ 월차 내? 가지 마?" 

"뭐라는거에요, 얼른 가~" 



자꾸 코 끝까지 다가오며, 출근 하지 말까 묻는 석율을 가볍게 툭, 친 그래가 그를 돌려세운다. 어어어, 하며 현관까지 밀려가던 석율이 살짝 뒤를 돌아 아까처럼 그래의 입술에 길게 쪼옥, 그리고 조이에게 쪽. ㅡ조이야, 아빠 다녀올게요. 엄마 말씀 자알~ 듣고있어? 



"안 터지는데 있어서 가끔 그런거야. 오늘은 꼭 받을게!" 

"흐음? 나도 오늘은 바쁘네요~" 

"응? 왜?" 

"누나들이 점심 사주시겠대요. 아침에 문자 왔어" 


히야~ 자택근무 좋다, 점심 시간에 여유가 있어. 끝까지 한마디는 장난스레 던지고 나서는 석율에게, 그래가 웃어보인다. ㅡ부러우면 임신 하던가. 잘 다녀와요, 조이 아빠. 










"ㅡ그럼 시리아 측에서 연락 오면, 다시 진행해보는걸로 하고," 

"네 과장님, 어, 그리고, 후우우-... 아, 죄송합니다, 그...메탈 ㄱㅡ" 

"ㅡ장 대리, 왜, 숨 차?" 

"에? 아.. 아 네.. 조금요" 



열심히 아침 회의를 하던 도중, 그래가 자꾸 숨을 고르느라 말을 멈추자, 계속 뭔가 얘기하려던 그래를 동식이 제지시킨다. 꽤 민망해진 그 상황에, 모니터 너머의 그래가 머쓱하게 웃어보이자, 과장님과 성훈은 꽤 걱정스런 표정으로, 괜찮냐고 물어온다. 


"힘들지?" 

"... 아뇨, 괜찮습니다. 이만하면 정말 수월한거래요" 


ㅡ뭘 웃기까지 해.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은 엄청나게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동식이 모를리가. 이 맘 때쯤, 아내인 은지도 뭐든 움직이기만 하면 힘들어, 그 순하던 사람이 하루가 멀다하고 앓는 소릴 냈는데. 출산 예정 90일 안팍이면 직장을 다니던 여성들도 출산 휴가를 내고 집에서 쉬는 판국에, 괜히 자택근무라고 시켜놨더니 어째 회사 다닐때보다 더 열심인 것 같은 그래의 모습에, 요즘 동식은, 괜히 그런 명분을 만들어 더 부담을 안겼나 싶은 맘에 미안함이 앞섰다. ㅡ하여간, 요령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모르는 놈. 아프다고 좀 쉬고 그래. 부러 툴툴, 동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 회의 들어갈 거 있어서. 나머지 얘긴 김성훈이랑 좀 해" 

"네. 안녕히 가세요 과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아, 성훈씨, 그 코트라에서 넘어온 자료 나한테 보내주면 내가 ㅡ" 


ㅡ정리하면서 한 번 훑어볼게, 라고 말하려는데, 화면 속 성훈이, ㅡ저, 대리님, 



"그거 제가 정리 끝내서 아까 회의 중간에 메일로 먼저 보내드렸어요" 하며 웃는다. 

"아, 내가 해도 되는데" 


안그래도 사무실에서 이것저것 제 대신 처리 해내려면 눈코뜰새가 없을텐데, 괜히 미안해져, 뭐라 말을 못하고 있자, 성훈이 또다시 사람좋은 표정을 한다. 


"제가 딱히 뭐 해드릴 것도 없고 해서. 좀 쉬세요, 대리님. 이러다 정말 분만실에서 서류 보시겠어요" 


그 마음 씀씀이에 크게 감동한 그래가, 성훈을 불러본다. ㅡ성훈씨, 



"네 대리님," 

"미안해. 그리고 고맙고. 내가 참, 면목이 없다 매번" 

"아휴, 또 그러신다. 저 대리님 부사수잖아요. 부사수가 사수 일 돕는게 왜 면목이 없을 일이에요, 대리님" 



그 대답에 그래가 또 한번 쿡, 웃는다. 고마운 사람. 사실, 이렇게 자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오 부장님, 김 과장님 다음으로 가장 미안했던 사람이 성훈이었다. 오 부장님, 김 과장님께 장그래가 있다면, 장그래에겐 이제 김성훈이 있는 것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사수 자리를 지켜주지도 못할 뿐더러, 생각해보지도 않은 사수의 임신이라니. 게다가 비밀이 되어야 한다니. 차마 미안하고 죄스러운 맘에 말도 못 꺼내 봤었는데, 본격적으로 자택근무를 시작하기 전, 석율을 통해 성훈이 예쁜 선인장 하나를 선물해주었었다. 


