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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JOY

JOY - 09

[석율X그래] JOY - 9 


부제 - About Time, 괜찮을거야 



Written by. shp 




*미래물 & 임신물 & 현실성 없음 주의* 
*배경 - 5년 후 (장그래 대리 & 한석율 대리)* 





그러니까 그 일은, 

기적, 이라고 밖에는. 











삐익- 


"후우... 98에 58. ...일어날 수 있겠어..?" 


도리도리. 그래의 팔에서 혈압 측정기를 빼낸 석율이 따스하게 침대 머리 맡에서 그의 머리칼을 넘겨주며 물어보지만, 그래는 말할 기운도 없는지 고개만 내젓는다. ㅡ어지러워? 석율의 물음에 이번엔 끄덕끄덕. 휴,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석율이, 애써 맨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버린다. 


"나 걱정하지 말고 얼른 출근해요" 


이러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석율은 어느새 미간에 주름까지 잡힌 채다. 그래는 그래대로 출근 시간은 자꾸 다가오는데 석율이 제 곁을 떠나질 않자, 겨우 쥐어짜낸 목소리로 말하곤 기운 없이 픽, 웃어보인다. 


"아침에만 잠깐 이러잖아요. 엄마 곧 오실거니까 얼른 가" 

".....나, 우리 조이가 미워지려고 그래" 

"이 사람이 뭐라는거야 지금.., 조이 들어요. 얼른 사과해" 



울상이 된 석율의 말에, 그래가 화들짝 놀란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조이가 들으면 엄청 속상할 말이다. ㅡ응? 얼른요, 그래의 재촉에 석율이 별 수 없단 듯, 픽, 웃고는, 


"조이야... 아빠가 미안. 근데 엄마 좀만 힘들게 해. 아빠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리고는 습관처럼 그래의 배에, 그의 입술에 쪽, 뽀뽀를 한 석율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발걸음을 옮긴다. 나서기 전, 보일러 온도를 조금 높여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9개월을 훌쩍 넘겨 막달에 이르렀다. 이제 뱃속의 조이는 완벽한 하나의 생명체가 되었다. 가끔 반쯤 눈을 뜨고 있기도 하고, 초음파를 피해 이리저리 움직이다 저 혼자 웃어보이는 장면도 포착됐었다. 세상에 나올 마지막 준비를 하는 조이는, 엄마의 영양분을 모조리 받아 가는 듯 했고, 그만큼 힘들어진 그래는 붓기는 기본이요, 이따금씩 찾아오는 저혈압과 두통, 현기증에 시달렸다. 


아이를 태어나게 하기 위한 골반은 점차 벌어졌고, 결국 자택근무도 잠시 쉬는 상태다. 도저히 오랜 시간 앉아 있지를 못하는 그래를 보고, 김 과장님이 아예 회의 자체를 열어주지 않았다. ㅡ같은 애 아빠로써 너 보다도 한 대리한테 못할짓이다 이건, 하시는 과장님 말씀에, 고집을 부리던 그래도 더 이상 토를 달지는 못했다. 엄마가 몸 고생을 하고 있다면, 아빠는 마음 고생을 하고 있었으니까. 석율은 아예 휴가를 내어 그래 곁에만 붙어있길 원했지만, 조이 낳고 정말 휴가가 필요할거라는 어른들 말씀에, 정말이지 꾸역꾸역 출근을 하고 있었다. 


그렇대도, 두 사람은 행복했다. 점점 아래로 내려오는 조이의 위치를 느끼며, 우리 아이를, 조이를, 이제 곧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조이야, 어디가. 선생님한테 얼굴 보여 주세요" 


주한이 초음파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조이에게 말을 걸어본다. ㅡ귀한 얼굴이라고 함부로 보여주질 않네, 하는 주한의 농담에 그래와 석율이 웃었다. 태어나봐야 알겠지만, 동글한 머리통은 확실히 그래다. 긴 손가락은 아빠를, 가느다란 뼈대는 엄마를 닮은 것 같다고 (두 사람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부모님들이 말씀하셨다. 