[대리님, 전자파. 아기한테 안좋다는데, 대리님은 컴퓨터 못 떠나시니까 이거라도 꼭 주위에 놔두세요. -부사수 김성훈-] 


이라며, 한 자 한 자 눌러 썼을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성훈에게 전화를 걸자, 기다렸다는 듯, ㅡ대리님!! 하며 받아주었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성훈이 불러주는 대리님,에 모든 것이 녹아들었다. 그렇기에 그래는, 자택 근무 전환이 되고도 더 열심히 일했었다. 지금은 내 뱃속에 있는 조이를 지키고, 후에는 회사에 남은 내 새끼, 김성훈을 지켜주기 위해. 장그래의 모든 '우리 애'에게 최선을 다해주기 위해. 








"조이 엄마야~" 

"누나. 저 때문에 여기까지 오셔서 어떡해요" 


그래가 집 앞 주차장에 내려가자, 그를 기다리고 섰던 석율의 둘째, 셋째 누나 석주와 석영이 그래를 보곤 한달음에 와 그를 부축했다. 


집 밖으로 혼자 나가는 건 절대 안돼. 석율의 단호한 명령이었다. 차라리 택시를 불러줄테니 어머니랑 같이 다니던지 아니면 우리 엄마 올라오시라고 할까? 하던 석율은, 그래가 대답을 망설이자 안 그럼 나 너 위치추적 달아놓고 집에서 벗어나면 조퇴한다? 라는 협박 아닌 협박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과하다 싶긴해도 그 마음이 어떤지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아직도 가끔 그 날의 사고에 대해 악몽을 꾸는 석율이었기에, 그 마저 지켜주지 않으면 정말 뛰쳐 나오겠다 싶었다. 고분고분 그러겠노라 했더니 그제야 표정이 확 풀어져서는, 동행만 있으면 되는거라고. 너무 집에만 있으면 우리 조이도 갑갑할거라고 덧붙였다. 


하긴, 이제는 약속을 지켜서가 아니라, 그래 자신이 혼자 밖을 나서며 거동을 하기가 어렵기도 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몸이 불어나본적이 없는데다 조이는 남자 아이라서인지 태동도 심했다. 중심이 안 잡혀서 뭐만 해도 뒤뚱거리는 펭귄 같은 제가, 혼자 여기저기 다닐 수 있을리 만무했다. 


"조이 엄마 덕분에 우리도 하루 휴가지 뭐. 아, 애들 떼어놓고 나오니까 너무 좋아 누나는" 


반 장난, 반 진심이 섞여 있을 두 누나의 말에 그래가 양쪽을 보며 웃었다. 그래의 임신 이후, 가장 가까워진 사람이 있다면, 바로 석율의 누나들. 부모님들이 챙겨주시는 부분도 많았지만 누나들이 전해주는 굉장히 현실적인, 임신 출산 대백과 사전같은 말들은 조이와 그래가 이마만큼 자라나는데 엄청난 양분이 되었다. 실로 대단한 분들이라고도 생각했다. 이 힘든걸 어떻게 둘도, 셋도 하신거지. ㅡ누나 진짜, 진심으로 존경해요. 했던 그래의 말에, 세 누나 모두 석율과 닮은 환한 미소로 말씀하셨다. ㅡ우리 그래, 다 컸네. 라고. 










"우와...." 



양 쪽에서 그래를 부축한 채, 누나들이 데리고 들어선 곳은, 다름 아닌 아기용품점. 그간 두 사람 다 바쁘기도 했고 보나마나 석율과 함께였더라면 눈에 보이는 족족 쓸어담을 것이 분명한데다, 석율의 조카들이 쓰던 것을 물려받게 될 것들도 더러 있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역시 누나들은 고수다. 나온김에 보고 가자며 그래를 이끄는 누나들이 양쪽에 떡 버티고 서 있으니, 정말 사람들의 시선 하나가 두렵지 않다. 헌데 생각보다 너무 예쁘다. 요 작은걸 정말 입는단 말야? 그래 또한 아기자기한 그 모습에 연신 미소가 떠나질 않는데, 그런 엄마의 기분에 덩달아 좋아진 조이는 춤을 춰대느라 바쁘다. 


"이건 꼬옥, 입혀야겠다" 


석주가 어딘가에서 아기 옷 하나를 들고 그래의 배에 대본다. 파란색에, JOY라고 쓰여진 귀여운 아가 우주복. 곧 세상에 나와 이 작은 걸 입고 꼬물대는 조이를 상상하니 그래는 물론이고, 바라보는 석주와 석영의 눈에도 행복이 가득하다. 찰칵. 그 때, 뒤에 서 있던 석영이 핸드폰에 그래의 그런 모습을 담아내고, 곧장 석율에게 전송. 


[ (사진) 한석율~ 우리 지금 그래랑 조이랑 데이트 한다. 부럽지? - 막내누나] 



지이잉- 지이잉- 

그리고 곧, 모두가 예상한 대로, 석율에게서 바로 전화가 왔다. 



"여보ㅅ..." 

-우~와! 우와 장그래! 이러기야? 나랑은 안가고?? 

여보세요, 가 끝나기도 전에 다다다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다급한 석율의 음성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모두가 웃는데, 큼, 헛기침 한 번을 한 그래가 짐짓, 모르겠다는 투로 응한다. 



"그러게 누가 바쁘래~ 나 오늘 여기서 다 사고 갈ㄱ.." 

-안돼! 안돼에에에에~ 아 조이엄마야~ 이러지 말자~ 

"큭, 근데, 석율씨 같이 왔음 진짜 다 샀을거 같아요" 

-눈 돌아가게 이뻐? 

"응. 눈 돌아가게 이뻐. 조이도 좋은가봐요. 얘 너무 차대 지금.." 

-안 돼. 아빠 없어서 오늘 안된다고 해. 조이야~ 아빠랑 같이 가자 


한참 통화를 하는데, 전화기 너머 석율에게서 툭툭 소리도 나고 쿵쿵, 탁탁 이런 소리들이 들린다. ㅡ석율씨, 현장 갔어요? 


-엉? 어어.., 어, 현장 왔어. 여튼, 오늘 다 사면 안돼, 진짜? 

"사진 보낸거 우주복도?" 

-어......음... 그건 사... 그건 안사면 안될 것 같다. 나 누나 좀 바꿔 줘 



그래가 알았다며 전화기를 석주에게 건넨다. 석주가, 뭘 나까지. 하며, 전화를 건네 받자, ㅡ누나! 하는 외침이 들린다. 


"왜. 내가 그래 잡아 먹냐" 

-아니 그게 아니고, 그래 집에 갈 때 꼭 현관까지 데려다 줘야 돼? 요즘 밖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해. 누나 부탁 좀 할게요 

"하이고... 야! 어련히 알아서 할까. 조이는 내 조카기도 하거든요??" 

-흐흥.. 누나들, 사랑해요~ 

"징그러. 끊어. 우리 밥 먹으러 갈거야" 

-응. 맛있는거 먹어요 누나~ 










"후우우....." 

"자, 이렇게 앉아 봐" 


식당 한켠에 앉아서도 허리도 아파하고 계속 숨도 고르는 그래를 보던 누나들이, 얼른 벗어놓은 겉옷을 둘둘 말아 그래의 허리 뒤에 대어준다. 그러자 한결 숨이 편해진 그래가 그제야 허리를 곧추 세워본다. 8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무탈하게 잘 자라주는 조이만큼, 그래는 더더욱 힘들어지는 것이 당연했다. 조이의 자리가 자꾸 넓어져 그래의 폐를 포함한 오장육부를 다 떠미는 듯 했고, 그만큼 그래의 호흡이 짧아졌다. 양수를 뺀, 아이의 무게만 2kg에 달하자 가끔 서 있는 것 자체가 버거울때가 있었다. 