"심장도 여전히 잘 뛰고, 혈류량, 양수 양도 다 적당해요. 이제 우리 그래 씨 체력만 좀 버텨주면 되겠네요" 


주한은 웃으며 그래를 안정시켰다. 그를 잘 받아 들이던 그래가,  ㅡ그래 씨, 우리 내진 좀 하죠, 하는 주한의 말에 살짝 굳어, 석율의 손을 꼭 쥐었다. 엄마가 아이를 세상에 내어놓을 그 길이 얼마나 열렸는지 확인하는 그 내진은, 아프고 두렵다. 헌데 그래는 벌써 세 번째 내진이었다. 보통은 출산 전에 두 번 정도도 많이 하는거라던데. 그래도 주한을 믿으니까, 또 그만큼 주한이 신경을 쓴다는 것을, 최대한 배려한다는것을 알기에 두 사람은 항상 그가 하는 일에, 왜냐는 물음도, 반문도 한 적이 없었다. 



"빈혈 수치가 아직 좀 있어요. 그래서 어지럼증도 저혈압도 오는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니까, 이제 조이 엄마는 맘 편하게 가지고, 조이 만날 때까지 잘 먹고, 잘 지내면 되요. 알았죠?" 

괜찮다, 는 주한의 말은 어느샌가부터 결제창에 뜬 '승인'이란 글자보다 두 사람을, 특히 그래를 기분 좋게 하는 말이 되었다. ㅡ감사합니다, 그래가 웃었고, 주한이 잠시 그런 그래를 바라보다 ㅡ오늘은, 마지막 초음파니까, 태동 측정도 한 번 해요. 한다. 


"그래 씨, 밖에 나가면 이 간호사가 태동 측정실로 안내 해 줄거에요" 

"네" 

ㅡ그럼, 하고 그래가 간호사의 부축을 받아 나가고, 자연스레 석율도 나가려는데, 주한이 그를 불러세운다. ㅡ조이아빠, 잠깐 나랑 얘기 좀 할까요? 



주한의 말에 의아해진 석율이, 주한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런 주한의 눈을, 언젠가 본 기억이 있다고 석율은 생각했다.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니, 그 때였다. 


-... 지금은 아무것도, 장담 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던, 그 때. 석율은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 것 같았다. 그런 석율의 앞으로, 여러 장의 종이가 나란히 놓인다. 앞에 놓인 세 장은, 석율도 무엇인지 알 수 있을 듯 했다. 그래의 내진 결과. 그가 다시 주한을 바라보자, 주한이 설명을 시작했다. 


"앞에 것은, 그래 씨 결과에요. 뒤에 것은, 다른 산모들의 평균 수치고" 

석율의 눈이 커지고, 떨렸다. 딱 보기에도, 그래의 결과가 나타내는 수치가, 현저하게 적은 숫자다. ㅡ그럼..., 

"네. 평균보다 벌어지는 크기가 더디죠. 다시 말 해, 진통이 온다면, 시간이 길어진단 얘기고" 

이번에는 석율이 침을 꿀꺽, 삼킨다. 후우, 호흡을 내뱉던 석율이, 부러 밝은 척, 


"방법이.. 없는건 아니죠, 선생님?" 

"네. 현재로선 괜찮아요. 시간이 좀 남았고, 촉진제를 맞히면 좀 더 진행을 빠르게 할 수 있으니까" 


다행이다, 싶어 ㅡ네에, 하고 대답하는 순간, 주한이 또 다시 ㅡ문제는, 하고 운을 떼고는, 이번엔 그 위에, 여성 산모의 그림과, 아마도 그래의 케이스일 듯한 다른 그림 하나가 놓인다. 이게 무어냐는 석율의 눈빛을 마주한 주한이, 답지 않게 한 번, 잠시 망설인다. 그리고는 어렵사리, 


"진통이 길어지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아닐 때, 어쩔 수 없이 수술을 감행해야 할 수가 있어요. 보통의 경우는, 태아가, 이런 상태로 엄마의 앞 쪽으로 자리해 있죠" 


주한은 들고 있던 펜으로, 여성 산모의 그림에 둥글게 표시를 한다. 

"그런 경우, 이런 식으로 세로 혹은 가로로 절개를 해서, 아이를 꺼내게 됩니다" 


ㅡ헌데, 그래 씨는..., 이번에는 주한이, 다른 그림에, 똑같이 펜으로 둥글게 표시를 한다. 