"누나 저 환자 다 된 것 같아요" 


그래가 어이없는 듯한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누나들이, 다 이해한다는 듯 따스하게 웃어주고는 옆에 앉아 그래의 배를 살살 쓰다듬는다. ㅡ하필이면 우리 조이가 석율이를 닮았어. 널 닮았어야 좀 얌전할건데. 누나들의 말에, 그래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정말이다. 뱃속에서도 하는 짓이 꼭 제 아빠를 닮았다. 어딘가 모르게 부산스럽고, 엄마 아빠가 전해주는 이야기에, 감정에, 반응이 솔직하고 격하다. 하지만 엄마를 위해 여기까지 씩씩하게 잘 버텨내 준 것도, 장그래 밖에 모르는, 고마운 한석율을 많이도 닮았다. 



"우리 엄마, 막달엔 거의 누워 계시고 그랬어. 석율이가 좀 차대야지" 

"누나 그 말 묘하게 무서워요. 저 지난번에 초음파 보니까 조이가 주먹으로 때리고 있었어요" 

"하하, 아이구, 요놈아~ 엄마를 때리면 안되지요~ 고모가 이놈~한다?" 


반찬 중에서도 젤 예쁘고 빛깔 좋은 것들로 그래의 수저에 하나씩 올려주는 누나들 덕에, 맛있는 식사가 이어졌다. 




조이를 가지고 나서, 부쩍 많이 듣게 되는, 우리 석율이가 어릴때, 우리 그래가 어릴때, 라던 말들. 서로가 절대 알 수 없던 어리고 어린, 가족들과 어머니들만 알던 이야기가 흘러나올때마다, 그래는 조이가 와 준 게, 이런 이유였겠구나. 싶었다. 5년여의 시간들. 오래된 연인에게 자칫 잘못하면 권태기가 찾아올 수 있는 시간일 수도 있었을터. 서로를 잘 안다는 이유가 독이 될 수 있을 시간에, 조이가 와주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연인이 아니라, 엄마로써, 아빠로써 성장해 가던 그 시간들은, 오롯이, 조이가 두 사람에게 선물해준 순간들이었다. 아프지만, 힘들지만, 변화가 괴로울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내는 무엇. 그것이, 조이였다. 









"그래야~ 조이야~ 나왔.., 오, 마이, 갓" 

"이쁘죠? 빨리 들어와~" 



퇴근 후에 돌아온 석율이 들어서다 말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스트레칭을 했었는지 요가 매트에 앉은 그래가, 송글 송글 땀이 맺힌 채로 제 배에 아기 옷을 대보는 모습이라니. 장그래, 이러다 너 조이 낳기도 전에 내가.. 그 뭐냐, 심쿵, 그래 심장이 쿵!해서 죽겠다고. 



"운동 했어...?" 

"응? 응.. 그냥 스트레칭. 배가 좀 뭉치는거 같아서요, 편하게 있어주느라" 
  

석율이 겉옷을 벗으며 다가와 얼른 소매로 그래의 땀을 닦아낸다. 그래, 아무리 조이가 좋고 사랑스럽고 감사해도, 한석율한테는 아직 장그래가 먼저이기는 하다. 게다가 옷을 아끼는 석율이, 아무렇지도 않게 쓱쓱 소매로 닦아내는 모습은, 아마 성과장님이 봤으면 한석율 아니라고 했을거다. 


"이거 봐봐요. 이렇게 작아" 

그래가 예쁘게 웃으며 석율의 손에 낮에 사 온 옷을 올려놔주자, 그제야 석율이 조심스럽게 아기 옷을 받아들어본다. ㅡ진짜 이렇게 작아? 



"그렇대요. 말도 안되지...? 요거 입고 어떻게 다녀. 한 팔에도 다 안차요" 

"우리 그래 지금 고생하는 거 보면 축구공만 할 것 같은데..." 



석율이 뒤에서 그래를 안으며 농담인 듯 던진다. 진짜, 인체의 신비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엄마의 몸은 이렇게나 커지는데, 아이는 이 작은 옷도 버거울만큼 작다니. 그런 석율에게 비스듬히 기대 있던 그래가, 뭔가 생각난 듯 퍼뜩, ㅡ맞다. 아까 나 나가 있을 때, 집에 왔었어요?? 묻는다. 



"응? ㅇ, 왜? 현장에 있었..있었다고 했잖아" 

"응. 근데 누나들이랑 헤어지고 집에 들어오니까 자기 향이 나서. 아닌가, 내가 예민했나" 


헐. 귀신. 속으로 뜨끔하던 석율이 이내, 곧 덤덤하게, ㅡ하, 하하, 뭐, 내 집에서 내 향이 나는게 이상한가? 하자, 그래가 ㅡ그런가... 하면서 수긍하는 듯 보인다. 임신하면 후각이 예민해진다더니 진짜였다. 덕분에 요즘 향수도 잘 안뿌리는데... 귀신이다 정말. 