"우리 조이가 지금은, 이런 식으로 있죠. 그런데, 이렇게, 나오게 된ㄷ..." 

"잠, 잠시만요 선생님" 


유심히 그의 손끝을 따라가던 석율이, 주한의 손을 탁, 잡는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려오는 입술을 잘근 씹으며, 다시 주한을 올려다본다. ㅡ이런 거라면..., 석율의 눈에, 마구 흔들림이 느껴지자, 주한 또한, 후우, 하는 호흡을 내뱉는다. 



"..... 맞아요. 아이가 나오려는 방향을 잡았을 때, 배에 칼을 대면 아이를 꺼내기에 너무 멀고, 다른 쪽으로 칼을 대면......" 


ㅡ그래가, 위험하다. 는, 안 들어도 알 수 있는 결론. 조이가 세상에 나오는 통로는, 일반 엄마들과 달랐다. 그러니까 요는, 수술은, 되도록이면 피해야 할 일인데, 그래의 통로가 벌어지는 시간이 더디고, 그 말은 곧, 진통의 시간이 길어질 것이라는 것. 그리고, 길어지는 시간은 산모와 아이, 그러니까 그래와 조이에게 둘 다 좋지 않은 영향일 것이라는 점까지 이해가 된 석율이, 시시각각 변해가는 낯빛으로 주한을 마주한다. 주한 또한, 그런 석율의 모습을 바라보기가 너무 힘들다. 아이가 세상에 나올 때가 되어서야 마주한, 두려운 사실. 뱃 속에서 잘 놀고, 잘 크면 끝인 줄 알았던 것은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아이는 제 힘으로 세상에 나와야 하고, 부모와 의사는 그런 아이에게 고작, 길라잡이의 역할 정도 밖에 해 줄 수 없는데. 아이가 선택한 길에, 엄마가 응해줄 수 없다면...., 


주한의 고개도 어느샌가 떨구어진다. 누구보다도 아낀 환자였다, 아니 이제는 가족이었다. 조이는 예뻤고, 경이로웠으며, 두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커플이었다. 무엇보다 조이를 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주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처음, 아무것도 장담해 줄 수 없다고 말하던 그 때와는 차원이 다른,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허나, 주한은 의사였다. 말, 해야 했다. 그런 그가, 긴 침묵 뒤에 다시금 입을 연다. 



".... 최악의 경우...., 둘 중 ㅎ... ㅡ" 

"ㅡ아뇨. 말씀, 하지 마세요, 선생님" 



석율의 목소리엔 어느새, 파르르한 떨림도, 물기도 묻어 나왔다. 두 사람의 눈빛이, 소리 없는 대화를 주고 받는다. 그럴 일은 없을겁니다. 아니, 그럴 일은 없어요. 석율의 눈빛이 단호했다. 주한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죠. 저도, 그럴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조이, 그래 씨, 둘 다 엄청나게 씩씩하잖아요. 석율씨도 그렇고" 

"......... 감사합니다" 


석율씨도 씩씩하다는 게 감사한 건지, 이 모든 사실을 그래 대신 제가 먼저 알게 되어 감사한건지, 아니면 주한의 위로가 감사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석율은, 주한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며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했다. 이 진료실 밖에서 마주할 그래에게, 어두운 낯빛일 수는 없다. 나는 아빠니까. 나는, 조이의 아빠고, 장그래의 연인이자 보호자이며, 두 사람을, 지켜야 하니까. 문을 나서는 석율의 발걸음이, 어딘지 모를 울림이 있었다. 








"선생님이랑 무슨 얘기 했어요? 나, 아니 우리 조이, 어디 안 좋대?" 

"아니이~ 자기 이제 가진통 같은 거 올 지 모른다고 주의 사항 알려주시려고 한거야" 


석율은, 스스로 술술 나오는 거짓말에 감탄했다. 뭐가 됐든 말할 수 없다. 이런 거짓말이라면 아빠 백 번도, 아니 천 번도 더 할거야, 조이야. 다행히 그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태동 측정실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대며 전했다. 



"ㅡ그러니까 태동이 느껴지면 버튼을 누르는건데, 우리 조이가 하도 쉴새 없이 배를 차니까, 내가 계속 눌렀거든요. 이 간호사님, 기계 고장난 줄 아셨대.. 민망해서 혼났어요. 석율씨, 내 말 듣고 있어요?" 

"응? 어, 응 들었어. 참 그 녀석, 축구선수 될 것도 아닌데 무슨 막 달까지 발차기야" 

ㅡ그러니까 말이에요. 석율의 말에 그래가 쑥스러운 듯 웃었다. 



제발. 지금처럼만. 더 이상 아무것도 안 바랄게. 제발, 지금처럼만. 그래야.... 










"꼭... 나가야 해요?" 

"어... 미안, 금방 올게. 자고 있어" 

"전화, 꼭 받아요? 배터리도 챙겨가고" 



그래를 집에 데려다 준 후, 다시 나갈 채비를 하던 석율을 향해, 그래가 예전과는 사뭇 다른 투로 불안해하며 그에게 전화기를 손에 쥐어준다. 이제 정말, 언제 닥칠지 모르는 조이와의 만남. 행여라도 혼자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질까 두려운 그래는, 요즘 석율이 전화를 받는 것에 상당히 예민해져 있었다. 그런 그래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지만, 석율은 오늘, 집을 나선다. 오늘은, 그래의 눈을 마주하기가, 겁이 난다. 집 밖에서, 익숙하게 전화번호부를 뒤져 이름 하나를 찾아낸 석율이, 빠르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석율 씨? 

"백기 씨, 나랑 오늘, 술 좀 마셔 줄래?" 









석율과의 약속장소로 향하는 백기의 표정이 어둡다. 술이라니,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지난 9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석율은 피치 못할 자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금주 상태였다. ㅡ우리 그래 몸 풀면, 시원하게 같이 한 잔 할거야, 라며 허허 웃어보이는 그에게, 동료들 중 아무도, 사석에서의 술자리를 권하지 않았다. 아빠가 될 준비를 하는 그에게, 그렇게 모두가 말 없는 격려를 보내고 있었는데. 


"...진짜 무슨 일이야..." 


백기는, 저도 모를 중얼거림이 튀어나왔다. 정말 잘못 들은 줄 알고 옆에 앉아 어깨너머로 같이 듣던 해준에게도 재차 확인했다. 그도,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스스로 자청 해서, ㅡ한석율씨 뻗으면 전화해, 백업하고 있을게, 라고 했으니까. 한석율이 이렇게, 궤도를 벗어나는 이유는 언제나 단 한가지다. 한석율의 장그래. 조이엄마, 장그래. 




"어어~? 우리 백기 씨다. 장 백기씨! 여기 여기!!" 

아니나, 다를까. 먼저 와 있던 석율의 테이블에 놓여진 병의 수를 세던 백기가, 두 번을 다시 세어본다. ㅡ이 사람 미쳤나, 


"같이 마시자면서요. 이게 지금 혼자, 혼자 이게 다 몇 병.. 히익..." 

백기가 손목에 찬 시계를 본다. 그리 늦지도 않았다. 그 말은, 즉, 들이 부었단 소리다. 그것도 제 특기 발휘한 폭탄주로만. 


"히히... 백기 씨도 한잔 해~ 일루 와봐요. 내가, 내가 오랜만에 솜씨 발휘를 좀, 크크크" 


맥주병을 집어드는 석율의 손이 잔에서 자꾸 헛돈다. 백기가 얼른, 병도, 잔도 빼앗아 들었다. 혹시나 남아있는 술이 있을까 싶어 이리저리 확인 해 병들을 멀리 치워놓고, 석율의 맞은 편에 앉은 백기가, 한 껏 걱정된 투로 말을 걸어본다. 



"애 아빠가, 애기 오늘 나올지 내일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 이래도 되는거에요?" 

"흐흥... 우리 조이...... 그치..... 우리 조이가..." 

ㅡ그래요, 조이. 한석율 장그래 주니어, 내 조카. 그러니 그만 마십시다. 하며 그를 제대로 앉혀 보려는데, 




".....흐흑....." 

......!! 


"석율 씨, 한석율씨. 울어요? 고개 좀 들어봐요, 진짜 울어??" 