"아, 조이 방은 왜 잠겨 있어요? 이거 넣어두고 싶었는데.... 키도 없어. 어디다 치웠지 내가..." 


하여간 장그래. 뭐 하나 넘어가는 법이 없다. 그 와중에도 뒤뚱거리면서 집안에서 키를 찾아 다녔을 그래의 모습이 떠올라 좀 미안해지는 석율이었다. 이렇게 되면, 별 수 없다. ㅡ보여줄 거 있어, 하던 석율은 그래를 안아 일으켰다. ㅡ뭔데요, 왜, 어디가, 하는 그래를 뒤에서 안은 석율이, 그대로 그를 조이 방 앞에까지 데리고 간다. 


그리고, 그래가 열심히 찾아 헤메던 조이 방 열쇠가, 석율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ㅡ!! 어??" 

놀라는 그래를 두고, 달칵, 석율이 문을 열자, 










ㅡ!!!!! 



"석율씨...." 

"음... 맘에 들어?" 


석율의 손길이 군데 군데 느껴지는, 나무로 된, 따뜻한 느낌의 아기 침대가 자리해 있다. 가운데에는 예쁘게, 나무로 JOY라는 팻말이 붙어있기까지. 이것 때문에, 그간 그렇게 바쁘고 연락이 잘 안됐구나. 행여 제가 다 구입해버릴까봐 오늘 그렇게 안된다고 했구나. 문득, 아침에 침대 곁에 서서 중얼대던 모습까지도, 다 이 때문인걸 알게 된 그래가 조용히 그에게 기대온다. 

끄덕끄덕, 마음께가 따뜻해져 어느새 차오른 눈물때문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석율이 쪽, 하고 뽀뽀하며 좀 더 깊게 그래를 뒤에서 안아본다. 


"나중에, 우리 방, 침대 옆에 둘거야. 오늘 막 갖다 놔서, 행여 먼지 있을까 싶어서 내일쯤 보여주려고 했는데. 하여간 우리 조이 엄마, 귀신이지" 

"조이아빠...." 

"응.. 내가 아빤데, 우리 조이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이렇게 고생인데. 나도 뭐 좀 하고 싶어서. 시간마다 쪼개려니까, 좀 걸렸어" 


멋쩍게 웃는 석율이 느껴져 그래가 얼른 뒤를 돌아 그와 눈을 맞춘 그래가, 그 어느때보다 따스하게 그를 바라본다. 이미 제 눈에는, 조이에게는, 더 없이 멋지고 듬직한 아빠인데. 석율은 매일 아침, 힘겨워하는 그래를 두고 출근을 하면서 그렇게 느꼈던 모양이다. ㅡ왜, 하는게 없어요 당신이. 그리고는 부른 배 때문에 조금 어설퍼졌지만 그의 허리께에 손을 넣어 석율에게 안겨온다. 


"우리 조이아빠. 나랑 조이랑 지켜주느라 얼마나 하는 일이 많은데" 


"훗... 엄청 맘에 들긴 했나보네. 다행이다." 


석율이 그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그대로 그 손을 맞잡은 그래가 그의 손등에 쪽, 하고 뽀뽀한다. ㅡ손이 생명인 사람이, 손 다치면 어쩌려구... 




"전부를 걸고 아이 키워내는 사람도 있는데, 그 정돈 걸어야 되지 않아?" 


석율의 말에, 그래의 눈빛이 더욱 깊어진다. 




"고마워요.... 조이야, 아빠 고맙습니다, 해야지..." 



그래가 말하며 잡고 있던 석율의 손을 배 위에 올리자, 통통대며 엄마의 뱃속을 활보하는 조이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두 사람은, 들고 있던 조이의 옷을, 석율이 만들어 준 조이 침대 곁에 살포시 놓아본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이 옷을 입은 아이가, 이 침대 안에서, 둘을 향해 웃고 있겠지.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고, 기다려지는 순간이다. 





힘들지만, 견뎌낼거야. 

버겁지만, 지켜낼거야. 








우리 조이를, 만날 때까지, 



엄마 아빠는. 





그러니 건강히 있다 만나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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