쭈욱 해피모드였던 사람이다. 그 때 저와 함께 했던 그래의 사고 현장 이후엔, 늘 얼굴에 웃음기가 감돌았고 최근엔 듬직함마저 보였던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서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에, 백기가 더 놀라 일단 급하게 냅킨부터 건네는데, 이제는 어깨마저 덜덜 떨려온다. 


"우리, 흑, 끅, 조이, 랑, 그래, 흐윽, 어떡,해..." 


조이랑, 그래를 어떡해? 석율의 말을 알아들은 백기가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무슨 일이, 무슨 말 못할 일이 터졌구나. 한석율이, 만삭인 장그래를 집에 두고, 이런 자리에 나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 그리고 그의 만취는, 거기에 따라오는 눈물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민하던 백기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석율의 곁에 다가가 앉아, 이미 몸을 못 가누는 상태인 그가 기대어 올 수 있게 한다. 


"여보세요? 어 해준씨, 난데 이리로 좀 와야겠어요. 아니, 한석율씨네 말고, 우리집으로 갈거에요. 응." 


그리고는, 재빨리 그래에게 문자를 보낸다. 


[그래 씨, 백기에요. 석율 씨가 좀 피곤했나봐요.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잠이 들어서. 조이까지 깨울까봐 조이아빠 제가 잠시 모시고 갑니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줘요. 폰 안 꺼놓을테니까 - 장백기] 



조이야.. 무슨 일이 있는거야 도대체.... 









"자기야아~ 미안~" 

"조이야, 아빠 식사하시라고 전해" 

"장그래, 진짜 이럴거야?" 

"조이야, 안 드실거면 엄마만 먹는다고 해 줘" 



눈을 떠 보니 백기의 집이었다. 상황을 설명해 놓은 백기의 쪽지를 보고,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거의 휘갈겨 써 놓은 채, 새벽 이슬을 맞으며 부리나케 집에 왔는데. 이리 맡아도 저리 맡아도 술냄새가 진동을 하는 걸, 그래가 눈치 채지 않을리가. 결국 자고 일어난 그래는, 부른 몸으로 석율이 벗어놓은 옷 까지 정리해두고는, 지금 이렇게, 조이랑 시위중이다. 


ㅡ그래야아~, 자꾸 부엌에서 뒤뚱 뒤뚱 움직이는 모양새도 불안한데, 또 그 모습은 왜이렇게 짠하도록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결국, 석율이 못 참고, 그를 뒤에서 꼬옥 안았다. 또 ㅡ조이야, 하면서 말을 시작하려는 그래의 입술을 뽀뽀로 쪽, 막아버린 석율이 속삭였다. ㅡ미안, 잘못했어. 나 무릎 꿇어? 응? 조이야, 아빠 그럴까? 그제야, 그래가 석율과 눈을 맞춰온다. 




"미워요," 


그래의 눈망울에, 불안이 서려있다. 이전의 장그래는 뭐든 침착하고, 뭐든 신중한줄만 알았었다. 조이를 품는 동안도 그러했다. 헌데, 조이와의 만남을 앞둔 장그래는, 요즘 꽤 자주, 제게 이런 눈빛을 보내오곤 한다. 평소라면, 오랜만에 한 잔한 석율을 이해 못할 그래가 절대 아니었다. 헌데, 요즘은 아니다. 한 날은, ㅡ코에서 수박이 나오는 느낌이래, 하늘이 노랗게 되고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고통이래요, 라며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모를 출산의 고통을 줄줄이 읊기에, 자꾸 혼자 집에 있을 때 그런 거 보지 말라고 엄포도 놓았었다. ㅡ미안, 많이 불안했어? 석율이 다시 따스하게 그를 안아주자, 그제야 그래에게서 온기가 느껴진다. 토닥토닥. 석율이 한동안 그래를 다독인다. 괜찮을거야, 중얼거리며.  



조이야... 실은 아빠도 너무 무섭고, 불안해. 그러니까.. 우리 조이가 엄마 아빠 좀 도와줘. 









"아, 대체, 뭘 하려고 그래~" 

"글쎄, 석율 씨는 그냥, 조이엄마, 그러니까 그래 씨 데리고 딱 두 시간만 나갔다 오라니까요?" 

"이거 영화 표인데, 어린이 영화니까, 그래 씨 봐도 되요. 조이 태교에도 좋대요" 


월요일 출근을 하기가 무섭게, 석율을 데리고 휴게실에 모인 영이와 백기가 다짜고짜 퇴근 하고 딱 두시간만 그래를 데리고 나갔다 오란다. 이 추운 겨울에 어딜 가 있냐 대꾸하려는데 백기가 손에 영화표까지 두 장 쥐어준다. ㅡ무슨 꿍꿍이야, 아무리 물어도 또다시 같은 패턴. 



"아우~ 알았어, 알았어. 두시간. 엉? 이거 보고 올게. 됐지?" 


석율의 대답에, 그제야 웃으며 저를 막고 서있던 길을 터 주려는 두 사람이다. ㅡ영화 재밌게 봐요! 라고 등 뒤에 대고 외치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한껏 들떴다. 





"갑자기 왠... 뜬금없이 영화요?" 

"몰라. 우리 조이한테 좋은 영화라고 백기 씨랑 영이 씨가 줬어. 좋다니까 보고 오자" 


의아해하는 그래에게, 패딩을 입히고 목도리도 꼼꼼히 두르고, 장갑도 껴 주고 난 석율이 조심히 그를 일으킨다. ㅡ다 됐다. 하는데, 쿡, 석율의 웃음이 새어 나온다. 부른 배에, 두툼한 패딩에 목도리까지 하고 있으니, 눈사람이 따로 없다. 그런 석율을 눈치챈 그래가, 힝, 하며, 


"웃지 마요" 

"이뻐서~ 너무 이뻐서. 이런 눈사람이면 365일 겨울이면 좋겠다. 그리고 나만 봐야지" 



석율이 그래의 붉은 입술을 탐한다. 그래, 지금처럼만. 그러자 우리. 











"그렇게 재밌었어?" 

"응! 나도 좋고, 조이 태어나기 전에 좋은 거 보여주게 되서 더 좋았어요. 백기 씨랑 영이 씨한테 고맙다 해야겠다" 



백기와 영이의 부탁 때문이었지만 꽤 재밌고 신나고 감동도 있는 영화였다. 석율도 꽤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는 아마 상상 이상이었던 것 같다. 영화관에서부터 집에까지 오는 내내 싱글벙글. 그런 그래의 모습에, 그간의 걱정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은 석율이다. 저리 웃는 얼굴을 계속 지켜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조이도, 우리 그래도. ㅡ조이야, 아빠 그럴 수 있게, 우리 조이가 도와줄거지? 석율은 마음 속, 간절한 기도를 올려본다. 









"어? 이거 왜 안켜지지?" 

"응? 어, 진짜. 불 나갔나?"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데, 으례 켜져야 할 불들이 안들어온 채 캄캄하다. 전기 나갔나 싶어 핸드폰으로 불빛을 비춰 보려는데, 



...!... 

두 사람 앞, 새하얀 벽에, 프로젝터가 비춰지고, 곧 익숙한 얼굴들이 화면을 채운다. 



*브금 재생 눌러주세요* 
 

(BGM - Somewhere Over the Rainbow by Israel Kamakawiwo'Ole) 




[어디, 여기 보고요? 음, 어, 조이야! 그래 씨, 석율 씨, 영이 이모에요~ 안녕~ 하하, 막상 이게 찍으려니까 좀 어색하네요. 음, 요즘 우리 나라도 그렇고, 외국도 그렇고, 아이 낳기 전에 친구들이 베이비 샤워라는걸 해준다더라구요. 우리 조이가 이제 곧 세상에 나온다는데, 조이 엄마 아빠도 처음이라 많이 두렵고 떨리고. 우리도 그렇고요. 그래 씨, 순산했으면 좋겠어요. 기적 같은 아이니까, 기적처럼 뿅, 하고 나왔으면. 조이야~ 그래줄거지? 얼른 나와서, 지금은 이모 뱃속에 있는 도담이하고도, 나중에 좋은 친구가 되어주면 좋겠다. 음, 안녕~] 

영이 씨... 


[어, 어.. 안녕, 조이야? 이모부야... 엄마 고생은 조금만 시키고, 세상에 잘 나와라. 음..., 아, 나 이거 도저히 낯간지럽다야... (에이! 과장님! 영이 씨 엄청 길게 했어요!) 아, 그래? 야 그래도 난 할말이 없.., 알았어. 어, 장 대리, 힘, 힘내고. 화이팅!] 

큭, 하 과장님... 



[어, 큼, 음, 강해준입니다. 장 대리랑 한 대리, 그 동안 수고 많았어요..... (조이한테!) 아, 어. 조, 조이야. 해, 해준이 삼촌이야. 어... 어쨌든, 기다리고 있을게. 세 사람 다, 별 탈 없이, 잘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끝?) 어. 꺼 빨리] 

강 과장님..., 


[보자.. 이게 녹화가..., 음, 짜잔! 조이야, 안녕! 그래 씨, 석율 씨도 음.. 하이? 백기 삼촌이야. 무쪼록 건강하고, 예쁘게 세상에 나와서 여기 삼촌들이랑, 이모랑, 그리고 엄마 아빠랑, 무사히 잘 만날 수 있길 바란다. 그래 씨! 화이팅이에요! 알죠?] 

백기 씨... 그리고... 




[어! 조이야! 장그래! 한석율도 안녕! 조이야 삼촌은, (삼촌 맞으세요?) 그럼, 나는 아직 삼촌이지. 삼촌은, 소영이 누나의 아빠, 그리고 조이 엄마의 상사이자, 오랜, 형. 동식이 삼촌이야. 엄마 그동안 너 때문에 고생 많~았다, 그러니까 나올 때는 수월하게, 한 방에, 쭉 나오자? 장그래, 힘 내고! 옆에 있는 한석율이도 힘 내고. 곧 보자, 우리] 

김 과장님과, 


[대리님!! 대리님 김성훈입니다. 조이야 안녕~ 어, 삼, 삼촌은, 음.. 나중에 조이가 태어나면, 꼭, 조이에게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 분이셨는지, 아빠가 얼마나 멋진 분인지, 알려주고 싶다. 장대리님, 한대리님, 회사는 일단 걱정 마시고, 조이 꼭 순산하세요!! 제가 과장님이 대리님 자리에 아무도 못 앉히게, 열심히 지키고 있겠습니다] 

고마운, 성훈씨...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 뭐 이런걸 해~ (아 부장님~~), 그래 알았어 알았어. 조이야, 안녀엉~ 어, 삼촌 (부장님! 부장님은 삼촌은 아니신거 같습니다) 아 그런가? 그럼 난 뭐지? (할아버지요) 야! .... 그래, 조이야, 음, 할아버지는 좀 그렇고, 큰아버지다. 너 임마, 늬 엄마 아빠가 너 때문에 너무 고생이 많았어요~ 그러니까 엄마 고생은 여기까지만 시키고, 세상에 나올 땐 아빠처럼 빨리, 나오길 바란다. 장 그래! 내가 애가 셋인거 알지? 그 기운 다 너 줄테니까, 쑴풍 낳고 얼른 회사 복귀해라, 엉? 얌마 너 빨리 안오면, 우리 안영이 대리를 거기다... (큭,) 얌마 왜 웃어 넌, 여튼, 장그래, 한석율이, 힘내라!] 


우리, 오 부장님까지... 



그들의 영상이 하나하나 지나갈 때마다 그래와 석율이 울었다, 웃었다를 반복한다. 석율이 그래를 뒤에서 안아, 그의 배에 손을 얹어본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고마운 사람들이, 조이를 위해, 이 아이를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 한 마음이 되어주다니. 우리 조이, 좋겠다 그래가 그렁해진 눈으로 고개를 돌려 석율을 바라본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가득했던 예의 그 불안의 눈빛이 아니다. ㅡ고마워서, 어떡해요, 그래가 작게 말하자, 




"Surprise!!!!!!!!!!" 

"어? 하하, 뭐야, 다들 어디 숨어 있으셨어요" 


거실에 불이 켜지고 두 사람의 방에서, 부엌의 구석에서, 쇼파 뒷 쪽에서, 조이의 방 쪽에서 영이와 백기, 성준과 해준이 나온다. 


"야, 감동인건 좋은데, 소감이 너무 긴 거 아니냐? 아우, 허리야. 내 나이가 몇인데 지금," 

성준이 허리를 두드리며 부러 툴툴 말하자, 옆에 있던 해준이 조용히, 끄덕끄덕. ㅡ응, 니 나이가 좀 많긴 하지. ㅡ야, 강해준. 너 지금 뭐래냐? 



"아휴, 참. 두 분 진짜. 그래 씨, 얼른 앉아요" 


영이가 얼른 그래를 쇼파에 앉히고는, 부엌 쪽에 두었던 몇 개의 접시를 들고 나온다. 성준과 백기가 얼른 그를 받아들어 돕는다. 하늘색의 데코레이션이 되어있는 컵케익, 그리고 쿠키, JOY라고 쓰여진 케익까지. 



"...영이 씨, 영이 씨도 몸 불편할텐데.. 뭘 이런걸..." 

그래가, 괜히 영이가 저 때문에 준비 하느라 힘들었을까봐 걱정스레 말하는데, 영이가 웃는다. ㅡ저 아니에요. 


"오 부장님 사모님이랑, 김 과장님 사모님이 준비 해 주셨어요. 전 그냥, 예쁘게 담아오기만 했어요" 

아..., 영이의 대답에, 또 그렁그렁한 눈이 된 그래를, 석율이 곁에 앉아 조심히 어깨를 쓸어내려준다. ㅡ조이 엄마, 그만 좀 울어요. 백기가 따뜻하게 말하자, 모두 웃어보인다. 



"감사합니다" 

다들, 진짜 고마워요. 조이랑, 저, 그리고 조이 아빠까지. 저희 힘내서, 우리 조이 예쁘게 태어나게 할게요. 그리 미소짓는 그래를 보던 석율도, 웃는다. 그래, 이 마음들, 실망시키지 말자 우리.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해 주는데, 괜찮아. 괜찮을거야, 우리는. 










"헤헤... 이거 너무 귀엽다. 그쵸 석율씨?" 


어느새, 두 사람의 방안에는, 조이의 짐이 한가득이다. 다들 뭘 그리 준비했는지, 아기 옷 부터 모빌까지 다양하게도 선물을 해 주었다. 한 켠에는, 언제부턴가 자리한, 조이와 그래의 병원 가방이 있다. 진통이 시작되면, 정신이 없을거라며 두 어머니가 번갈아가며 꼼꼼히도 싸 놓으셨다. 


침대에 기대 앉아 석율에게 안긴 그래가, 손 위에 영이가 선물해 준 아기신발을 올려본다. 


- 아기 신발 두면, 아이가 신발 신고 세상 구경 하고 싶어서 빨리 나온대요. 


무쪼록, 조이가 세상 구경 빨리 하고 싶은 마음에서라도, 엄마 고생 덜 시키고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라며 영이가 전해주었다. 




"정말, 그 말처럼 고생 없이 나왔으면 좋겠다" 

"나, 막 소리 지르면 어떡하지?" 

"그게 걱정이야?" 

"아니면 막, 자기 머리 쥐어 뜯으면 어떡하지?" 

"으구, 다 해. 뭐든. 나 한시도 니 옆에서 안떨어지고 있을테니까. 다 해, 그래야" 



그가 다시 꼬옥 그래를 품에 안아본다.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니가 무사할 수만 있으면. 너랑, 조이랑, 그저 무사하게, 내 곁에 있어줄 수만 있으면. 조이야, 아빠 옆에서 꼭 기다릴게. 그러니까 조이야, 꼭, 웃는 얼굴로 인사해 줘.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그렇게... 또 며칠이 흘렀다. 




"...석율씨... 석율씨...?" 


아직 새벽이 밝아오기엔 한참이 남은 까만 밤, 그래가, 옆에 잠든 석율을 깨운다. ㅡ으응? 왜..., 하며 석율이 몸을 일으키는데, 그래의 이마에, 이 한 겨울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 모습에 화들짝 놀라 튕기듯 일어난 석율이, ㅡ그래야, 왜. 응? 배아파? 묻는데, 뭉근하게 찾아오는 그 고통에 자꾸만 말이 끊기는 그래가, 끄덕이며 겨우, 내뱉는다. 



"가방... 챙겨요. 병원... 가야 될 거 같아......" 







조이가,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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